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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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을 키워준 사랑의 도시락, 뭐라도 해야죠!

 

“택시 운전을 하면서 두 아이 끼니를 제 때 챙기는 건 너무 어렵죠.
아이들 밥 때는 다 되어 가는 데 멀리가시는 손님이 타기라도 하면 마음이 철렁 하지만 또 돈도 벌어야 하니까 안 모실 수도 없잖아요.

사랑의 도시락은 동동거리던 아빠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어요.”

 

왜 어려운 일은 한번에 몰려오는 지..

다부진 눈매로 조근조근 지난 날을 이야기 하는 오상택 봉사자. 이제는 공군으로, 요리사로 잘 커 준 두 아이들이 든든하지만 이렇게 키워내기까지 참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리고 결코 아빠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봉사자님은 사업을 하다 실패했고 가정은 크게 흔들렸다. 여러 어려움들이 겹치며 아내와도 헤어지게 되었고 두 아이들은 아빠와 남았다. 아빠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장시간 운전이 익숙하지 않았던 아빠는 다리에 마비가 오며 운행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먹이기도 힘에 부치는 시절이었다. 형편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점점 안 좋아지기만 했고 아빠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이 찾아와 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오상택 봉사자의 가정이 이렇게 위태로울 때 월드비전을 만나게 되었다. 봉사자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월드비전이 알게 되었고, 두 아이가 하루에 한 번 사랑의도시락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가 벌써 2004년. 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애가 2학년 무렵이다. 아이들 끼니 걱정 없이 택시 운행을 할 수 있게 된 봉사자님은 아이들이 건강 걱정과 부모로써 기본도 해 주지 못하는 듯 한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마음에 담아만 둘 수 없어 택시 일을 하다 짬이 날 때마다 봉사할 것을 찾아 월드비전 복지관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 시간이 맞으면 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고된 노동에 봉사까지 힘들 지 않을 수 없지만 아빠의 발걸음과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을 만나 자원봉사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시는 오상택 봉사자님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을 만나 자원봉사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시는 오상택 봉사자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빠는 정식 봉사자가 되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도시락 지원은 이어졌고, 영양 만점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들의 꿈을 찾아 첫째는 공군이, 둘째를 요리사로 제 몫을 해나가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빠는 2014년부터 정기적인 날짜를 정해서 사랑의도시락을 배달하는 정식 봉사자가 되어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지금은 건물 경비 일을 하는 오상택 봉사자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나눔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두어 시간 남짓 13가정에 26개 도시락을 배달한다. 오래 살던 동네라 길이 익숙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머쓱해 하셨지만, 고된 경비 일을 마치고 다시 고갯길을 찾아가며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거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드린 것처럼 우리 가정이 월드비전에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컸어요. 그에 보답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봉사를 하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어요.”

 

도시락이 처음 배달되던 날을 잊지 못해요.

어려운 형편에서 아이들을 키웠지만 아빠는 아이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정직’과 ‘감사’를 가르쳤다.

“처음 파란색 사랑의 도시락이 두 개 배달되어 왔는데,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반찬도 실하고 밥도 넉넉하고요. 한창 자라는 두 사내 아이가 먹기에 모자람이 없었죠. 그 때 이 도시락을 준비했을 여러분들이 떠올랐어요. 식단을 짜시는 분, 조리를 직접 하시는 분, 또 배달을 하시는 분… 그리고 이런 사업을 위해 후원을 하시는 분. 참 어렵고 힘든 일인데 그 모든 분들의 사랑이 이 내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구나 생각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정직하게만 살면 그 삶은 부끄럽지 않는 거다.’라는 아빠의 가르침을 꼭 닮은 두 아들은 올곧고 바르게 자랐다.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 사랑의 도시락을 더 이상 먹지 않지만, 아빠는 매주 금요일이면 양손 묵직하게 도시락을 들고 배달 봉사를 나선다. 이 길이 옳은 길이기에 멈출 수 없다 하는 봉사자님의 얼굴엔 햇살 닮은 따뜻한 웃음이 가득 이다. 그래, 달리 사랑의 도시락이겠는가.

양손에 하나씩,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배달을 가는 오상택 봉사자님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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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월드비전 패밀리데이, 박미선의 보이는 라디오!

찬바람이 온 몸을 감싸는 12월 어느 금요일 저녁!
시끌시끌, 북적북적, 꺄르르륵~

레트로 감성을 물씬 풍기는
행사장 로비에는 월비사진관, 월비다방, 월비상회 등
다양한 부스가 운영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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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데이에 오신 월드비전 가족들을 위한
스페-샬 간식과 재미있는 뽑기도 준비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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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시간 한참 전부터 오셔서
로비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계신 후원자님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월드비전 패밀리데이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다양한 이유로 친구와 가족들과
따뜻한 마음을 한 가득 가지고
참석하게 된 패밀리데이~

패밀리데이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본격적으로 구경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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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감성으로 패밀리데이의
포문을 열어준 허지영 밴드부터,
감미로운 목소리 가수 홍대광,
패밀리데이를 축하하는 가수 별의
특별한 무대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가득했답니다.

그리고, 2019 패밀리데이!
박미선의 보이는 라디오에서
준비한 첫 번째 코너

“처방은 내가 할게, 고민은 누가할래?”

DJ 박미선 씨와 가수 조성모 씨가
후원자님들의 사연을 소개 해주시고,
바로 바로 고민을 해결해 주었는데요.

20~30대 후원자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로 취업, 연애, 육아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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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사랑을 했다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원자님께 드리는
DJ 박미선 씨의 처방!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됩니다.
하지만 서두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100% 맞는 사람은 없어요.
서로 맞추어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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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코너, ‘월비의 만찬’

DJ 박미선 씨가 실제로 다녀온
아프리카 현장 영상을 함께 보며
가수 이지혜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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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너 차례 아프리카에 다녀온
박미선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아이들은
우간다의 ‘로참과 이콜롱’이였답니다.

​박미선 씨가 만났을 때,
아이들은 모레 벼룩으로 손에도 상처도 많고,
제때 먹지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3년 후, 아이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아이들은 치료를 받아 예쁜 손으로 회복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고 해요.

