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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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살배기 시리아 난민 쿠루디의 비극, 그 후 1년.

작년 겨울, 전 세계인을 충격에 몰아넣은 3살배기 쿠루디의 사진 한 장.
그로부터 1년. 피범벅인 얼굴로 울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있는 5살 옴란의 사진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리아 난민의 처참한 삶을 보았습니다.

201610_img_syria_01 중동의 작은 섬나라 레바논. 시리아와 근접해 있어 주민의 4/1 이상이 시리아 난민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도망쳐온 난민들에겐 먹을 것, 머물 곳 하나 없죠. 쿠르디, 옴란과 같은 어린아이들은 전쟁의 상처와 충격을 고스란히 안은 채 방치되어있습니다.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시리아 난민 아동은 3백만 명에 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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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아동을 위한
아동심리지원센터(Child-Friendly Space)”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긴급구호 사태를 겪은 아동들을 위해, 월드비전은 긴급구호지역에서 아동심리지원센터(CFS)을 운영합니다. 여기 레바논에서도 말이죠. 식량, 구호물자 배분뿐만 아니라 레크레이션, 언어 교육 등의 체계적 아동 프로그램들이 운영됩니다. 무엇보다 중점을 두는 점은 아동의 심리 치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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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폭탄이 터지고, 가족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본 난민 아동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앓습니다. “심리적 후유증으로 불안과 고통 속에 있는 아이들이 많아요.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고 관리하며 안정을 찾도록 도와줘야 해요.” 월드비전 CFS의 심리지원 전문가 Alison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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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분은 어때?”

“좋아요! 친구들과 함께 있어 행복해요.” “저는 슬퍼요. 오늘 시리아에 대한 나쁜 소식을 들었거든요.” 아이들은 저마다 표정 카드를 손에 들고 이야기합니다. 감정을 건강하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죠. 또한, 그림 그리기, 율동 등을 하며 친구들과 유대감을 쌓고 직원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심리적 안정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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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들이 CFS에 나오기까지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CFS 매니저 Bassima씨도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죠. “많은 부모님께서 우리 아이는 이렇게 놀 시간이 없다고 하세요. 일터에서 감자라도 캐며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고요. 실제로 일하느라 결석하는 아동들이 많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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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모님들도 막상 CFS에 한번 와보시면 ‘아이들이 어찌나 행복해하는지, 이곳에 계속 보내겠다’고 하세요.” 센터 가득히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노래와 웃음소리 때문일까요? CFS에서 만큼은 시리아 아이들도 난민이나 분쟁피해자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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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날지 모르는 난민으로서의 삶”

시리아 내전이 발생한 지도 벌써 5년. 난민을 둘러싼 국가 간의 대립과 의견충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 앞에서도 우리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상처와 아픔을 딛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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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사진.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긴급구호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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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달인, 11살 정훈이

편의점의 달인,11살 정훈이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정훈이(가명)는 편의점 메뉴의 달인입니다 4천원으로 한 끼를 때우는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죠 삼김(삼각김밥) 둘에 우유, 크림빵과 흰우유, 가끔 푸짐한 편도(편의점도시락)…G편의점, C편의점, 7편의점..어디서든정훈이는 4천 원짜리 맛있는 밥상을 즐깁니다 그래서인지 편의점들도정훈이가 반갑습니다 뉴스에서는, ‘어떻게 아이가 4천원으로 한끼를 먹을 수 있냐’ 하지만 괜찮습니다. 영양에서 최악이라고 하지만정훈이는 괜찮습니다 이 카드만 있으면, 4천원 한도 내에서 한끼를 마음껏 사먹을 수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정훈이도 가끔 고민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삼김(삼각김밥) 이틀 연속 먹으면 머리 아픈데… 크림빵은 먹으면 바로 꺼지고.. 동네 애들 만나면 창피해서 어떡하지?카드결제 오류 나면 안 되는데…샌드위치1개 1700원에 흰우유 하나면..2600원!근데 알바횽이 나 몰라보면 어캄?할머니 것도 사줘야 하는데….아침에 2천 원어치만 먹고 저녁에 6천원?걍 아침 굶고 학교 급식 많이 먹을까?지금 굶음 이따 축구할 때 힘 없는데… 월: 편의점, 초등학교 점심급식(무상), 중국집 화: 편의점, 초등학교 점심급식(무상), 분식집 수: 편의점, 초등학교 점심급식(무상), 편의점 목: 주민센터 도시락, 초등학교 점심급식(무상), 편의점 금: 굶음, 초등학교 점심급식(무상), 편의점 토: 늦잠 자서 굶음, 급식센터, 편의점 일: 할머니랑 라면, 친구가 사줌, 분식집 그리고 오늘, 정훈이는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손 안에는 한 끼 4천원 한도아동급식카드,아는 사람 없을 때얼른 사서 나와야 합니다 사진 : KBS 9시뉴스화면 캡처, 환경정의 보고서, 각 편의점 광고배너 캡처, 월드비전

손 안에는 한 끼 4천원 한도 아동급식카드, 아는 사람 없을 때 얼른 사서 나와야 합니다.

