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5일,
미얀마 소요 사태 발생.

로힝야족을 비롯한 미얀마 소수 민족에게 자행된 무자비한 탄압. 집과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 가족들은 차가운 총구 앞에 사라졌습니다. ‘인종 청소’라 불릴 만큼 끔찍했던 유혈 사태. 인접한 국경의 방글라데시로 살기 위해 떠난 10여 일의 피난길.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 난민촌에는 약 90만 명의 미얀마 난민이 나라와 가족을 잃은 채 살아갑니다.

그렇게 벌써, 1년이 흘렀습니다.

 


 

훅- 하고 몰려오는 뜨겁고 습한 공기. 유일한 생명줄인 구호물자와 식량을 받기 위한 난민들의 아우성이 귓가를 울립니다. 몬순 기후(6~8월)의 영향으로 내린 폭우 탓에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 언덕을 따라 20만 개의 임시 텐트가 1m의 간격조차 없이 빼곡한 난민촌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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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스 바자르 미얀마 난민촌의 모습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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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가득한
피난길에 오른 아이들

몸을 한껏 웅크리고 조심스레 들어간 어둡 고 비좁은 난민 텐트. 차가운 흙바닥 위, 방 수천과 대나무를 엮어 만든 텐트에는 야콥 (11세)이 살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가장 좋다는 소년이 보여준 한 장의 그림. 빨간색, 파란색 알록달록한 그림에 충격적인 아이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여기는 제가 살았던 마을인데요. 우리 집과 차가 불타고 있는 걸 봤어요. 피 묻은 손도 봤어요. 그래서 다 빨간색이에요.” 아이의 그림 속엔 끔찍했던 그날 밤이 선명합니다. “낯선 사람들이 마구 총을 쐈어요. 피가 흐 르는 도로를 따라 도망쳤어요. 언제쯤 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야콥은 운이 좋게도 부모님과 함께 도망쳤지 만, 많은 아이가 눈앞에서 부모님과 형제, 자매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살기 위해 국경 을 건너 도착한 낯선 난민촌. 하지만 이곳에서의 삶도 가혹합니다.

그림을 들고 서 있는 야콥 (사진 월드비전)

그림을 들고 서 있는 야콥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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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난민들

콕스 바자르 해안가를 따라 총 27개의 캠프로 이뤄진 미얀마 난민촌. 서울 여의도 면적의 약 3배에 달하는 불모지에 피난민 90만 명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곳엔 전기, 식수, 식량, 집, 학교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임시로 지어놓은 공 용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불안에 떨며 몸을 씻고 용변을 해결합니다.

“아빠가 죽는 꿈을 꿨어요. 곧 오시겠죠?”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모모(4세)의 물음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폭우에 텐트가 무너지면 어쩌죠? 아이를 씻길 수도 제대로 먹일 수도 없어서, 전염병이나 영양실조에 걸리면 어쩌나 걱정돼요.” 엄마 샤히라는 딸의 머리를 쓸어 넘깁니다.

이들이 가장 두려운 건 해가 지고 매일 찾아오는 ‘밤.’ “난민촌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요. 집 안도 길가도 온통 캄캄해요. 공용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밤엔 너무 무서워요.”(자밀라, 20세) 가로등 하나 없는 난민촌의 밤. 아이들은 어
둠 속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난민 텐트 안에서 환히 웃는 모모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난민 텐트 안에서 환히 웃는 모모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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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난민과
동행하는 월드비전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이곳. 월드비전은 콕스 바자르 난민촌 내 9개의 아동친화공간(CFS)을 운영해요. 아이들의 심리 안정을 돕는 레크리에이션과 미술 치료, 언어 교실 등을 주 5일 2시간씩 진행하죠. 3~12세 난민 아동 2,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특별한 팔찌 배분이 있었는데요. 팔찌엔 아동을 담당하는 월드비전 표시와 함께 등록번호가 새겨집니다. 표지판도 없이 밀집된 난민촌에서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찾을 수 있는 식별표인 셈이죠.

아동친화공간(CFS)에서 노래하는 아이들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아동친화공간(CFS)에서 노래하는 아이들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밖에 나가면 엄청 정신이 없어요. 사람들도 많아서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웠어요. 이렇게 예쁜 팔찌가 생겨서 좋아요!” (로지나, 7세 ) 팔찌가 신기한 듯 서로의 손을 보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그 환한 모습에 괜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사랑 안에서 안전하게 뛰어놀 나이의 어린 천사들.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우린 무얼 해줄 수 있을까요? 일주일 남짓했던 난민촌에서의 시간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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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약 60명.

이곳 난민촌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빛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도
생명은 꿈틀대고
아이들은 자라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갖는 이유입니다.

“미얀마 난민을 기억해주세요.”

아동식별팔찌를 차고 웃는 아이들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아동식별팔찌를 차고 웃는 아이들 (사진 한겨레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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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미얀마 난민 긴급구호 지원 계획

• 규모 : 약 1억 1천만 원
• 기간 : 2017년 9월~ 2018년 12월

태양열 가로등
26개 설치
랜턴
1,400개 전달
위생용품
(비누, 칫솔, 세제 등),

여성용품
(생리대, 속옷 등),

산후용품
(담요, 소독제 등)

 

•이번 특집 기사는 한겨레신문과 함께하는 <2018 나눔꽃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기사 속에 언급된 난민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글. 김유진 콘텐츠&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한겨레신문 백소아 기자 / 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