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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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소식지 2017년 봄호

진정한 후원은 후원 없이도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육, 식수위생, 보건영양, 소득증대 등의 사업으로 후원이 끝나도 마을 스스로 아이를 돌보게 만드는 월드비전 자립마을 프로젝트. 세계 56개국 1561개 마을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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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ssible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네가 겪는 모든 일이 드라마 속 장면이라면 어떨까?

그럼 난 곧잘 상상하지
네가 보건소를 찾았을 땐
마지막 알약 한 알이 기적같이 남아 있는 거야.

‘역시 불가능해’라고 생각할 때쯤
너의 든든한 지원자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 오고,
그래도 도무지 답이 안 나와 한숨만 짓고 있을 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나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리지.

그리고 이 드라마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

 

글. 윤지영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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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꾸는 꿈 –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1)

‘꿈’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지만 막연하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 세계평화를 꿈꾸는 것 혹은 돈을 열심히 모아 내 집을 마련하는 것까지 모두 다 ‘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에게 ‘꿈’은 다른 의미다.

하지만 ‘꿈’은 결코 혼자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흔들리고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날 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긴 겨울 끝, 살며시 찾아온 봄날처럼
꿈꾸는 아이들과 좋은 어른들이 만들어 가는
즐거운 내일도 어느 새 우리 곁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파티쉐가 꿈인데 힘들 것 같아요. 유학도 가야하고 과정이 힘들 것 같아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아동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초선 조사연구> 한국월드비전, 2010

 

월드비전의 ‘꿈꾸는아이들’은 2010년 연구결과에서부터 시작됐다. 아동들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경제수준이 조금 나아진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돈이 많이 드는 꿈은 도전조차 포기해 버리고, 부모는 자녀의 꿈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2013년 시범사업부터 출발한 꿈꾸는아이들 사업이 어느새 5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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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에서 함께 자란 절친, 유진이와 영아(왼쪽부터). 꿈꾸는아이들 프로그램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두 친구의 우정은 꿈을 찾아가는 여정에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

모든 아동들의
꿈꿀 권리

“국내 100만 명의 빈곤아동 중 월드비전 복지관에 등록되어 도움을 받는 친구들은 1%인 1만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물론 월드비전 말고도 아이들을 돕는 많은 기관이 있지만 사회복지시설이 부족한 농어촌 및 섬마을 아이들까지 최선을 다해 지원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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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경찰, PD, 네일 아티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후원자멘토와 전국에서 모인 아동들이 만난 ‘꿈꾸는 아카데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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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사회복지사, 후원자가 한 자리에 모여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스토리콘서트’

2010년 꿈꾸는아이들 사업을 준비할 때부터 함께하고 있는 월드비전 국내사업전략팀 변지영 팀장은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각지대 아동이 없도록 지역 기관들과 협력하며 더 많은 아이들을 돕는 것이 이 사업의 장점이자 차별점이라 고 강조했다.

월드비전은 대부도, 사천시, 내서읍, 밀양시, 통영시, 김해시와 같은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4곳과 꿈꾸는아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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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아이들 프로그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으로 꼽힌
‘국토대장정’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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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작된 꿈디자이너 발대식에서 선서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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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들이 친해지기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꿈을 적고 있다.

“아동이 많지 않아 학교도 몇 개 없는 대부도에서 사업 대상 아동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대부도복지센터의 김가연 센터장은 이 지역에서 꿈꾸는아이들 사업을 시작할 때 마주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안산시 초지종합사회복지관의 부설로 2010년 개관한 대부도복지센터는 주로 어르신 대상 이동 목욕 및 의료 서비스, 반찬 지원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복지센터가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아동 대상자를 선정했다. 노인복지관 성격의 사업에서 주민과 아동 중심 사업으로 복지관 사업영역이 확대되었다.

김가연 센터장은 “아이들이 대부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인데, 서울에도 다녀오고 그 동안 한 번도 못 해봤던 활동을 하며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나아갈 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이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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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친구처럼 부모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대부도복지센터 김가연 센터장과 박종민 사회복지사(왼쪽부터)

꿈꾸는아이들이 가져 온
변화

경제적인 여건이나 가정 상황 때문에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탐색해볼 수 있는 것. 이러한 ‘기회’를 주는 사업이 바로 ‘꿈꾸는아이들’이다.

‘꿈꾸는아이들’은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왔을까?

Q. 꿈꾸는아이들 사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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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지지: 사회적 지원
* 진로성숙도: 진로를 계획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능력
* 회복탄력성: 고난을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력
* 부모 양육: 자녀를 보살피는 부모의 태도와 능력
* 자기효능감: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

 

Q. 꿈꾸는아이들 사업에 참여한 아이들의 진로 계획 능력은 다른 아동들과 차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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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꿈꾸는아이들 사업. 5년을 맞은 지금, 이 사업을 통해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다. 자신의 꿈에 다가가는 것은 물론, 왜 ‘꿈’을 꾸어야 하는지, 우리는 ‘꿈’을 꾸며 자라야 한다는 곳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글: 김수희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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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기쁨이야.