글. 방승빈 디지털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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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담요 한 장이 만든 놀라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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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을 침대에 눕히며 담요를 덮어주는 엄마 그레이스

2살의 엠마누엘과 엄마 그레이스는 아프리카 잠비아 동부지역 내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월드비전의 다양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따듯한 사랑의 담요를 보급하는 사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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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의 사업이 진행되기 전, 그레이스의 가족은 담요가 없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아들 엠마누엘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감기에 걸려 잦은 기침과 콧물을 흘리게 되었고, 그런 아들을 보며 엄마 그레이스는 아이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미안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월드비전 ‘사랑의 담요’가 그레이스 가정에 제공되고 난 이후, 가족에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사랑의 담요를 받기 전에는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었어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때 아주 얇은 천 말고는 덮어줄 게 없었고, 천이 얇았기 때문에 충분한 온기를 보존해주지 못했었죠. 그래서 아이들이 자주 감기에 걸리곤 했어요.” – 그레이스

월드비전 사랑의 담요를 받은 이후, 그레이스는 더 이상 차가운 밤공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담요 덕분에 따듯하고 안전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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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으로부터 담요를 제공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담요를 사용해 엠마누엘을 덮어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엠마누엘이 기침을 하거나 콧물이 나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덕분에 저도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 있었지요.” – 그레이스

담요를 제공받아 얻는 또 다른 이점은 담요를 사기 위해 모아두었던 비용을 가정 살림에 필요한 다른 물품(음식, 생필품)을 살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부부가 담요 구입에 필요한 비용을 모으고 있을 때, 월드비전에서 2개의 담요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부부의 다양한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었어요.” – 그레이스

그레이스는 담요를 사기 위해 모은 비용으로 가정에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하고,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필요한 교육비를 지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드비전에서 제공받은 담요는 가정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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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사랑의 담요를 통해 혜택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은 애론 짐바(Aaron Zimba)입니다.

애론은 잠비아 동부 엔데케(Ndeke)지역 내 보건소를 책임지고 있는 의사입니다. 엔데케 지역에서는 임산부가 출산 시 집이 아닌 보건소에서 출산을 하게 되면 사랑의 담요를 제공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지역 내 임산부들에게 보건소를 통한 출산을 장려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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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에서 제공받은 담요를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

“과거에는, 임산부들이 가정에서의 출산을 보건소에서의 출산보다 안전하다 생각하고 선호했습니다. 그리고 임신 기간 중 보건소에서 진료와 출산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나서도 필수적인 예방접종에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었죠. 이러한 상황에서 담요를 이용한 보건소 출산 장려 사업은 지역 내 임산부들에게 보건소 방문, 진료와 예방접종의 필요성을 알리는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가져왔고, 출산 전 보건소 방문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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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에 꼭 필요했던 작은 담요 한 장처럼

여러분도 아이와 가정에 꼭 필요한 다른 작은 선물로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1만 원으로 희망을 선물하기

 

글 : 아가타 말리(Agatha Mali) / 월드비전 잠비아
사진 : 아가타 말리(Agatha Mali) / 월드비전 잠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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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와 함께 할 모술(Mosul)의 크리스마스

IS와 함께 할 모술(Mosul)의 크리스마스 모술(Mosul)은 이라크 제2의 도시 4천년 전, 아시리아 제국 때 생겼어요 원단 종류인 모슬린(Muslin)의 고향인데 시스루 룩, 아기 이불 소재로 유명해요 모술 시민 170만 명은 4대 문명 발상지, 티그리스강을 끼고 평화롭게 살았는데요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2003년 이라크전쟁, 2014년 IS 점령 때문이에요 (분홍색 : IS점령지) 특히 IS는 모술을 세력 거점으로 삼고 공개처형, 재산몰수 등 공포통치를 벌였어요 때문에 수십 만 난민이 모술을 떠나, 넓은 사막을 건너 난민캠프로 향했죠 참다 못한 이라크군과 쿠르드 자치군이 지난 10월 모술 탈환 작전을 시작했어요 이에 IS는 강에 원유를 방류해 공습을 막는 등 철저히 준비했어요모술 시민을 동원한 인간방패, 자살폭탄, 위장폭발물, 화학무기도... 모술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합니다 그나마도 재산 전부를 IS에 바쳐야 가능해요 전투 시작 47일 째, 난민은 최대 100만 명 이상 늘어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는 것. 난민 캠프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난민들은 물과 음식, 의료진, IS트라우마의 심리치료가 무엇보다 간절합니다 게다가 겨울이 옵니다. 평균 1℃지만, 중동 사람들에겐 정말 혹독한 계절이에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모술을 기억해주세요 다음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보내도록 그리고 모술 난민 캠프에 당신의 손길을 보내주세요

모술 시민 170만명은 평화롭게 살았는데요, 지금은 지구에서 가장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모술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합니다. 그나마도 재산 전부를 IS에 바쳐야 가능해요.

모술 난민 캠프에 당신의 손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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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노력을 다 해 본 적이 있나요?

