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으로 향하는 버스 안, 가슴이 동동 조바심이 난다. 시계 한 번 보고, 꽉 막힌 도로 한 번 보고, 답답한 마음속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겨우겨우 버스가 달려 양양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후원자님과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을 훌쩍 넘기고. 후다닥 버스에서 내리니 사진으로 확인했던 후원자님이 “월드비전…??” 하며 다가오신다. “네네, 늦어서 너무 죄송해요.” 터미널에서 우리 일행을 30분 넘게 기다리셨을 텐데, 언짢은 내색 하나 없이 우선 밥부터 먹자 하신다. 정갈한 식사를 함께하며, 자리를 옮겨 후원자님의 사무실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후원자님의 다정한 사랑이 아프리카에까지 전해진 조용한 기적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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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군보건소장인 이난성 후원자님

양양군보건소장인 이난성 후원자님

 

너를 만나고, 헤어지고

이난성 후원자가 우간다에 사는 조셉을 후원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이후 13년 정도 후원을 지속하다 2017년, 조셉이 성인이 되면서 이별했다. 양양군보건소에서 일하며 ‘봉급을 받으니 조금씩 나누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후원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어 한 아이를 성년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가끔 편지를 쓰고 매년 받는 아동성장소식지를 보며 아이가 커가는 모습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살뜰히 챙기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조셉은 이난성 후원자의 첫 후원아동이자 왠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드는 아이였다. 그런데 2019년, 월드비전 강원지역본부 이사회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방문 국가는 우간다. 이난성 후원자는 2년 전 헤어진 조셉이 생각났다. 당시 아동 번호 등의 정보를 동행한 월드비전 직원에게 말하며 혹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으니 방문 지역이 조셉이 지금 사는 곳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어려울 수 있고, 이제 대학생이 된 그의 사정도 먼저 물어봐야 한다기에 이난성 후원자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간다 부사바 보건소장님과 이난성 후원자님

우간다 부사바 보건소장님과 이난성 후원자님

 

양양군보건소장 이난성 후원자와 의사를 꿈꾸는 조셉

아이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조셉이 이난성 후원자 앞에 나타났다. 다행히 바로 옆 마을에 살고 있던 조셉이 자신을 10년 넘게 후원해준 후원자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어엿한 청년이 된 조셉과 그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조셉은 의사를 꿈꾸며 의대에 다니고 있단다. 양양군보건소 간호사로 시작해 지금은 보건소장이 된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려는 조셉 이야기에 이난성 후원자는 깜짝 놀랐다. “조셉이 의사의 꿈을 가진지 몰랐어요. 수많은 후원아동 중에 나와 같은 길을 꿈꾸는 아이가 나에게 왔다니 정말 벅찬 감사함이 몰려오더라고요.”

우간다에서 마을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

우간다에서 마을 주민들과 즐거운 시간

 

30년 전, 양양에서 내가 했던 일

2019년, 양양군에서는 월드비전과 함께 우간다에 필요한 사업 지원을 계획하고 모금을 진행 중이다. 이난성 후원자는 이 모금액이 향후 어떻게 사용될지 모니터링 하기 위해 양양지역 대표로 우간다를 방문했다. 보건소장의 입장에서 바라본 월드비전 사업은 어땠을까.

“직업이 직업인지라 보건소를 좀 더 꼼꼼히 봤는데 분만 시설, 예방 접종 실시율, 모자보건 등도 아주 세밀하게 진행하고 있었어요. 이 마을의 아동 예방 접종률이 98%나 되는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제가 1986년에 보건소 간호사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는 우리나라도 집에서 아이를 낳다 영아나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외국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안전한 분만 시설을 마련하고 주민들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알렸어요. 제가 그 일을 했지요. 시내에 나가면 꼬마들한테 엄마가 ‘저기 저분이 너 태어났을 때 목욕시켜준 분이야’ 하고 말해주는 일이 자주 있었죠. 30년 후에 우리나라가 우간다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감회가 새로웠어요. 내가 30년 전에 했던 일을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니. 월드비전과 나의 연결 고리가 정말 신기했어요.”

조셉의 성장을 보며 '후원'의 중요함을 피부로 알게 되었다는 이난성 후원자님

조셉의 성장을 보며 ‘후원’의 중요함을 피부로 알게 되었다는 이난성 후원자님

 

작은 씨앗이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오래오래 함께해주는 일, 아동후원

오남매 중 맏이로 자란 이난성 후원자도 넉넉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농사를 지어 다섯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셉의 어머니도 자신의 부모처럼 농사를 지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듣고 이난성 후원자는 걱정이 앞섰다. ‘의사까지 가는 데 드는 학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하지만 이내 조셉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자신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듯 자신보다 더욱 의지가 강한 조셉이 훌륭한 의사가 되리라 믿는다.

“조셉을 만나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도 어렵게 자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밥을 못 먹진 않았지만 모든 게 부족했어요. 노트도 귀해서 위, 아래, 옆 여백까지 다 채워 썼죠. 그러다 한번은 서울 사는 친척이 예쁜 노트랑 연필을 선물해주신 거예요. 그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조셉에게 제가 해준 건 13년 동안 매달 후원금을 이체하고 가끔 편지를 보낸 것이 전부예요. 그런데 그것이 아이에게 희망이 되고 도움이 되고 있었어요. 작은 씨앗을 그냥 내버려두면 햇볕에 타고 빗물에 쓸려 내려가지만 조금씩이라도 끊이지 않고 땅을 다져주고 적당한 물을 주며 뿌리를 단단히 내릴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하는 일이 아동후원이구나 생각해요.”

휴대전화에서 조셉의 사진을 찾아 보여주는 이난성 후원자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진다. 한 아이를 향한 이난성 후원자님 같은 분들의 마음이 모여 세상을 바꾸어가고 있다. 양양에 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하던 후원자님. 이 정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후원자님이 있는 곳이라면 일부러라도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저 진짜 가요, 후원자님!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조은남/ 조은나무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