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폭염이 계속되던 2018년 여름의 한복판. 우리는 부산 해운대도, 한강 수영장도, 에어컨 빵빵한 영화관도 아닌 태백으로 향했습니다. 연탄을 나르기 위해서였죠. ‘이 계절에 연탄은 왜? 게다가 이걸 나른다는 당신들은 누구?’ 좀 이상하고 궁금하시죠? 7월 26일부터 27일. 1박 2일 간.  ‘우리’는 그 누구도 짐작 못했던 강도 높은 노동을 했고, 기대를 이만 배 뛰어넘는 연대의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이제 그만 뜸들이고, 연탄을 죽어라 날랐던 그 여름날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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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더위?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 하는 거니까요.

꿀 같은 휴가를 가족과 태백에 와서 연탄을 나르겠다고 모인 우리 12개 가족은 저마다 식구 수도, 참여한 이유도 다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짐작하셨나요? 바로, 월드비전과 함께 세상을 바꾸어 가는 월드비전 후원자 가족이라는 엄청난 인연이었죠.

나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따듯한 가슴을 내어 주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가족과 함께 다른 이들을 몸으로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은 또 어떤 기분일까?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맹목적인 호감은 너무 많은 연탄과 너무 더운 날씨에 웃음을 잃지 않게 해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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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월드비전 가족 나눔 여행에 참여한 12가족은 4개조로 나뉘어 각각 4~5 가정에 300장 씩의 연탄을 배달했다.

2018 월드비전 가족 나눔 여행에 참여한 12가족은 4개조로 나뉘어 각각 4~5 가정에 300장 씩의 연탄을 배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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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덤으로 삽니다.

태백에 집결한 우리 가족들은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곧장 4조로 나뉘어 연탄 배달을 시작했습니다. 힘든 위치에 서로 서겠다고 하여 잠시 흐뭇한 실랑이 끝, 대열이 정비되고 드디어 착착착 연탄이 날라집니다. 연탄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연탄을 기울어짐 없이 쌓는 일은 제법 섬세한 기술이 필요했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쉬지 않습니다. 어느 새 말끔했던 얼굴들이 검은 연탄가루와 땀을 얼룩져오고… 신발도 옷도 검은 가루로 뒤덮힙니다. 아, 그런데 이상하죠? 시간일 갈 수록 초췌해지는 얼굴들이 왜 이렇게 멋진 겁니까!!

여기서 잠깐,

Q. 한 여름에 연탄을 왜 배달하죠?
A. 우리가 봉사를 한 태백 산골 지역은 저녁에는 기온이 크게 내려간다고 해요. 또 습기도 많아 한번씩 연탄을 피우지 않으면 곰팡이 등이 쉽게 생겨 생활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연탄은 1년 내내 필요한 필수품이지요

Q. 연탄을 배달해 주시는 곳도 있지 않나요? 이거 너무 보여주기 식 봉사 아닙니까?
A. 물론 연탄 배달 해 주시죠. 하지만 월드비전 가족들이 찾아간 곳은 지대가 높고 외진 곳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런 지역은 배달료를 더 얹어 준다 해도 집까지 연탄을 날라주지 않는다고 해요. 하는 수 없이 몸이 안 좋으신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조금씩 연탄을 나르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런 곳에 월드비전 가족 봉사단이 투입되어 연탄 걱정을 덜어드린 거죠!

가뜩이나 허리가 안 좋으신 데 최근, 다리까지 다쳐 거동이 많이 불편한 이자은(가명) 할머니는 연탄광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연탄과 일렬로 늘어서 쉴 새 없이 연탄을 전달하는 월드비전 가족들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후원자 한 분이 한 손으로는 연탄을 넘기며 할머니께 인사를 건넵니다.

“다리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  밤에 뜨끈뜨끈하게 주무세요.”

말이 없던 할머니는 그제야 인사를 전합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었나 봅니다.