8월, 폭염 주의보 문자로 요란하게 핸드폰이 울리던 한 여름날, 스물 한 살 청년 건희를 만났습니다.

여덟 살, 홀로 형제를 키우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단둘이 연고도 없는 낯선 곳으로 가게 된 건희. 그룹홈에서 지내기에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를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지만, 서울 상위권 대학과 광주 교대에 복수 합격하여 지금은 교사를 꿈꾸는 어엿한 교대생이 되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들을 이루어낸 건희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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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이후 어디서 어떻게 지내게 되었나?

“어머니가 8살 때 난소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일상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는데, 병원에 가서 먹고 자고 했던 게 유독 기억이 나요. 어렴풋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제게 너무도 큰 사건이었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가정위탁지원센터를 통해 목포로 오게 됐는데, 아는 사람이라고는 동생 뿐이었어요.”

“지금 지내고 있는 그룹홈에 오기까지 주로 교회 집사님들 댁에서 지냈어요. 제가 호적 등록이 안 되어 있어 등록 이후에 학교도 다닐 수 있게 됐고요. 대부분 정말 잘 해주셨는데 그래도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말 한 마디가 조심스럽고, 늘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곤 했어요. 지금은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많이 불안해 했던 것 같아요.”

공부를 굉장히 잘 했는데, 학창 시절 어떻게 공부를 했고, 어떤 마음으로 공부를 했는지 궁금하다.

“계기는 단순했어요. 남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뭐 하나라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많은 분야가 있지만 돈을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게 공부였어요. 게다가 주위 분들도 많이 독려해 주셔서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었어요.”

“공부 방법은 복습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시간이나 실력이 된다면 미리 예습을 하는 거예요. 말로 들으면 쉬워 보일지 몰라도 하다 보면 귀찮기도 하고 이 방식대로 한다고 해서 눈에 띄는 변화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쉬우면서도 어렵죠. 저라고 이게 쉽지는 않았어요. 주위에는 늘  놀 것, 볼 것, 먹을 것 등이 많은데 청소년들이 그 유혹을 뿌리친다는 게 쉽진 않죠. 그래서 자기의 마음가짐 즉 의지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해요.”

건희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며 공부를 해야 동생도 챙길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해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고 해요. 학교 선생님들도 건희의 어려운 형편을 보면 한 번 놀라고, 건희의 끈기와 열심을 보면 두 번 놀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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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희와 동생 유진이 받은 상장들

교사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사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무원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에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연세대 행정학과에도 각각 최종, 1차 합격을 했었어요. 그런데, 문득 저처럼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되어 더 관심을 가져주고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학교에서는 학교장 추천으로 서울대 말씀도 해 주셨었고요. 마침 연세대와 광주 교대 면접 날짜가 같은 날이었는데, 결국 교대를 선택하게 됐어요. 오랜 기간 꿈꿔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대를 택하길 잘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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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부모 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 교사야말로 제 2의 부모라고 생각하고, 교사의 영향력은 그만큼 크고 중요하거든요.”

교사라는 직업적인 부분 외에,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떤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은지?

“세상에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자라온 환경이 남들과는 다르지만 저는 그것을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세상에 기죽고 살았지만… 그리고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동생이 유일한 혈육인데, 특별하고 끈끈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지금 동생이 고3 이예요. 수능이 채 100일도 안 남은지라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해요. 동생은 저와 성격이 많이 다른데, 저보다 훨씬 생각이 긍정적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때 그런 기억이 있어도 별 내색 없이 지내고 있고 저랑도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죠. 동생이 공부를 잘 하는 편인데, 어떤 조언을 주기보다는 그냥 동생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즐겁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진로에 대해서도 본인이 잘 알아서 하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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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교회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건희 “초등학교 교사는 여러 가지를 다 잘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어 참 좋아요.”

생활 신념이나 좌우명이 있는지?

“제 좌우명은 계속 바뀌는데 기본적으로는 ‘최선을 다해서 살자’예요. 후회 없이 사는 게 저한테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든 조금의 후회는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그래서 후회를 덜 하려면 열심히 하는 것,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노력은 자기 자신을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학창 시절 제 자신을 투자했기 때문에 여러 길 중에서 제가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온전히 제가 제 자신을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려요. 후원자님도 부양할 가족이 있으신데 저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받았던 사랑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 주고 싶어요. 지금 다문화 가정 멘토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형편이 어렵고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돕겠습니다. 후원자님이 주셨던 사랑 헛되지 않게 열심히 살아가는 건희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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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희

노력은 자기 자신을 투자하는 것이라는 건희의 말에, 나 자신을 얼마나 온전히 던져 투자했는지, 또 그 투자를 통해 얼마나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냈는지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나누며 후원자님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는 건희는 그동안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어린 시절 많은 부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건희가 앞으로 마주할 미래의 자양분이 되고 단단한 토대가 되어 줄 것입니다. 어렵지만 주어진 환경 가운데 최선을 다하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스물한 살 청년의 오늘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건희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글/사진. 신호정 디지털마케팅팀

 

