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나만요니 사업장의 첫 남자 미용사 알란의 앞날을 응원한다.

[후원아동 이야기] 우리 마을 1호 남자 미용사!

“어서 오세요~.”

상냥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고 다시 손님의 머리를 손질한다. 18살 후원아동 알란은 올해 1월부터 아프리카 우간다 음발레 시내의 ‘슈퍼스타’라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의 이혼 후 빠듯해진 가정형편에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알란. 하지만 더 큰 슬픔이 겹쳐 왔다.
“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남매를 돌보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알란을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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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월드비전 직원 지오프리가 찾아왔다. “딱한 사정을 들었어.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을 위해 월드비전 기술·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알란도 기술을 배워보는 건 어때?” 알란은 그 제안이 너무도 고마웠다.
“월드비전은 꼭 엄마 같았어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제 손을 잡아주었거든요.”

자신의 미용실을 여는 그날까지 새로운 미용기술을 연마하고 싶다는 알란.

자신의 미용실을 여는 그날까지 새로운 미용기술을 연마하고 싶다는 알란.

청소년 직업훈련 프로그램에는 신발 만들기, 재봉, 오토바이 정비 등 다양한 과목이 있었지만 그의 흥미를 끈 것은 ‘미용’이라는 분야. 미용 과정을 택한 25명의 아이들 중 유일한 남자아이였다.

“사람들 시선이 가장 힘들었어요. 남자가 미용 일을 하느냐고 친구들이 놀려댔지요.” 그만두려고 할 때 그의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은 미용 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이자, 알란이 지금 일하는 미용실의 사장님 리즈 씨였다.

“25명 중에 늘 상위 5명 안에 들 정도로 실력이 좋은 데다 참 성실하고 바른 아이였어요.” 3개월간의 훈련이 끝나고 리즈 선생님은 눈여겨봤던 알란을 스카우트했다.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미용사가 된 제자와 선생님.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어려움을 딛고 당당히 미용사가 된 제자와 선생님.

알란의 따뜻한 태도와 솜씨가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누구나 아는 유명 인사 ‘나만요니 1호 남자 미용사 ’가 되었다. 알란만 찾는 단골손님도 10명으로 제법 늘었다. 단골손님 세이다씨는 알란의 칭찬을 늘어놓는다.
“파마약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도 할 텐데 그런 내색 한 번 없이 언제나 상냥하게 손질을 해줘요. 벌써 4번째 알란을 찾아왔다니까요.”

단골손님의 머리를 땋고 있다. 장장 네 시간이나 걸리는 일이다.

단골손님의 머리를 땋고 있다. 장장 네 시간이나 걸리는 일이다.

“미용사라는 길을 택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손을 거쳐 멋지게 변신한 손님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기분 좋은 자신감은 또 다른 꿈을 낳았다.
“언젠가 음발레 시내에 제 미용실을 차리고 싶어요. 또 다른 꿈은 바로 저처럼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친구들에게 미용 기술을 알려주는 일이에요.”

나만요니 사업장의 첫 남자 미용사 알란의 앞날을 응원한다.

나만요니 사업장의 첫 남자 미용사 알란의 앞날을 응원한다.

알란은 어딘가에서 미용사를 꿈꾸고 있을
남자 후배들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여자 남자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포기하지 말고 노력해서
자기가 꼭 하고 싶은 걸 해요.”

부단히 노력해온 알란의 삶에서 슈퍼스타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글. 하경리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윤지영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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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마음으로 쓰는 편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누구든 쉽지 않은 인생길에서 느닷없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자신이 참 보잘것없이 느껴져서 괴로울 때, 넘어지고 쓰러질 때, “괜찮아. 다시 일어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 또 “고맙습니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싶은 날이 있다.

 

즐거운 나의 집,
월드비전

올해 대학생이 된 지혜가 월드비전을 처음 만난 건 10년 전, 초등학생 때였다. “엄마가 월드비전을 알게 되면서 복지관에 나오게 됐어요.”

초등학생 때는 후원자님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사진을 찍고, 중학생이 된 후에는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그리고 주말까지 복지관에 와서 친구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꿈을 꾸었다.

“고3 때 성적이 떨어져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복지관에 오면 예전부터 알던 친구들을 만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어요. 또 월드비전 선생님들의 격려가 위로가 되더라고요.”

지혜에게 복지관은 참 편하고 마음이 치유되는 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이 된 후에도 멘토링 봉사를 신청해 복지관에 나오고 있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드림스쿨 활동에 참여하면서 멘토링을 해주시는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어요. 직장생활로 바쁘실 텐데 우리가 꿈을 찾아가길 바라며 도와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지혜가 드림스쿨을 통해 얻은 것은 꿈과 진로를 찾은 것 이상이었다.

 

늘 처음처럼,
한결같이,
꿈을 향해

수학과 과학을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는 지혜의 꿈은 중학교 때까지 과학교사였다. 과학중점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다양한 활동을 하며 새롭게 발견한 꿈은 ‘전자공학도’. 확고한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온 지혜는 올해 인하대 공대 새내기가 되었다.

“드림스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한양대 미래자동차연구소에서 무인자동차를 본 거였어요.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서 전자회로가 활용되는 분야가 엄청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전자회로를 살펴보는 장지혜 학생.

전자회로를 살펴보는 장지혜 학생.

