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역도 소년 승훈이
또래보다 큰 키에 마른 체구. 코치님과 함께 역기 훈련에 집중하는 승훈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동행한 사진작가의 모자를 보며 웃음을 터트린 승훈이.
“어! 맥아더 장군님 모자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님은 1880년에 태어나서 1964년에 죽었어요. 84살이었대요.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고….” 백과사전처럼 맥아더 장군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는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는 아동들은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해요. 넘쳐나는 에너지에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죠. 그러다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놀랍게 집중해서 암기하고 기억해요.” 옆에 있던 엄마가 살며시 설명해준다.
세상과의 소통이 어려운 승훈이. 아이를 향한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는 홀로 지독히도 애써왔다. “지금의 특수학교로 전학 오기까지 정말 힘든 과정을 겪었어요. 너 죽고 나 죽자는 나쁜 마음을 먹었던 때도 있었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마다 월드비전 선생님들께서 도와주셨어요. 아이와 함께 복지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비슷한 아픔을 겪는 엄마들과 이야기 나누며 차츰 위로와 용기를 얻었어요.”
세상과의 첫 소통,
그 시작이 되어준 역도
2014년 가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승훈이는 특수학교에 진학했다.
“전학 오던 날 교장 선생님께서 역도를 추천해주셨어요. 승훈이 안의 제어되지 않는 에너지들이 운동을 통해 해소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큰 기대 없이 시작했던 역도. 그러나 승훈이의 성장세는 놀라웠다. 역도를 배운 지 1년 반 만에 충북 지역 예선을 시작으로 전국장애 학생체전(50kg급 데드리프트)에서 92kg을 들어 올리는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머리 위로 팔을 쭉 펴서 역기를 드는 일반적인 역도 경기와 달리, 두 손으로 역기를 든 채 허리를 펴고 서는 것까지를 기준으로 하는 장애인 역도. 승훈이는 제 몸의 두 배에 달하는 역기를 들었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잘했어, 승훈아!” 아이의 곁을 지켜준 코치님의 한마디는 승훈이 안의 희망을 일으켜 세웠다. 역도 시합장 위에 선 승훈이는 더 이상 말썽꾸러기가 아닌 당당한 금메달리스트였다.
“승훈이의 잠재된 집중력과 승부욕이 역도를 하면서 빛을 발한 것 같아요. 더 기쁜 건 승훈이가 함께 운동하는 형, 누나, 코치님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엄마는 금메달보다 역도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 승훈이가 대견하다.
“운동하는 거 힘들진 않아?” 역기에 쓸려 상처난 아이의 손바닥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허리랑 목도 아프고, 손바닥이 다 까져서 정말 아파요.” 대회 준비 시즌에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온종일 이어지는 역도 훈련.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역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아이의 대답엔 망설임이 없다. “재미있으니까요. 친구들이랑 합숙하며 훈련할 때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시합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 쳐주면 기분이 좋아요.” 인터뷰 내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승훈이의 눈빛이 순간 반짝인다.
희망을 더 높이 들어 올릴, 소년의 꿈
“나중에 승훈이가 커서 자기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아이들에게 운동을 가르쳐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승훈이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거든요. 월드비전 선생님들부터 후원자님, 학교 선생님, 코치님까지, 너무 많아요. 승훈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겠죠?” 엄마는 꿈꿔본다.
누군가는 불가능하다 말해도 엄마와 승훈이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땀과 눈물의 발자국을 그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두 사람.
경기장 위에서 희망을 더 높이 들어 올릴 승훈이를 응원한다.
글. 김유진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유별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