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월드비전 청년 가정 소득증대사업
내일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만큼 우리에게 일상이 된 미세 먼지 농도 체크. 한국에서 미세 먼지는 계절과 상관없이 대기를 휘감으며 심각한 공해가 된 지 오래다. 미세 먼지 차단용 마스크는 외출 필수품이 되었고, 공기 청정기 역시 집마다 하나씩은 갖추어야 할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미세 먼지가 일으키는 질병은 한도 끝도 없다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속시원한 대책은 아직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의 공기 사정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특히 겨울철이면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는 몽골의 혹한을 견디기 위한 난방 시설을 제대로 갖출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태우면서 공기는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된다. 몽골월드비전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년 가정 소득증대사업은 추위에서 살아남고자 쓰레기를 태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제공해 젊은 가정들을 튼튼하게 세우려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먼지와 지독하게 맞닿아 있는 가난의 연결 고리를 끊는 치열한 싸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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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정이 좋아진다면 무엇보다
전기로 난방을 하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빔바 : 딸과 어머니, 남동생을 부양하는 가정의 가장
울란바토르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따닥따닥 붙은 집들이 동산을 모두 뒤덮고 있다. 집들 사이로 게르*도 간간이 보이고 가정에서 흘러나온 듯한 폐수가 길거리를 축축히 적시고 있는 곳. 아이들을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빔바(28세)는 이곳에서 딸과 어머니, 남동생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
2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심하게 다친 남편은 수술까지 받았지만 유명을 달리했고, 대학교 졸업 시험까지 다 치르고 졸업만 앞둔 상황에서 빔바는 남편 병간호와 병원비를 마련하느라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편이 죽은 뒤 내 어깨에 모든 것을 짊어져야 했어요. 어머니, 아픈 남동생, 핏덩이인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돈이 되는 건 뭐든지 가리지 않고 했어요. 더 힘든 건 직업 자체를 구하기도 어려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돈만 준다면 요리, 바느질… 어떤 일이라도 했지요.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날이 많았어요.”
빔바가 부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거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낡고 녹슨 난로가 눈에 들어온다. “한겨울에는 밤에 무료로 전기를 쓸 수 있어요. 그래서 낮에는 저 난로에 석탄을 때요. 지금은 봄이 오고 있어서 낮에도 가능하면 피우지 않으려 해요. 집 안이 연기로 꽉 차 공기가 나빠지거든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접을 수 없어 사설 아동돌봄센터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빔바지만 공기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다.
“두 살 된 우리 아이는 지난겨울에만 폐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8번이나 갔어요. 더러운 공기 때문에 열이 나고 숨 쉬기 힘들어하더니 기침을 멈추지 못하더라고요. 겨울 날씨가 너무 추워서 낮에는 석탄 난로를 때지 않을 수 없으니까 급한 대로 아이에게 평소 영양소가 있는 음식을 먹여서 면역력을 높이려고 해요. 하지만 이건 정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잖아요. 경제 사정이 좋아진다면 무엇보다 전기로 난방을 하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어요.”
월드비전은 빔바처럼 젊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약한 이들을 대상으로 자기 개발 프로젝트와 가족 트레이닝을 실시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 만큼 구체적인 계획을 짜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도록 돕고 더불어 어려운 상황에서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가족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정서적인 훈련도 진행한다. 검게 타오르는 쓰레기 연기를 보면 급한 마음이 먼저 앞서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근본적인 문제와 기본기를 익혀 이들이 제대로 단단하게 살아갈 힘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 사업이 공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래 그림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 몽골인들의 이동식 천막집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돌보겠어요?
세나 원장 : 16호로 지역의 유일한 병원인 만담가족병원에서 일한 지 20년
세나가 16호로* 만담가족병원에서 일을 한 지는 20년이 넘어간다. 12,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고는 하나 임시 판자촌과 게르에 사는 주민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를 훨씬 넘을 것이다. 유목민과 다른 지역에서 넘어온 사람들까지 합쳐져 16호로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빈곤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 지역의 유일한 병원인 만담가족병원의 원장인 세나는 5명의 의사와 간호사 6명의 보조사와 함께 어려운 주민과 아이들을 보살핀다. 월드비전이 그동안 여러 의료 설비를 지원하고 보건 캠페인을 펼친 덕에 나름 병원의 구색은 맞추어졌지만 여전히 환자는 밀려들고 의료진은 부족하다. 몰려드는 환자의 대부분은 기관지 알레르기와 폐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이 지역은 5세 미만 아동들의 폐질환이 정말 심각해요. 겨울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감기와 알레르기 환자가 엄청 늘어나고요. 공기 오염이 너무 심해서 숨쉬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공기 오염은 초기 임신부에게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나쁜 공기를 오랫동안 마신 임신부는 조산율이 높아요. 이 지역 임신부들의 조산 비율 역시 점점 높아지고 있고요.”
겨울이 이제 막 지난 몽골. 세나 원장의 친절한 웃음 뒤에는 어쩔 수 없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몽골은 10월부터 4월까지 겨울이 계속되고 이 기간에 공기가 급격히 나빠져서 질병 발생률이 정말 높아요. 당연히 환자도 따라서 늘어나니까 병원 진료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의사나 간호사의 노동 강도가 엄청나죠. 그래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돌보겠어요? 감사하게도 월드비전과 같은 좋은 협력자가 있어서 혼자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됩니다.”
