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태어나,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한 스무 살 청년.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의 저자 임하영 군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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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기근, 그 모든 시련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스무 살의 눈으로 바라보고 기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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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 왔다”

5시간의 비행과 5시간의 기다림, 또다시 9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나이로비는 삭막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350km 떨어진 마랄랄(Maral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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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붉은색 대지가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표면은 쩍쩍 갈라져 있었고, 보이는 식물이라고는 길쭉하고 가시가 많은 나무밖에 없었다.

“원래는 소가 100마리 있었는데 역대 최악의 가뭄 때문에 50마리로 줄었어요. 절반이 죽은 셈이죠. 그나마 남은 소들도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을 뿐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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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한 무리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웅덩이에 도착했다. 10리터 혹은 20리터들이 물통 제리캔을 하나씩 들고, 쭈그리고 앉아 흙탕물을 열심히 퍼서 담았다.

그중 눈동자가 고즈넉한 어떤 친구가 눈에 띄었다.
올해 13살이 되었다는 솔로몬.

하루에 2번씩 여기서 물을 긷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의 물은 깨끗하지 않기에 매일 11km나 떨어진 강에 가서 물을 길어야 한다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도 돌아오면 오후 4시가 넘기 일쑤. 그때마다 학교는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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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에 저는 물을 길러 가야 해요. 10리터들이 제리캔을 짊어지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면 어깨가 너무 아파요. 밤에 잠도 잘 못잘 정도예요. 제 밑에 동생이 여섯 명이나 돼서 일일이 또 챙겨야 하죠.”

솔로몬의 아버지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가뭄까지 겹치면서 원래 200마리에 이르던 염소는 이제 10마리로 줄었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비,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비는 곧 아이에게 기회이자 미래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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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만나고 난 뒤,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왜 똑같은 시대에 똑같은 세계를 딛고 있는데,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할까. 이들의 생경한 삶을, 그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인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여태까지 내가 사는 사회, 내 곁의 사람들만 지키고 돌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짧은 생각이었다. 솔로몬의 옅은 미소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가장 열악한 곳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케냐에 도착하자마자 절망적인 상황을 연이어 목격했던 나는, 사실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오늘은 이런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는데, 내일은 얼마나 더 비극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될까?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다르다고 했다.

케냐 방문 중 가장 희망찬 날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월드비전 멤버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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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가슴이 절로 벅차올랐다. 사람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했고, 곳곳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 여기에는 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9월에 완공된 이곳의 식수펌프는 1시간에 24,000리터의 물을 끌어 올릴 수 있고, 앞으로도 30년간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브라보! 케냐 월드비전 담당자는 한국의 후원자들 덕분에 수원을 찾고, 우물을 파고, 펌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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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여한 바가 아무것도 없지만, 바로 그 한 가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뜨겁게 환영 받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변화를 이야기했다. 식수펌프가 생기고, 죽어가던 가축들이은 생기를 되찾았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으며, 이제는 장장 6시간 동안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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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물을 운영하는 주체는 마을 주민들이 꾸린 식수 위원회. 뜻밖에도 그 위원장은 27살 청년 더글라스였다.

“마을 젊은이들과 함께 케일, 양배추, 당근, 양파, 토마토 등을 심어서 수익을 창출할 거예요. 물만 있으면 사계절 농사도 문제없으니까요!”

물의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구나 싶어,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나에게 주어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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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사흘간 목격했던 장면,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보고 들은 이야기.

나는 깨달았다.

가장 비참한 곳에도, 가장 열악한 곳에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친 풍랑에도 온몸을 내던져 등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맥없이 주저앉은 사람들이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삶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간디는 말했다.
“이 세상에서 보기 원하는 바로 그 변화가 되어라”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에 맞서,
지금 이 순간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은 나의 숙제이자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글. 임하영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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