감동적인 코너를 마친 후,
전이수 작가가 영상으로 깜짝 등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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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새내기 후원자가 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전이수 작가!

​노숙자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그동안 모은 돈 300만 원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해 주신 사연을 듣고
그린 그림을 소개와 함께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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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더라고요. 힘든 사람이 ‘힘듦’을 알기 때문에 힘든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거예요. ‘힘든 사람들을 누군가가 도와주고 아껴준다면 힘든 사람들의 힘든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함께니까…” @전이수 작가

 


 

올 한해도 월드비전과 함께해주시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먼저 손 내밀어 주신 후원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박현아
자료. 편형철,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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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201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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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월드비전 국제사업

여기 매일매일 가난과 질병,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느닷없는 재난과 전쟁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이 겪는 공포와 고통은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된다. 부서진 일상 속에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함께 무너져간다.
월드비전은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런 아이들을 찾아간다. 후원자의 나눔과 사랑은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민첩하게 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데 든든한 힘이 되어 함께한다.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월드비전의 국제사업. 쉽지 않은 여정 속에 포기하지 않고 발걸음을 함께한 후원자, 현장의 아이들과 주민, 월드비전이 일으키는 변화의 증거를 차근차근 살펴보려 한다.

 


 

깜깜했던 하루하루에 밝은 빛이 비쳤어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피리야. 외톨이였던 피리야에게 안녕 인사를 처음 건넨 건 월드비전이었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피리야.
외톨이였던 피리야에게 ‘안녕’ 인사를 처음 건넨 건 월드비전이었다.

 

눈을 맞춰 인사할 순 없지만 환한 미소와 단단한 말투가 그대로 마음에 새겨지는 아이. 피리야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인도에서 에이즈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도시인 넬로어에 사는 피리야는 앞을 보지 못한다. 에이즈 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피리야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감염자였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두렵고 무지했던 부모는 피리야에게 적절한 치료약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피리야는 결국 에이즈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깜깜한 오늘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살 이유가 없었어요. 앞이 안 보여서만은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그냥 하루를 살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무기력한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지만 저 역시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릴 거란 생각에 집 밖으로는 나갈 생각도 안 했어요.”

 

부모님도 피리야 곁을 떠나고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피리야의 가정에는 짙은 절망만이 가득해 말하고 숨 쉬는 당연한 일들조차 힘이 들었다. 모든 것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손녀딸을 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시밭이죠. 아무 죄 없는 아이가 저리 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저도 이런데 본인은 어떻겠어요? 웃는 법도 없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피리야를 집 밖으로 불러낸 건 월드비전이었다.
어느 날, 월드비전 직원과 에이즈 환자 모임의 리더라는 사람이 피리야를 찾아왔다.

“안녕, 피리야.”

 

 

‘우리’는 ‘우리’가 지켜요

인사를 건네던 월드비전 직원의 목소리가 피리야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이제껏 피리야는 이렇게 다정한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피리야와 같은 에이즈 감염자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도 불쾌해했다. 월드비전 직원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피리야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죄 지은 사람처럼 집 안에만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월드비전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피리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피리야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월드비전은 우선 피리야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점자 교육에 참여하도록 했다. 집 밖으로 나오니 피리야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월드비전은 이들을 한데 모아 연대하여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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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드비전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피리야와 같은 에이즈 감염 환자들을 위해 진행한 점자 수업. 피리야는 이 수업을 통해 글을 읽고 쓰는 걸 배워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 넬로어 사업장의 에이즈 감염자들의 모임 ‘긍정 네트워크(Positive people network)’는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연대하며, 모임에서 가장 어려운 회원을 우선적으로 돕는다.

 

3.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피리야의 할머니에게 월드비전에서는 재봉 직업 기술 훈련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월드비전은 재봉틀도 제공했다. 할머니는 이제 동네에서 알아주는 재봉사로 이름을 날리며 넉넉히 가정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4. 강제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스스로 주변의 눈이 무서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에이즈 감염자들을 월드비전은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해서 만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5. ‘긍정 네트워크’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개선과 올바른 건강 관리 방법 등을 논의하고 실천한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기본 + 행동도 바뀌어야
= 진짜 변화!

월드비전은 피리야의 마을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어렵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일상의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 물론 식수가 필요한 곳에 식수 시설을 짓고, 학교가 필요한 곳에는 학교를 짓는 등 환경을 바꾸어나가는 사업도 활발히 펼친다. 이런 기본적인 사업에도 중요한 비중을 두지만 무엇보다 아동과 주민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 힘을 쏟는다.

환경을 바꿔주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5년에서 20여 년까지 한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 없애주는 게 아닌, 그 문제가 왜 생겼는지 끝까지 파고들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야 마는 월드비전의 사업 방식은 월드비전이 떠난 후에도 주민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월드비전 국제사업 과정

환경 바꿔주는 사업 + 행동 바꾸도록 교육

보건영양, 보건소 개선 및 보수와 이유식 조리법 교육. 식수위생, 식수 시설 및 화장실 설치와 식수관리위원회 훈련. 교육, 시설 개부소 교사 역량 강화 와 아동 연령별 맞춤 교육. 소득증대, 생계 수단 지원과 저축 그룹 활동. 아동보호, 아동 문제 알릴 창구 마련과 아동 클럽 자기 방어 훈련

 

 

좋은 것은 확실히 늘었고
나쁜 것은 확실히 줄었어요!

피리야는 결국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내일도 오늘처럼 깜깜할 거라며 절망 속에 살던 피리야를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잡아준 월드비전과 지역주민 그리고 한국의 후원자들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월드비전이 펼친 사업이 거둔 실질적인 변화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다.