국내아동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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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의 선물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특별한 선물, 월드비전 ‘희망의 선물’이 도착했어요! 아이들이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파울리나 오코(12) / 탄자니아 새끼 염소를 선물로 받았어요! 염소가 튼튼하게 자라 새끼를 낳을 때까지 열심히 염소를 돌볼거예요! 조비아 아다니스(6) / 우간다 선물로 받은 망고나무 묘목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아빠와 함께 나무를 돌보고 싶어요! 나무가 쑥쑥 자라고 나면 주렁주렁 열린 망고 열매를 볼 수 있겠죠? 알와요 제니퍼(9) / 우간다 모기장을 선물로 받았어요! 이제는 모기와 말라리아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어요! 샘 오토비(11) / 에티오피아 캄캄한 밤에도 환한 빛을 비추는 태양열 램프를 선물로 받았어요! 이제 어두운 저녁에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해요. 콰치 후잉 리(10) / 베트남 매일 닭이 낳는 알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고 남는 알을 시장에 팔아 수익을 얻을 수 있어 행복해요! 아민다 알레그레(6) / 보스니아 2년 전 받았던 돼지 한 마리를 통해 열네 마리의 새끼를 얻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집에 수익이 늘고 저도 학교에 갈수 있게 되었답니다! 한 가정에 전달된 희망의 선물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 놀랍지 않으신가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작지만 큰 변화에 함께 동참해 주세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희망의 선물

한 가정에 전달된 희망의 선물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 놀랍지 않으신가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작지만 큰 변화에 함께 동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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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자란 아이의 희망, 1kg 더한 엄마의 사랑

‘이렇게 예쁜 천사가 세상에 또 있을까?’ 미소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주는 우리 아이들. 하지만 때론 엄마, 아빠를 눈물짓게 해요. 물을 싫어하는 아이 목욕시킬 때. 주사 무서워하는 아이 예방 접종하는 날. 밥상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맘마 먹일 때.

“그리고 아이의 신체발달을 측정하는 건강검진할 때”

건강검진은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낯설게 생긴 줄자와 체중계에 왈칵 울음을 터트린대요.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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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리 모여서 줄을 서세요!” 깊고 진한 향의 커피 원두로 유명한 나라, 아프리카 부룬디(Burundi). 마을 광장에 엄마 손을 꼭 잡고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이 가득합니다. 오늘은 새로운 마을 아이들이 월드비전 후원 아동으로 등록하는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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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몇 센티(cm)나 컸나요?”

‘아동소개 사진찍기, 아동기록카드 작성하기, 부모님과의 면담’ 등 후원 아동이 되는 데 필요한 절차 중 하나가 바로 건강검진입니다. 아이의 키와 몸무게, 영양 상태 등을 상세히 기록해 체계적 건강관리를 위한 초석을 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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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하나면 몸무게와 키의 영점 소숫자리까지 한 번에 나오는 디지털 측정기에 익숙한 우리에겐, 조금 생소한 광경이죠? 전자기기가 발달하지 않은 마을에서는 기다란 나무 판에 숫자를 표시해서 키를 재요. 튼튼한 천과 저울만 있으면 아이의 체중 재기도 뚝딱 가능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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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록된 수치를 바탕으로 월드비전은 아이들의 영양실조를 발견하고, 발달단계에 맞는 영양치료를 진행합니다. 실제로 부룬디의 기타바 지역 사업장에서는 월드비전의 보건영양사업을 통해 5세 미만 저체중 아동의 비율이 2014년도 33.0%에서 2015년도 21.2%로 크게 감소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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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법을 잘 몰라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현지 식재료를 활용한 균형 잡힌 영양죽 만들기 수업, 모유수유 교육, 질병에 대처하는 영양보건교육…’ 정말 다양하죠? 세상 모든 아이가 질병과 굶주림에서 자유로운 날을 향해, 다 같이 외쳐볼까요~?

“얘들아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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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사진.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해외아동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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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아동에 의한, 아동을 위한 세상을 꿈꾸며!

“ 깜언(감사합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베트남 인사말.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듯합니다. 지난 8월 2일, 베트남 웅고꾸엔(Ngô Quyền)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어요. ‘국제 청소년의 날(8/12)’을 맞이해 아동권리 국내대표 아동들이 응고꾸엔 지역의 Youth Club 친구들을 찾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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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9개 지역(강원, 경기, 광주전남 등)의 대한민국아동총회 월드비전 지역대회 및 아동권리 위원회에서 선발된 22명의 아동과 22명의 응고꾸엔 유스클럽 아동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아이들은, 2015년부터 2030년까지 전세계 나라들이 함께 지켜야 할 약속인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와 아동권리(UNCRC)를 주제로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죠. 대한민국과 베트남이라는 국경을 넘어 머리를 맞대고 ‘아동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함께 고민했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참여 아동들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 속으로
함께 가실래요
? GO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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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 변화되었어요!

