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지금 기차 타서 가고 있어요. 어제 정말정말 감사했어요 ㅠㅠ 잘 쉬시고 다음에 또 봬요!”
집으로 돌아가는 은혜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같이 밥 먹고, 차 한잔 마시고, 미술관 휙 둘러본 건 뿐인데.. 만나는 내내 너무나 신나 하던 은혜의 모습과 ‘정말정말’이라는 단어가 맴맴 돈다.
2016년, 은혜 가족은 큰 시련을 겪었다. 팔팔 끓는 가마솥에 동생 은선이가 발을 헛디뎌 빠졌고, 지적 장애가 있는 부모님은 이를 보고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은혜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발만 동동 굴렀다. 늦게나마 은선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다섯 살 은선이의 여린 피부에는 심각한 화상을 입어 앞으로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상되는 수술비와 치료비는 1억 원이 넘는 돈. 지금도 정부 지원금과 부모님 장애인수당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은혜 가족에겐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액수.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은 굴곡 많은 은혜 가족에게 또다시 절망을 안겼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은혜네 사정을 알게 된 월드비전이 이 가정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모였다. 덕분에 시급하게 필요했던 은선이 화상 치료비 말고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은혜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월드비전은 은혜 은선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가정을 돌봐 줄 수 있는 복지관과 협약을 맺고 후원자들의 나눔이 투명하고 정확하게 가정에 전달될 수 있도록 촘촘히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4년 뒤. 은혜를 서울에서 만났다.
너가 은혜야?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지만 간혹 유난히 마음에 남는 아이가 있다. 월드비전 직원들 사이에서 은혜가 그렇다. 워낙 많은 분들의 관심이 모아졌던 캠페인이기도 했고, 가장이나 다름 없이 가정을 돌보는 열 다섯 살 아이가 겪은 일이 너무 아팠던 데다 은혜를 만난 직원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선하고 굳센지 모르겠다며 한결같이 입을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은혜를 나도 한번쯤은 만나고 싶었는데, 은혜가 고3을 앞두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연을 맺은 월드비전 선생님과 하루를 보내기 위해 서울에 다니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 다정한 만남에 슬쩍 끼어들기로 했다. 마침 만나기로 한 선생님에게 급한 스케줄이 생기는 바람에 은혜의 서울 나들이의 시작부터 함께 하게 되었다.
용산역. 3년 전, 캠페인 사진으로만 봤던 얼굴인 터라 은혜를 알아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전화기를 꼭 붙잡고 있는데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은혜에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친절한 여유가 묻어나는 목소리)
“응 그래. 은혜야. 어디니?”(잔뜩 긴장한 건 오히려 나)
“저기 제가 지금 보이는 게…”
단정한 머리에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도 저 만치서 전화기를 들고 서성이는 아이가 은혜인 줄 한 눈에 알겠다.
“너가 은혜야?”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법 어른 티가 날락말락한 얼굴의 은혜가 씽긋 웃는다.
그 땐 모든 게 다 신기했어요.
초코 음료를 쪽쪽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엽기만 한 은혜. 그런데 또 “선생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한 마디에 “선생님 코트랑 가방은 저 주고 가세요.” 하며 이리저리 챙기는 모습에서 몸에 배인 배려가 남다르다. 은혜는 올해 고3이 되었다. 기억하기 싫은 이야기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그 날 이후의 근황을 묻는다.
“은혜야. 은선이는 많이 좋아졌어? 어떻게 지냈니?”
“은선이는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아직 어려서 피부 이식 수술 같은 건 좀더 지켜보며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병원에 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 다행이다. 집은?”
“정말 좋아졌어요. 화장실이 밖에 있었는데, 안으로 들이는 공사를 했거든요.”
은혜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동생이 치료를 안심하고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불편했던 화장실이 편리하게 바뀐 것도 또, 가족을 위해 접어두어야 맞는 것 같았던 꿈을 꾸게 된 것도, 모두 그저 신기할 뿐이라고 한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줄곧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던 은혜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하고 있다. 가능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길 바라지만 집안 사정도 고려해서 집과 가까운 대학교로 진학도 생각하고 있단다. 대학은 아직 두고 봐야 하지만 어느 대학이든 가고 싶은 분야는 확실하다. ‘심리상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은 생각이 커졌어요. 또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저는 정말 잘 알잖아요. 병원비도, 집 수리 비용도, 또 제 학비도 정말 큰 도움이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은선이를 걱정해 주고, 저와 엄마, 아빠를 무조건 격려해 준다는 게 진짜 신기하고 또 든든하더라고요. ”
천천히 은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은혜는 설사 심리상담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어떤 모습으로든 다른 사람의 마음 곁을 든든하고 따듯하게 지켜줄 좋은 어른이 되겠구나.’
저마다 짊어질 삶이 무게가 있다는 말이 당연하다 싶다가도 문득문득 억울하곤 했다. 왜 그 무게가 사람마다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숨이 찼고, 왜 힘든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는 건지 답답한 가슴을 풀어내지 못할 때도 있다. 반나절, 은혜와 내가 함께 한 시간. 서로를 잘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열 일곱 살 은혜는 마흔을 넘은 나를 그 해맑은 미소로,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다정한 이야기로 위로한다. 괜찮다고. 정말 힘이 들 땐 그 짐을 나눠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신기한 사랑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라고. 은혜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될 거다. 이미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지만.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