70년 가까이 진행된 월드비전의 사업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확실히 줄었고, 튼튼한 가정과 마을을 만드는 점들은 확실히 좋아졌다. 오랜 세월이 흘러 보니 위태롭던 아이들과 주민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 것뿐 아니라 이들을 응원하며 사랑과 응원을 아낌없이 보낸 후원자 그리고 월드비전 직원들의 삶 속에도 만만찮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함께 성장했으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월드비전 국제사업 과정

5개 핵심 문제의 실제 변화

[2017 방글라데시 자립마을 보고서]

보건 영양, 저체중 아동 26%에서 6%로 감소. 식수 위생, 식수 접근율 56%에서 97%로 증가. 교육, 중등학교 졸업률 45%에서 97%로 증가. 소득증대, 저축액 향상 주민 38%애서 84% 증가. 아동보호에서 조혼비율 39%에서 17%로 감소.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자료. 이은규 지역개발팀,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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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대화의 막바지, 아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주로 내가 하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고,  평생 처음 받아본 내용이어서 ‘으응?’ 하는 기색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그의 질문은 이것.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아쉬는 동네 친구들과 똑같이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들 어렵게 살았기에  특별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다만 엄마, 아빠, 아쉬 그리고 여동생 둘이 빠듯하게 사는 하루하루의 끝이 어디일지 떠올리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니 나에게 미래란 있는 걸까? 이렇게 무료한 하루하루를 계속 살게 되는 걸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오늘의 반복’이 될 거란 생각이 들면 가슴 저 끝까지 답답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2000년. 아쉬가 살던 몽골 날라이흐 마을에 새로운 기운이 돋았다. ‘월드비전’이라는 기관이 마을의 고민거리에 함께 머리를 맞댄다고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월드비전과 수시로 만나 무엇부터 바꿔나가야 할지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길어져 낮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진 날도 있다. 꼬물꼬물 웅크린 애벌레가 날개를 터트리듯,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던 마을에 드디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후된 학교 시설이 고쳐지고 모자랐던 교실이 생겼다. 깨끗한 물이 언제나 콸콸 뿜어 나오는 식수 시설도 생겼으며, 위생 습관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후원자가 생겼다는 것! 아쉬도 편지와 사진으로 후원자를 만났다. 후원자는 종종 공책, 연필, 사탕 등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내 왔다.

“한국에서 보내 주신 선물을 받으러 막 뛰어가던 어릴 때 제 모습이 떠올라요.”

어린 아쉬에게 후원자의 관심은 신기하고 따뜻했다.

“월드비전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참여했어요. 생일 파티, 야외 단체 활동, 손 씻기  캠페인, 재난 때 행동 방법, 나쁜 습관 방지 캠페인, 아동 보호… 정말 많이 활동했죠?  활동을 하며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변화는 많은 친구들이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재능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월드비전 프로그램으로 저와 같은 아이들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월드비전 선생님들도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고요.”

 

몽골대학교 엔지니어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몽골대학교 엔지니어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 아쉬는 이제 어엿한 몽골대학교의 학생이다. 방학 동안 공사장 일용직에, 가로등 설치 시스템 구축 일 등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뛰며 학비를 마련해야 하지만 굳게 품은 꿈이 있기에 힘들어도 꾹 눌러 참아본다. 아쉬의 꿈은 수도 공급 시스템 엔지니어. 심각한 대기 오염이 문제인 몽골은 물 부족과 오염도 만만찮은 골칫거리다. 정수 및 공급 시스템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쉬가 전공하고 있는 엔지니어학과는 졸업 후 취업률이 높다. 실업률이 심각한 몽골에서 흔치 않은 일인 데다 2020년 졸업 예정인 아쉬는 벌써 몽골 정부로부터 졸업 후 물 관련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다. 아쉬와 몽골대학교의 한적한 강의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듬직하게 잘 자랐다는 것이 어떤 것임을 본다.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의 후원자에게 남길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몽골의 찬 공기 속 다정한 기운이 훅 풍기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쉬가 후원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와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심장이 쿵 하던 그 순간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후원자님! 후원자님에게 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어렸을 때 월드비전 선생님이 후원자에게 소식이 왔다고 하면 기뻐서 달려갔던 기억이 나요. 그 순간,  그 떨리던 심장 소리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후원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던 아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더듬더듬 대답을 한다.

“아니요, 아니요. 저는 후원자가 없어요.”

다시 아쉬의 말이 이어진다.

“그럼 이 감사와 이 기쁨을 모를 거예요.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는 정말 어마어마해요. 후원자님, 어렸을 때 그런 기쁨을 맛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후원자님, 제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거예요. 어디서든 당당하게 열심히 일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마을이 자립을 해서 월드비전은 떠났지만 우린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었어요. 저 역시 후원자님처럼 월드비전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어서 신나고 좋았습니다.”

 

부자보다는 당당하고 훌륭한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부자보다는 당당하고 훌륭한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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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2019 월드비전 10대 뉴스

후원자님과 월드비전이 함께 만든 2019년의 하이라이트,
그 빛나는 순간을 함께 살펴보아요.

 


 

1.
자립을 축하해요!

 

올해 스스로 아이를 지키고 돌볼 수 있는 자립마을이 된 에티오피아 굴렐레, 노노 사업장, 보스니아 라스바, 버바스 사업장, 인도 부바네스와르, 군들루펫 사업장.
에티오피아 굴렐레 사업장 아이들이 월드비전을 처음 만났던 17년 전, 충분히 식사할 수 있는 가정의 비율은 3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2019년 자립을 맞으며 이제 86%가 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영양가 있는 식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97%가 넘는 아이들이 지역 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의 풍성한 삶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꿈! 모두 후원자님 덕분이에요.

 

 

2.
후원을 통해 변화된 아이들의 삶

 

10배 빠르게 자라는 피부 각질로 완치가 불가능한 희귀병 ‘선천성 어린선’을 앓는 유진이.
유진이의 사연이 전해진 후 많은 후원자님께서 온정을 더해 주신 덕분에 유진이는 병원비, 양육비 걱정 없이 마음껏 치료받고 유치원도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유진이뿐 아니라 일시, 만성적인 위기 상황(질병,사고, 자연재해, 실직 등)에 놓인 아동, 청소년 가정들이 후원을 통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어요.

 

 

3.
전국구로 열린 월드비전 후원자 모임

 

서울, 대전, 광주, 부산 그리고 사업 시작 이후 25년 만에 처음 개최된 북한사업 후원자 모임까지! 올해 월드비전은 전국 각지에서 후원자님과 조금 더 가까이 만났답니다! 아직 찾아가지 못한 지역이, 뵙지 못한 후원자분이 너무나 많지만 가슴 뛰는 그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후원자님께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월드비전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게요! 계속 함께해 주실 거죠 ?