온 가족이 모이는 설 명절, 새벽부터 차례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한국을 뒤로하고 삼대가 모여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후원자 가족을 만났다.

가족에게 스며든
아버지의 철학

이른 아침 공항. 설렌 표정의 가족을 만났다. 월드비전 필리핀 바탕가스 사업장 방문을 앞둔 가족은 이번이 두 번째 걸음이다. 처음 방문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호를 딴 ㈜송강의 이름으로 후원한 나시 초등학교 건축 완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생전에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 생각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가족들은 필리핀에 학교를 선물했고 벌써 일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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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방문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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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으로 새로 지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나시 초등학교 아이들

배려와 사랑이 담긴
세심한 선물

첫 번째 방문 후 가족들은 나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매형이 사진을 잘 찍으시는 데다 영정사진 봉사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으셔서 우리 가족이 직접 아이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들은 아이들이 어색하지 않고 재미있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직접 다양한 포즈를 연출하여 사진을 찍고 프린트해 코팅까지 해서 ‘졸업 사진 샘플 포즈’를 여러 장 준비했다. 졸업선물로 마련한 볼펜도 일일이 써보며 불량을 확인한 뒤에야 하나하나 포장했다. 정성스러운 준비 과정 하나하나에 아이들을 향한 가족의 배려와 사랑이 가득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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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개발부터 모델, 촬영, 프린트와 코팅까지 후원자님이 직접 꼼꼼히 챙긴 포즈샘플

후원으로 더 돈독해진
가족 사랑

필리핀 도착해 아이들에게 졸업사진을 넣어 선물할 액자를 사기 위해 한 상가에 들어갔다. 액자 하나를 정하는 데도 가족들은 진지하게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신중을 기했다. 이후로도 가족들은 자주 가족회의를 했다.

“후원을 시작하고 가족들이 더 자주 만나요. 나시초등학교 다녀온 얘기도 많이 하구요. 후원에 관해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가족끼리 사랑도 더 돈독해지는 것 같아요.”

 

즐거운
졸업사진 촬영

드디어 졸업 사진 촬영 날.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비는 학교에 도착해서도 계속 내렸고, 아이들은 수업 중이었다.

가족들은 궂은 날씨지만 당황하지 않으며 오히려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만가만 다니며 사진 찍을 곳을 찾았다. 교실 외에는 마땅한 실내 공간이 없는 학교라 사진 찍을 만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 기적이 일어났다.

까만 구름이 걷히더니 반짝, 해가 나왔다. 조용하던 가족의 얼굴도 활짝 피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넓은 풀밭 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이들은 촬영이 준비된 풀밭 위로 줄을 맞춰 이동했다.

촬영이 시작되자 가족들은 일사천리로 각자 맡은 자리로 이동했다. 가족회의의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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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사진찍기를 기다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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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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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고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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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고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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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고르는 아이들

참, 흐뭇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반별 단체사진과 졸업생 단체사진까지 2시간에 걸친 긴 촬영을 끝내고 소감을 물었다.

“너무 즐겁고 기쁘네요. 아이들이 수줍어하며 카메라 앞에서 선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사위)

“아이들이 볼펜을 받으면서 고맙다고 하는 한 마디가 감동이었어요.”(손자)

“이렇게 가족들이 하나되어 의미 있는 일을 시작했는데, 남편이 먼저 하늘로 가서 너무 안타까워요. 하지만 이 학교에 남편도 함께 왔다고 믿어요.”(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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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 사위
땀을 뻘뻘 흘렀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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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 지도 – 딸
촬영하는 동안 꼼꼼하게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주시는 모습201703_campaign_sponsor_11

포즈 도우미 – 아들
아이들이 포즈를 잘 취할 수 있도록 함께 포즈를 취해 주는 모습이 정겹다.201703_campaign_sponsor_12

졸업선물 증정 – 며느리와 손자
옆에서 대기하던 며느리와 손자는 촬영을 마친 아이들에게 일일이 검수하고 포장한 볼펜을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었다.201703_campaign_sponsor_13

총감독 – 할머니
이 모든 걸 조용히 지켜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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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돋보이게~ 꽃받침 포즈! / 내가 최고!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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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깔깔~ 호호호~ 나도 저 포즈를 해야겠는 걸? 즐거운 사진 찍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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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한 명, 정성을 다해 촬영하는 후원자님과 집중하는 아이들

우리 가족이 생각하는
후원은

나시 초등학교를 계속 후원하겠다고 약속하는 가족. 이들이 갖고 있는 후원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졌다.

“후원은 상대방의 질서와 삶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졸업사진 촬영이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진행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후원은 돕는 사람과 도움 받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생기는 돈이 모두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후원하기 어렵죠. 나에게 잠시 머무르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후원이 가능하더라고요.

