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섬’. 서예를 배우던 시절 최병길 후원자가 사용한 낙관이다. 입에서 맴도는 예쁜 단어 ‘나비섬’. 어떤 뜻인지 물으니 ‘나누고 비우고 섬기며 살자’는 바람을 담았다고 하신다. 월드비전에서 두 명의 아동을 28년 째 후원하고 있으며, 매 주 기관에 찾아와 사무 업무를 도와주시는 자원봉사를 15년 동안 계속해 오고 있는 최병길 후원자의 삶은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시간으로 채워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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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이들과의 이별

경주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최병길 후원자에게 아이들은 기쁨이고 행복이고 자랑이었다. 선생님의 자동차 소리만 들려도 우루루 몰려나와 반기는 아이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매일 가슴 뛰며 출근을 했다. 소소한 즐거움이 이어지던 그녀의 일상이 흔들린 건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암’ 이라는 질병 앞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담당 의사는 당장 모든 것을 멈추고 항암과 휴식에 집중하라 했다. 경주와 서울을 오가며 치료를 받아야 했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건강을 회복하는 게 중요했지만 아이들과의 이별은 최병길 후원자에게 큰 상실감을 남겼다.

사무 봉사를 하고 있는 최병길 후원자. 사진

매 주 1회 여의도에 위치한 월드비전 본부를 방문하여, 3시간 동안 사무 봉사를 하고 있는 최병길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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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이들 곁으로 갈 수 있는 일

항암 치료가 이어지며 생활은 단순해졌다. 삼십 년 가까이 아이들과 빈틈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녀에게 갑자기 찾아온 여유는 무료하기도,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순 없었다. 항암제 투약 기간 중에는 꼼짝할 수 없었지만 회복기에는 움직일 수 있는 기력이 생겼고, 최병길 후원자는 이 때 뭐라도 해야겠다 다짐했다. 오랜 시간 후원을 해 오던 월드비전이 생각나 일단 전화를 걸었다. 서류정리 같은 가벼운 업무를 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 물으니, 월드비전에서는 사무 봉사를 권하며 기꺼이 함께 해 달란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봉투에 풀을 바르거나 바코드 스티커를 부치는 등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이렇게라도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뻤다. 병과 싸우며 시작한 봉사는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그 세월이 15년을 지나고 있다.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수여받고 있는 최병길 후원자. 사진

1992년부터 후원을 시작하고, 2005년부터 현장 봉사를 한 최병길 후원자는 월드비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서울시의회 의장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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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감사하고 매일이 기쁜 삶

처음 봉사를 시작하며 그녀가 맡은 일은 아이들이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를 봉투에 넣는 작업이었다. 담당 직원이 아동의 편지를 출력해 주면 깔끔하게 접어 봉투에 넣은 뒤 풀로 부치는 일을 일주일에 한 번, 하루 세 시간 꼬박 집중했다. 항암 주사를 맞을 때에는 손끝까지 감각이 무뎌져서 편지지가 몇 장씩 겹쳐 집어지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실수하지 않으려 정성을 다하며 봉사를 이어가기를 몇 년이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편지지를 겹쳐 집는 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일은 점점 손에 익었다. 의술이 발전하기는 했지만 최병길 후원자는 ‘봉사’를 하면서 병이 나은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규칙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일상에 보람을 찾게 해 준 봉사는 ‘삶’을 대하는 마음도 긍정적으로 바꿔주었다. 내 손발을 움직여 조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낀 최병길 후원자는 하루를 마무리 하며 기도한다.

“오늘도 기쁘게 잘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무 봉사중 촬영팀을 향해 웃고있는 최병길 후원자. 사진

무엇이든 다른사람을 위해 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최병길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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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행복하다는 것

최병길 후원자의 일상은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거나 책을 보다 보면 하루가 가고, 월드비전에 들러 봉사를 하면 또 그렇게 하루가 간다.

“세월이 너무 잘 가서 아쉬운 마음이야 어쩌겠어요.
그 마음은 그대로 놔두는 거예요.
난 지금 참 행복하니까.
바로 오늘 이 순간이 좋아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요.
그래서 진짜 열심히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나누며 살라고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자원 봉사자실을 나서다 왠지 마음이 끌려 뒤돌아보니 넓은 책상 위에서 움직이는 후원자님의 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신중함을 더한 눈빛도 조금씩 앞으로 숙여지는 고개도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눈부시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함이 전해진다. ‘나누고 비우고 섬기는 삶’을 사는 최병길 후원자가 건네는 소박하지만 꽉 찬 위로가 아이들뿐 아니라 차가운 세상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에게 깃들기를 바라본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