 

 

4.
긴급구호 현장, 가장 빠르게,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마지막까지

 

올해에도 세계 곳곳에서 태풍, 사이클론, 홍수 등의 가슴 아픈 자연재해 소식이 많이 들려왔어요. 특히 올해는 남부 아프리카 3개국을 강타한 사이클론 이다이(IDAI)로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지역에서 약 1,000여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요. 영양실조가 우려되는 3개국의 이재민 총 131,992명에게 영양 지원을 했고, 식수대 설치, 화장실 재건 등을 통해 총 834,872명에게 식수와 위생시설 지원을 완료했어요.
월드비전은 일시적인 지원으로 그치지 않고 이들의 삶이 안정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구호 및 재건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5.
꿈을 향한 100km, 국토대장정

 

월드비전은 가정 환경과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좌절을 경험하고 그 좌절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성취감’을 통해 자신감을 얻도록 올해도 국토대장정을 실시했어요.

“파주부터 임진각을 거쳐 여의도까지 100km. 우리는 나와 친구들, 모두의 꿈을 생각하며 걷는다. 때론 주저앉고 싶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끝까지 완주하려 한다. 그리고 이 힘으로 앞으로 내가 만날 세상에서 그 무엇도 헤쳐나갈 것이다.”
_꿈꾸는아이들 국토대장정 단원 일동

아이들이 실패와 좌절을 넘어 꿈을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6.
좀 더 특별한 후원, 비전스토어

 

“내가 가던 그 빵집이 비전스토어였다니!”

혹시 단골 빵집, 커피숍, 꽃집, 내 아이의 학원에서 비전스토어 현판을 보신 적 있나요? 2017년 1호 출범 이후 2019년 2,803호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가게·기업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착한 소비 문화를 확산시켜주고 계시답니다! 후원자님께서도 일상 가운데 비전스토어를 발견하신다면 아이를 위한 착한 소비에 함께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7.
깨끗한 물을 위한 달리기,
Global 6K for Water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걷는 평균 거리, 6km. 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하기 위해 참가비를 기부하고 함께 6km를 뛰거나 걷는 ‘Global 6K for Water’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최되었어요. 작년에는 약 2,000명의 참가자가 함께해 주셨는데 올해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창원, 고양 등 전국 11개 도시 13곳에서 무려 약 15,000명이 참가했어요. 특별히 유지태 홍보대사도 아이들의 깨끗한 물을 위해 6km를 끝까지 함께 달려주셨답니다!
달리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해 주신 참가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8.
아름다운 평화의 하모니,
2019 월드비전 합창단 신년 음악회

 

분쟁 피해 아동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자 개최된 2019 월드비전 합창단 신년 음악회 ‘분쟁 피해 아동을 위한 평화의 노래’. 월드비전 합창단원들은 2018년 여름 유럽 공연 당시 분쟁 피해 아동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노래하고 돌아왔는데요. 그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33명의 목소리와 11개의 현악기가
만든 하모니는 1,600명 관중의 마음에 따뜻하게 녹아들었어요. 모든 이가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우리의 노래가 저 멀리 분쟁 피해 지역에 닿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9.
Basic for girls,
해외 여아 위생사업 캠페인

 

월드비전은 2016년부터 여자아이들의 기본 권리를 보호하여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베이직포걸스(Basic for girls)’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올해는 1년 중 60일에 이르는 생리 기간 동안 헝겊, 매트리스 솜, 마른 잎으로 버티는 소녀들에게 생리대 및 성·위생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Protect 60’ 캠페인을 진행했답니다. 꾸준한 지원을 통해 2018년에는 국내외 4,712명의 아이들이 생리대를 지원받고 11,300명의 아이들이 성·위생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는 여전히 1억 명에 달하는 여자아이들이 비위생적인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려요!

 

 

10.
비전로드, 나의 후원아동을 만나다

 

7월, 소중한 휴가를 반납하고 6박 9일의 일정으로 후원아동을 만나기 위해 12명의 후원자가 케냐로 함께 떠났어요.
“월드비전의 행보와 직원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여러 사업장을 다니며 느낀 점은 월드비전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월드비전 후원자로서 자부심을 느낀 여행이었다.”
_유재혁(31) 후원자

후원아동을 만나 그들이 어떤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는지, 월드비전의 사업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직접 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답니다. 후원자님, 내년에는 함께 떠나보시겠어요?

 

 

글. 신호정 후원동행2팀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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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캠페인] 호호 추웠던 겨울이 하하 웃는 겨울로

월드비전 난방온 캠페인 결과 보고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60㎡(18평) 임대 아파트.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오래되어 보입니다.
“계세요?” 하며 문을 똑똑 두드리자, 살짝 열려 있는 현관문 틈으로 우당탕탕 시끌법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손님이 많이 찾아오셨나 싶을 정도로 현관 앞을 가득 메운 신발들. 이곳은 엄마와 7명의 자녀가 함께 살고 있는 승준이네 집입니다.

형 3명, 누나 3명. 승준이는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홉 살 막내입니다. 승준이가 네 살 무렵, 지금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 왔습니다. 여덟 식구가 다세대 주택을 전전하던 시절에 비하면 처음에는 궁궐 같았습니다.혼자서 7명의 자녀를 돌보는 일도 쉽지 않는데, 지적 장애를 가진 첫째 아들 때문에 엄마는 어디 일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매달 정부에서 지원되는 수급비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승준이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오는 사이 집은 점점 낡아졌습니다. 방문도 떨어지고 곳곳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겨울이 찾아오면 승준이네 집은 더 이상 따뜻한 보금자리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아주지 못했고 보일러를 켜도 난방비 부담만 늘어날 뿐, 집 안을 감도는 차가운 공기는 승준이네 가족의 피부에 그대로 닿았습니다.
여덟 식구가 산다고 하기에는 단출한 살림살이, 겨울이 와도 무엇을 더 준비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물려주고 물려 입은 겨울 외투는 해져 있었고, 겨울철 필수품이라는 보온 내의조차 장만할 수 없었습니다.