베트남에 다녀오고 저도 덩달아 밝아진 것 같아요. 요즘은 예전과 달리 사소한 것에 화내지 않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바뀐 저를 많이 발견하게 돼요. 이번 활동을 통해 베트남의 문제점을 바꾸려는 것뿐만 아니라 저의 문제점도 바꿀 수 있었어요. – 이승원(충북 아동권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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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가치관이 확립되었어요!

우리도, 베트남 친구들도 딱히 영어를 수준급으로 잘하지는 못했지만,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기뻤어요. 더운 하루였지만 밝게 웃을 수 있었죠. 그리고, 절실한 아동 인권 보호를 바라는 베트남 친구들을 보며 깨달았어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보다도 우선시 돼야 하는 건 최소한의 권리를 보호받는 거구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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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단 한 번도 저보다 힘든 사람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세상의 절반은 왜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지’라는 흔한 물음에도 시시하다며 내치곤 했죠. 그런데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 땅의 수많은 한국과 베트남의 아동들은 엄숙히 선서했어요. 모두의 교육이 같아지기를, 모두가 한 곳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그 선서가 이 세상의 모든 땅에서, 모든 태양 아래서 지켜지기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 강현우(강원도 의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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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이 행복한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정책제안문 선택부터 정책시연회, 정책제안문을 전달하는 과정까지. 모두 베트남 친구들과 같이 해보았어요. 한국과 베트남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발표를 할 때는 ‘베트남 친구들도 우리와 똑같이 아동에 대해 관심이 많고 여러 활동을 하고 있구나!’ 알게 되었죠. 새롭기도 했고 친구들과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어요. – 이고운(강원도 의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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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베트남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했어요. 베트남 친구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를 신고 있어서 매우 불리했죠. 실력도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전반전이 끝나고, 베트남 골키퍼가 저에게 와서 공을 잘 던지는 법도 알려주고 ‘골키퍼 장갑을 빌려줄까?’ 물어보았어요. 전에 학교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는 서로 경쟁이기에 그런 모습을 절대 본 적이 없었는데… 인상 깊었어요.  – 신인오(충북 의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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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렇게 할 거예요!

베트남에서의 시간을 통해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일단 해보자.’ 이 세 가지 문장들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유명하신 링컨 대통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저는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아동의. 아동에 의한, 아동을 위한 대한민국, 더 나아가 세계를 만들겠다고!  – 정승환(대전 의장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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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날씨보다 더욱 뜨거웠던 아이들의 열정. 5일 여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아이들은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며 어느새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아동이 함께 그려가는 ‘아동이 행복한 세상.’ 나, 너, 우리 모두가 만들어갈 세상을 기대해 봅니다!

◆월드비전 아동권리 해외현장교육 세상을 향한 우리들의 목소리란? 1. 단순한 교육프로그램이 아닌, 활동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권리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장! 2. 아동이 사전에 직접 준비하고 진행하여 아동의 주체성(자발성)과 참여권을 실현하는 장! 3. 지역이해관계자 초청하여 아동들의 목소리가 담긴 ‘정책제안문’ 전달하는 장! "세.우.리는 UN아동권리협약과 아동권리헌장 참여권에 기반한 국내·외 아동권리증진 프로그램입니다."

 

글. 허현아 국내사업팀
사진. 박수영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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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15년 잘가요 월드비전

고마워요 15년 잘 가요 월드비전

우리가 처음 찾은 썸머 아일랜드는 전기도 들지 않고 학교도, 선생님도 없던 외진 마을 자립의 힘을 키운 15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은 학교에서 신나게 공부합니다. 스리랑카에서도 가장 건조한 섬머아일랜드 물을 찾아 매일 8km를 걷는 아이 반복되는 설사와 구토 이제는 집 앞까지 연결된 깨끗한 물을 마십니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썸머아일랜드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와 기근 위태로운 주민들의 생계 이제는 다양한 소득증대 방식으로 안정적인 미래를 계획합니다. 사두 덕분에 엄마 아빠는 매일 우유도 팔고, 텃밭도 가꾸어요. 저와 동생들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구요. -13살 수두무- [역량강화사업] 지역자치조직 강화 교육 프로그램 진행, 아동모임 지원 15년 전 썸머아일랜드가 꿈꾸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던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4만 명의 주민들과 월드비전이 함께 만든 기적 안에 오늘의 썸머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잘가요 월드비전 한국월드비전 1호 자립마을 썸머아일랜드 이제 썸머아일랜드는 마을 스스로 아이를 지킬 수 있습니다. 월드비전이 생각하는 진정한 후원은 [자립]입니다.