“후원자와 후원이 필요한 곳을 이어주는 다리인 월드비전이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월드비전 운영이 어려우면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만들어 가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가능하다면 월드비전의 운영비를 기부할 고민도 하고 있어요.

후원에 대한 고민과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렇게 멋진 후원자들이 함께하는 월드비전 직원으로서 오래오래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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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모여요~! 후원자님과 함께 찰칵!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의 버킷리스트가 하나 추가되었다.
언젠가 나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나눔을 전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 이루어 지는 날,
뜨거웠던 필리핀의 졸업 사진 촬영과 틈만 나면 가족회의를 하던 후원자 가족이 생각날 것 같다.배려 깊고, 사랑 많고, 온유하며, 강직하던 분들을 떠올릴 그 날이 벌써 기대된다.”

글, 사진: 이경진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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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패밀리데이가 눈물 바다로 변한 이유

지난 11월 4일 저녁, 월드비전 패밀리데이가 CTS홀에서 열렸어요. 17년 사업 끝에 자립에 성공한 베트남 호아방, 방글라데시 썬더번 지역을 400명 후원자들과 축하했어요. 그런데 참석자 모두가 눈물바다였던 순간이 있었어요. 함께 울던 참석자들이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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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방글라데시 아동 ‘무수미’를 후원한이야기

“오늘 하이라이트는 15년간 후원하시던 분의 나눔 이야기였어요. 방글라데시 썬더번 사업장에 사는 ‘무수미’라는 여자아이를 후원하신 분이셨어요.”(김O현 후원자)

“그 분은 후원아동과의 결연이 끝나 아쉬워하면서도 잊지 못하고 계셨어요.”(이O희 후원자)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무수미를 축하해 주시던 모습에 객석에서 박수가 쏟아졌어요.”(김O현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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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모두가 깜짝 놀랄 장면이 펼쳐졌어요. ‘무수미’가 후원자님 앞에 나타난 거예요.

“그렇게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후원아동이 직접 (무대에) 나타났어요”(최O윤 후원자)

“(후원자님이) 무수미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며 그리운 마음으로 ‘무수미’ 부르는 순간, 진짜 무수미가 달려나왔어요. 둘은 끌어안고 울고 저도 울고 뒷사람도 울고….”(김O현 후원자)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부둥켜 안고 말없이 울기만 했다”(경향신문 11/15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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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순간은 월드비전에서 후원자님을 위해 준비한 깜짝쇼였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직접 ‘무수미’를 직접 초대했어요. 여러 난관을 뚫고….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렸고, 제 아동들도 너무 보고 싶어 졌어요.”(박O희 후원자)

“제 아이를 만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요. 같이 온 친구, 앞, 뒤, 옆 모든 후원자님들, 사회보던 정애리 친선대사님까지 온통 눈물바다가 됐어요.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최O윤 후원자)

“중간중간 울컥한 마음 잘 참았는데, 눈물이 막 흘렀어요. 아마 그 자리의 모두가 저와 같은 생각이셨을 것 같아요.기쁘고 함께 축하하는 마음”(김O현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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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만난 것처럼 너무 행복해요. 후원자님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대학원까지 졸업했어요” (무수미 보스, 송O수 후원자님의 후원아동)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만나게 돼 가장 행복한 밤을 보냈어요.직접 낳은 딸이 둘 있는데, 외국에 딸이 한 명 더 있다 생각해왔어요” (송O수 , 무수미의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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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님 덕분에 오늘도 수많은 ‘무수미’들이 방글라데시에서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학교사가 된 마지둘(Majidul, 사진 좌상단), 회계정보학과 강사가 된 인잉(Ineeng, 사진 우상단), 대학생으로 교사의 꿈을 앞둔 타니아(Tania, 사진 좌하단)와 모나(Mona, 사진 우하단) 모두 후원아동 출신입니다.

송 후원자님은 1998년 결혼과 동시에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후원금 마련이 어려웠던 적도 있었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딸을 포기하는 엄마는 없다’며 멈추지 않았어요. 무수미는 7살때 송 후원자님을 처음 만났어요. 현재 방글라데시 국립대학 MBA졸업 후 은행원에 도전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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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월드비전 패밀리데이에서는 다채로운 참여 코너가 펼쳐졌어요

패밀리데이에서는 송 후원자님을 포함해 그동안 두 사업장을 후원하신 400분이 함께했어요. 이분들을 위한 갖가지 다채로운 코너가 가득했습니다.

“먼저 도전한 것은 ‘후, 원, 자’ 3행시!, 누가 먼저 지은 멋진 시에 마음이 어려워져 포기했어요. 그냥 할 걸 그랬나봐요.”(김O현 후원자)

“삼행시 외에도 ‘포토존’, ‘아이에게 편지보내기’ 등이 있었어요. 포토존은 함께 오기로 한 친구가 퇴근이 늦어 저 혼자 꿋꿋하게 찍었네요.(최O윤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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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과테말라 대통령 지미 모랄레스, 46년 전 월드비전 후원아동다는 사실!

