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시작은 재능기부
“물 하나로 달라지는 아이들의 얼굴, 본 적 있으세요? 바싹 말라 있던 표정이 한줄기 맑은 물에 환하고 촉촉해져요. 제가 그 모습 때문에 9년 넘게 여기서 발을 못 빼고 있어요.”
말로만 푸념 중인 김인경 씨의 목소리가 유쾌했다.
첼리스트인 김 씨는 9년째 ‘소울챔버 오케스트라’ (이하 소울챔버)를 이끌고 있다.
소울챔버에는 독특한 구석이 꽤 많다.
먼저 연주자 모두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처음엔 12명의 연주자로 시작해 올해는 70명을 넘어섰다.
2009년 첫 연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9년간 총 6번의 공연을 했고, 티켓 판매 수익금은 전액 아프리카
식수지원사업에 기부했다.
그렇게 모금한 금액이 어느새 3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7월 28일 김 씨를 비롯해 소울챔버 멤버 박영경(바이올린), 윤선형(첼로), 박지화(첼로), 이효진(오보에) 씨를 만났다. 소울챔버를 통해 ‘단짝 친구’가 된 다섯 사람은 만나자마자 화기애애하게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10년 전쯤 한비야 작가님의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통해 물 부족 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현실을 알게 됐어요. 저도 아이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더 마음이 동했던 것 같아요. 무작정 월드비전에 ‘내가 첼로를 전공했는데, 이 재능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겠느냐’는 메일을 보냈어요. 월드비전에서 답이 왔고, ‘재능기부
공연’을 콘셉트로 연주자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 김인경 씨
물을 넘어 한 마을의
자립을 향해
10월 19일 소울챔버는 서울 롯데 콘서트홀에서 7번째 공연을 연다.
다섯 사람은 공연을 넉 달여 앞두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지난해 소울챔버가 공연을 통해 식수대를 지원한 마을이다.
“저희가 기부한 식수대가 마을 학교 운동장에 설치돼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모여 손을 씻고 물을 받아 쓰는데 표정이 참 밝았어요. 마을 사람들은 식수대 물을 끌어와 농사를 짓고요. 일정 중 식수대가 설치되지 않은 마을에도 가봤는데, 그 침체된 분위기를 보며 ‘아, 물 하나로 한 마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윤선형 씨
“이제는 편하게 물을 사용할 수 있겠 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Water is life’라며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무척 놀랐어요. 물이 가져오는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컸어요.”
– 이효진 씨
김 씨 일행은 마을 학교 학생들을 위해 페트병으로 악기를 만들고, 같이 연주해보는 음악 수업을 준비했다.
“페트병 악기를 만들어 같이 동요 ‘작은 별’을 연주해보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흥분해서 수업 진행이 안 될 정도였어요.(웃음) 악기 연주는 커녕 악기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라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즐거웠던 거예요. 현지에 있던 월드비전 직원분도 ‘아이들이 이렇게 신나 하는 건 처음 본다’고 하시더라 고요.”
– 박지화 씨
소울챔버 멤버들은 이곳에서 교육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학교에는 제대로 된 책이나 교재 한 권 없었다.
이제는 ‘물’을 넘어 한 마을을 ‘자립’시키는 일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다가오는 10월 공연의 수익금도 ‘탄자니아 드림빌리지’ 자립 후원을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함께하기에 가능한
기적의 드라마
“항상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은 활동이 소울챔버였어요. 나누는 만큼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졌고, 행복이란 게 생각처럼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주변에서 ‘좋은 일 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늘 민망해요.”
– 박영경 씨
“첫 공연을 할 때는 우물 하나만 파도 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아 놀라워요.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일이에요. 현업에 바빠도 즐겁게 공연을 준비하는 연주자들과 기꺼이 티켓을 사주시는 관객, 그리고 옆에서 늘 힘이 되는 월드비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 김인경 씨
인터뷰가 마무리될 즈음 한 편의 드라 마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적의 드라마’가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