“큰애 때문에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당장 애들한테 들어갈 돈도 많고, 애들 밥해 주기도 힘드니까…
겨울에도 추우면 추운 대로… 집을 고칠 생각은 아예 못 했어요.”

월드비전에서 지원을 받기 전 집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승준이는 “그때는 방문도 떨어져 있고, 벽에 작은 구멍도 있고… 그래서 슬펐어요”라고 말하며,  엄마와 함께 지난겨울을 떠올렸습니다.

일곱 남매의 신발로 빼곡한 신발장

일곱 남매의 신발로 빼곡한 신발장

작년 겨울, 승준이네 가정을 방문한 월드비전은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알아냈고, 난방온 캠페인을 통해 난방비와 방한용품을 지원했습니다. 더불어 찬 바람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부서진 문을 수리하고 벽의 틈을 메우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승준이 엄마는 월드비전 덕분에 올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는 질문에 승준이는 어떤 장면을 떠올린 듯 신난 웃음으로 대답합니다.

“겨울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랑 눈싸움할 수 있잖아요.”

승준이와 승준이네 가족 모두 지금처럼 겨울을 행복하게 기다리고, 또 지난겨울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 승준이 가족의 모습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 승준이 가족의 모습

난방비 지원을 받은 후원아동의 그림일기

난방비 지원을 받은 후원아동의 그림일기

 

2017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된 주거지에 사는 저소득 가정은 집 안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 지출이 월평균 18% 더 높다고 합니다.
겨울 방학 동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주거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가정들은 난방비 지출이 늘어난 만큼 식료품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겨울 추위는 결국 아이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국내 위기아동을 지원해 온 월드비전은 2016년부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복지 사각지대 가정의 아이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난방온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난방비 및 이불, 전기난로, 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 3,870명이 9억원 상당의 지원을 통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고, 2019년 겨울에도 저소득 가정 아이들 2,000명에게 총 6억원 규모의 난방비와 겨울용품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난방온 캠페인 수혜자수

 

 

글. 김지혜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5

[월드비전 사람] 나눔도 변해 가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문화 나눔 선두자,
이광기 홍보대사와의 만남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마주한 아이의 사진이 지친 하루에 위로를 건넨다. 바로 이광기 홍보대사가 월드비전에 선물해 준 사진이다. 10년간 월드비전과 함께하며 현장에서 만난 아동들과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들이 월드비전 건물에 층층이 전시되어 있다. 덕분에 월드비전 직원들은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직원들의 마음을 매일매일 따뜻하게 채워주는 이광기 홍보대사와 변해 가는 시대에 ‘나눔’의 방법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 안에서 월드비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진지하고 재미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스튜디오에서 환하게 웃고계신 이광기 월드비전 홍보대사님

경기 파주에 있는 홍보대사님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홍보대사님의 마음처럼 밝은 분위기가 스튜디오에 가득하다.

 

아픔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2010년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강진. 여진이 우려되는 위험한 상황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광기 홍보대사님은 아이티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티 아이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세상에는 본인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많다는 걸, 아픔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티에 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던 홍보대사님은 그렇게 아이티에 케빈스쿨을 설립했다. 그때부터 이어져온 월드비전과의 인연은 어느덧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월드비전을 통해 10년간 펼쳐온 이광기 홍보대사님의 나눔 활동은 아이티에서는 학교가 되었고, 에티오피아엔 깨끗한 물이 되었으며, 전 세계 수많은 아이에겐 삶의 풍성함이란 선물이 되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본인의 상처도 치유했다는 홍보대사님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일까?

 

둥글둥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기에

“이제는 모금의 방식이 변화해야 해요. 일방적인 나눔보다는 나누는 사람도 이를 통해 행복을 느껴야만 하죠. 후원자들도 월드비전과 나눔을 실천하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광기 홍보대사님은 나눔도 ‘공감의 영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홍보대사님은 나눔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문화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부터 월드비전과 진행해 온 나눔 경매이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과 홍보대사님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아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고 수익금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전액 기부해오고 있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나눔의 보람을 느끼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홍보대사님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모두가 공감’하는 나눔인 것이다. 홍보대사님은 이어서 ‘나눔의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미디어 매체도 바뀐 지 오래고요. 동영상이나 센스 있는 콘텐츠가 나눔의 영역에도 너무 필요해요. 나눔의 트렌드도 급변하는 미디어에 익숙한 대중을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 월드비전도 이 점을 간과하지 말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야 합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눔에 함께하길 바라는 홍보대사님의 날카로운 지적은 월드비전 직원들에게도 큰 도전과 고민을 안겨주었다.

 

“꿈속에서라도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올 초 부룬디에서 만난 열 살 소녀 디빈의 한마디가 홍보대사님의 마음을 울렸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소원은 꿈속에서라도 아버지의 사랑한단 한마디를 듣는 것. 홍보대사님은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지. 죽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듯 나누는 순간 보지 못했던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나눔을 통해 실크로드처럼 꿈 같은 세상이 깨어난다는 홍보대사님의 말처럼 10년 동안 나눔을 통해 넓혀진 홍보대사님의 세상엔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이 있었다.

“예전엔 저도 나눔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눔을 통해 제 삶의 2막이 시작된 거죠. 나눔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연기를 하고 그저 취미로만 그림을 수집했겠죠. 하지만 나눔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다 보니 보지 못했던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그래서 많은 분께 이렇게 전하고 싶어요. ‘나누면 막막했던 인생의 길이 서서히 열린다’고 말이에요.”

퇴근길, 엘리베이터 옆에 걸려 있는 아이의 사진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오늘도 너를 위해 일한 하루가 정말 즐거웠어.’
나눔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일만이 아니라 결국 나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기에 이광기 홍보대사님이 그리시는 나눔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상이 하루빨리 세워지길 간절히 꿈꿔보는 밤이다.