15년 전 썸머아일랜드가 꿈꾸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던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4만 명의 주민들과 원드비전이 함께 만든 기적 안에 오늘의 썸머 아일랜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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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보다 중요한 ‘그것’

국가대표보다 중요한 ‘그것’ “아빠랑 둘이 사는데, 몸이 불편하세요.  커서 대표팀에 뽑히면 좋을 것 같아요.” “믿음이는 꿈이 뭐니?” “국가대표요.” 가난에도 꿈을 지켜온 월드비전 꿈나무들이 가난을 이기고 꿈을 이룬 영웅들 앞에서 자신들의 꿈을 얘기했다.“국가대표” 영웅은 걱정이 들었다. ‘모두 국가대표가 될 수는 없는데...’ 고민 끝에 결심했다. “무조건 부딪혀봐, 중학생 땐 포지션 이것저것 다 해보자. 감독님, 코치님 붙잡고 부탁드려.” 배구영웅 김세진이 월드비전 꿈나무 진욱(가명)에게 어떻게든 흉내 내다 보면, 경기 중에 그 동작이 내것처럼 나올 때가 있어, 그만큼 성장한 거야.” 핸드볼대표 강경민이 월드비전 꿈나무 은비(가명)에게 “언덕에서 속력 낼 수 있으면 너만의 무기가 될 거야. 잊지마, 포기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야.” 마라톤영웅 이봉주가 월드비전 꿈나무 지혜(가명)에게 “급하게 치려 하지마, 범실 적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성공하려면 남들 잘 때도 연습해야 해.” 테니스영웅 이형택이 월드비전 꿈나무 믿음(가명)이에게 “나만의 잡는 법이 있어야 해. 기술은 그 다음이야.  시합장은 너만을 위한 절대적인 자유공간이란다.” 유도영웅 김미정이 월드비전 꿈나무 정현(가명)이.에게 대표팀도, 금메달도 단지 한 순간일 뿐, 실제로는 수많은 고통을 오랜 시간 견디는 것이 스포츠 꿈나무 앞에 놓인 길임을 영웅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의 너도 ‘미리’ 기억하길 바랐다. “도움받는 건 절대로 창피한 게 아니야. 네가 커서 잘되면 도와준 사람들이 뿌듯해한다. 그리고 성공하려면 숨이 찬 것을, 고통스런 것을 이겨내야 한단다.” 문득, 꿈나무만을 위한 조언이 아니라는 생각. 숨이 찬 것을, 고통스러운 것을 이겨내는 것. 혹시, 지금 뭔가 견뎌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 꿈나무들 차례입니다. 당신의 응원을 보내주세요. 글 : 한겨레신문/월드비전 캠페인 ‘내일은 우리가 주인공’ 기사 편집 사진 : 월드비전, flickr, Wikipedia

가난에도 꿈을 지켜온 월드비전 꿈나무들이 가난을 이기고 꿈을 이룬 영웅들 앞에서 자신들의 꿈을 얘기했다.

“국가대표”

혹시, 지금 뭔가 견뎌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 꿈나무들 차례입니다.

당신의 응원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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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 아이들의 꿈과 동행하는 배우 박하선

뽀얀 얼굴에 여성스러운 외모. 때로는 연기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보여준 코믹함까지. 반전매력의 소유자 배우 박하선 씨를 만났습니다. 촬영장을 환히 밝힌 그녀의 미소에선 어떤 구김살이나 역경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는데요. 대화를 시작하며 그녀가 꺼낸 이야기 속엔 생각지 못했던 박하선 씨의 삶이 담겨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진솔했던 그 따뜻한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안녕하세요,
어느덧 데뷔 10년 차인 배우 박하선입니다

“어릴 시절 막연했던 꿈인 ‘배우’가 이제는 직업이 되었네요. 저는 꿈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합니다. 꿈은 우리 삶의 희망이자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은 꿈조차 없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겐 꿈을 그려나갈 기회도 환경도 너무 부족합니다. 그 꿈을 지켜주기 위해선 어른들의 역할과 도움이 매우 중요해요. 여러분과 함께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 용기를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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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이 넘는 이사와 아픈 기억들”

“사실 저도 이사를 스무 번도 넘게 다니며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월세를 살면서 서러울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때때로 집주인 눈치도 보게 되고, 일을 다녀오면 집이 이사를 가서 바뀌어있기도 하고. 항상 불안한 생활에 포근하고 안정적인 ‘우리 집’이 너무 간절했었죠.

어느 날은 급식비를 조금 연체하게 돼서 선생님께서 부르셨어요. 그 모습을 친구들이 보고 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사춘기 소녀에겐 큰 상처였나 봐요. 친구들과는 뭔가 다르게 분리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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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꼭 성공해야지. 돈을 열심히 벌어서 집을 사야지.’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어요. 당시에는 너무 창피하고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부끄럽지 않아요. 돌아보면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이 힘든 배우의 길을 잘 걸어오게 해준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현실 앞에서 좌절되어 버리는 아이들의 꿈”

“우리 주변엔 여전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빠르게 변화되는 세상에서 점점 경제적 격차는 심화되고 있죠. 친구들이 무심결에 말하는 ‘학원, 과외, 어학연수’ 등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더 큰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낍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답답할지 너무 이해돼요.

