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나는 갈매기] 나를 뛰어넘어 꿈을 향해

알파인 스키 꿈나무
동해복지관 최영미 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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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쌓인 눈이 반짝거리는 언덕, 한 마리 나비처럼 이리저리 가벼운 몸을 옮기며 바람을 가른다. 흰 눈 사이로 선명한 두 줄만 남긴 채 순식간에 사라진다.

지난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종목이기도 한 알파인 스키. 겨울바람이 매섭던 1월, 강원도 정선의 스키 훈련장에서 만난 영미는 알파인 스키 선수다. 그것도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 받는 능력자. ‘장애’라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영미. 겨우내 스키와 함께한 영미를 만났다.

 

가장 확실한 행복, ‘스키’

영미를 만난 날은 한파주의보가 전국을 강타한 날이었기에 실내에서 눈밭을 바라보기만 해도 추위가 느껴졌다. 이렇게 추운 날까지 왜 야외에서 운동을 해야 할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겨우내 스키를 탄 영미는 추워도 스키 타는 것이 너무 좋다. “스키를 탈 때 저 자신이 너무 멋지게 느껴져요. 넘어져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재미있어요. 스키 탈 때가 제일 행복해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워낙 좋아하고 소질이 있던 영미가 스키장을 처음 찾은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체육시간에 반 친구들과 초보자 코스에서 처음 스키를 배운 영미는 반나절 만에 상급자 코스로 올라갈 만큼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영미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영미는 여름에는 육상 선수로, 겨울에는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강원도장애인체육회는 영미처럼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선발해 훈련 장비와 전문 코치, 숙소와 훈련장을 지원해준다. 아침부터 밤까지 빈틈없는 하루를 보내야 하는 고된 훈련이지만, 영미는 스키를 탈 수 있는 겨울이 늘 기다려진다.

“눈 상태가 좋지 않아 훈련이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실내에서 체력훈련을 해요. 다른 친구들은 이럴 때 좀 쉬기도 하는데, 영미는 그럴 때마다 언제 스키 탈 수 있냐고 코치인 저를 계속 재촉하죠. 영미는 스키를 잘하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스키 타는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선수예요.” 영미에게 스키는 가장 확실한 ‘행복’이자 ‘꿈’이다.

2년째 영미를 지도하고 있는 방미라 코치(왼쪽)와 영미(오른쪽).

2년째 영미를 지도하고 있는 방미라 코치(왼쪽)와 영미(오른쪽).

꿈을 향한 ‘장애물’ 없는 질주

“체육 영재예요.” 2년째 영미를 지도하고 있는 강원도장애인체육회 소속 방미라 코치는 영미를 이 한마디로 소개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 개를 흡수해서 소화하고 실력을 발휘해요. 함께 훈련하는 다른 선수들보다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고요.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뤄도 전혀 뒤지지 않는 실력이에요.” 대회에 나가면 늘 1, 2등을 다투는 영미. ‘2017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알파인 스키 회전과 대회전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면 지원 체계가 없어 꿈을 키워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패럴림픽에는 영미와 같은 지적장애인은 출전할 수 없고, 스페셜올림픽에 종목이 있어요. 하지만 장애인 선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없다 보니 실업팀도 없고, 영미처럼 실력이 뛰어남에도 지적장애인은 국가대표가 되기 어려워요. 정말 속상하죠.” 방미라 코치는 영미가 넓은 무대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영미의 꿈과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영미의 열정과 노력이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초’의 이름을 다는 날까지 영미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아무리 추워도 스키 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영미.

아무리 추워도 스키 탈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영미.

영미를 달리게 하는 힘, ‘가족’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하는 언니, 야구부 활동을 하는 남동생, 권투대회에 출전하는 아빠까지 영미네 가족의 DNA는 남다르다. 운동으로 이어진 교감 덕분인지 영미네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그렇기에 영미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는 존재는 가족. “훈련 기간에 전화를 자주 못 해도 마음속으로 서로를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아빠도 저랑 언니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고, 저희도 아빠 생각하며 더 열심히 노력하게 돼요.” 영미의 목표는 1등이 아닌 자신의 최고 기록을 단축하는 것. 나를 뛰어넘는 도전이다. “힘들 때도 많지만 한 번도 스키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대회에서 긴장되면 가족들을 떠올려요. 그러면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할 수 있어!’라는 자신이 생겨요.”

영미가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는 사람들은 가족뿐만이 아니다. 대회용 장비는 강원도장애인체육회에서 지원받고, 평소 연습에 필요한 물품은 월드비전 ‘꿈날개클럽’을 통해 구입했다. 두 달 내내 매일매일 연습해야 하는 영미에게 스키 장비는 더없이 소중하다. “후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도와주신 덕분에 제가 잘하고 또 좋아하는 스키를 탈 수 있게 되었어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영미의 도전 앞에 장애물이 없는 이유다.

‘지적장애인 최초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라는 꿈을 안고 영미는 오늘도 힘차게 슬로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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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은 사회복지사의 한마디

꿈을 찾고 난 후 한층 밝아진 영미를 보면 항상 고마운 마음이 들어. 힘든 훈련 과정도 묵묵히 이겨내고 열정적으로 꿈을 준비하는 영미의 모습에 선생님도 자극을 많이 받는단다.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영미를 항상 응원할게!

 

글. 김수희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