월드비전에 기증해 주신 이광기 홍보대사님의 사진

월드비전에 기증해 주신 홍보대사님의 사진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모두 기증되어 누구든지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글. 김보영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조은남 조은나무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6

[높이 나는 갈매기] 그림으로 사람들의 어둠을 서서히 밝히는 새벽이 될래요
경기서부지역본부 박한솔 아동

어떤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

조그만 체구에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짧게 자른 머리, 방긋 웃는 얼굴이 영락없이 명랑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몇 마디만 나눠보면 금세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기 어려운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변함없이 해나가는 것. 이것이힘든 순간을 견뎌내는 자신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중학교 2학년생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만화가를 꿈꾸는 박한솔입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쁨, 슬픔과 같은 내면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섯 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한솔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빠가 즐겨 보는 TV 만화 영화를 옆에서 함께 보며 특히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 온전히 감정을 몰입하며 보게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림’이 ‘스토리’와 결합되었을 때 그 매력이 배가된다고 생각하는 한솔이는 애니메이션, 웹툰, 일러스트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이 좋아, 초등학교 4학년 때 혼자 등록한 미술 학원

“제가 어렸을 때는 공부엔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방과 후에 남아서 ‘학력 증진반’ 활동을 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았어요.”

고민하던 한솔이는 그 길로 학교 앞에 있는 한 미술 학원을 들어갔다. 그러곤 원장님을 찾았고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그 이후로 5년째 한솔이를 지도하고 있는 학원 원장님 역시 그날이 생생하다.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멘 조그만 꼬마 애가 혼자 찾아와서는 당당하게 학원에 등록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림에 대한 한솔이의 열정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가끔은 걱정이 될 정도라고 이야기하는 원장님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혼자서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 쉬는 시간에도 연습장에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을 그려보고 저한테 가져와요. 다른 친구들은 다 쉬거나 놀고 있는데…. 밤에도 일찍 안 자고 늦게까지 그림을 그려서 저한테 바로 보내기도 하고. 저는 한솔이가 좀 더 쉬기도 하고 놀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인데, 지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인터뷰 사전에 한솔이가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었다. 한솔이가 학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후회스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학원에 오는 한솔이가 가방을 비롯해 양 어깨 가득 상장과 상패를 이고 지고 등장한 것이다. 수많은 상장은 한솔이의 노력을 보여주듯 감탄을 자아냈다.
“모든 시도와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성공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굳이 그 끝이 성공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 계속 도전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미술을 할 것 같아요.”
꿈을 키워나가는 다른 월드비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달란 질문에 대한 한솔이의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고작 중학교 2학년이 모든 노력이 성과 혹은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내왔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장 선생님의 말처럼 한솔이는 모든 면에서 빠른 아이였고, 대견하면서도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각종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한솔이의 상장과 상패

각종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한솔이의 상장과 상패

인터뷰 중 완성한 한솔이의 수채화 작품

인터뷰 중 완성한 한솔이의 수채화 작품

월드비전이라는 새로운 세상

한솔이에게 월드비전은 어떤 존재인지 묻자 ‘새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찬 답변이 돌아온다. 월드비전을 만난 후 대학교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한솔이. 한솔이의 ‘새로운 세상’에는 친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 한솔이의 후원자님 역시 포함된다.

“후원자님께 제 일상을 편지로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스로의 생각이나 고민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아요. 후원자님께 저는 잘 지내고 있고 요즘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거든요.”
후원자님과 일상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한솔이. 어른으로서 조언을 하기보다 한솔이와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편이라는 후원자님은 이미 한솔이의 든든한 친구이자 멘토이다.
“항상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저를 잊지 않고 챙겨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게 느껴져요.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수업을 앞두고 선생님과 함께 간식을 사러 나가는 한솔이의 얼굴은 세상 행복한 표정이었다.
“버블티 먹어도 돼요?”라고 물을 땐 그제야 한솔이가 제 나이 또래 여중생으로 느껴져 뒤에서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다. 아직은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고르며 눈을 반짝일 나이. 지금도 충분히 멋진 한솔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꿈을 생각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한솔이가 정말 대단하고 훌쩍 성숙했음이 느껴진단다.
일상에서 느끼는 일들에 대해 감사하며 행복을 느낄 줄 아는 한솔이가 앞으로도 멋지게 꿈을 이루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 부쩍 기대돼.
한솔이가 꿈을 향해 노력하는 만큼 원하는 결실을 아름답게 맺어가길 언제나 응원할게!”
_월드비전 경기서부지역본부 김보현 팀장

 

 

글. 이누리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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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이야기] 이토록 애틋한 ‘우리’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이번 여름 케냐 올도니로 마을로 비전로드를 다녀온 후원자님들의 후속 모임이 있었습니다. 언제 올까 기다리는 마음이 꼭 첫 데이트처럼 간질간질하고, 한 분씩 들어올 때마다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려고 모였는데 후식에 저녁까지 하고도 못내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만 15분째.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애틋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의 첫 만남

지금은 함께 있는 1분 1초가 아쉬운 우리에게도 눈 한 번 마주치기 어려운 처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걱정했거든요. 가서 할 일이 되게 많겠다고 생각했는데 일할 사람이 없는 거야.
나는 큰일났다. ‘꽃보다 할배’ 짐꾼 느낌으로 가야 하나 부담감이 있었죠”
_유재혁 후원자
“기봉이 형 볼 때 심란했죠. 누가 지각해서 늦게 들어오는데, 표정이~~.
이 사람 진짜다, 범접할 수 없겠다 생각했어요”
_김성중 후원자

부담되고 심란했던 우리의 첫 만남인 사전 오리엔테이션은 공항에서 만나자는 짧은 인사와 동시에 저마다 바쁘게 흩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소득증대사업장에서 후원아동의 어머님들께 선물 받은 전통 의상을 입은 후원자들

소득증대사업장에서 후원아동의 어머님들께 선물 받은 전통 의상을 입은 후원자들

수도 설치 봉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혜지 후원자

수도 설치 봉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혜지 후원자

찬란했던 우리의 일주일

약간의 어색함과 큰 설렘을 안고 도착한 케냐. 그곳에서 우리는 찬란한 순간들을 만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선물 같은 시간을 가졌고

“아동 가정에 수도 시설 설치하러 가서 물 나오기 기다릴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모인 동네 아이들이랑 같이 노래 부르고, 제가 ‘안녕?’ 하면

아이들이 따라 하고.”
_이혜지 후원자

새로이 후원자를 만나게 될 아이들을 위해 직접 아동 등록도 했습니다.