“후원아동이 대통령이 됐다는 동영상도 봤어요. 언제 봐도 자랑스러워요. 저도 지난 9월 방글라데시 썬더번 아동 ‘오미트’와 헤어졌던 터라 (오늘 패밀리데이가) 더 의미 있었어요.”(김O현 후원자)

“무작정의 후원보다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게 자립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았어요.”(박O희 후원자)

“같이 온 친구가 그랬어요. ‘너무 정신없이 살았나봐. 후원아동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어. 패밀리데이에서 다시 후원하던 첫 마음을 생각했어. 너무 고맙고 이런 자리 또 있으면 함께 가자’고.”(최O윤 후원자)

“후원자는 모두 가족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다른 직업, 나이, 생김새지만 같은 마음이라 함께 모인 것 같습니다. 가족을 만나는 자리 만들어주셔서, 그리고 제 남동생 ‘베나르’를 만나게 해주셔서 무한감사해요.”(이O희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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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캄보디아 륵덱(Leuk Daek) 사업장도 15년의 사업을 마치고 자립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었어요. 더 많은 지역들이 오늘도 자립마을로 향합니다.(사진은 본 패밀리데이와 무관)

감사는 저희 월드비전 더 많이 드려야 하는데요. 참석자 분들 말씀 하나하나가 귀하고 묵직하네요. 현지에서도 아이와 지역주민들이 후원자님께 감사드리고 있음을 위 사진으로나마 대신해드립니다.  더 많은 감사와 감동의 이야기들이 전해지도록 아이들과, 월드비전과 함께해주세요. 저희도 후원자님과 함께할게요. 쭈욱~

 

패밀리데이 감동의 시작, 월드비전 아동후원(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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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촛불로 모두가 따뜻해져요”
-정애리 친선대사와 266명의 아이들

“내가 가진 초에 불을 켜서 다른 초에 불을 계속 옮겨보세요불을 나눠줘도 내 촛불은 꺼지지 않아요오히려 더 많은 초에 불이 밝혀지죠나눔도 똑같아요일방적으로 누군가를 돕고 끝나는게 아니에요나눔을 통해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생겨납니다나눔을 주고받는 모두가 따뜻해지죠.정애리 친선대사

저는 연기자이다보니 촬영장에서 참 많은 아역배우들을 만나곤 합니다. 작은 5살, 8살 어린 아이들이 어찌나 연기를 잘하고 현장에 적응을 잘하는지 신기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간혹 그 아이들을 보며 슬플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아이답지 못할 때. 어른들처럼 굴며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 살아가는 법을 터득한 거처럼 보일 때 기특해 보이는 게 아니라 참으로 슬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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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니제르>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는데.’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어른의 잘못이겠지요.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세상처럼 여기게 만든 건 어른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만난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그 조차를 뛰어넘어 공허한 눈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저 굶주림만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그 아이들은 늘 저를 아프고 슬프게 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품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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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방글라데시>

제게 만남이 허락된 그 아이들만이라도 제 아이로 품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만날 아이들도 품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언 266명이라는 대가족이 되었네요.

물론 그 중에는 아픈 사연 때문에 제 가족이 된 아이들도 있습니다.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 아이 죠슈아. 말라리아로 먼저 하늘나라에 간 가나에 살던 아이. 내게로 온 내 아이였지만 너무 늦게 만나 그간의 영양실조로 말라리아 약을 견디지 못한 죠수아. 죠수아는 제게 참 많은 눈물을 주었지만 또 그래서 이 일을 더 미루면 안 된다는 깨달음도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견디고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아이들은 계속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서둘러 더 많은 아이들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을 보내고 눈물만 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아이들을 품고 싶습니다.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니까요. 조금 힘이 들더라도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지 않을까요?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세상에 무엇이 있을까요.

“내가 일하는 이유

물론 대가족의 가장이니 저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당연하지요. 우리 모두 가족을 위해서 그렇게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잠을 조금 덜 자고 갖고 싶은 거 조금 참고 조금 더 절약하고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습니다.

“나의 기도”

몇 년 전부터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다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제 60세 생일쯤으로 잡고 있지만 더 일찍이어도 조금 늦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한 번도 못 만날 수도 있는 우리 아이들을 직접 만나서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토닥여주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그 동안 견뎌줘서 고맙다며 꼬옥 안아주고도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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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한국에서 재회한 후원 아동 삼 형제>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향해있는 사랑이 관념이 아니고 실체임을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세상 살아갈 힘을 얻으면 참 좋겠습니다. 나아가 자기들에겐 ‘정애리’로 연결된 또 다른 많은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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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과 함께한 12년”

어쩌면 그 시간은 제게 가장 많은 선물을 준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어떻게 감히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얻을 수 있었으며 어떻게 이렇게 행복을 얘기 할 수 있었겠어요? 제게 이 일을 허락해주신 하나님. 함께 해준 월드비전. 견뎌준 아이들…그리고 행복에 동참 해주신 많은 후원자들.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그리고 외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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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애들아!!
앙카, 티모시, 쯔쯔크, 붐자야, 네스빠라야, 와이발라기, 디엔, 윌슨, 리챠드, 모니, 티에리, 무아오, 조슈아!
고마워! 사랑해!

