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날,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양 대표가 환한 얼굴로 덥석 악수하는 순간, 기자들이 모여 있던 프레스 센터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왔고 생중계를 보던 국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이 만남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느라 바빴다. 이들이 먹은 음식, 옷 색깔, 모든 것이 화제에 올랐다.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시리아인 압둘와합 씨와 친구들 역시 남북의 만남에 주목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부러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4월 28일, 아픔을 기억하려 모인 사람들

오랜만에 화창한 봄날이었다. 햇살이 어쩌면 이렇게도 예쁘게 내리쬐던지 지하철역에서 행사장까지 가는 강남대로가 그저 꽃길 같았다. 이토록 좋은 날, 굳이 시간을 내어 ‘난민’이라는 아픈 주제를 배우고 마음을 나누러 오는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일어나 보니 날이 너무 좋아서 안 오시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여러 이유로 두근대며 공감살롱 행사장에 도착했다. 걱정은 왜 했을까?

아기를 업고 온 가족, 연인, 친구, 또는 혼자 오신 여러분이 자리를 차곡차곡 메워주셨다. 불이 꺼지고 폭격 소리,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월드비전이 여러 후원자님, 시민분들과 나누고 싶었던 공감살롱 <난민 이야기>가 시작됐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참가자들은 압둘와합 씨에게 난민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을 물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참가자들은 압둘와합 씨에게 난민문제에 대한 여러 의견을 물었다.

나와 같은 색 팔찌를 차고 난민촌에 서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다

암전 속에 들려온 소리는 다름 아닌 시리아 전쟁 당시 폭격 순간이었다. 우리는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의자 밑에 붙어 있는 팔찌를 떼어 팔목에 둘렀다. 서로 다른 세 가지 색의 팔찌. 우간다 난민촌의 난민들이 차는 이 팔찌는 색깔마다 분류 기준이 다르다.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색 팔찌를 차고 긴 줄에 서 있을 아이, 혹은 아이를 안고 하염없이 모래 바닥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어머니, 목숨 걸고 국경을 넘었지만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황망한 사람들을 떠올리니 ‘난민’이라는 단어가 보다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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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르잖아요, 아무것도

난민문제에 조금 더 마음이 닿은 우리 앞에 압둘와합 씨가 섰다. 8년 전 한국으로 유학 온 압둘와합 씨는 시리아인이다. 한국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지만 시리아와 난민들의 상황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어제 남북한의 만남을 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했어요. 우리도 이런 날이 올까?” 압둘와합 씨에게 직접 듣는 시리아 상황은 그 어떤 뉴스보다 생생했다. 시리아 내전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가장 피해를 입는 건 아이들이었다. 그나마 생명을 끝까지 지키며 시리아 국경을 넘은 아이들은 이제 난민촌 안에서 기약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미처 시리아를 떠나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에 나가도, 가족과 있어도, 길을 걸어도 폭격 걱정뿐이다. 어찌나 폭격에 시달렸는지 이제 소리만 들어도, 떠 있는 높이만 보아도 어느 나라 전투기인지 구분하는 아이들마저 있단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가던 압둘와합 씨의 목소리가 격앙된 지점.

“어른들은 이 폭격이 왜 시작됐는지 알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몰라요. 왜 슬퍼야 하는지, 왜 가족을 잃어야 하는지, 왜 학교에 못 가게 됐는지 모르잖아요. 아이들은 그저 당하는 거예요. 어른들의 욕심에, 싸움에. ”

(좌) 싱그러운 봄날의 토요일. 난민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인 월드비전 후원자와 시민 여러분. (우) 시리아 난민문제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준 압둘와합 씨.

(좌) 싱그러운 봄날의 토요일. 난민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인 월드비전 후원자와 시민 여러분. (우) 시리아 난민문제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들려준 압둘와합 씨.

관심은 항상 행동과 같이 와야 합니다

지면에 다 담지 못할 만큼 난민들이 처한 무수한 문제를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어마어마한 문제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압둘와합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믿을 만한 단체에 후원해서 도움이 흘러가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제한도 많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한국 난민법 개정을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주시는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겁니다.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세상을 사는 난민들을 잊지 않는 거예요. 따뜻한 마음을 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난민을 도울지는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에요. 그런데 관심은 항상 행동과 같이 와야 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단한 행동입니다. 이런 모임에 참석해서 난민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는 것, 길에서 난민을 위한 서명에 동참하는 것, 모두 행동입니다!”

(좌) “저는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에요. 제가 자란 마을은 월드비전 도움을 받았어요.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배우려고 참석했어요.” (우) I AM 선언문을 작성하며 분쟁피해지역 아동을 위한 나의 다짐을 표현했다.

(좌) “저는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에요. 제가 자란 마을은 월드비전 도움을 받았어요.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배우려고 참석했어요.” (우) I AM 선언문을 작성하며 분쟁피해지역 아동을 위한 나의 다짐을 표현했다.

압둘와합 씨의 열띤 강연이 남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우린 행동에 나섰다. 월드비전에서 분쟁피해지역 아동 보호를 위해 펼치고 있는 I AM 캠페인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참여했다. 난민에게 당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오늘 처음 만난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여 정리했고, 난민을 위한 나의 다짐을 기록했으며, 개인 SNS 계정을 활용해 지인들이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홍보도 했다.

가끔 평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떤 슬픔도, 작은 문제도 하나 없는 것이 평화인가. 그럼 평화는 영영 어디에도 없는 상상 속의 단어일 텐데. 어쩌면 평화는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문제에 한 걸음 들어가서 그 문제를, 그 아픔을 조금씩 나누어 지며 손 꼭 잡고 걸어가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오늘 우리가 모이고 행동한 이곳에서 평화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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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지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