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옥빛 해변이 떠오르는 인도네시아 발리. 그 곳에서 다시 자그마한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타고 세 시간쯤 날아가면 숨바 섬이 있습니다.

숨바 섬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와 아름다운 숨바 섬

숨바 섬으로 데려다 줄 비행기와 아름다운 숨바 섬

 

“장례식만 하면 가난해져요”

전통을 중요시하는 숨바 섬 사람들. 심지어 일부 지역에는 주인과 노예로 나뉘어진 계급 관계가 그대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이들은 특히 집안의 경조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러야 고인에 대한 예를 다 하는 것이고 후손들의 삶도 풍성해 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장례식은 한 달 이상 치러지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매번 극진히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많은 가축을 잡아야 합니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부의금 명목으로 가축을 가져와야 해서 마을 전체에도 매우 큰 부담이 됩니다. 사회계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장례식을 한 번 치르는데 수 십 마리의 가축(돼지, 말, 소)와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5,000 이상이 필요합니다. 인구의 22% 이상이 하루 $1.25 미만으로 생활하는 숨바 섬 주민들에게 이 비용은 매우 무거운 짐이고 실제로 평균적으로 소득의 50% 이상을 이런 경조사에 쓴다고 합니다.

전통에 따른 장례식에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아주 많은 가축이 필요합니다

전통에 따른 장례식에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아주 많은 가축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하게도 아이들의 교육이나 건강에 쓸 수 있는 돈을 마련하기 어렵고 심지어는 연달아 있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빚을 내고 그 빚이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어 빈곤의 굴레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가 미래를 삼켜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빈곤의 원인은 기근이나 자연재해처럼 아주 쉽게 눈에 띄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 제도나 문화적인 요인처럼 외부인이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월드비전 사업의 핵심은 바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일하며 빈곤의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데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숨바 섬의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주기 위해 주민들과 월드비전이 함께 해온 장례문화간소화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민들을 만나는 월드비전 직원들

주민들을 만나는 월드비전 직원들

2014년에 장례문화 간소화를 선언한 콤바파리(Kombapari) 마을의 원로들

2014년에 장례문화 간소화를 선언한 콤바파리(Kombapari) 마을의 원로들

 

“작은 장례식에 서명하세요!”

변화의 시작은 지역 사회의 리더 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월드비전과 함께 아이들이 건강하고 풍성하게 자라날 수 없게 하는 빈곤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이 장례문화가 많은 문제의 뿌리가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변화를 만들기 위한 쉽지 않은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의 원로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반대가 가장 컸습니다. 그들을 계속해서 찾아가서 대화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변화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아동클럽 활동을 통해 아이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이해하고 마을 회의에 참석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동클럽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알고 마을회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동클럽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알고 마을회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건강한 마음> 이라는 그룹이 만들어져서, 장례절차에서 불필요하고 지나친 부분을 없애고 간소화 하는 논의가 시작 되었습니다. 이를 각 마을의 규정으로 정하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행사도 계획 되었습니다.

 

“약속합니다”

라일라라(Lailara) 마을에서는 마을의 서기인 아프리아누스(Aprianus Ndamunamu, 41세) 씨가 주도적으로 장례문화간소화를 추진했습니다. 다른 마을들처럼 라일라라 마을도 우여곡절 끝에 장례문화를 간소화하고 절약한 돈을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마을규정을 만들었습니다. 2014년 11월 14일 드디어 마을 장로들과 정부관계자, 모든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간소화 선언식을 했습니다.

장례문화간소화 선언식을 진행하는 아프리아누스 씨

장례문화간소화 선언식을 진행하는 아프리아누스 씨

장례문화간소화 서약서에 서명하는 마을의 원로들

장례문화간소화 서약서에 서명하는 마을의 원로들

 

그리고 선언식 나흘 후,
아프리아누스 씨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일이 되자 아프리아누스 씨도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어른들은 벌써 찾아와서 어머니에 대한 예를 다 하려면 제대로 된 장례식을 준비하라고 성화였습니다.

선언식에 참석한 마을 주민들과 지역정부 관계자들

선언식에 참석한 마을 주민들과 지역정부 관계자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밤새 한 숨도 못 자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람들에게 잘못된 풍습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얘기해왔지만 정말 내 일이 되니까 또 다른 고민들이 생기더라고요.”

깊은 고민 후에 아프리아누스 씨는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가 시작될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약속한대로 간소화된 장례식을 6일장으로 치렀고 손님 대접도 2번만 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고 반대하는 친척들과의 갈등도 있었지만 만약 전통대로 치렀다면 많은 대출을 받아야만 했고 6명의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했을 것이기에 돌아봐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아프리아누스 씨. 무엇보다도 자신이 좋은 선례가 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이웃들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간소화를 선택할 수 있어서 뿌듯하다고 합니다.

라일라라 마을의 장례문화간소화 선언에 앞장선 아프리아누스 씨

라일라라 마을의 장례문화간소화 선언에 앞장선 아프리아누스 씨

 

“이제는 작은 장례식이 대세랍니다.”

아프리아누스 씨와 같은 용기 있는 리더들 덕분에 2012년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후로 월드비전의 후원 아동들이 살고 있는 이스트숨바 지역의 18개 마을 모두가 장례문화 간소화 선언에 동참했고 지역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 부모들은 절약한 돈으로 아이들을 더 건강하게 키우고 더 나은 교육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결단하고 행동하는 이스트숨바 주민들 참 든든하지 않나요?

이렇게 이스트숨바 지역의 마을들은 아동을위한자립마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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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라 마을, 콤바파리 마을 주민들과 월드비전 직원들

 

글. 박한영 지역개발팀
사진. 박한영, 인도네시아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