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동민이네 집 앞에서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였습니다. 한적한 동네, 저 끝에서 얼굴이 익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옵니다. 아이는 지난 캠페인 영상 속 체구와 비슷한데 분명 무언가 확실히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보여집니다.
“안녕?” 하는 인사에 쑥스럽게 얼굴을 돌렸지만 분명 활짝 웃는 얼굴, 한결 가벼워진 몸. 앞장서 6층 집까지 올라가는 걸음마저 사뿐사뿐 가볍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신경섬유종(유전자 질환으로 신경계에 영향을 주면서 나타나는 증상.골격 및 뇌신경 종양 등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짐)이 덮어버린 오른손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던 아이. 지나치는 눈길에도 얼른고개를 숙이고 손을 감추기 바빴으며, 너무 작은 일에도 금방 울음을 터뜨리던 동민이었습니다.
지친 눈빛을 감추지 못하던 이 아이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동민이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월드비전을 통해 많은 도움의 손길을 전했어요. 그 도움으로 동민이는 지난 8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먼저 아픈 손과 등을 수술했습니다. 오른팔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동민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신경섬유종이 오른손을 넘어 온몸에 번지면서 성장을 방해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오른손과 등 쪽 신경섬유종을 제거한 동민이는 이제 가볍게 몸을 가눌 수 있어요. 내년 4월에 예정된 가슴 쪽 수술까지 잘 마치면 이제 무거운 암 덩어리들은 동민이 몸에서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동민이가 세상과 마주할수록 어떤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할지에 대해 감히 누구도 ‘괜찮을 거다’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동민이가 거칠고 단단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지혜롭고 꿋꿋하게 잘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심리 상담 치료로 돕고 있습니다. 또 언어 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동민인 언어 치료도 함께 받고 있어요. 이 치료 역시 후원자님들 덕분에 얻게 된 귀한 기회예요. 동민이는 특히 언어와 심리 치료 시간을 좋아해서 두 달 남짓, 주말을 뺀 나머지 날은 매일 상담센터를 방문하고 있고요. 충분한 초기 상담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 11월부터는 주 4회, 상담센터를 방문할 예정이에요.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이런저런 근황을 묻는 중에도 동민이는 함께 온 사진작가와 꽁냥꽁냥 장난이 한창입니다. 사진작가가 뷰파인더 속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자 꺄르르르, 셀피를 보여주자 아예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수술하고 나서 동민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전에는 손 감추느라 어디 나갈 때도 사방으로 눈치 보기 바빴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격까지 예민해져서 할머니인 저한테도 살갑게 구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리 바뀌었네요.
이제 그림자만 봐도 웃어요. 인사도 곧잘 하고, 좋으면 좋다는 표현도 잘하고요.”
할머니는 동민이가 변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눈가가 금세 붉어집니다.
“참,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벌어지니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달리 무슨 말을 찾을 수가
없네요.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함께 이겨내고 있는 아픔
우리는 가끔 말하곤 하지요.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일을 아이가 이겨내는 게 대견하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차마 동민이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큰 수술도 잘 받았고, 언어 심리 치료도 즐겁게 받고 있는 의젓한 동민이지만 그 작은 마음이 큰 두려움에 얼마나 콩닥거렸을까요? 닥친 현실 앞에서 동민인 용기를 내었다기보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님의 응원 속에서 함께 버틴 걸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병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라요. 아이가 아파하는 소리, 어머니 눈물 짓고 한숨 짓는 모습만 있던 날들이었는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웃을 일이 많아졌어요. 이제야 사는 게 재미나는 거구나 싶어요.”
동민이에게 가난도 모자라 병까지 물려준 거 같아 미안하기만 했던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끊이질 않습니다.
아이의 한쪽 팔을 포기하는 큰 수술을 감당한 가정이라 조심스럽게 취재 준비를 했는데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웃음소리를 들었던 두어 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후원자님들이 동민이와 가정에 선물한 것은 수술비와 치료비뿐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 누군가 함께한다는 든든함까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눈부신 희망이었습니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