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 끝도 없이 좋아져 버린 도시가 있다. 그래도 이유가 하나는 있지 않겠느냐 물어오면 그냥 좋아서 좋다는 답 밖에 찾을 수 없는 도시. 나에게는 부산이 그렇다. 내 사랑 부산에서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월드비전 새내기 열린 모임이 열린 다니 들썩들썩 흥분되는 심장을 달래며 더디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날짜까지 꼽아가며 기다린 시간에 비해 쏜살같이 가 버린 1박 2일. 하룻밤을 새며 이야기해도 끝맺지 못할 그 날의 추억들을 다 담을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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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국밥 한 그릇에 기운이 쑥!
그 동안 부산을 셀 수 없이 다녔지만 ‘이름’이 주는 왠지 모를 느끼함에 시도하지 못했던 ‘돼지국밥’을 드디어 먹었다. 감기 기운이 조금씩 있던 일행들과 돼지국밥 한 그릇 먹고 바짝 기운을 내보자 의견이 모아졌고 평소, 음식을 가리는 사람답지 않게 ‘그래 먹어보자!’ 하는 용기가 났다. 신기하게 비린 맛 하나 없는 얼큰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니 훌쩍이던 코가 쑥 들어간다. 정신없이 후원자님들을 만날 장소를 셋팅하고, 구호물품과 해외아동들이 보내온 편지도 정성껏 전시했다. 진행을 맡은 직원은 처음이 아닌 행사임에도 여러 번 영상과 멘트를 맞추며 만반의 준비에 여념이 없고, 출출할 저녁 시간 후원자님들의 허기를 채워 줄 간식까지 셋팅 완료.
“후원자님 저희는 이제 준비 다 되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정말 만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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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오신 분들, 얼굴이 다 와 이리 좋나?
월드비전을 알고 싶고,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궁금해 신청을 했지만 막상 한 테이블에 마주 앉으니 이렇게 어색할 수 없었던 후원자님들.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지나자 어느 새 전화번호 교환까지 하며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테이블도 생겼다. 부산 후원자님들의 추진력과 친화력이라니! 서울 촌놈은 그저 놀랄 수 밖에.
“어떤 분들이 후원하는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다들 이리 좋은 사람들이네. 우리 고향에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래 많다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너무 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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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런 사연 하나쯤은 다 있는 거죠?
이틀간 진행된 부산 새내기 후원자 모임의 첫째 날, 특별히 부산이 고향인 신승환 배우가 함께 했다. 그간 살아왔던 기가 막힌 사연들과 그 가운데 이어진 월드비전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약속했던 20여 분을 훌쩍 넘기고도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우린 그가 이제 그만 가야 한다 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마지막의 마지막 시간. 신승환 배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 말만큼은 꼭 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쏟았다.
“그 소리 있죠? 딩동~ 후원금 자동이체 되었다는 문자 소리. 그 소리 어떠세요? 전, 처음에는 아, 이거 잘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어요. 후원하는 아이 편지를 보면 흐음~ 갸우뚱 할 때도 솔직히 있었어요. 의심 가잖아요. 그쵸? 그런데 그 편지를 냉장고에 붙여 놓고, 딸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답장도 같이 썼어요. 그런데 제 딸이 어느 날, 언니에게 보내려고 그렸다며 그림을 쓱 주더라고요. 그 때 기분은요. 야, 아이들은 이렇게 배우는 구나. 이렇게 함께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거구나 싶은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딩동~ 소리가 따듯해요.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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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
부산에서 열린 새내기 모임에는 밀양, 울산, 창원 등 꽤 먼 곳에서 오신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단연 일등은 지혜인 후원자였다. 늘 관심은 있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참석을 못하다가 마침 부산에 일이 있던 날, 모임이 열린 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했다.
지혜인 후원자의 후원은 아이 때문이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나는 아파서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 라는 생각에 갇히지 않도록 키우자 결심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지만 자신처럼 아픔을 가진 이들을,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을 품어낼 수 있는 아이로 살아내 주었으면 엄마는 바랐다. 엄마가 생각한 방법은 아이 이름으로 또래 아이와 후원을 맺어주는 것. 아이가 무사히 자라서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친구를 만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지 않을까, 엄마는 꿈을 꾼다.
“내 아이와 후원하는 아이가 서로 성장하는 사진, 편지를 서로 주고 받아요. 그게 참 거창하지 않는 사소한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게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요.”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후원. 오늘 월드비전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또 다른 삶의 도전을 결심하게 했다. 평소, 더불어 사는 삶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던 지혜인 후원자는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강사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이제 곧 월드비전 세계시민 강사로 활약할 예정이다. 지혜인 후원자의 세계시민학교 강사 합격 소식을 듣던 날, 그녀가 부산에서 전했던 인사가 또렷이 기억났다.
“월드비전 활동과 사업을 자세히 듣다 보니 앞으로의 계획과 행동이 바뀌게 되었어요. 좋은 시간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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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꼭, 다시 만나요!
후원아동과 분쟁피해지역 아동들에게 보낼 작은 장난감과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모임은 마무리되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인사를 주고받고도 한참을 또 감사하다고, 즐거웠다고 아쉬운 마음을 나누었다. 늦은 시간이라 가시는 길이 좀더 걱정되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께 조심하시라 말씀을 건네었더니 덥석 손부터 잡으신다. “내가 오늘 너무 즐겁네.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좋은 일인지 몰랐어.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죽는 날까지 월드비전이 하는 일을 함께 할 게. 고마워, 아가씨. 아이고 아가씨라고 하면 안되나? 뭐라고 부르노? 하하.” 할머니는 호탕하게 웃으셨지만 나는 ‘울면 안돼. 울면 안돼’ 꾹꾹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고 다시 부산에 가면 후원자님들의 따듯했던 이야기와 눈빛이, 전해주신 든든한 격려가 생각날 거다. 이제 누군가 부산이 왜 그리 좋냐 물으면 망설임없이 대답하겠다.
“그 곳엔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글과 사진 월드비전 후원동행2팀 윤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