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25시간,
거리만큼 마음도 멀었던
아프리카“
“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르완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조차 계속 고민했어요. 물음표를 안고 25시간 만에 도착한 르완다는 참 아름다웠어요. 그때 누가 그러더라고요.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걸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슬프도록’이라는 표현이 와 닿지 않았어요.”
낯선 마음으로 찾은 아프리카 르완다.
그곳에서 13살 소년 이노센트를 만났다.
“좁고 굽이진 길을 지나 이노센트를 만났어요. 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11살 여동생을 홀로 돌보는 열세 살 소년이었어요. 온종일 땅을 곡괭이질하고 벽돌을 날라도, 남매는 제대로 된 한 끼조차 먹지 못한대요.”
“이노센트가 선물해 준
세상 최고의 진수성찬“
“산에 나는 이름 모를 풀들을 주식으로 먹고사는 남매의 현실이 보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이노센트가 준비한 그 풀 죽을 함께 먹는데, 사실 카메라가 켜져 있어서 첫 숟갈을 뜬 것 같아요. 두 번째 숟갈은 정말 역하더라고요.
그렇게 세 번째 숟갈을 먹는 순간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어요. ‘작고 여린 아이들도 이런 음식을 매일 먹고 살아가는데, 아이들을 지켜주겠다던 내가 먹기 힘들어하는구나.’
“그때부터, 풀을 씻고 호호 불을 지펴 정성껏 만든 이노센트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더 맛있게 먹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진심이 통했는지 이노센트도 ‘자기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어 고맙다’ 하더라고요.”
“그 음식은,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진수성찬이었습니다.”
흙 마당의 단출한 나무 의자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고 온기를 나누며,
조성모의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마음이 저몄던 건, 아이들이 풀을 먹으면서도 이조차 먹지 못하는 친구들을 걱정한다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계속 물음이 떠올랐어요.
그러며 제 마음속에 조그마한 소망이 생겼어요. 아이들에게 삼촌이 되어주자. 허락되는 대로, 인연이 닿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의 ‘엉클조’가 되어주자.”
“가수 조성모에게 생긴
새로운 이름, 엉클조“
“굶주림과 가난보다 더 힘든 것은 ‘무관심’이에요. 아무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함께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어요. ‘나눔에 대해서 참 오해했었구나.
“나눔이라는 건 금전적인 도움을 넘어서,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것이었어요. 관심, 사랑 그리고 기억하는 마음으로 함께하는 것.”
남은 30년, 40년의 삶을 어떻게 살지,
조성모는 아이들과 마주 잡은 손에서 찾았다.
“20년 가까이 가수 생활을 하며,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박수받는 일이 어느새 익숙해졌어요. 르완다에 와서 보니, 호흡하는 매 순간, 꿈꾸던 삶을 누리는 순간, 가족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순간, 모두가 기적 같은 시간이더라고요.
르완다 아이들에겐 제가 누리는 것의 십 분의 일만 누려도 기적이 찾아오는 걸 텐데. 전 너무 몰랐어요.”
“제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 준 게 아니에요. 아이들이 저의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마음에 덮여있던 때를 벗겨주고 모난 마음을 둥글게 깎아 줬어요.
가수, 라디오 DJ, 프로듀서, 정말 바쁘게 살았지만 뚜렷한 목표나 소망이 없었던 제가, 이곳 르완다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돌아갑니다.”
“앞으로 제 삶은,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글. 커뮤니케이션팀 김유진
사진. 디미어팀 김동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