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아들’
‘못 배운 놈’
‘시한폭탄 문제아’
서글한 눈매를 가진 스무살 청년 사이먼에게 붙은 꼬리표다. 그가 소년병에게서 태어난 ‘소년병 2세’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밤 납치 당한 엄마는 소년병이 되었어요.
그리고 반군의 전장에서 제가 태어났습니다.”
1992년, 우간다 굴루의 반란군이 전쟁과 성착취를 위해 아이들 7만 여 명을 납치 했다. 사이먼의엄마 제니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1살에 납치된 그녀는 성노동에 동원되었으며,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아이가 보아서는 안 될 장면, 듣지 않아야 할 소리, 겪지 말아야 할 일로 가득 했던 징집 생활. 떠올리고 싶지 않은 3년이 흐르고, 그녀의 나의 14살에 아들 사이먼이 태어났다.
“총소리,
비명소리,
불규칙한 내 심장소리”
사이먼에게 어린시절을 묻자 이것들을 나열 했다. 더이상 소년병의 삶을 견딜 수 없던 엄마는 5살 된 사이먼을 데리고 목숨 건 탈출길에 나섰다.
멈추면 죽는다는 공포에 밤낮 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월드비전 소년병 재활센터였다.
사이먼은 그 때 처음 ‘행복’이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처음으로 그림도 그렸고, 노래도 불렀어요.
상담시간에 엄마가 웃는 걸 봤어요.
정말, 정말 행복 했어요.”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이먼의 얼굴에 처음으로 밝은 기운이 돌았다.
재활센터에서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직업 훈련을 받은 모자는 징집 생활 12년만에 고향에서의 홀로서기를 시작 했다.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년병을 ‘반군의 아들’, ‘배신자’, ‘무서운 사람’이라며 배척 했다. 하지만 사이먼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납치를 당하지 않았다면
엄마도 저도 여느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웃고, 떠드는
평범한 소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그들과 같은 어린이였고,
또 지금은 똑같이 존엄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주홍글씨에 기죽지 않고,
그들의 편견이 틀렸음을 묵묵히 증명해낼게요!”
자신의 당당한 다짐을 입증하듯, 기술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있는 멋진 청년, 사이먼.
학비가 모자라 1년 간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정비하며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는 사이먼. 포기하지 않고 학업을 이어온 덕에, 다음 달이면 사이먼은 엔지니어 자격증을 가진 ‘스펙 좋은’ 남자가 될 예정이라고(웃음).
‘지잉- 지잉-‘
그날도 사이먼은 실습실에 홀로 남아 묵묵히 용접봉을 잡고, 기름때 묻은 부품을 수리 했다. 그의 야문 손끝을 보는 내 마음에 진한 확신이 차올랐다.
그는 분명 수많은 소년병의 흉터를 용접하고, 때묻은 편견을 수리하는, 그런 멋진 엔지니어가 될 거라고.
글. 배고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