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새벽부터 차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한국을 뒤로하고 삼대가 모여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후원자 가족을 만났다.
가족에게 스며든
아버지의 철학
이른 아침 공항. 설렌 표정의 가족을 만났다. 월드비전 필리핀 바탕가스 사업장 방문을 앞둔 가족은 이번이 두 번째 걸음이다. 처음 방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호를 딴 ㈜송강의 이름으로 후원한 나시 초등학교 건축 완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생전에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가족들은 필리핀에 학교를 선물했고 벌써 일년이 지났다.
배려와 사랑이 담긴
세심한 선물
첫 번째 방문 후 가족들은 나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매형이 사진을 잘 찍으시는 데다 영정사진 봉사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으셔서 우리 가족이 직접 아이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아이들이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직접 다양한 포즈를 연출하여 사진을 찍고 프린트해 코팅까지 해서 ‘졸업 사진 샘플 포즈’를 여러 장 준비했다. 졸업선물로 마련한 볼펜도 일일이 써보며 불량을 확인한 뒤에야 하나하나 포장했다. 정성스러운 준비 과정 하나하나에 아이들을 향한 가족의 배려와 사랑이 가득 담겼다.
후원으로 더 돈독해진
가족 사랑
필리핀 도착해 아이들에게 졸업사진을 넣어 선물할 액자를 사기 위해 한 상가에 들어갔다. 액자 하나를 정하는 데도 가족들은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신중을 기했다. 이후로도 가족들은 자주 가족회의를 했다.
“후원을 시작하고 가족들이 더 자주 만나요. 나시초등학교 다녀온 얘기도 많이 하구요. 후원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끼리 사랑도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즐거운
졸업사진 촬영
드디어 졸업 사진 촬영 날.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비는 학교에 도착해서도 계속 내렸고, 아이들은 수업 중이었다.
가족들은 궂은 날씨지만 당황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니며 사진 찍을 곳을 찾았다. 교실 외에는 마땅한 실내 공간이 없는 학교라 사진 찍을 만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 기적이 일어났다.
까만 구름이 걷히더니 반짝, 해가 나왔다. 조용하던 가족의 얼굴도 활짝 피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넓은 풀밭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이들은 촬영이 준비된 풀밭 위로 줄을 맞춰 이동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가족들은 일사천리로 각자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가족회의의 힘인가!
참, 흐뭇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반별 단체사진과 졸업생 단체사진까지 2시간에 걸친 긴 촬영을 끝내고 소감을 물었다.
“너무 즐겁고 기쁘네요. 아이들이 수줍어하며 카메라 앞에서 선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사위)
“아이들이 볼펜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는 한 마디가 감동이었어요.”(손자)
“이렇게 가족들이 하나되어 의미 있는 일을 시작했는데, 남편이 먼저 하늘로 가서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이 학교에 남편도 함께 왔다고 믿어요.”(할머니)
촬영 – 사위
땀을 뻘뻘 흘렀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포즈 지도 – 딸
촬영하는 동안 꼼꼼하게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시는 모습
포즈 도우미 – 아들
아이들이 포즈를 잘 취할 수 있도록 함께 포즈를 취해 주는 모습이 정겹다.
졸업선물 증정 – 며느리와 손자
옆에서 대기하던 며느리와 손자는 촬영을 마친 아이들에게 일일이 검수하고 포장한 볼펜을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었다.
총감독 – 할머니
이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모습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후원은
나시 초등학교를 계속 후원하겠다고 약속하는 가족. 이들이 갖고 있는 후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후원은 상대방의 질서와 삶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졸업사진 촬영이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진행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후원은 돕는 사람과 도움 받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생기는 돈이 모두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후원하기 어렵죠. 나에게 잠시 머무르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후원이 가능하더라고요.”
“후원자와 후원이 필요한 곳을 이어주는 다리인 월드비전이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월드비전 운영이 어려우면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만들어 가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가능하다면 월드비전의 운영비를 기부할 고민도 하고 있어요.”
후원에 대한 고민과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렇게 멋진 후원자들이 함께하는 월드비전 직원으로서 오래오래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의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언젠가 나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나눔을 전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 이루어 지는 날, 뜨거웠던 필리핀의 졸업 사진 촬영과 틈만 나면 가족회의를 하던 후원자 가족이 생각날 것 같다.배려 깊고, 사랑 많고, 온유하며, 강직하던 분들을 떠올릴 그 날이 벌써 기대된다.” |
글, 사진: 이경진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