“제가 등록한 아이랑 너무 친해져서 돌아갈 때 아이가 울면서 달려와서 안겼던 순간이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남죠.”
_권형주 후원자

손꼽아 기다렸던 후원아동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안 계셔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사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평생 기억할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_김정현 후원자

 

우린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잊지 못할 순간을 공유하면서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유대감이 쌓였습니다. 함께 웃고 눈물 흘리다 보니 마지막 날 즈음엔 ‘어떻게, 이렇게, 딱 우리가 만났을까? 우린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생각할 정도였죠.

“합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사전 모임 할 때는 못 느꼈는데(웃음) 운명 같았어요.
한 명 한 명 역할도 너무 딱 맞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_이혜지 후원자
“우리는 뭐 가족이었지.
이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경험이 없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함께해서 더 값졌던 것 같아요.”

_김성중 후원자

 

이젠 우리 월드비전

한여름 밤의 꿈 같았던 케냐에서의 일주일은 우리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남겼습니다. 주어진 나의 하루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젠 불평을 안 해요. 학원 다니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전에는 왜 하지 했는데 이제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_김성중 후원자

 

또 다른 아동후원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아동 등록을 하며 정이 담뿍 든 아이를 직접 후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다녀와서 후원아동이 또 늘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_이윤성 후원자

 

월드비전 앞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들어갈 만큼 월드비전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고,

“예전에 월드비전은 그냥 많은 NGO 중에 하나였는데 지금은 더 애정이 가요.
내 월드비전? 우리 월드비전? (웃음)”

_이혜지 후원자
“후원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생겨서 친구한테도 같이하자고 했어요.
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나니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_유재혁 후원자

 

이 깊은 애정이 동기가 되어 월드비전의 인턴이 된 후원자님도 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4학년 2학기니까 취업 준비에 바빴을 거예요.
그런데 케냐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하고 오니까 월드비전이 조금 더 궁금하고 함께 일해 보고 싶어졌어요.”

_장기봉 후원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김성중 후원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김성중 후원자

비전로드 중 촬영했던 사진을 바라보는 유재혁 후원자

비전로드 중 촬영했던 사진을 바라보는 유재혁 후원자

직원들에게도 마음이 더욱 뜨거워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정 내내 후원자님들을 보며 감동했다는 현장 직원은 마지막 날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눔의 특별한 DNA가 있는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마음을 기억하며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웃어주고, 안아주는 후원자님의 모습에서, 아이의 닳아 해진 신발과 본인의 새 신발을 기꺼이 바꿔주는 모습에서 무한한 사랑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올여름 가장 뜨거운 날 다녀온 비전로드는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오늘까지도 아니 언제까지고 계속 진행 중인 것만 같습니다. 긴 작별 인사가 끝나고 돌아 걷는 길, 진한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기대가 밀려옵니다.
비전로드로 운명처럼 만난 우리는 앞으로 월드비전에서 또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추억들을 쌓게 될까요? 함께할 수많은 날들은 아~ 얼마나 더 좋을까요?

 

 

글. 김다이 후원동행2팀
사진. 임희진 후원상담2팀

201912_story_magazine_top_08

[모금 캠페인 그 후] 그림자만 봐도 웃는 아이 – 동민 아동 캠페인 결과 보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동민이네 집 앞에서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였습니다. 한적한 동네, 저 끝에서 얼굴이 익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옵니다. 아이는 지난 캠페인 영상 속 체구와 비슷한데 분명 무언가 확실히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보여집니다.
“안녕?” 하는 인사에 쑥스럽게 얼굴을 돌렸지만 분명 활짝 웃는 얼굴, 한결 가벼워진 몸. 앞장서 6층 집까지 올라가는 걸음마저 사뿐사뿐 가볍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신경섬유종(유전자 질환으로 신경계에 영향을 주면서 나타나는 증상.골격 및 뇌신경 종양 등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짐)이 덮어버린 오른손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던 아이. 지나치는 눈길에도 얼른고개를 숙이고 손을 감추기 바빴으며, 너무 작은 일에도 금방 울음을 터뜨리던 동민이었습니다.
지친 눈빛을 감추지 못하던 이 아이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동민이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월드비전을 통해 많은 도움의 손길을 전했어요. 그 도움으로 동민이는 지난 8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먼저 아픈 손과 등을 수술했습니다. 오른팔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동민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신경섬유종이 오른손을 넘어 온몸에 번지면서 성장을 방해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오른손과 등 쪽 신경섬유종을 제거한 동민이는 이제 가볍게 몸을 가눌 수 있어요. 내년 4월에 예정된 가슴 쪽 수술까지 잘 마치면 이제 무거운 암 덩어리들은 동민이 몸에서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동민이가 세상과 마주할수록 어떤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할지에 대해 감히 누구도 ‘괜찮을 거다’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동민이가 거칠고 단단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지혜롭고 꿋꿋하게 잘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심리 상담 치료로 돕고 있습니다. 또 언어 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동민인 언어 치료도 함께 받고 있어요. 이 치료 역시 후원자님들 덕분에 얻게 된 귀한 기회예요. 동민이는 특히 언어와 심리 치료 시간을 좋아해서 두 달 남짓, 주말을 뺀 나머지 날은 매일 상담센터를 방문하고 있고요. 충분한 초기 상담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 11월부터는 주 4회, 상담센터를 방문할 예정이에요.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이런저런 근황을 묻는 중에도 동민이는 함께 온 사진작가와 꽁냥꽁냥 장난이 한창입니다. 사진작가가 뷰파인더 속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자 꺄르르르, 셀피를 보여주자 아예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사진작가와 장난치는 동민이

사진작가와 장난치는 동민이

“수술하고 나서 동민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전에는 손 감추느라 어디 나갈 때도 사방으로 눈치 보기 바빴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격까지 예민해져서 할머니인 저한테도 살갑게 구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리 바뀌었네요.
이제 그림자만 봐도 웃어요. 인사도 곧잘 하고, 좋으면 좋다는 표현도 잘하고요.”

