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바람이 부는 남쪽 마을

필리핀 수도 마닐라 남쪽, 바탕가스 지역에 위치한 산 이시드로 마을. 이 마을 주민 절반이 하루 2달러(약 2300원)이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하루 벌이가 버거운 마을에서는 아이들도 부모와 함께 일을 하며 식구들의 먹거리를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낡고 열악한 시설에 쓰러져가는 건물 안에서 책을 읽는다. 5개의 교실이 있었던 콤프라디아 초등학교 건물은 필리핀 교육부가 정한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해 철거해야 할 지경이었다.

장순기 씨와 채정자 씨의 후원으로 월드비전이 1억 8000여만 원을 들여 새로 지은 학교에는 교실 3개와 가사실습실이 생겼다. 컴퓨터와 복사기, 실습기구 등 교육 기자재들과 교탁, 칠판 등 학교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부부의 후원금으로 새로 들였다.

낡고 위험했던 학교가 장순기•채정자 후원자의 나눔으로 싸악~ 바뀌었다. 쾌적한 환경에서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장순기 후원자.

낡고 위험했던 학교가 장순기•채정자 후원자의 나눔으로 싸악~ 바뀌었다. 쾌적한 환경에서 신이 난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장순기 후원자.

 

공부에 한 맺힌 그때 그 시절

부부는 지난 해 11월 딸, 손주들과 학교를 직접 찾았다. 채정자 씨는 아이들이 수업받고 있는   학교를 보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한국전쟁을 겪었던 그 시절은 우리도 먹고살기 힘들었어요. 전쟁이 나면서 있던 학교도 불타버려 나무 밑 그늘에서 공부했던 것이 나의 학창시절 마지막이었어요.”

쉰 다섯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정자 씨는 “공부에 한이 맺혔다”고도 했다. “고등학교 합격하고 너무나 감사했어요. 목포로 수학여행도 다녀왔답니다. 지금도 항상 책을 읽어요.”

배운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생을 통해 알게 된 그에게 콤프라디아 초등학교는 그래서 커다란 행복이다.

부부의 후원으로 새로 지은 콤프라디아 초등학교

부부의 후원으로 새로 지은 콤프라디아 초등학교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남편, 그러나.

한 동네에서 알고 지내다 좋은 감정으로 연애까지 이어진 두 사람은 스물둘과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결혼을 했다. 큰 아들이 돌이 될 무렵 남편은 군대를 갔다. 홀로 시집살이를 하며 남편이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아내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왔다. 장순기 씨가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어쩌면 살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대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만 세 살이 갓 넘은 아들을 안고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은 수년을 병원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하반신을 쓰지 못했다. 그 후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오래 된 결혼 사진, 잔뜩 긴장한 앳된 두 사람이 보인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시련도 둘의 사랑을 넘어서지 못했다.

오래 된 결혼 사진, 잔뜩 긴장한 앳된 두 사람이 보인다.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시련도 둘의 사랑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꾸려온 삶을
이제 더 사랑하고 더 베푸는 삶으로

멀쩡했던 다리를 한 순간에 쓰지 못하게 된 장순기씨는 사고 이후 “살고 싶지 않은 나날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사업을 꾸렸고 노력했으며 성공을 해냈다.

“이렇게 누군가 도우며 사는 방법이 있었으면 더 벌었을걸 하는 생각도 하죠(웃음). 사람은 백년도 살지 못해요. 죽을 때 입는 수의에는 호주머니도 없죠. 짊어지고 가지도 못할 것이 돈이에요.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면 그곳에 써야죠. 숨이 넘어갈 때 ‘왜 더 베풀지 못했나, 사랑하지 못했나.’후회한다고 합니다. 아까워서 못하는 이들도 많죠. 하지만 가버리면 그만인데, 후회할 일이에요.”

“죽을 줄만 알았던 남편이 지금도 살아있어요.” 아내는 힘든 시간을 이겨낸 남편이 자랑스럽다. 남편도 50여년을 든든하게 곁을 지켜 준 아내가 고맙다.

“죽을 줄만 알았던 남편이 지금도 살아있어요.” 아내는 힘든 시간을 이겨낸 남편이 자랑스럽다. 남편도 50여년을 든든하게 곁을 지켜 준 아내가 고맙다.

 

부부는 아프리카 잠비아 충고 지역의 식수위생사업에도 1억 6000여만 원을 후원했다. 수도 루사카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가야 도착하는 충고 지역에는 매일 물동이를 머리에 지고 먼 거리를 걸어서 마실 물을 길어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길어온 물도 수질이 좋지 않아 말라리아와 설사병, 피부병과 같은 수인성 질병에 걸리기 일쑤다.

월드비전은 노부부의 후원금으로 마을까지 물을 끌어오거나 식수탱크에 저장할 수 있는 5개의 시설을 완성했다. 마을 내 루야바 초등학교를 다니는 703명의 아이들과 4개 마을 주민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옆 사람이 넘어져 있으면 일으켜서 같이 가야죠.” 손잡고 함께 가는 장순기•채정자 후원자와 아이들.

“옆 사람이 넘어져 있으면 일으켜서 같이 가야죠.” 손잡고 함께 가는 장순기•채정자 후원자와 아이들.

“우리나라도 어려운 시절 외국에서 도움을 받았고 우리가 다시 도울 수 있다면 감사하다”는 부인 채정자 씨 말에 장순기 씨가 맞장구친다. “옆 사람이 넘어져 있으면 일으켜서 같이 가야지 혼자 잘산다고 정말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야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신이 복을 주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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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보미 경향신문 기자
사진.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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