슬프지만 현실적인 문제들, 특히 경제적인 문제 앞에서 많은 꿈이 좌절돼요.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대학도 가고 싶고 배우가 너무 되고 싶었지만, 연기학원은커녕 생활도 급급한 상황이었죠. ‘꿈을 쫓기보단 빨리 일을 배워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아닐까? 가족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 하는 게 아닐까?’ 계속 고민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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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 힘들어하시는 걸 알면서 모른 체하고 ‘나는 대학에 갈래, 꿈을 향해 갈래’ 이렇게 고집하기가 참 힘들잖아요. 그 마음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럼에도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마’라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 어른들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꿈을 지켜줘야 합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희망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꿈이 뭐가 중요 하느냐고요. 몇 년 전에 아프리카로 봉사를 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느꼈죠. 당장의 물과 음식으로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의 꿈을 지키는 것도 중요함을.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고 자립을 향해 가는 힘이 바로 꿈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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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현실 앞에서,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일을 할 수도, 돈을 벌 수도 없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마음을 지키는 것밖에는요. 뭔가 하고 싶어도 현실의 벽을 혼자 뛰어넘기는 너무 힘듭니다. 그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친구들에겐 희망이 너무 간절해요.

한동안은 저도 바쁘게 일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제 개인적인 삶과 가족을 챙기는데 더 신경을 쓰기도 했었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삶이 더 피폐해져 갔습니다. 지쳐있던 때, 아프리카에서의 따뜻한 나눔의 기억과 학창시절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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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어주고 싶어요”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서 국내 아동 이슈에 관심을 두던 중에 월드비전 꿈 지원 캠페인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꿈’이라는 말에 지금의 제가 10년 차 배우가 되기까지 도와주신 수많은 분들이 떠올랐어요.

문화생활을 즐길 여건도 없던 때에 영화관에 데려가 준 지인.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캐스팅 매니저를 통해 얻게 된 기회. 그리고 대학 진학을 도와준 회사. 정말 하나하나 주변 분들을 통해 만난 기회의 징검다리들을 통해 꿈을 향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아이들의 든든한 언니이자 누나가 되어 꿈을 지켜주려 합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따뜻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세요." - 배우 박하선

글. 김유진 디지털마케팅팀
사진. 재능나눔 탁우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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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따도 돌아갈 곳이 없는 팀

그들은 이미 영웅들이었습니다. 전쟁과 난민의 삶에 용감히 맞섰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난민 수십 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출전하는 ‘난민 대표팀’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 3일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총 10명의 선수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선수들은 리우에서 세계인에게 희망을 전하려 합니다.

 

1. 수영으로 시리아 난민 수십 명을 구한 18세 소녀
(유스라 마르디니, 여자 자유형 200미터, 시리아 출신)

“언니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절대 도와주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고선 바로 자기가 바다에 뛰어들어 보트를 끌고 가는 거예요. 저도 따라 했죠”

10개월 전, 유스라는 언니 사라와 함께 시리아 다마스커스를 탈출했습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향하는 고무보트에 올랐지만 30분 만에 고장 났습니다.  7인승 보트에 탄 20여 난민들은 기도만 드릴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때 유스라가 언니, 다른 3명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수영으로 배를 끌고 가길 3시간여, 마침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습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은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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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시리아 난민(사진 UN)
(아래)그리스 에게 해 위에서 표류하는 시리아 난민(사진 AFP)

고생 끝에 독일에 도착한 유스라는 베를린 시 수영클럽의 도움으로 훈련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유스라는 2012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시리아 대표로 출전했던 유망주였습니다. 재능을 알아본 수영클럽에서 때마침 모집 중이던 ‘난민 대표팀’을 소개해줬고, IOC는 유스라의 기록과 사연을 검토해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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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밝은 표정의 유스라는 바다에서 보트를 끌고가며 헤엄치던 때를 설명하면서도 최대한 그 장면이 슬퍼 보이지 않길 바랐습니다.(사진 로이터)
(우) 독일 베를린의 수영클럽에서 연습하는 유스라 (사진 IOC)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난민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고생을 극복하며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싶어요”

유스라는 올림픽이 끝난 후, 베를린에 머물면서 선수의 삶을 이어가려 합니다. 세월이 흘러 상황이 좋아지면,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 수영 기술과 삶의 경험들을 나눠주고 싶어 합니다.

 

2. 유도로 전쟁의 상처를 극복한 두 콩고 남녀의 새 도전
(포폴레 미셍가, 남자 유도 90kg 이하급 / 욜란데 마비카, 여자유도 70kg 이하급, 모두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2013년 9월,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 대회가 끝난 뒤, 포폴레와 욜란데는 숙소를 탈출했습니다. 모국인 콩고로 귀국하는 대신 브라질에 남기로 했어요. 콩고에서 유도 코치는 경기에서 지면 둘을 무조건 감옥에 가뒀고, 종종 내리 이틀을 굶기기도 했습니다. 1998년 내전 이후, 전투와 총격이 항상 벌어지던 모국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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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란데(좌)와 포폴레(우, 사진 IOC)

“내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은 실종됐어요. 어떻게 살아갈지 막막했어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곳이었어요.”(포폴레)

너무 많은 전쟁과 죽음을 본 포폴레는 유도를 통해 무서움과 아픔을 잊기로 했습니다

“전쟁을 기억하면 시합에서 항상 졌어요.
잊으면 항상 이겼어요.”(포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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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에서 유도 연습 중인 포폴레(사진 IOC)

리우 현지의 천주교 자선단체 카리타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브라질 유도 대표팀과 함께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낙법을 알려주는데, 포폴레가 절대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거예요.
심지어 손으로 몸을 잡아당겨 기술을 거는 것도 밀쳐냈어요.” (베르나르지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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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란데의 훈련을 지도하는 베르나르지스 코치(사진 오른쪽) 베 코치님도 ‘난민대표팀’ 소속으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사진 IOC).