할머니는 동민이가 변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눈가가 금세 붉어집니다.

“참,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벌어지니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달리 무슨 말을 찾을 수가
없네요.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함께 이겨내고 있는 아픔

우리는 가끔 말하곤 하지요.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일을 아이가 이겨내는 게 대견하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차마 동민이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큰 수술도 잘 받았고, 언어 심리 치료도 즐겁게 받고 있는 의젓한 동민이지만 그 작은 마음이 큰 두려움에 얼마나 콩닥거렸을까요? 닥친 현실 앞에서 동민인 용기를 내었다기보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님의 응원 속에서 함께 버틴 걸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병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라요. 아이가 아파하는 소리, 어머니 눈물 짓고 한숨 짓는 모습만 있던 날들이었는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웃을 일이 많아졌어요. 이제야 사는 게 재미나는 거구나 싶어요.”

동민이에게 가난도 모자라 병까지 물려준 거 같아 미안하기만 했던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끊이질 않습니다.

함께 책을 읽는 동민이와 어머니의 모습

함께 책을 읽는 동민이와 어머니의 모습

활짝 웃는 할머니, 어머니와 동민이

활짝 웃는 할머니, 어머니와 동민이

동민이를 위해 배달되는 영양 가득한 사랑의 도시락

동민이를 위해 배달되는 영양 가득한 사랑의 도시락

아이의 한쪽 팔을 포기하는 큰 수술을 감당한 가정이라 조심스럽게 취재 준비를 했는데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웃음소리를 들었던 두어 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후원자님들이 동민이와 가정에 선물한 것은 수술비와 치료비뿐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 누군가 함께한다는 든든함까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눈부신 희망이었습니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9

[함께 가는 길] 받은 것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에요
오성삼 교수에게 전해 들은 나눔 교육 철학

60여 년 전 월드비전의 후원아동이었던 그가 밥피어스아너클럽(누적 1억원 이상 후원한 월드비전고액 후원자들의 리딩 그룹) 후원자가 되기까지, 오성삼 건국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스토리.

 


 

가치관이 있어야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어요.
나눔을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감사하는 마음이 선행하지 않아서라고 봐요.

기부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성삼 교수는 가치관 없는 행동은 실행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감사의 마음은 가치관이고 나눔은 행동이라는 것.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참교육자의 형형한 빛이 난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돌아보면 내가 도움받은 사람들이 꼭 있잖아요. 하다못해 부모님만 해도 그렇죠. 삶의 선물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들이 베푸는 나눔이 다시 선한 영향력으로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가치관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감사하는 습관이 체화되도록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치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죠.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는 선한 욕망을 품게 되니까요.”

그는 건국대학교 사범대 교수 생활을 마치고 교육대학원 원장을 3회 역임하였다. 그 뒤 꿈나무 양성을 위해 송도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현재는 송도고 부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송도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인성 교육’과 ‘가치관 교육’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금도 송도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감사와 나눔의 날’ 행사가 진행된다. 오성삼 교수의 ‘나눔 교육 철학’이 곳곳에서 결실을 맺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감사할 일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빚으로 남은 월드비전의 도움,
1억원으로 되돌려주기까지

학비가 부족해 박사 과정 중단 위기에 놓였을 때, 월드비전미국으로부터 도움받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오성삼 교수님

학비가 부족해 박사 과정 중단 위기에 놓였을 때, 월드비전미국으로부터 도움받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오성삼 교수님

 

지나고 나서 알았다고 한다. 구르고 넘어지면서 올랐던 바위산 하나하나가 그의 삶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었음을. 그 조각을 손에 쥐게 해준 수많은 손길이 있었음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건 월드비전이었고, 월드비전이었고, 월드비전이었다. 보육원 시절에 월드비전 후원아동이 되어 미국인 부부인 후원자와 많은 응원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대학교 진학 후에는 월드비전 장학금을 통해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가족사진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가족사진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주고 받은 편지들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주고 받은 편지들

 

제대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 등록금도 월드비전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앞이 캄캄해졌던 미국에서의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의 부족한 등록금을 기적처럼 지원해 준 것도 월드비전이었다. 그때 받은 도움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한국으로 돌아와 모교 대학의 교수가 되어 마음의 빚을 돌려줘야만 했다는 오성삼 교수. 언뜻 들으면 으레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공부하면서 빚을 많이 졌어요. 교수가 되었지만 다달이 융자금을 갚느라 생활이 실로 빠듯했습니다. 그러나 후원은 지속해야 했어요. 내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았잖아요.”

월드비전으로부터 받은 금액을 갚은 이후 이제 어려움에 처한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후원하기 시작한 그는, 1억원 이라는 후원 목표 금액을 세우고 무려 24년에 걸쳐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한국전쟁을 겪고 극심한 빈곤을 극복하고 그 오르기 어렵다는 ‘나 자신의 산’ 정상에 우뚝 선 오성삼 교수. 이제 그는 나눔 가치관 교육에 여전히 힘쓰고 있다.

 

남은 생, 여러 사람 뜻 모아 분쟁 지역 난민촌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하고 싶은
‘본 투 비(Born to be)’ 선생님

“함께하실 분들이 곳곳에 계실 거예요. 모진 어려움을 겪고 치열하게 살아낸 한국 사람은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졌어요.”

창창한 여름날의 해처럼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흡수해야 할 아이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분쟁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소멸되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는 그. 이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뜻을 모아 난민촌에서 학교를 짓고 선생님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주어진 같은 시간 속에서 난민촌 아이들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야 해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시간을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한번 교육자에게는 영원한 교육자의 사명이 있어요. 끝까지 아이들에게 배움을 제공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많은 은퇴한 선생님들의 소망일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소망을 한데 모아보고 싶습니다.”

온 세상이 키워낸 사람은 온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일까? 다시 또 세상을 담을 그릇들을 빚어내겠다는 꿈을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쌓는지도 모른다.

 

 

글. 박소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조은남 조은나무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