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호 체계에 아동 안전 보장은 없었다
– 아동학대 대응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공동성명
가정 내 아동학대로 분리 보호되었던 아이들이 원 가정으로 돌아간 뒤 재학대를 당하여 사망하는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 1월 1일 우리 사회는 가정 복귀 후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발생한 재학대로 4년 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아이의 비극을 접하는 것으로 올 해를 시작했다. 그 비극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마련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는 2019년 9월 26일, 가정에서 분리되어 시설보호를 받던 아동이 집으로 되돌아 간 후 학대로 결국 사망한, 참담한 사건을 또 맞게 되었다. 다섯 살 아이가 겪었던 잔혹한 학대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온 사회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비극에 잠시 분노하다가 같은 비극을 반복해서 맞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을 것인가.
2014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 이후 정부가 매년 내놓았던 ‘아동보호 체계 개선’, ‘국가의 책임 확대’ 약속이 무색하게 아동은 공적 보호체계 안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아동의 분리와 복귀가 아동보호 체계라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졌음에도 아이들이 가정 복귀 후 끝내 주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동보호에 있어서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구호일 뿐인가. 아동보호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최소한” 신고가 되어 아동보호체계 내에서 파악된 아동에 대해서는 학대로부터 안전한 보호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현행 아동학대대응시스템의 어떤 지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 반드시 찾아 제도보완을 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과 대응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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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동학대 피해 아동의 분리 보호 이후 가정복귀 과정과 결정에서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라
- 지난 5월 정부는 학대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요보호 아동에 대해 보호결정, 관리, 원가정 복귀 전 과정을 지자체 책임하에 시행할 수 있도록 공적 보호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망아동의 가정복귀과정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도 괜찮은 안전한 환경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아동복지시설의 의견서에 기반하여 복귀결정을 내렸다. 아동의 원가정 복귀의 궁극적인 목적은 가정 유지나 친권자의 양육권 실현이 아닌 아동의 복지이다. 2018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로 가정에서 분리조치된 뒤 가정복귀 후 재학대 발생은 6건 중 1건 꼴로 재학대 발생이 높다. 아동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가정 복귀는 아동이 겨우 빠져나온 위험에 다시 밀어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는 아동 복귀 결정 당사자로서의 최종적인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가정환경을 조사하여야 하며, 포용국가아동정책에서 밝힌 것처럼, 시군구단위의 ‘사례결정위원회’에서 직접 복귀할 가정을 방문하여 조사하는 기능을 하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정방문시 관할 법원의 아동보호사건 담당 조사관과 동행하여 조사하고, 아동의 원가정 복귀 여부는 법원의 명령에 의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아동의 복귀 결정에서 공공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일은 아동을 똑같은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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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법부는 아동학대사건을 판결함에 있어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고려되도록 하라. 아동의 안전을 위해 아동학대 행위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라.
- 이번 사건의 학대행위자인 계부는 이미 2017년 아동학대로 징역1년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로 사회봉사수강명령 80시간이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범행을 부인하며 뉘우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동종 전과가 없고 피해아동의 친모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밀폐된 공간인 가정 내에서 세 살, 네 살 배기 아이들이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리고, 긴급하게 아이들이 분리되는 조치가 있었어도 학대행위자가 받는 처벌이 집행유예일 뿐이다. 과연 법원은 아동학대사건에서 누구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여 판단하고 있는가. 아동의 안전인가, 보호자의 탄원인가.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친모의 탄원서가 근거가 되어 학대행위자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은 법원이 과연 아동이 안전하게 양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를 묻게 한다. 법원은 학대피해아동의 안전을 국가가 담보해야한다는 막중한 책무성을 갖고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최우선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판결할 수 있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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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법부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통해 실제로 아동이 보호되도록 판결하고, 판결이 이행되도록 하라.
-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청구한 피해아동보호명령 <‘접근 제한(제2호)’, ‘전기통신 제한(제3호)’, ‘시설로의 보호 위탁(제4호)’>에 대해, 아동복지법 제15조에 따라 아동이 이미 시설에 입소되어 있다는 이유로 피해아동보호명령 결정시 제4호를 제외시켰다. 그런데 아동복지법 제15조에 따른 시설 보호는 학대피해 아동보호 시 아동을 보호할 수 없는 대표적인 무력한 조항이다. 학대행위자인 보호자가 시설로 찾아와 아동을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협박한다고 해도, 행위자를 제지할 강제력이 없다는 점은 현장에서는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이다. 법원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통해 아동 (및 아동을 보호하는 시설)이 행위자의 협박으로부터 실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피해아동을 보호하는 일은 피해아동보호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명령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행 여부를 파악하고 불이행 시 합당한 제지를 하지 않는다면 아동이 가정으로 복귀하여 사망하는 비극은 언제든 또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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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정복귀 후 사례관리에서 공적 책임을 강화하고, 사례관리체계 인프라를 확충하라
- 이번 사건에서도, 1월 의정부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도 아동의 가정복귀 후 학대행위자들은 방문을 거부하고 연락을 피하는 등 아동보호전문기관의 개입을 회피하여 아동의 안전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일단 아동이 가정에 복귀하고 나면 학대행위자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 관리에 협조하지 않아도 현재로서는 손 쓸 방도가 없다. 이에 지방자치단체 내 ‘사례결정위원회’ 와 아동보호전문기관과의 협조체계를 구축하여 정부가 공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또한 학대가 발생한 가정의 아동, 학대행위자, 가족 등에 대한 방문과 상담, 심리치료 등이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이러한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될 수 있도록 아동보호전문기관 인프라를 확충하는 등 아동학대 사례 관리에 있어 공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아동이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살든 지역의 격차없이 아동 중심의 보호체계 안에서 보호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예산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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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민법」의 징계권 조항 개정을 통해 가정내 체벌을 법으로 명확하게 금지하라.
- 현행 「민법」 제915조(징계권) 조항은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이르고 있어 자녀에 대한 징계를 부모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체벌에 허용적인 사회에서는 결코 아동학대가 근절되지 않는다. 일정 조건에서 아이를 때리는 행위가 ‘집안 문제’ 또는 ‘훈육’로 해석될 수 있는 곳에서 체벌은 아동에 대한 폭력이라는 본질은 가려지고 ‘가르치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 ‘조금 과격한 훈육’ 정도로 은폐되어 폭력의 양상이 극단에 이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징계권 조항 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조속히 이행해야 한다.
아동보호체계는 그동안 많은 아이들의 사망을 딛고 하나씩 보완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피해 아동을 진정 추모하는 길은 두 번 다시 그와 같은 피해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아동보호 체계의 허점으로부터 근원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예방·대응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마련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아동학대 예방·대응 과정에서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최상위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며 아동보호 체계 개선을 촉구한다.
2019년 10월 8일
굿네이버스, 동방사회복지회, 세이브더칠드런, 세이프키즈코리아, 아이코리아, 엔젤스헤이븐, 월드비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종이문화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한국아동단체협의회,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홀트아동복지회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함으로써 자녀를 한 인격체가 아닌 부모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존재로 오인할 수 있는 민법 제915조(징계권)의 조항을 삭제하기 위해 시민들의 지지서명을 모으는 “Change 915: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change915.org)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