콩고와 브라질의 유도 스타일이 달랐던 것입니다. 콩고에서 유도를 전투의 일종으로만 배웠던 포폴레와 욜란데는 점차 정식 유도 스타일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바로 브라질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포르투갈어를 하나도 몰라서 고생했어요. 2년 지난 지금 주위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살아요. 배고파도 참아야 해요.”(욜란데)
“동네 쓰레기장에 버려진 운동화를 신고서 훈련해요.”(포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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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폴레와 욜란데에게 유도는 전투가 아니었지만, 삶은 전투였습니다(사진 IOC)

둘은 리우에서 공장일, 트럭 인부 등 마다하지 않고 일했지만 난민 신분이라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포폴레는 브라질 여자와 결혼해 13개월 된 아들 엘리아스가 있습니다. 욜란데는 친구 집에 얹혀삽니다. 둘은 난민을 대표해 최선을 다짐하면서도 올림픽을 향한 솔직한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당장 내일모레 먹을 음식이 없어요.”(포폴레)
“20년 넘게 연락이 끊어진 가족이 콩고에서 TV로 절 볼지도 몰라요.
TV 카메라에 대고 제 전화번호든 뭐든 다 알려줄 거예요.”(욜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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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삶의 조건에서도 둘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사진IOC)

“메달을 따서 세계 난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 후엔 브라질에서 평생 살래요.”(포폴레)

 

3. 14년 난민촌 생활 중에 얻은 올림픽이라는 행운
(로즈 로코넨, 여자 육상 800미터 / 파울로 로코로, 남자 육상 1500미터, 모두 남부 수단 출신)

로즈가 가족들과 함께 남부 수단을 탈출한 때는 2002년, 8살 때였습니다. 수십 년 내전으로 200여만 명이 숨진 뒤의 일이었어요. 케냐 북부 카쿠마 난민촌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로즈는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지 몰랐습니다.

“고등학생 때 난민촌에서 육상을 시작했어요.
달리는 게 정말 좋았어요”(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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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케냐 북부의 카쿠마 난민촌, 소말리아, 수단, 우간다 등지에서 온 18만 명 난민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사진 알자지라 인터넷)
(아래) 인터뷰 중인 로즈 (사진 IOC)

파울로도 14살 때인 2006년, 남부 수단을 떠나 카쿠마로 피신했습니다. 난민촌 초등학교에서 육상을 시작했습니다.

“카쿠마에서 연습하던 선수 일부는 신발을 못 구해 맨발로 달렸어요”(파울로)

지난해부터 두 선수는 케냐 여자 마라톤 영웅 테글라 롤로프가 설립한 재단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난민촌에서 맨발로 달릴 필요가 없어졌어요. 행운은 리우 올림픽으로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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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케냐의 여자 마라톤 영웅 테글라 롤로프가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강연하는 모습 (사진_광주 유니버시아드) 테글라는 난민 대표팀 선수단장으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우)리우 올림픽 출전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로즈(왼쪽 두번째)와 파울로(맨 오른쪽), 푸 비엘(맨 왼쪽)과 제임스 냥(가운데)도 난민 대표팀에 뽑혔습니다(사진테글라롤로프평화재단)

“부모님들은 아직 남부 수단에 계세요. 형제들은 케냐에 있고요.
우승해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하고 싶어요. 그다음엔 주변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로즈)
“우리가 난민들도 올림픽 출전했다고 알리면, 사람들이 움직일 거예요.
우승해서 저 같은 다른 선수들을 돕고 싶어요”(파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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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즈(사진 난민대표팀 페이스북 페이지)
(우)파울로(사진 IOC)

지난 3월, IOC는 각국 올림픽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43명의 난민 대표팀 후보를 선정했고, 3개월 심사를 거쳐 10명을 선발했습니다. 수영 2명, 유도 2명, 육상에서 6명을 뽑았는데요. 선수들은 개막식 당일, 올림픽 깃발과 함께 입장할 예정으로, 개최국인 브라질 바로 앞 순서를 배정받았습니다. IOC는 리우 올림픽 이후에도 이들을 후원할 예정입니다.

월드비전은 지금까지 시리아 난민 110만 명, 남부 수단 60만 명, 콩고 난민 85만 명을 위해 긴급구호활동을 진행했거나 진행 중입니다. 이들과 함께 전 세계 4천만 난민들이 가슴속에 희망을 품도록 ‘난민 대표팀’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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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난민대표팀 선수들(사진 IOC 사진 편집)

 

페이스북 ‘난민대표팀’ 페이지(영문)로 응원하러 가기 월드비전 긴급구호사업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