 

글. 정애리
사진. 김민경 사진작가, 커뮤니케이션팀

해외아동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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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아동후원의 추억, 그럴 때 꺼내 보아요

아이에게도, 당신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 아동후원,
2분의 월드비전 후원자가 아동과 함께한 추억을 꺼냈습니다무려 15년 넘은 추억을요.

서로 힘들 때 만나 함께 성장했어요“(O희 후원자)

1993년 고등학생 때 한국선명회(월드비전 전신) 후원했다 대학 때 쉬었어요. 이후 IMF로 집안이 어려울 때 힘들게 취직했는데요. 1년 넘게 다니면 후원 하겠다 기도했습니다. 당시 많이들 해고됐지만 전 감사하게 계속 일할 수 있었어요.  전북 정읍의 ‘안나’후원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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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가 보낸 생일카드를 받고 읽고 있는 알바니아 아동 록샤 (사진 : 월드비전, 사진 속 아동은 원고와는 무관합니다)

초등학생 때 미소년 같던 안나는 금세 어엿한 숙녀로 변했어요. 안나는 현실에 맞게 꿈도 바꿨지만 반듯이 성장했죠. 부족해도 밝고 명랑했어요. 당시 저도 힘든 시기였지만 열심히 살았습니다. 안나의 생일, 성탄절, 마지막 졸업선물 고민하던 추억이 생생해요.  어른이 될 때까지 후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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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연탄나눔 봉사활동 중인 후원자님 (사진 : 후원자 제공)

해외아동 후원은 2008년, 직장 생활에 지쳤을 때 시작했어요. TV프로를 보고 몽골 아동과 인연 맺었어요. 가나의 모시(Mosi)도 만났는데요. 사랑의 동전밭 행사장에서 봉사 활동할 때였어요. 나부터 후원하자는 마음에 신청했어요. 그렇게 15년을 함께했네요.  아동후원을 계속하며 다방면으로 성장한 20~30대를 보냈습니다. 각종 체험과 봉사활동으로 월드비전과 더 가까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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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월드비전은 해외아동돕기 캠페인 ‘훼민24(현 기아체험24)’를 시작했어요(사진 : 후원자 제공)

가장 좋은 추억은 안나를 만난 거예요. 서로 힘들 때 만나 함께 이겨내며 성장했어요.  다른 아동이 사춘기라 도움을 거절한 일은 정말 아쉬웠어요. 이사 가서 연락 끊긴 몽골 아동도 있었습니다.  그 아동은 초등학생에서 멋진 청소년이 돼 뿌듯했는데요. 성년을 1년 앞두고 중단돼 마음 아팠어요.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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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어엿한 숙녀가 됐다는 편지(사진 : 후원자 제공)

후원은 오른손의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몰래 시작했는데요. 주위에서 너도 힘든데 누굴 돕느냐고 했어요. 국내도 힘든데 왜 남의 나라를 돕느냐고요. 하지만 후원아동 덕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어요.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고요. 제 변화된 삶을 보며 주변 사람들도 인정했어요. 그분들도 동참하기 시작했고 나눔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돌아보니 저도 후원아동도 큰 힘을 얻었어요. 많은 분들이 동참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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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후원, 행복의 시작, 당신과 아이 모두(사진 : 월드비전)

제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어 서둘러 시작했어요“(O현 후원자)

아동후원을 모를 땐 돈을 쉽게 썼어요.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했죠. 아침에 깨면 기억에 없던 영수증들이 곳곳에서 나왔어요. 신나게 놀아도 혼자 있으면 공허했죠. 삶에 즐거움이 없던 차에 TV광고를 봤어요. 후원하면 저 아이들이 행복해질까? 서둘러 후원을 시작했어요. 아마 제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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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주고 받는 편지가 저도, 아이도 변화시켰어요(사진 : 월드비전)

사실 저는 남에게 관대했지만 제 자신은 사랑하지 않았는데요. 당시 너무 힘들어 미래도 기대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후원아동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달라졌어요. 종종 편지로 조언했던 말들을 제게도 해봤어요. 자신감 넘치는 긍정적 모습으로 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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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편지 답장으로 저를 칭찬하는 거예요(사진 : 월드비전, 본 원고와 무관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답장으로 저를 칭찬하는 거예요. 칭찬이 아이들만 변화시키는 게 아닌가 봐요.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답니다. 지구 반대편 아이가 저를 위해 기도한대요. 편지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할 십년 후를 꿈꾸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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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후원아동 오미트가 김O현 후원자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사진 : 후원자 제공)

정이 많이 들었죠. 도움 받는 아이가 아닌 아들, 딸, 동생, 조카라 느꼈죠. 항상 곁에 있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사업이 종결돼 오미트(아동)와 헤어졌어요. 아이가 더 이상 편지를 못 받는다며 울었다는 답장이 왔어요. 계속 후원할지 회의감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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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가 보낸 편지를 읽는 아동(사진 : 월드비전, 본 원고와는 무관합니다)

새로 만난 아엠과 보운미와는 갑작스런 라오스 정부 방침 변경으로 헤어졌어요. 마을에 찾아가 만나기까지 했는데요. 준비도 안된 갑작스런 헤어짐에 슬펐어요. 그럼에도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은 너무 많아요. 다시 지난 달 알바니아 소녀, 우간다 소년을 만났습니다.

