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셋 고봉서 후원자가 아프리카 케냐 소녀의 손을 꼭 잡고, 10년 전 세상을 떠난 딸의 묘비 앞에 섰습니다.
“하쿠나 라비디 다마이스 하쿠 다잉마 다쿠나-”
“친구는 떠났지만, 신께서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시길 바라요”라는 노랫말을 가진 잔잔한 아프리카 가락이 묘역에 울려 퍼집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내 딸
꼭 10년 전인 2007년 봄 날. 고봉서 후원자의 사랑하는 딸 화숙 씨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 50주년 잔치를 해주고 나서였습니다.
아이들이 좋다며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딸에게 후원하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안 건, 딸이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과 편지를 발견한 고봉서 씨는 언젠가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는데
아프리카 애기 한 명 도와주면 안될까?”
케냐에 사는 7살 수잔. 화숙 씨는 눈이 똘망한 이 아이의 후원자였습니다.
“딸 이름으로 돕던 수잔을, 제가 이어서 후원할 수 있을까요?”
월드비전에 전화를 건 그날부터 77세 고봉서 씨는 월드비전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보고 싶어 힘들지 않게, 내 흔적을 세상에 남기지 말라”던 딸이 남긴, 어쩌면 유일한 흔적,수잔. 유언에 따라 딸의 흔적을 지워낸 고봉서 후원자의 집엔, 수잔이 보내오는 사진과 편지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10,000km를 날아
그렇게 사진과 편지로 이어진 할아버지 후원자와 수잔이 10년 만에 두 손을 붙잡았습니다. 수잔이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난생 처음 집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1만 km 거리의 한국을 찾은 것.
수잔에게 가장 예쁜 꽃을 선물하고 싶어, 손수 꽃다발을 고르고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물병에 꽂아 놓으셨다는 자상한 할아버지.
옥수수 앞에서 사진을 찍은 수잔의 모습을 기억해 손수 찐 옥수수 간식도 준비 했습니다.
고봉서 후원자는 혹시라도 통장에 돈이 없을까, 수잔을 위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한 번도 후원금을 거른 적이 없고, 매년 염소나 닭도 선물 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닭을 키워 염소를 사고, 염소를 키워 밭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어요. 엄마가 혼자 4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신데,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할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듯, 7살에 만난 작은 아이는 어느새 꿈을 약속하는 야무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우리 딸만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쓸쓸한 이 노인네의 마음을,
우리 수잔이 위로해주네요.
해준 것도 없는데∙∙”
별 일도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참 부끄럽다며,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전해주시던 이런 저런 이야기.
딸이 남긴 손녀이기에, 힘이 닿는데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
떠나는 수잔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힘차게 손을 흔들던, 여느 할아버지의 인사.
이것이 83세 할아버지 후원자, 고봉서의 ‘10년 후원 이야기’입니다.
글. 배고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배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