* 몽골의 행정 지역 구분 단위. 한국의 ‘동’에 해당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유독한 쓰레기를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몽골월드비전 청년 가정 소득증대사업 담당팀
공기 질이 최악이라는 겨울이 지났음에도 울란바토르 출장 기간 내내 눈과 목이 따끔거려 참기 힘들었다. 지난겨울, 이곳에 출장을 다녀온 직원이 마스크를 하고 잠을 잤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실감했다. 아, 과연 길이 있는 것일까? 한국의 미세 먼지를 바라보며 답답했던 마음이 이곳에서도 똑같이 가슴을 꽉 막히게 했다.
“공기 오염 원인의 80%가 쓰레기 연소 때문이에요. 연료로 전기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쓰레기를 태우거든요. 또 지난 10년에 걸쳐 시골에 살던 유목민들이 교육, 취업, 수입 등의 이유로 대거 울란바토르로 이주하고 있어요. 이들은 힘들게 찾아왔지만 도시의 비싼 물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죠. 그러다 보니 겨울을 나기 위해 쓰레기를 더욱 많이 태우게 되고, 인구가 늘어나며 차량도 늘어나 배기가스도 많이 배출되고…. 정말 어려운 문제 앞에 우리가 있어요.”
한번 오염된 공기 문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문제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공기 오염이 가져온 또 다른 큰 피해를 들려주었다.
“그나마 경제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은 좋은 연료를 사용하고, 공기 청정기도 사용하면서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겠죠.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태우는 거예요. 눈앞에서, 코앞에서 쓰레기를 태우며 바로 유독 가스를 마시는 아이들과 어른들. 이들의 건강 문제는 도대체 누가 책임져야 하나요?” 쳐모 매니저의 떨리는 목소리에 어려운 주민과 어린이를 향한 안타까움이 배어 나왔다.
“월드비전이 지금 펼치고 있는 사업이 성공한다고 공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 거예요. 하지만 분명한 건 근본적인 해결에 기여할 거라는 점이에요. 앞서 이야기했듯 공기를 더럽히는 원인 중 커다란 부분이 연료로 쓰레기를 태우며 나오는 유독 가스 때문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가정 경제가 안정되면 이들은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태우지 않고 전기를 쓰거나 다른 방법으로 난방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가정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공기 오염 문제도 반드시 좋아지리라 생각해요.”
하얀 신발을 신고 다녀도 더러워지지 않는
깨끗한 마을을 만들 거예요
16호로 아동위원회
큰 벌레와 작은 벌레들이 그려진 종이 앞에서 한 아이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벌레 그림과 아이를 바라보고 앉아 있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하다. 가까이서 보니 벌레의 머리와 다리 쪽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다. 16호로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대표가 모여 지역사회를 둘러싼 이슈를 논의하는 시간. 월드비전은 이 모임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토론과 실천을 돕는다.
큰벌레의 머리에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이슈, 다리에는 세부적인 문제(초록색)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및 실행할 주체(빨간색)를 적었다.
“보시다시피 우리 마을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기 오염이에요. 하지만 이건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큰 문제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았어요. 먼저 쓰레기나 사용하고 난 더러운 물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 거예요. 지금은 거의 모든 집에서 사용한 물을 길에 버려요.”
겨울에는 땅이 얼어서 위험하고, 봄, 여름에는 날씨가 풀리면서 얼었던 더러운 물이 녹아 냄새가 심하게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아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자고 진지하게 토론하며 역할을 정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그것을 잘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반짝반짝 완전한 빛을 발할 것이다. 울란바토르의 외곽 지역에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렵지만 내일을 바꾸려는 의지와 열심이 있는 마을 주민과 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전문적이고 끈질긴 노력으로 이들 곁에 선 월드비전이 있다. 이 노력과 소중한 마음이 결실을 맺어 울란바토르에서도 몽골의 드넓은 평야에서 볼 수 있는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아니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임을 믿는다.
“나고 오물도 함께 올라와요. 쓰레기와 더러운 물을 정해진 곳에만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면 공기 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우리 마을도 언젠가는 하얀 신발을 신고 다녀도 더러워지지 않는 깨끗한 마을이 될 거예요.” 투메, 14세
이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더러운 공기 때문에 거의 매년 한두 번씩은 폐질환을 앓는단다. 마스크를 해도 도움이 되지 않고, 어린 동생들은 더 자주 병원에 들락거린다. 겨울이 되면 오물을 버린 땅이 얼어 위험하고, 봄이 되면 그 땅이 녹아 냄새가 나서 참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연료를 얻는 마을에서 살기에 절망의 끝을 말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아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자고 진지하게 토론하며 역할을 정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그것을 잘 들어주는 어른들이 있어야 반짝반짝 완전한 빛을 발할 것이다.
울란바토르의 외곽 지역에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렵지만 내일을 바꾸려는 의지와 열심이 있는 마을 주민과 어린이가 있다. 그리고 전문적이고 끈질긴 노력으로 이들 곁에 선 월드비전이 있다. 이 노력과 소중한 마음이 결실을 맺어 울란바토르에서도 몽골의 드넓은 평야에서 볼 수 있는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아니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임을 믿는다.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