“어린이는 사랑받아야 해요” 김O현 후원자(사진 : 후원자 제공)

흔히 여유가 있어야 돕는다잖아요. 오히려 그게 부담만 주고 후원을 막는 것 같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어린이는 사랑받아야 해요.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이라도 아이에게 전하고 싶어요. 힘든 시절이었더라도 기억나는 행복한 순간이 한둘은 있잖아요. 그게 저였으면 했어요.

후원자님과 아이의 추억들

제가 먼저 행복했던 것 같아요. 보스니아 11살 소년 엘메딘은 저를 만난 2014년이 인생 최고의 해라고 했어요. 편지도 잊지 못한대요. 필리핀 아동 리얼린도 그랬어요. 베트남 아이 비츠항은 학교서 ‘좋은 어린이상’을 받을 때 먼저 저를 떠올렸대요.  얼마 전 강원도 장애인복지관 허깅데이에서는 후원아동과 만났어요. 고2인 아이는 매년 기대된대요. 이런 추억들이 보물입니다. 엄마와 라오스에서 아엠과 보운미를 만난 것도 가장 큰 추억이었답니다.

 

당신의 잊지 못할 추억, 월드비전 아동후원(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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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잠들지 않는 학교

까만 밤. 학교가 열립니다. 거리 한 켠. 지붕 없는 학교에서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하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 여기는 프놈펜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월드비전 뱀부슛센터 일년 전 거리에서 월드비전을 만난 열다섯 소년 리쓰 “이곳은 따뜻해요. 하루 3끼를 다 먹을 수 있는 건 너무 좋아요. 포근한 침대도 처음이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처음인데 정말 신나요.” 가난, 폭력, 전쟁, 마약, 인신매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아이들이 오는 곳 1993년부터 밤거리에서 만난 1,800여 명의 아이들이 월드비전 뱀부슛 센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만났습니다. 오늘밤, 리쓰는 아직 밤거리에 남은 친구들을 찾아갑니다. 같은 아픔을 보듬고 함께 할 따뜻한 보금자리로 친구들을 초대합니다. 거리에서 꿈을 잃었던 리스는 거리 위 학교에서 꿈을 꿉니다. 의사가 되어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곁에 서는 꿈 오늘도 프놈펜의 밤거리 뱀부슛 센터에서는 내일, 이 거리를 바꿀 새 순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대나무의 줄기를 바꾸어놓을 어린 싹이다 ” -캄보디아 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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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프놈펜 거리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월드비전 뱀부슛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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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후원아동 성장기

저는 월드비전 후원자입니다.
물론, 월드비전 직원이기도 하지요.
후원에 대해 궁금하시다면제 이야기 한 번 들어보세요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던 지구촌 아이들의 빈곤. 후원 해야지, 언젠가는 꼭 해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2010년 3월,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만났던 7살 볼리비아 아이 닐다는 올해 13살이 되었습니다.

2010년 3월, 해외아동후원을 시작하며 받았던 후원아동 소개 카드

닐다를 만난지 6년.
저에게도, 그리고 닐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후원을 시작하던 2010년, 우리 나이로 8살임에도 글을 쓸 줄 몰랐던 닐다. 제가 보낸 첫 편지의 답장은 닐다의 언니가 대신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부터는 이렇게 예쁜 글씨로 직접 편지를 보내 옵니다.

직접 편지지를 고르고 손글씨로 이런 저런 근황을 전하며 편지를 부치기도 하지만, 바쁜 일상 가운데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조금은 미안해질 때, 홈페이지에 들어가 휘리릭 쓰고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아이의 최근 사진과 편지가 홈페이지 상에 업데이트 되어 있곤 합니다.

또박또박 예쁜 글씨로 보내온 닐다의 편지

6년 동안, 닐다는 참 많이도 컸습니다.

‘올해도 한 뼘 더 자랐구나!’  

키가 훌쩍 커버린 사진 속 닐다의 모습처럼 한 해 한 해가 다른 닐다의 그림 실력! 한데 모아놓고 펼쳐보니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다 보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연필로 스케치 했다가 지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분명 처음 받아 보았던 그 당시에도 감동이었을텐데 어느새 다 잊고 마치 처음 발견한냥 그림을 보고 또 봅니다.

연1회 발송되는 연례발달보고서와 편지 뒷면에 늘 그림을 그려 보내주는 닐다.