“나도 연탄 배달해서 아이들 키웠습니다. 이게 참 힘든 일인데.. 내가 시원한 거 하나 못 사주고 미안해서 어쩝니까. 내가 이렇게 덤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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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웃돈을 줘도 배달이 오지 않는다는 바로 그 집! 장태호(가명) 할아버지 집은 꼬불꼬불 언덕의 끝하고도 끝에 있었답니다. 할아버지 집 배달 담당이었던 1조는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았더랬죠. 배달 마지막 집이라 지칠 대로 지친 상황. 다들 거친 숨이 턱을 넘어설 때, 검은 구름을 걷어내는 빛의 군사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배달을 마친 다른 지역 가족들이 1조 소식을 듣고 모두 이 곳을 집결한 거예요. 대열을 다시 정비하고 우리 가족은 마지막 힘을 모아봅니다. 배달 도중 벌에 쏘여 병원에 다녀와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려던 후원자님도 말릴 겨를도 없이 이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다시 연탄 행진이 시작되고 한 시간이 안되어 저 멀리 누군가 소리칩니다.

라스트!!!”

이어지는 뿌듯한 함성이 어둑어둑 해진 태백 하늘에 닿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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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기사조차 오지 않는 장태호(가명) 할아버지 집에 연탄을 나르는 모습

배달기사조차 오지 않는 장태호(가명) 할아버지 집에 연탄을 나르는 모습

장태호(가명) 할아버지는 가족 봉사단원이 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챙기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장태호(가명) 할아버지는 가족 봉사단원이 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챙기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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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지막 날엔 잔디를 깔아요.

1박 2일 짧은 일정의 ‘우리 가족 나눔 여행’ 마지막 날. 태백 지역 아이들의 방과 후 공부를 책임지는 월드비전 태백 꽃때말 공부방 마당에 잔디 깔기가 우리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죠. 마당도 넓지 않은 터라 후다닥 끝날 것 같은 잔디 깔기는 인내를 깨나 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땅을 고르고, 뭉쳐진 잔디 모종을 여러 개로 나누고, 흙에 잘 흩어 깔고, 흙을 다시 덮고, 물을 뿌리는 작업까지 ‘잔디’ 깔기란 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었지요. 이제 그 어떤 잔디밭도 띄엄띄엄 보지 못할 듯합니다. 이 잔디가 파릇파릇 싹이 올라와 마당을 예쁘게 덮을 때면 꽃때말 공부방 직원들과 아이들이 우리 가족들을 한번쯤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한 여름 땡볕 아래 허리를 잔뜩 숙이고 앉아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들과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던 웃음 소리를 떠올리며 싱긋 한번 미소 짓는 다면 그걸로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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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때말 공부방 마당이 잔디를 까는 모습.

꽃때말 공부방 마당이 잔디를 까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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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이야기

“집에서는 부족한 거 많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고, 일을 하더라고요. 대견했어요.” (홍재원 후원자 가족)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가족애를 느꼈어요. 우리 가족을 넘은 여기 월드비전 가족에 대한 사랑이요. 우리 모두 땀을 엄청 흘렸는데, 봉사하며 흘린 땀냄새는 불쾌하지가 않더라고요. 함께여서 좋았습니다. 혼자서는 못할 일이었어요.” (유현동 후원자 가족)

“벌써 4번째 봉사인데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하하! 그만큼 기억에 남겠죠? 열심히 일하는 월드비전 직원 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 특히 어린 친구들이 너무 대견해요. 얼마나 열심히 하는 지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도전도 많이 받았어요.” (김동준 후원자 가족)

“각박한 세상이라고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서 만나 만난 가족들이 서로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현주 후원자 가족)

“직장 다니는 아이들의 여름 휴가 일정을 맞춰서 왔는데, 가족이 더욱 친밀해지는 기회였어요. 다른 가족, 월드비전 스텝과 함께 해서 더 기억에 남고 더 가치 있었습니다. 장태호(가명) 할아버지 집에 지원군이 속속 도착할 때 그 기쁨을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최성재 후원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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