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가 지킬 거예요”

태권도복을 차려 입은 유라가
다부진 목소리로 의젓하게 말합니다.

유라네 가족은 2년 전,
아빠의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치듯 살던 집을 떠나왔습니다.
아빠는 술에 취한 날이면,
엄마의 뺨을 때렸고,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문을
거세게 두드렸습니다.

아빠를 떠난 지금
네 식구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지만, 생계는 여전히 막막합니다.

필리핀에서 온 엄마,
결혼 후 매일 같이 가정폭력에 시달려

필리핀 태생인 유라 엄마(40)는 가난한 시골집의 10남매 중 둘째였습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쪼그려 앉아 일했던 탓에 갈비뼈가 어긋나 아직도 시린 날이 많습니다.

10여년 넘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마가 선택한 것은 국제결혼이었습니다.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선택한 한국 땅. 본인보다 15살이나 많은 남편과 결혼해야 했지만 그래도 더 나은 생활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태권도 자세를 취하고 있는 유라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남편은 술에 취한 날이 많아 농사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남편을 대신해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디 다녀왔는지’, ‘누구랑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추궁했습니다. 술은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질문은 ‘어떤 놈이랑 있었냐’로 바뀌었고,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면 소리를 질렀습니다.조금만 늦으면 무참히 때렸습니다. 벌어 온 돈은 족족 도박과 술에 쓰기 일쑤였고, 폭력 때문에 인근 경찰서의 ‘단골’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치원생이던 막내아들의 꿈이 경찰관이었어요.
아빠처럼 나쁜 사람들 다 혼내준다고요.
유라엄마

그때마다 엄마는 남편의 폭력을 스스로 막아내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떠나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아빠를 일찍 여읜 자신의 삶을 아이들이 대물려 받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아빠의 손은 유라나 언니, 동생에게 향하기도 했습니다. 아빠를 피해 방문을 잠그는 일은 일상이 되었고, 밖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조금 다른 유라의 생김새를 두고 놀렸습니다. 주눅 든 어깨는 학교에서도 좀처럼 펴지 못했습니다.

살던 곳을 한번도 떠나지 못했던 유라네 였기에 마땅히 벗어날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퇴근이 늦어진 사이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해 돌아온 아빠가 유라와 동생에게 ‘같이 죽자’며 흉기로 위협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엄마는 남편을 떠나지 않겠노라 스스로 했던 다짐을 포기하고, 그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대신 아이들과 더 행복하게 살기로, 악착같이 살아남기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태권도를 하고 있는 유라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태권도 다니면서 활발해진 유라
“이제 자신감도 많이 생겼어요!”

유라에게 태권도는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태권도를 접한 유라는 어려운 형편인 걸 알면서도 욕심을 냈습니다. 엄마는 그런 유라의 결정에 선뜻 응해줬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은 하고 싶은 거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의 지지 덕인지 유라는 재능을 꽃피웠습니다. 1년이나 걸리는 단증 심사도 5개월만에 땄습니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유라는 겨루기 대신 품새(태권도 연속 동작 기술)를 선택했습니다. 어려운 동작도 하루하루 연습한 뒤에 달라지는 모습은 유라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습니다.

유라가 받은 상장과 메달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유라는 시와 협회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상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유라는 스스로 본인은 늘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품새 중에 손 날을 딱 펴는 동작이 있어요. 처음엔 어려웠거든요.
근데 며칠씩 하다 보니 어느 날 딱 되는 거예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잘한다고 생각하면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 같아요.
힘들어도 앉아 있지 않으려고 해요.
@ 유라

유라는 태권도장이 쉬는 날인 일요일만 제외하고 늘 연습하고 있습니다. 태권도에서 재능을 보이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아빠를 떠난 네 식구 행복하지만, 생계는 여전히 막막

유라는 아빠에게서의 독립, 태권도란 안식처를 통해 달라졌지만, 엄마는 아직 아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혼을 해준다던 남편은 이혼 조건으로 거액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유라네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공장을 다니며 버는 돈은 네 식구가 쓰기엔 모자랍니다. 이혼이 되지 않아 시에서 지원하는 ‘한부모 가정’ 지원금도 받을 수 없고, 차상위계층이지만 별도로 받는 지원금은 없는 실정입니다. 엄마는 병원은 고사하고 먹는 음식도 줄여가며 생활을 꾸리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을 아는 듯 유라 언니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에 나설 예정이지만, 엄마는 딸의 미래를 망치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얼마 전 엄마와 아이들은 함께 바다에 다녀왔습니다. 네 식구의 첫 여행이었습니다. 이들이 아빠로부터 도망쳐 온 집의 한켠엔 네 식구가 한복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엄마는 대화 내내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그 사진을 보면서는 밝게 웃었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라가 꿈을 잃지 않도록
우리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 후원금은 유라가 꿈을 잃지 않도록 교육비와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 이번 모금은 한겨레신문과 함께하는 나눔꽃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