닐다가 그린 햇님의 눈코입이 생겼다 없어지는 동안, 닐다 만큼이나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후원을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지나고, 저는 월드비전에 입사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국제구호개발기구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고 전공 또한 사회 복지나 국제 개발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스페인어,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 문학이었기 때문에 진로를 고민할 때 NGO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2010년 3월 첫 직장을 다니며 시작한 후원은 저의 진로마저 바꿔버린 셈입니다.

두 번 바뀐 명함과 신분증, 그리고 닐다(우)와 두번 째 후원 아동 레게세(좌)

입사 초기, 내게 감동을 주었던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한 개인이나 조직만을 위해 일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제 입사한지 5년차. 직장 생활 가운데 평온한 시간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함께함이 기쁨인 더 많은 동료들과 출장 중에 만났던 꼬마들, 또 변화의 증거들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재작년, 볼리비아 출장 때 혹시나 하고 기대했었지만 사업장 간의 거리가 멀어 만나볼 수 없었던 닐다.

그렇지만 볼리비아에서 만났던 그 귀여운 아이들처럼, 후원을 통해 내일을 꿈꿀 수 있게 된 그 아이들처럼 닐다도 내일을 생각하며 웃음 짓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겠지요? 내 꼬마 친구 닐다, 언젠가는 꼭 만나볼 수 있길 바래봅니다.

혹시 월드비전의 후원 아동과 서신으로, 사진으로 예쁜 만남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후원자님과 후원 아동 사이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혹은 후원자와 후원 아동의 스토리가 궁금하신가요? 든든한 후원자님과 씩씩한 후원아동의 이야기를 보러 오세요. 저마다의 특별한 만남이 이 겨울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글, 사진 디지털마케팅팀 신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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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월드비전’이 움직이는 이유

“행복한 얼굴로 ‘잘 가요’ 외치며
서로를 떠나보내는 날을 상상합니다.
더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 조금 ‘특별한 소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넘어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지역까지. 전 세계 100여 국에서 움직이고 있는 4만여 월드비전 인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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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를 휩쓸고 간 쓰나미 현장.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네팔 지진피해 현장. 총성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리카 내전의 현장. 위험하고 열악한 재난현장에 ‘월드비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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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순간, 우리의 최우선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인종과 국경을 넘어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눈높이를 맞추고, 한쪽 어깨를 내어주며 아이들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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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이 하는 일은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재난으로 황폐해진 마을이 웃음을 되찾고, 한 마을이 스스로 자립하기까지 짧게는 7년, 길게는 15년에 달하는 긴 시간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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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월드비전은 지치지 않습니다.

작은 변화들이 분명 큰 기적을 만들어 냄을 지난 60여 년의 월드비전 역사를 통해 보았기 때문이죠. 그 기적의 주역은 바로 후원자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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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가 존엄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 모든 부모님이 질병과 가난에 자식을 잃는 비극이 없는 세상. 우리 함께 “잘 가요, 월드비전”을 외치는 세상을 향해, 월드비전은 멈추지 않겠습니다.

긴 여정을 함께 해주시는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글: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사진: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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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농촌 마을에 스마트폰과 가스버너가 있다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아프리카의 농촌 마을은 어떤 모습인가요? 현대 과학기술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꼭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어떤 기술들이 아프리카에서 활용되고 있는지 함께 르완다로 가보실까요?

르완다에서 오랜 시간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발렌타인’이라는 여성을 만나보겠습니다. 르완다는 건기에 밭에 물을 대기가 힘들고, 우기에는 물이 자주 범람하며, 토양 자체도 산성이라 농사를 짓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발렌타인은 농작물을 키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아주 적은 양의 수확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그 수입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며 자녀들에게도 충분한 음식을 주지 못해 항상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월드비전에서 발렌타인이 사는 지역으로 들어와 농업 환경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농작물을 건강하게 성장시키는 방법을 알려주고 농사짓는 기술 또한 전달해 주었습니다. 산성 토양 부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 건기에도 농지에 물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바로 오늘 말하고 싶은 이 혁신적인 기술에 대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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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렌타인을 처음 만났을 때, 발렌타인은 감자밭 한가운데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eHinga’ 라는 APP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이 APP을 통해 르완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농업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작물의 성장과 수확 시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농사일에 큰 도움이 되었지요.

