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로드 몽골월드비전 아르항가이 종결 사업장 후원자 방문

이별을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이 있다. 무슨 의미를 담든지 이별에는 슬픔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이별하러 가는 사람들치고 표정이 참 밝다. 어떤 이별을 맞는 이들이기에 이토록 즐거워할까?

월드비전이 2005년부터 한국의 후원자와 함께 도움의 손길과 사랑을 전하며 변화의 씨앗을 뿌린 몽골 아르항가이.  2018년 그 씨앗이 꽉 찬 열매를 맺어 이제 아르항가이는 월드비전과 후원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이 되었다. 인천공항 한구석에서 이별마저 설레던 이들은 몽골 아르항가이 마을의 자립을 축하하고 후원아동을 직접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11명의 후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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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대단하다. 대단해!

아르항가이는 몽골 수도에서 차로 8시간 남짓 떨어진 곳이다. 털털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광활한 대지를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아르항가이. 후원자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곳은 호튼트 학교다.

월드비전이 아르항가이에서 사업을 시작하던 2005년,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었는데도 가지 못하고 있는 아동이 15%에 달했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하거나 유목 생활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 보니 꾸준한 교육은 아득히 먼 일처럼 보였다. 먹고살기도 벅찬 부모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고, 교사의 역량 및 학교 시설 등 교육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바닥인 상태였다.

그런데 13년 뒤 오늘, 후원자의 눈앞에 서 있는 학교는 너무나 번듯했다. 단정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교실, 외국인을 보고 들뜬 아이들을 능수능란하게 인도하는 교사, 기대 이상으로 위생적이어서 놀람을 더했던 화장실까지. 월드비전 아르항가이 사업장 매니저에게 옛날의 학교 사정과 후원으로 달라진 오늘의 학교 모습,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대해 설명을 듣는 후원자들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뿌듯함이 번진다. 아이들이 만든 손 씻기 캠페인 작품들을 둘러보던 김중현 후원자의 입에서 가슴속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야, 이거 대단하다. 대단해!” 그러곤 함께 온 부인에게 다시 말한다. “이거 좀 보라고. 이걸 다 애들이 한 거래요.”

(좌) 손 씻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학생들이 만든 캠페인 홍보 자료들 (우) 화재 예방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선배 학생과 열심히 듣고 있는 후배들

(좌) 손 씻기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학생들이 만든 캠페인 홍보 자료들 (우) 화재 예방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선배 학생과 열심히 듣고 있는 후배들

우리 아이들 건강은 걱정 없네요

“아르항가이는 한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가고, 한여름엔 영상 35도까지 올라가는 기후예요. 유목 생활을 많이 하니까 관절이나 기관지 등이 안 좋은 환자가 많아요. 또 가축을 돌보는 험한 일을 하다 보니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고요.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치료부터 지역 주민들이 고질적으로 앓는 병들의 치료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아동과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몸이 건강해야 생활도 즐거운 법이니까요.” 첸타이 바텐겔 보건소 의사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후원자 일행을 맞는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부모들이 집에서도 영양식을 만들어 먹일 수 있도록 다양한 요리 방법도 가르쳐준다는 바텐겔 보건소에는 아이 손님도 어른 손님도 많다. 허리가 아픈 환자가 이용하는 물리치료실에서는 전문 물리치료사가 조심조심 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다. 아기를 출산하는 분만실도 살짝 둘러볼 수 있었는데 청결한 벽과 바닥 그리고 촘촘한 수술 도구들까지 갖춰 혹시나 너무 낙후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던 후원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킨다.

“정말 전문적인 병원이네요. 보건소라기보다는 병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정말 인상적인 건 보건소 자체도 청결하지만 이용하는 주민과 아이들이 너무 깨끗한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만큼 위생 교육이 잘된 거잖아요. 아이고, 우리 애들 건강 걱정은 이제 없겠어요.” 박경화 후원자

(좌) 외관도 깨끗하지만 내부는 더욱 위생적인 호튼트 학교의 화장실. 화장실 관리는 학생과 선생님이 순서를 정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우) 아기 출산을 위한 분만실

(좌) 외관도 깨끗하지만 내부는 더욱 위생적인 호튼트 학교의 화장실. 화장실 관리는 학생과 선생님이 순서를 정해 자율적으로 진행한다. (우) 아기 출산을 위한 분만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아동에게 먹이는 영양식. 보건소에서는 부모들에게 영양식 조리 방법 및 섭취 방법 등을 교육한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아동에게 먹이는 영양식. 보건소에서는 부모들에게 영양식 조리 방법 및 섭취 방법 등을 교육한다.

생활 현장까지 깊숙이 들어가는 도움

2004년 월드비전은 아르항가이 지역을 촘촘히 조사했다. 당시 조사에서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빈곤 문제였다. 지역 내 38.3%에 달하는 가정이 월평균 5달러 남짓한 가계 소득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었다. 계속되는 한파와 가뭄은 주민들의 중요한 수입원이던 가축을 빼앗아 갔고 이로 인해 경제 상황은 곤두박질쳤다. 재난이나 위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줄 몰랐던 주민들의 무지는 큰 피해를 가져왔다. 월드비전은 한파와 가뭄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재난 위험 예방 및 경감 훈련을 진행했다. 55개 협동조직을 지원해 가정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올바른 가축 사육법, 텃밭 가꾸기, 수공예품 만들기 등 가정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교육도 진행하자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후원자들은 수제화조합, 양모공예조합에 들러 주민들의 섬세한 기술을 보며 박수를 보냈다. 질 좋은 가죽으로 튼튼하게 만든 장화를 보고 농사를 짓는 최상술 후원자가 구입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섬세한 손끝으로 빚어내는 양모공예품도 상품으로서 손색없었다. 주민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과 그 기술로 만든 제품을 자랑스러워했다. 그 당당한 모습이 어찌나 멋지든지. 과연 마을을 일으킨 주인공들이었다.

