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도, 당신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 아동후원,
2분의 월드비전 후원자가 아동과 함께한 추억을 꺼냈습니다무려 15년 넘은 추억을요.

서로 힘들 때 만나 함께 성장했어요“(O희 후원자)

1993년 고등학생 때 한국선명회(월드비전 전신) 후원했다 대학 때 쉬었어요. 이후 IMF로 집안이 어려울 때 힘들게 취직했는데요. 1년 넘게 다니면 후원 하겠다 기도했습니다. 당시 많이들 해고됐지만 전 감사하게 계속 일할 수 있었어요.  전북 정읍의 ‘안나’후원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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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가 보낸 생일카드를 받고 읽고 있는 알바니아 아동 록샤 (사진 : 월드비전, 사진 속 아동은 원고와는 무관합니다)

초등학생 때 미소년 같던 안나는 금세 어엿한 숙녀로 변했어요. 안나는 현실에 맞게 꿈도 바꿨지만 반듯이 성장했죠. 부족해도 밝고 명랑했어요. 당시 저도 힘든 시기였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안나의 생일, 성탄절, 마지막 졸업선물 고민하던 추억이 생생해요.  어른이 될 때까지 후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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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연탄나눔 봉사활동 중인 후원자님 (사진 : 후원자 제공)

해외아동 후원은 2008년, 직장 생활에 지쳤을 때 시작했어요. TV프로를 보고 몽골 아동과 인연 맺었어요. 가나의 모시(Mosi)도 만났는데요. 사랑의 동전밭 행사장에서 봉사 활동할 때였어요. 나부터 후원하자는 마음에 신청했어요. 그렇게 15년을 함께했네요.  아동후원을 계속하며 다방면으로 성장한 20~30대를 보냈습니다. 각종 체험과 봉사활동으로 월드비전과 더 가까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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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월드비전은 해외아동돕기 캠페인 ‘훼민24(현 기아체험24)’를 시작했어요(사진 : 후원자 제공)

가장 좋은 추억은 안나를 만난 거예요. 서로 힘들 때 만나 함께 이겨내며 성장했어요.  다른 아동이 사춘기라 도움을 거절한 일은 정말 아쉬웠어요. 이사 가서 연락 끊긴 몽골 아동도 있었습니다.  그 아동은 초등학생에서 멋진 청소년이 돼 뿌듯했는데요. 성년을 1년 앞두고 중단돼 마음 아팠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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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어엿한 숙녀가 됐다는 편지(사진 : 후원자 제공)

후원은 오른손의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몰래 시작했는데요. 주위에서 너도 힘든데 누굴 돕느냐고 했어요. 국내도 힘든데 왜 남의 나라를 돕느냐고요. 하지만 후원아동 덕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고요. 제 변화된 삶을 보며 주변 사람들도 인정했어요. 그분들도 동참하기 시작했고 나눔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돌아보니 저도 후원아동도 큰 힘을 얻었어요. 많은 분들이 동참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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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후원, 행복의 시작, 당신과 아이 모두(사진 : 월드비전)

제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어 서둘러 시작했어요“(O현 후원자)

아동후원을 모를 땐 돈을 쉽게 썼어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죠. 아침에 깨면 기억에 없던 영수증들이 곳곳에서 나왔어요. 신나게 놀아도 혼자 있으면 공허했죠. 삶에 즐거움이 없던 차에 TV광고를 봤어요. 후원하면 저 아이들이 행복해질까? 서둘러 후원을 시작했어요. 아마 제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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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주고 받는 편지가 저도, 아이도 변화시켰어요(사진 : 월드비전)

사실 저는 남에게 관대했지만 제 자신은 사랑하지 않았는데요. 당시 너무 힘들어 미래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후원아동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달라졌어요. 종종 편지로 조언했던 말들을 제게도 해봤어요. 자신감 넘치는 긍정적 모습으로 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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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편지 답장으로 저를 칭찬하는 거예요(사진 : 월드비전, 본 원고와 무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답장으로 저를 칭찬하는 거예요. 칭찬이 아이들만 변화시키는 게 아닌가 봐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답니다. 지구 반대편 아이가 저를 위해 기도한대요. 편지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할 십년 후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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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후원아동 오미트가 김O현 후원자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사진 : 후원자 제공)

정이 많이 들었죠. 도움 받는 아이가 아닌 아들, 딸, 동생, 조카라 느꼈죠. 항상 곁에 있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사업이 종결돼 오미트(아동)와 헤어졌어요. 아이가 더 이상 편지를 못 받는다며 울었다는 답장이 왔어요. 계속 후원할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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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읽는 아동(사진 : 월드비전, 본 원고와는 무관합니다)

새로 만난 아엠과 보운미와는 갑작스런 라오스 정부 방침 변경으로 헤어졌어요. 마을에 찾아가 만나기까지 했는데요. 준비도 안된 갑작스런 헤어짐에 슬펐어요. 그럼에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은 너무 많아요. 다시 지난 달 알바니아 소녀, 우간다 소년을 만났습니다.

“어린이는 사랑받아야 해요” 김O현 후원자(사진 : 후원자 제공)

흔히 여유가 있어야 돕는다잖아요. 오히려 그게 부담만 주고 후원을 막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어린이는 사랑받아야 해요.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이라도 아이에게 전하고 싶어요. 힘든 시절이었더라도 기억나는 행복한 순간이 한둘은 있잖아요. 그게 저였으면 했어요.

후원자님과 아이의 추억들

제가 먼저 행복했던 것 같아요. 보스니아 11살 소년 엘메딘은 저를 만난 2014년이 인생 최고의 해라고 했어요. 편지도 잊지 못한대요. 필리핀 아동 리얼린도 그랬어요. 베트남 아이 비츠항은 학교서 ‘좋은 어린이상’을 받을 때 먼저 저를 떠올렸대요.  얼마 전 강원도 장애인복지관 허깅데이에서는 후원아동과 만났어요. 고2인 아이는 매년 기대된대요. 이런 추억들이 보물입니다. 엄마와 라오스에서 아엠과 보운미를 만난 것도 가장 큰 추억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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