하루하루 정신 없이 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생각은 종종 “어떻게 늙어야 하나.”가 되기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이 낳은 대책 없는 불안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마주하며 가슴 답답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속 시원한 돌파구를 찾지 못해 분주한 마음을 애써 가다듬던 2020년 가을. 볕이 포근하게 들어오는 정갈한 거실에 앉아 김영자 자원봉사자는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이 살아낸 삶을 이야기하며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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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간 몸담은 직장을 떠나자마자 시작한 일

2005년 5월 21일 금요일. 김영자 봉사자가 요일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이 날은 40년 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 한 날이다. 그녀는 미군 부대에서 채용 등 인사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정년을 맞는 순간까지 주어진 일이 재미있었고 열심을 다했기에 퇴직은 낯설기만 했다. 40년을 하루 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며 성실히 업무를 감당해 왔는데 오롯이 내 시간으로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막막하게 다가올 때, 회사 선배가 ‘번역 봉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바로 이거구나!” 김영자 봉사자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5월 21일 금요일 정년퇴직을 하고 주말을 보낸 뒤 5월 24일 월요일. 바로 월드비전에서 번역봉사를 시작했다.

후원자에게 보낼 편지를 정성을 다해 작성하고 있는 아동

후원자에게 보낼 편지를 정성을 다해 작성하고 있는 아동.
김영자 봉사자는 이런 아동들의 소중한 마음까지 후원자에게 닿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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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대에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발전

1945년 생인 김영자 봉사자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녀가 번역하는 편지 속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춥고 배고팠던 1950년 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한국전쟁 당시 기억이 절절하게 남은 김영자 봉사자에게 아이들의 이야기는 먼 나라 일이 아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번역을 해 나갈 때마다 마음을 담았어요. 어려움 속에 있지만 희망찬 내일에 대한 꿈을 잃지 않기를 기도하고 기대하며 번역을 하는 순간순간이 감사하고 보람찼어요. 무엇보다 전 세계 도움을 받던 한국이 전 세계 연약한 어린이와 이웃을 도울 수 있을 만큼 발전한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어요. 이런 변화를 살아서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는데 꿈만 같아요. 그리고 귀한 일에 평생을 함께 한 영어라는 재능이 사용될 수 있음에 감사해요.“

– 김영자 번역 봉사자님과의 대화 중에서 –

전쟁이 휩쓸고 간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황폐한 모습 그 자체였어요.

전쟁이 휩쓸고 간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황폐한 모습 그 자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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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봉사

15년을 넘게 쉬지 않은 봉사이니 힘든 순간도 당연히 있을 거란 생각에 여쭤보았다.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다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번역할 편지가 도착하고 보내는 일이 번거롭지 않게 이루어지지만, 처음 봉사를 시작한 2005년은 상황이 달랐어요. 월드비전에서 우편으로 번역할 편지들을 보내주면 잘 받아서 번역을 하고, 직접 우체국에 가서 월드비전으로 보내야 했어요. 그 때에도 우체국 오가는 일이 귀찮지 않았어요. 마음이 즐거우니 발걸음도 가볍게 약속한 기일을 어기지 않고 번역한 편지들을 보냈어요.”

– 김영자 번역 봉사자님과의 대화 중에서 –

15년간 세계 각국 아이들의 편지를 번역 · 후원자들에게 발송 해 온 김영자 봉사자.

15년간 세계 각국 아이들의 편지를 번역 · 후원자들에게 발송 해 온 김영자 번역봉사자.
이 공로를 인정받아 월드비전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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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과 함께 한 15년

올해 70주년을 맞은 월드비전에서는 김영자 봉사자와 같은 숨은 영웅들에게 작은 감사를 표했다. 좋아서 했을 뿐인데 상까지 주니 그저 황송할 뿐이라며 김영자 봉사자는 제2의 인생을 함께한 월드비전이 70주년이라니 감개 무량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긴 세월, 이 힘든 일을 정말 잘 해 온 월드비전 직원들이 자랑스럽다는 봉사자의 진심 어린 격려를 전 세계 월드비전 직원 모두 들을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전 세계 어두운 곳을 세심하게 찾아내어 도움을 주는 월드비전이 힘든 상황의 아이들도 꿈을 잃지 않고 언젠가 한국처럼 어둠을 헤엄쳐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길 바란다는 기대도 잊지 않았다.

잔잔한 감동이 가득했던 인터뷰의 막바지, 혹시 못다한 이야기가 있을 지 여쭸다.

“봉사를 하며 후원하는 분들께 너무 고맙더라고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간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 일을 소리 없이 하고 계신 후원자님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연약한 이들을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얼마나 빛나게 하는 지 김영자 봉사자는 평범하고 소박한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든 아이들이 풍성한 삶을 살기 바라는 어른들이 바꾸어 가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