“월드비전이 아동 후원 사업이나 지역을 위한 사업을 한다는 정도만 알았는데 현장에 와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보니까 참 좋네요. 특히 생활 현장에 들어가서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예정아 후원자

수제화조합에서는 가죽을 다듬어 신발을 만들기까지 모든 공정이 주민들의 야무진 손끝으로 이루어진다.

수제화조합에서는 가죽을 다듬어 신발을 만들기까지 모든 공정이 주민들의 야무진 손끝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처음 만난 날

숱한 기다림과 두근거림 끝에 후원아동을 만나는 시간. 우리가 처음 만나는 오늘이 기약 없는 이별의 날이기도 하지만 아쉬움보다는 희망과 용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몇만 번을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사랑’이란 것을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며 깨우치는 듯하다. 이들의 마음을 ‘사랑’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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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술 후원자와 후원아동 우라나

최상술 후원자의 후원아동인 우라나는 수줍은 사춘기 소년. 가방에서 하나씩 나오는 선물들을 보고도 내내 소리 없이 미소만 짓고, 후원자가 친근하게 어깨를 둘러도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후원자가 떠나려고 차에 올라타는 찰나,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던 아이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흐른다. 우리를 태운 차가 움직이는 순간까지 창문을 통해 맞잡은 후원자의 손을 놓지 못하던 아이. 후원자는 그런 우라나와 멀어지며 소리쳤다.

“울지 마라, 우라나야. 우라나야 울지 마.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한다!”

김중현, 오영주 후원자와 후원아동 후세레르데네

“공부 많이 하라고 볼펜만 많이 가져왔어요. 하하하. 마을이 자립을 한다기에 그리해도 괜찮겠나 하는 마음이 괜 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병원도 학교도 참 잘 지었네요. 사람들도 활기차고.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 다행이에요. 마음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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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화, 김성수 후원자와 후원아동 노미네르데네

“너무너무 작은 아이였는데 이제 정말 어른이 다 되었네.” 박경화 후원자는 반가움에 왈칵 목이 메인다. 삶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여긴다는 부부에게 물었다.

“행복하세요?” “네, 지금 저희는 행복합니다.”

 한현경 후원자와 후원아동 델게르부얀

한현경 후원자가 제주도에서 측량기사로 일을 하며 후원하는 아동은 델게르부얀. 열한 살 델게르부얀은 후원자를 처음 만난 날,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참 적은 돈을 보냈는데 그걸로 화장실도 만들고 병원 장비도 구입하고. 아이들이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정말로 여러 가지를 하더라고요. 제가 쓰는 돈 중에 가장 가치 있는 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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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사랑받는 우리는 바로 지금 행복하다.

몽골 아르항가이 마을에서 월드비전 후원자 일행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월드비전 덕분에 우리 마을이…’, ‘월드비전 덕분에 우리 아이가…’라는 이야기를 끝없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만나는 아이와 마을을 오랜 시간 후원하며 응원해온 것도 모자라 이렇게 시간과 돈을 쪼개어 현장으로 달려온 후원자들. 그런 후원자님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잘 자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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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아 후원자와 후원아동 마랄진구

아동들의 축하 공연이 있던 날. 수많은 아이가 등장하는데 예정아 후원자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저 아이 제 후원아동이에요. 저 아이요, 저 아이.” ‘설마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데… 잘못 보신 거겠지.’ 하는 마음으로 현지 직원에게 아동의 이름을 물었다. ‘앗, 이럴 수가!’ 후원아동과의 만남은 아껴둔 순서였는데 후원자는 분장까지 한 후원아동을 한눈에 알아보고야 만 것이다.

“내가 알죠. 사진을 얼마나 봤는데.” 예정아 후원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다. 이렇게 순수하게 행복으로 가득 찬
얼굴은 정말 평생 처음 보는 듯하다.

이강우 후원자와 후원아동 다그바도르지

“사진 속 꼬맹이가 튼튼하고 의젓하게 자랐네요. 이 아이를 이렇게 키우기까지 온 마을의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나니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마음 맞는 이들이 힘을 합쳐 기어코 해낸 기분이랄까?

긴 시간 동안 월드비전도 고생 많이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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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봉 후원자와 후원아동 졸자야

“졸자야, 이렇게 만날 수 있을지 꿈에도 몰랐다. 너를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

한국에 유학을 오는 게 꿈이라니,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에 꼭 와서 그때 웃는 얼굴로 보자.”

채민철, 채은우 후원자와 후원아동 체체그렌

채민철 후원자의 후원아동은 딸 은우와 같은 또래다. 은우가 주위를 살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방문에 동행했다. 혹시나 예의에 어긋날까 후원아동에게 질문 하나 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는 채민철 후원자. 우리를 대신해서 월드비전이 친구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어 무척 고맙다는 은우.

‘배려’와 ‘공감’을 위해 노력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똑 닮은 딸 은우는 후원아동 체체그렌을 만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