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나는 갈매기] 슬픔이 오지 못하게 엎어치기 한 판!

“안녕하세요”라고 힘차게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미는 건우.

짧게 깎은 머리, 단단해 보이는 체구,
귓바퀴가 어그러진 ‘만두귀’가
TV에서 보던 레슬링 선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원한 비가 한차례 지나간 춘천에서 레슬링
국가대표를 꿈꾸는 건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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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만난 운동,
레슬링

 

“예전에는 넘어가면 짜증났는데 이제는 넘어가도 괜찮아요.
다시 따라잡으면 돼요.
넘기고 또 넘어가는 게 레슬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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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명문인 춘천 강원고 체육관.

아침부터 시작한 훈련 막바지에 특별히 촬영을 위해 건우와 후배 효식이가 함께했다.

훈련에 이어 사진 촬영까지 하느라 금세 굵은 땀방울이 매트 위로 떨어진다.

건우의 하루는 온통 운동이다.
하루뿐 아니라 거의 일 년 내내 ‘대회 준비’ 아니면 ‘대회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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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전국대회가 있어서 오늘은 훈련 시간이 짧은 편이에요.
대회가 없는 시기에는 새벽부터 밤 10시까지 3~4번에 걸쳐서 훈련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동생과 함께 TV에서 즐겨 보던 프로레슬링.

선수들의 실감나는 표정과 액션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건우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레슬링부에 들어갔다.

‘TV에서 보던 레슬링을 이제 배울 수 있겠구나, 재미있겠다….’ 그렇게 시작한 레슬링이 이제는 건우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저보다 힘센 사람을 넘기려면 기술도 있어야 하고 힘도 좋아야 해요.
그래서 계획대로 잘 성공하면 참 기분이 좋아요.”

“반대로 네가 넘어가면 어떡해?” 라는 바보 같은 질문에도 건우는 당황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넘어가면 짜증났는데 이제는 넘어가도 괜찮아요. 다시 따라잡으면 돼요.
넘기고 또 넘어가는게 레슬링이거든요.”

건우는 레슬링만 잘하는 게 아닌가보다.
그동안 운동을 하면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듯 어른스럽다.

 

내 꿈은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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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만날 지기만 해서 하기 싫은 적도 있었는데, 지난번 전국대회 때 1등 하고 나서는 하면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건우는 지난해인 중학교 3학년 때 대통령기 전국 시도 대항 레슬링 대회에서 1등을 했다.

힘들게 땀 흘린 대가를 맛볼 수 있었던 값진 승리였다. 짜릿한 승리의 기쁨은 건우를 더욱 운동에 매진하게 했다.

“강원고 선배 중에 김현우 국가대표를 가장 존경해요.
김현우 선수가 나온 대학교에 진학해서 저도 선배님처럼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요.”

한국 레슬링 사상 세 번째로 그랜드슬램(올림픽·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아시아선수권 제패)을 달성한 김현우 선수는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건우의 우상이다.

학교 체육관에서 만났을 때, 열심히 하라는 김 선수의 격려가 건우의 짧은 레슬링 인생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훈련의 길.

“올해 1월에 시합이 있었어요.
거기서 선발되면 태국 대회에 출전하는 건데 아쉽게 2등을 했어요. 내년에 다시 도전해야죠.”

건우에게는 또 다른 소망이 하나 있다.

“체육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아이들과 뛰어노는 것이 좋아요.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등에 자만하지 않고, 2등에도 좌절하지 않는 건우는 진정 운동을 즐길 줄 아는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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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아픔도 없는
매트 위에서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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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에게 가장 소중한 건 뭐야?”
“가족이요!”

후배도 잘 챙겨주고 인사성도 바른 건우.

구김살 없고 매사에 긍정적인 건우지만, 그 짧은 인생이 순탄하진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과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의지했던 형마저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건우에게 남겨진 아버지와 남동생은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동생이 저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매트에서 만난다면 져주지는 않을 거예요.”

레슬링을 하는 남동생은 선의의 경쟁자이자, 의지할 수 있는 동료다.

하지만 대리운전 일을 하는 아버지의 수입만으로 레슬링을 하는 건우와 동생을 지원하기에는 역부족.

건우는 지난해부터 희망날개클럽을 통해 훈련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받고 있다.

“훈련과 시합이 많다보니 운동화가 빨리 닳아요.
어떤 친구들은 학교에서 단체로 주는 운동화 말고 따로 수제화를 구입해서 신어요.
수제화는 잘 안 찢어지더라고요.”

건우의 뜯어진 운동화는 인터뷰 내내 참 마음에 걸렸다. 친구의 튼튼한 수제화를 그저 말없이 바라보았을 건우가 눈에 선하다.

아무런 장비 없이 간단한 운동복만 입고 하는 레슬링.
믿을 것은 오로지 체력과 기술뿐이다.
맨몸으로 거친 세상과 맞서야 하는 건우와 참 많이 닮았다.
건우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건우야, 너의 잘못이 아니야!
힘들 땐 잠시 울어도 괜찮아!”

선생님의 편지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든 훈련을 견디는 건우를 보면 선생님도 더 열심히 살아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젠가 건우가 국가대표의 꿈을 꼭 이루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건우야!
지금처럼만 밝게 잘 자라렴!
선생님이 늘 응원할게!

김기호 사회복지사

 

글. 김수희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유별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