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고, 사랑했던 기억의 힘
벌써 4년이 넘은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본다. 나는 에티오피아월드비전 하브로와 멜카벨로 사업장에서 진행되었던 보건영양사업 효과성 평가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상당기간 월드비전 사업장에 머물렀다. 시골지역의 신선함과 열악한 환경이 주는 도전이 익숙해질 무렵 삶의 활력소는 숙소 근처 동네 꼬마들과 보내는 시간이었다. 사무실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숙소 앞에 진을 치고 제목도 알 수 없는 놀이를 하고 있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그 아이들은 내가 그곳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존재하는 목적이며 기쁨이었다. 사랑 받고 사랑했던 기억이 주는 힘은 지금도 참 크다. 그 아이들을 통해 현재 나의 노력이 다음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게 됐다. 가끔 나를 사랑해 주던 아이들과 다시 만나는 날을 그려본다. 기약할 수 없는 날이지만 그 아이들이 건강한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성장해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마을의 모든 영역이 고르게 갖추어져야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들
개발도상국에서 아동들이 영양실조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 보건 및 영양 사업들이 진행되나 이 사업만 단독적으로 실행해서는 영양실조와 질병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단지 영양이 부족한 식사나 질병이 원인이 아니라, 바닥에 깔려있는 빈곤, 보건 서비스 부족, 비위생적인 환경, 열악한 교육 수준, 나아가 사회 불평등, 정치와 경제적인 상황을 중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동이 사는 마을이 깨끗하고, 아프면 언제든지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공평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고, 지속적으로 먹거리들이 생산되며, 소득을 낼 수 있는 기회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다면 영양실조나 질병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결국 모든 영역이 고르게 갖추어진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건강하게 성장해 그들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 세계가 추구하는 변화의 목표와 함께하는 지역개발사업
실제 월드비전과 많은 NGO들이 진행하는 지역개발사업은 아동이 보호와 존중을 받으며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마을이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극심한 빈곤을 없애고 아동 및 모성의 사망을 감소시키고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하는 등 한 개인에게 필요한 가장 시급한 권리를 보장하는데 주력했다면, 2015년 채택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새천년개발목표 들을 사회 불평등 및 성 차별 해소, 기후변화, 환경 지속성을 포괄하는 개발 목표 속에서 달성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지역개발사업의 특성은 SDGs가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된다. 월드비전의 경우 식수위생, 보건영양, 농업개발, 교육, 주민 역량 강화 등 지역개발사업을 약 15년 동안 진행한다. 지역사회가 자립하기까지 주민들에게도 후원자들에게도 인내가 필요하지만 최근 변화의 증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소식이다.
한 아동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 깊어져야 한다
SDGs 시대에 지역개발사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은 넓어지고 기대수준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범위는 한 아동이고 나의 손길 역시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차마 후원하는 아동이 살아가는 지역이 자립하는 수준까지 기대하지 못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 아동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 깊어져야 한다. 우리의 질문이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넘어 그 아이가 사는 마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자립하고 있는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강윤희 교수
Yunhee Kang, PhD
약력:
2001년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석사
2002년-2009년 (사)위드 선임연구원
2015년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국제보건학과 영양학 박사
2016년-현재 한국 월드비전 보건영양 자문위원
현재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국제보건학과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