월드비전은 발렌타인이 살고 있는 마을에 다섯 대의 스마트폰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발렌타인은 제공받은 스마트폰을 지역 농부들과 함께 사용하며 농사와 관련된 지식들을 함께 공유하였고, 이는 지역의 농작물 수확을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역 농부들은 더 이상 비료를 주거나, 농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에 월드비전 직원의 조언을 듣기 위해 직원이 방문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지역 농부들은 알맞은 때에 농사일을 주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농업 APP의 도움을 받아 현재 발렌타인은 충분한 수확물을 얻어 자녀들에게 충분한 음식을 먹이고, 남은 농작물을 팔아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발렌타인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른 농부들 역시 소득이 증대되었습니다. 모두 스마트폰을 농사일에 활용한 결과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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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스테와 비아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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땔감을 구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프리카에서 찾아 볼 또 다른 놀라운 기술 활용의 사례는 베다스테와 비아타 부부입니다. 비아타는 집에서 요리에 사용할 땔감을 얻기 위해 딸과 함께 매일 나무를 구하러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나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바이오가스를 사용하게 되었고, 이런 놀라운 혁신은 베다스테 가족에게 더 이상 땔감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바이오가스를 사용하기 전, 가족들은 불을 피울 때마다 집안 가득히 퍼지던 매운 연기를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바이오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불을 피울 때 나오던 연기를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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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을까요? 가축의 분뇨를 물과 섞어 지하에 저장하면 메탄가스가 생성됩니다. 이 바이오 가스는 파이프 관을 따라 주방으로 연결되고 이를 활용해 편리하게 불을 붙여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을 통해 아프리카까지 도달해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모든 사람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요?

 

글. Laura Reinhardt
사진. 월드비전 글로벌 센터 / Eugene Lee
편집. 디지털마케팅팀 오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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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 고향 아프리카 가나 ‘572스쿨’에 가다

“어릴 때, 학비를 못 내면 선생님께서 집으로 돌려보내셨어요. 학비가 없어 공부를 포기할 뻔했던 순간들도 있었죠. 어린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신 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을 거예요. 이제는 그 손길에 보답하고 싶어요.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튼튼한 학교를 짓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꿈도 저처럼 현실이 되지 않을까요? -방송인 샘 오취리”

“아프리카 가나(Ghana),
별들이 자라나는 마을 보수소(Bosiso)”

가나의 동부 판테아크와(Fanteakwa) 지역에 위치한 마을 보수소에는 400여 명의 월드비전 후원 아동이 살고 있어요. 시내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선 우물, 전기, 보건소와 같은 생활기반은 물론 교육시설도 매우 열악합니다. 자연스레 아이들은 위태로운 교육 환경에 놓이게 되죠. 지난 2014년 판테아크와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는 초등학생의 비율이 30%에 채 미치지 못한다고 나타났대요.

열악한 교실에서 수업받는 아이들

월드비전은 보수소 아이들을 위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가나 572스쿨 오랜지액트(OrangeAct)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Sam Okyere)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졌어요.

“가나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고 싶어요”
홍대를 오렌지 색으로 물들였던‘572송’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홍대를 오렌지 색으로 물들였던‘572송’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지난해 5월, 젊음의 상징 홍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오렌지를 나누어 주며 시작된 ‘572스쿨 프로젝트.’ 샘 오취리는 숨겨둔 랩 실력으로 멋진 ‘572송’을 들려줬습니다. 이화여대를 깜짝 방문해 학생들에게 직접 프로젝트를 설명하기도 했어요.

이화여대에 방문해 직접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샘 오취리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가나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바쁜 스케줄을 제치고 달려온 샘 오취리. 올봄에는 월드비전을 직접 찾아와 후원금을 전달했어요. 이런 샘 오취리의 진심이 전해진 걸까요? 5천2백 명에 달하는 후원자님의 응원과 손길이 모여 가나 572 희망학교가 탄생했습니다. 짝짝짝-

“가나 572 희망학교를
소개합니다”

169명의 학생과 선생님 7명은 이제 낡고 위험한 학교를 벗어나, 튼튼한 새 교실로 향합니다. 더는 책걸상이 없어 흙바닥을 책상 삼아 공부하는 일도 없습니다. 노란 벽돌의 초등학교와 유치원 건물이 신축되고, 책걸상, 놀이 교구, 물탱크 등의 필요시설이 구축됐습니다. 지난 10월, 샘 오취리는 월드비전과 함께 그 현장을 찾았어요. 두근두근.

보수소 마을 아이들이 공부하던 기존의 초등학교(왼쪽)와 신축된 초등학교의 모습(오른쪽)

<보수소 마을 아이들이 공부하던 기존의 초등학교(왼쪽)와 신축된 초등학교의 모습(오른쪽)>

“완공된 학교를 직접 보고 있는데도, 아직 실감이 안 나요. 수천 명의 후원자님이 ‘572스쿨 프로젝트’에 마음을 더해주셨다고 들었어요.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예요. 덕분에 이렇게 멋진 학교가 지어질 수 있었어요. 이렇게 많은 아이에게 소중한 기회를 선물했구나 하는 뿌듯함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뻐요.”

완공된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샘 오취리

“지금 이 순간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조금은 어색한 한국말로 ‘진심으로,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로’를 연신 말하는 샘 오취리의 목소리에서 그의  따뜻한 진심이 전해집니다. 마음까지 멋진 남자 샘 오취리. 그와 함께 지은 572 스쿨을 시작으로 제2의, 제3의 희망학교가 가나를 가득 채우길!

완공된 학교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진 찍는 샘 오취리

글: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사진: 월드비전 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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