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넝쿨이 다닥다닥 예쁘게도 자란 집 앞에서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른 박진은 후원자가 일행을 반긴다. 활짝 웃으며 “월드비전 이시죠?” 묻는 박진은 후원자의 모습이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잠시 머뭇거리는 데, “먼 길 오셨어요.” 하며 또 한 명의 후원자가 인사를 건넨다. 선한 눈빛이 똑 닮은 두 사람. 박진은 후원자의 어머니 방영기 씨다.

커다란 2층 공장을 손수 개조한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듯 근사한 인테리어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 잔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 곳은 박진은 후원자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제이엘 627-4>. 서울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층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은 아늑한 공간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레스토랑 주소를 받고 찾아가는 내내, ‘설마 이런 곳에?’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지만 경기도 화성의 투박한 공장들 틈 속에 따듯한 자태로 세워진 레스토랑은 입 소문을 타고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월드비전과 함께 6개 나라에 우물 8기를 세운 방영기∙박진은 모녀를 이 곳에서 만나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그 날의 화창한 오후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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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다모이랏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는 주민들

미술 전공을 한 박진은 후원자는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하며 두 개의 통장을 만들었다. 하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한 것이라 생각한 ‘십일조 통장’ 그리고 ‘나눔을 위한 통장’이었다. 사업 초반 어려움도 있었지만 감각적인 촬영공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며 한 팀, 두 팀, 스튜디오를 대여하는 곳이 늘어났다. 곧 스튜디오 스케줄이 빈 틈 없이 꽉 차기 시작했다.

“제 나이에 만져볼 수 없는 돈을 벌게 되었어요. 그런데 돈을 벌면 벌수록 이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수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생각 때문인지 사업 초반부터 만든 두 개 통장에 매달 빠짐없이 돈을 모으면서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수입이 늘면서 나눔 통장도 두둑해져 갔다. 어렵게 모은 만큼 귀하게 사용될 곳을 고민하던 중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세계 오지에 우물을 파고 지역 주민들을 돕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정말 그러네. 살면서 정말 없으면 안 되는 건 깨끗한 물이잖아.’ 박은진 후원자의 마음 속에 우물이 훅, 들어왔다. 그 때 즈음 어머니 방영기 후원자가 월드비전 이라는 기관이 후원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더 지체할 것이 없이 모녀는 은행에 들러 수표를 찾아 월드비전을 찾았다. 두 모녀가 꿈 꾼 나눔이 실현되는 첫 순간이었고, 이렇게 잠비아 뭄브와 마을 주민들은 안전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르완다 무수바티 지역에 설치된 안전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는 모습

엄마와 딸은 매년 12월이면 서울 여의도로 향한다. 월드비전 본부를 방문해 우물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도와주기 위해서다. “월드비전에서 준비해 주신 우물이 필요한 곳 자료를 보고 모아진 금액도 고려해서 엄마가 함께 지원할 곳을 결정해요. 월드비전을 찾아가는 길이 정말 신나고 즐겁죠. 이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2013년 잠비아를 시작으로 모녀의 사랑은 흘러흘러 우간다, 르완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6개 나라에 식수대 8기를 설치했다. 이제 곧 설치될 케냐의 식수대까지 합치면 어느 새 9개 식수대 설치가 눈 앞에 있고, 후원 누계 금액은 1억원을 넘어선다.

캄보디아 상큼트머이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자 주민들과 어린이가 즐거워하고 있다.

“금액이 그렇게 된 것도 모르면서 했고요. 2013년 처음 우물을 파고 난 뒤로 저에게 목표가 생겼잖아요. 우물 100개. 그것만 생각했어요. 물론 그 우물이 다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이 좋아지면 가장 좋겠지만 가끔 뉴스나 방송 프로를 보면 물 때문에 고통 받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요. 100개 우물로는 그들을 다 도울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려고요.”

전 세계 우물 100개를 설치하겠다는 아름다운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방영기∙박은진 모녀

유쾌한 모녀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창문 밖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리를 정리하며 돌아올 답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질문을 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당장 연말 예약이 잡힌 레스토랑 행사들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 그리고 우물 100개 파는 거죠.”

당차게 말하는 박은진 후원자와 그런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 전 세계 곳곳 모녀가 세운 식수대에서는 깨끗한 물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도 흘러갈 것이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국민일보, 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