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심무희 봉사자님이 월드비전에서 번역 봉사를 시작한 해입니다. 당시 67세이던 심무희 님은 번역 봉사자 선발 과정을 거쳐 당당히 합격하셨지요. 그 후 14년, 봉사자의 나이 첫 자리는 두 번 바뀌었고 봉사자님은 1만 2,073통의 편지를 번역했습니다.

2018년 5월, 심무희 봉사자님으로부터 “14년간 쉬지 않았던 봉사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봉사자님의 목소리. 긴 세월 애써주신 심무희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우리는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봉사자님이 들려주신,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 같은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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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눈물바람이던 그때, 월드비전을 만났어요.”

중풍을 앓던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정신없이 살았어요. 남편도 암 환자였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내 가족을 돌보는 것만으로 난 너무 힘에 부쳤어요. 그러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애들도 다 출가시키고, 남편마저 천국에 간 거야. 주체할 수 없이 많아진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무서웠어요. 큰 집을 팔고 허둥지둥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두려움은 여전했어요. 밥 먹을 때마다 그냥 눈물이 흐르더라고. 그렇게 3년을 울며 지냈어요. 생전에는 속도 많이 썩인 남편인데 왜 그랬는지 몰라. 모래 사막에 덩그러니 떨어진 거 같고,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 같고. 이 눈물이 언제 멈출지 알 수가 없었어요. 보다 못한 동생이 자기가 이런 거(NGO 서신 번역)를 하고 있는데 언니도 시간을 메울 겸 해보라고 권한 것이 14년 동안 월드비전과 함께한 시작이 되었네요.

“나의 아픔과 외로움이 어느새 사라지고 행복이 자리 잡더라고요.”

월드비전에 전화를 해서 번역 봉사를 신청했더니 테스트처럼 번역할 편지를 보내주시더라고. 그래서 그걸 열심히 번역해서 다시 월드비전으로 보냈지. 월드비전이 정한 수준에 합당했는지 함께하자고 하셔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 없이 아동이 후원자에게, 후원자가 아동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역해왔어요. 꼬박 14년 동안.

처음에는 집중할 무언가가 생기니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또 내가 뭐든 한번 하면 단단히 하는 사람이거든. 한 번도 날짜 어긴 적 없이 하여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어느새 내 아픔을 밀어내고 있더라고. ‘내가 빨리빨리 해서 보내면 아이들이, 후원자들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마음이 쌓이면서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도 자연스레 사라졌어요. 번역 봉사가 나를 살렸죠. 후원 아동들이, 후원자가 보낸 편지들이 나를 살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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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지를 갖고 했던 번역 봉사. 문득문득 그 시간들이 떠오를 거예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늘 건강이 걱정이었는데 얼마 전 밤에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다 쓰러졌어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제 내 나이와 체력으로는 더 이상 이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14년 만에 처음으로 든 마음이에요. 67세에 시작한 번역 봉사였고 이제 제 나이 81세예요. 세월이 왜 이렇게 빨라요? 친구들은 이 나이에 무슨 사서 고생이냐고 핀잔도 많이 줬지만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성실하고 꼼꼼하게 지금까지 봉사를 해온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며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후원 아동과 후원자들이 주고받는 사랑을 중간에서 소중하게 전달해온 시간과 노력이 ‘행복’이었어요. 번역 봉사는 마무리하게 되었지만이 행복했던 순간들이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아요.

“애틋한 마음들을 우린 소중히 다루고 전할 책임이 있어요.”

후원자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반드시 건강한 어른이 될 거라고 굳게 믿어요. 서신을 번역하다 보면 얼굴도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애틋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해요. 정말 소중한 마음들이죠. 그러니 우리 번역 봉사자들이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작업을 해야 해요. 다들 잘하고 계시겠지만 이제 일선을 물러나는 선배로서 부탁하고 싶은 건 ‘내가 이 재능으로 후원을 하는 거다.’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쉼표, 마침표, 첫 문장 대문자 사용 등 기본부터 꼼꼼히 잘 지키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그런 기본적인 자세부터가 아이를 생각하며 편지를 보낸 후원자의 마음을, 후원자를 그리며 꾹꾹 글씨를 써 내려간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거니까요.

번역기간 14년
번역편지 12,073통

좀 더 건강해서… 더 했으면 좋았을걸. 자꾸 넘어지고 정신을 잃고 하니 주위에서도 너무 말리고 저도 제때제때 번역할 자신이 없어 여기에서 마무리하려고 해요.

월드비전에서는 그간 제가 번역한 편지가 1만 통이 넘는다며 대단하다고 하시지만 전 그냥 성실히 제 몫을 했을 뿐이에요. 그것보다 제가 번역할 수 있도록 편지를 주고받는 아동과 후원자님께 감사 드려요. 그 편지들이 제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었어요.

자꾸만 저에게 감사하다 하지 마세요. 제가 감사해요. 정말로 제가 감사하고, 감사해요.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