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타지로 간 엄마,
신장투석과 저혈압으로 누워 계신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에게 남겨진 어린 손녀들.
보호자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어른아이가 된 자매의 모습이
모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의 푸르름이 가득했던 날,
할머니와 아이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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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침대 하나가 가져온 큰 행복

“아이들이 침대에서 내려가지 않아요. 바닥에서 잠을 청하다가도 어느새 보면 올라와 있다니까요.” 일주일에 세 번 신장투석을 받느라 주삿바늘 자국이 가득한 손목. 손목의 힘이 부족해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 것이 어려운 할머니를 위해 가장 먼저 지원한 것은 침대였다. 이뿐만 아니라 침대 옆에 놓인 책상 역시 할머니를 위한 공간이다.
바닥에 어지럽게 놓여 있던 바늘과 알코올 솜을 책상 위에 편하게 정리해둘 수 있다. 아이들의 안전과 위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바닥이 아닌 책상과 의자에 앉을 수 있어서 식사할 때도 훨씬 편하다. 모인 후원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겠냐고 아무리 여쭤봐도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고마워서인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사회복지사는 침대와 책상을 제안했다.

“손목에 힘이 덜 들어가니까 이전보다 훨씬 편해요.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푹 잘 수 있어요.” 평범한 침대 하나가 할머니와 아이들에게는 가구 이상의 의미다. “새 침대에서 자면 잠이 솔솔 와요.” 학교에서 막 돌아온 소영이는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할머니가 앉은 침대 옆으로 올라와 눕는다. 서로의 살을 맞대고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 포근한 잠자리는 세 식구의 행복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아

“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쓰러졌는데 요즘은 체력이 회복돼서 그런지 쓰러지지는 않아요. 또 예전에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요즘은 입맛이 좋아서 많이 먹게 되네요.”

오히려 살이 너무 많이 찔까 봐 염려돼 20분 거리의 병원을 걸어 다닌다고 한다. 그동안 병원비 때문에 생긴 부채로 마음이 무거웠던 할머니. 지원금으로 부채 일부를 상환했고, 생계비도 지원받게 되어 스트레스가 많이 줄어든 것. 마음의 병이 사라져서일까, 체력도 점차 회복되었다.

“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쓰러졌어요. 저를 돌봐줄 사람도 없고 아이들만 있으니 정말 막막하더라고요. 계속 지금만 같으면 좋겠어요.”

혈압이 낮아지면 할머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은땀 범벅이 되었다. 그럴 때마다 소영이는 작은 가슴을 콩닥이며 설탕물을 타서 주었다. “어느 날은 어디서 받았는지 사탕이랑 초콜릿을 가져왔어요. 자기가 안 먹고 할머니 줘야 한다고 가져왔더라고요.” 할머니가 쓰러지는 게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랬을까? 자신보다 할머니를 먼저 챙겨야 했던 어린 소영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다운 웃음을 되찾은 자매. 집에 찾아온 낯선 손님들에게도 반갑게 인사한다. 늘 할머니의 상태를 살피며 노심초사하던 소영이가 오늘은 수영복이 든 가방을 열어 보이며 내일도 가야 한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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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교실, 꿈이 자라요!

“제가 없으면 쓰러질 것 같아서 할머니 곁에 있었어요”라고 말하던 소영이. 이제는 마음 놓고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방과후교실에 동생과 함께 매일 갈 수 있다. 독서교실, 피아노 배우기, 미술시간 등 다양한 활동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자라게 하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한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육상 1등을 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동생 진영이(가명)는 얼마 전에 받아쓰기 100점을 받았다고 복지관 선생님이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할머니는 요즘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참 즐겁고 기쁘다. 달리기와 피구를 할 수 있는 체육시간이 제일 좋다는 소영이에게 “소영이는 꿈이 뭐야?”라고 묻자 부끄러워하며 종이와 사인펜을 가져간다. 얼마 뒤 가져온 종이에는 ‘승무원’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비행기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비행기 승무원이 되고 싶단다. 동생 진영이도 언니를 따라서 종이에 적어왔다. 진영이에게 최근 새로 생긴 꿈은 ‘헤어 디자이너’라고 한다. 아픈 할머니를 돌보며 마음 졸였던 아이들이 이제야 웃음을 되찾고 꿈을 키워가고 있다.

 

열 살 소영이의 새로운 소원

“나도 사탕 맘껏 먹고 싶어요. 근데 할머니 드려야 해요. 할머니는 사탕을 드셔야 안 쓰러지시니까. 그래도 이제 할머니가 안 쓰러지셔서 좋아요. 마음 놓고 방과후교실에 갈 수 있어요.” 가끔은 게으름을 부릴 때도 있지만 소영이는 복지관 방과후교실에 가는 게 너무 즐겁다.

특히 오늘은 생일을 맞이한 친구들을 위한 단체 생일파티가 있는 날. 4월에 열 살이 된 소영이는 어제부터 이날만을 계속 기다려왔다. 초를 불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소원을 빈다. 소영이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소영이는 비밀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몇 달 전만 해도 ‘할머니가 아프지 않는 것, 엄마와 같이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던 소영이. 그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소영이는 씩씩하게 이겨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할머니가 쓰러지지 않고, 또 소영이에겐 꿈이 있으니까. 아마도 소영이의 새로운 소원은 ‘멋진 승무원이 되어 할머니와 엄마와 동생과 여행을 가는 것’ 아니었을까?

(좌) 소영이의 생일파티. (우) 독서교실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소영이.

(좌) 소영이의 생일파티. (우) 독서교실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소영이.

 

글. 김수희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일러스트. 민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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