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평 남짓한 지형이의 방에 들어서니 직접 그린 그림들이 방 안 가득 붙어 있습니다.
만화부터 일러스트, 유화 등 지형이의 넓은 미술 세계가 엿보입니다.

둘러보면 ‘PIUDA'(피우다)라는 글씨가 그림 이곳 저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PIUDA는 지형이의 ‘서명’입니다.

제 자아같은 거에요.
꽃을 피우듯이 사람도, 꿈도 피우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웹툰작가를 꿈꾸는 지형이는 오늘도 미술학원이 아닌 작은 방 한 켠에서 희망이라는 그림을 그려냅니다.

‘웹툰작가’ 꿈을 키워가고 있는 지형이와 엄마 –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지형이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습니다. 초등학생 때 지점토가 있으면 네댓 시간씩 앉아 그리스 석고상 같은 인체 모형을 만들고, 인체 도감을 보고 슥슥 석고상을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또, 유화를 독학으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그림을 그리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지난해,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미술학원에 처음 다니게 되었습니다.

혼자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달리
학원에 다닐 땐 어떻게 그릴지
또 무엇을 그릴지 막힐 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어요
– 지형 –

학원에서는 지형이가 갖고 있지 않은 ‘태블릿’을 이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지형의 습작 그림과 고양이 –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갑자기 찾아온 엄마의 난치병

엄마와 형, 지형이까지 세 식구 살림은 넉넉하지는 않아도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습니다. 10여 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는 양육비를 보내오기는 커녕 연락도 잘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식당, 건물 청소, 요양보호사까지 닥치는 대로 일 하며 형제를 열심히 키웠습니다.

그러던 3년 전 어느 날, 지형이의 엄마에게 난치병이 찾아왔습니다. 엄마는 갑자기 젓가락을 쥐기 힘들 정도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 그런 일이라고 넘어갔지만, 채용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의사는 직접 엄마에게 전화해 “큰 병원에 꼭 가보시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까닭도 모른 채 인근 종합병원을 찾은 엄마. 의사 선생님은 혈소판이 이렇게 적은 사람은 처음봤다며 엄마의 상태를 보고 매우 걱정하셨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피, 골수 등 다양한 검사를 했지만,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혈소판 감소증이 있으면,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보다 피로를 쉽게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2∼3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수혈을 받고 있습니다.

골수이식을 하면 많이 나아질 거라고 했는데,
수술비만 수천만원인데다,
돈이 있더라도 (골수) 공여자가 많지 않아
포기하려 해요.
– 지형이 엄마 –

지형의 습작 그림들 –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엄마의 악화된 건강으로 지형이네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엄마의 난치성희귀질환으로 받는 정부보조금 80만원을 포함해 100만원 가량이 지형이네 세 식구의 총 수입 입니다. 엄마의 치료비와 월 25만원의 공공임대주택 월세, 지형이의 교육비, 생활비까지 역부족입니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지형이는 미술을 배우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외부 지원이 없으면, 학원에 다니기도 어렵고 태블릿과 같은 미술 장비나 재료를 구입하는 건 ‘사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은 지난해 지형이의 재능을 위해 더 큰 학원으로 다닐 것을 권유했으나, 엄마는 당장 학원비부터 걱정입니다.

지형이의 그림 연습 노트 –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엄마에게는 늘 씩씩한 지형이

지형이는 투정 대신 씩씩한 모습입니다. 학원에 다니는 것도, 갖고 싶은 태블릿 PC도 모두 다 “괜찮다”고만 합니다.

지형이는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지형이는 엄마에게 “내가 너무 민폐인 것 같아. 엄마가 나 때문에 고생해서 너무 미안해”라고 말하는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지형이는 요즘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으려 합니다. 안 좋은 생각에 매몰돼 있기보다는 앞으로 엄마 건강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해야겠다며 의젓하게 성장한 모습이었습니다.

“작가 되면 자신과 같은 어려운 후배들 ‘피워내’고 싶어”

그림은 지형이가 마음을 다해 온전히 집중하는 대상이자 탈출구입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에는
마음의 공허함이 있어도 에너지를 쏟을 곳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걸 너무 하고 싶다'는 게 생겨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고민하면서 하루종일 에너지를 쏟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지형이 – Photo by 한겨레 강창광 기자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을 상상력 안에서 그림으로 마음껏 해볼 수 있는게 그림의 재미라는 지형이. 그런 지형이가 최근 쓰고 있는 웹툰의 시나리오는 ‘상처받은 남자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웹툰의 주인공처럼 시련을 이겨낼 지형이의 꿈은 또다른 자아 ‘피우다’라는 이름으로 미술 작가가 되어 미술 스튜디오를 여는 것입니다.

“스튜디오에서 ‘피우다’라는 이름처럼 저처럼 환경이 어려운 후배들, 작가들을 피워내고 싶다”고 말하는 지형이의 꿈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일시 후원금은 지형이가 꿈을 잃지 않도록 미술학원비, 입시비용, 미술용품 구입비,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 이번 모금은 한겨레신문과 함께하는 나눔꽃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