지혜는 다음 학기부터 동아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친구들과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지혜가 이렇게 꿈을 향해 마음 놓고 달려갈 수 있게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참고서 값이 정말 비싸요. 학원도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는데 후원자님들 도움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제가 계속 공부 를 할 수 있었을지, 꿈을 꿀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지혜는 많은 후원자분들께 감사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할 수 없어 마음 한구석에 늘 아쉬움이 남아 있다. 초등학생 꼬마에서 어엿한 새내기 대학생이 된 지혜의 소식을 보고 반가워하실 많은 후원자님들께 이 지면을 통해 지혜의 편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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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님 안녕하세요? 인천에 살고 있는 지혜예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되기까지 참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셨는데요. 감사한 마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올해 인하대 공대 신입생이 되었어요. 처음 해보는 대학생활이 재미있고 신기해요. 매일매일 이어지는 수업에 조금 지칠 때도 있지만 늘 꿈꿔왔던 전공이기에 즐겁게 공부하고 있어요. 이렇게나 하고 싶던 공부를 할 수 있는 대학에 오기까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왔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후원자님이 생각나요.

어린 시절 보내주신 학용품과 과자들이 지금도 생생해요. 고등학교 때는 후원자님 덕분에 문제집 살 걱정 없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어요. 처음 보는 저에게 늘 관심과 사랑으로 한결같이 지켜봐주신 후원자님들께 온 마음을 담아 감사하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늘 후원자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저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고마운 존재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게 후원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꿈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앞으로도 꼭 지켜봐주세요!

짧은 편지로 다 전해지지 않겠지만 후원자님, 진심으로 감사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2017년 봄날에 장지혜 드림

글. 김수희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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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에세이] 형, 내가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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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백상우입니다. 저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경험하기 힘들 것 같은 여행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한국과는 멀리 떨어진 곳, 모잠비크에서 살고 있는 저의 유일한 형, 루카를 만나러 간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 역시 후원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TV에서 제 또래 아이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후원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후원에 관심을 꽤 많이 가졌고, 루카 형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학업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생활이 바빠지다 보니 형을 만나겠다는 의지도, 후원에 대한 관심도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렇게 루카 형에 대한 생각을 잊은 채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제 할 일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어느 날, 왜 그랬는지 루카 형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전에 간절하던 바람이 다시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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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을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지금이 아니면 모잠비크에 갈 수 있는 짬을 내기가 더 어려울 것 같아서 아빠와 함께 모잠비크 방문 계획을 세웠습니다. 드디어 2016년 여름방학에 다녀오기로 결정하고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예방접종도 받았습니다.

정말 형을 만나러 간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에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형을 만나는 일은 쉽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빠의 회사 일정이 생겨서 방문이 취소된 것입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져 2017년 1월,
마침내 저는 아빠와 함께 루카 형이 살고 있는 모잠비크로 향했습니다.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편견과 많이 달랐습니다.
빽빽한 밀림과 초원의 야생동물을 상상했으나 루카 형의 집으로 이동하면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옥수수밭이었습니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도 모잠비크 사람들은 땡볕 아래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으며, 월드비전 직원분들은 저희를 친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분들의 모습은 제가 공부하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더군.

모잠비크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현지 학교를 방문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이 노래하면서 반겨주는 모습이 신기하고 고마웠습니다. 또 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를 했는데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체구도 작았지만 발도 빠르고 당차서 제가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루카 형과의 만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루카 형의 마을에 도착하자 주민분들은 먼 나라에서 온 아빠와 저를 아주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루카 형과의 첫 만남은 사실 조금 어색했습니다. 루카 형은 농사가 재미있어서 나중에 꼭 큰 농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덥고 척박한 땅에서 농사짓는 일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형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나서는 그를 응원하기로 했습니다.

아, 처음에 조금 어색하던 분위기는 세계 공용어 중 하나인 축구가 해결해주었습니다.

형과 신나게 땀 흘리며 축구를 하고 나자 그렇게 편하고 친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을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고민한 끝에 아빠가 준비한 농기구를 전달하자 주민과 아이들은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한판 춤을 추었습니다.
흥겨운 분위기에 저도 덩달아 신났습니다.

이것이 제게 굉장히 특별한 모잠비크 여행 이야기랍니다. 비록 모잠비크에 머무른 시간은 짧았지만 제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꺼내볼 것입니다. 모잠비크에 가기 전까지는 일방적으로 후원하는, 무언가 수직적인 관계처럼 느껴져 괜히 불편하고 미안했는데, 형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어울려 축구도 하고 나니 그런 마음이 해소되고 뿌듯함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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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색하던 분위기를 날려준 축구시합. 루카 형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저는 신나게 축구를 하며 금세 친해졌습니다.

조금 어색하던 분위기를 날려준 축구시합. 루카 형 그리고 동네 친구들과 저는 신나게 축구를 하며 금세 친해졌습니다.

마을 어린이와 주민들은 먼 나라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마을 어린이와 주민들은 먼 나라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습니다.

나의 형 루카, 아버지와 함께 찰칵!

나의 형 루카, 아버지와 함께 찰칵!

저는 작은 나눔을 하면서 형이 생겼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형, 친구 또는 동생을 사귈 수 있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나눔을 통해서 말이죠!

글. 백상우 후원자
일러스트. 나요
사진. 백인주, 백상우 후원자,
모잠비크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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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나눠주러 갔는데,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마음속 깊숙이 품어왔던 꿈

“해외에 5개 정도 학교를 세우는 꿈을 마음속 깊숙이 품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나중에 크면 기부나 사회공헌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어렴풋하게 있었던 것 같아요.”

김동식(56세) 씨의 말에, 아내 신현란(53세) 씨가 살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내 신 씨는 “남편이 처음 1 억 원을 기부하겠다 했을 때 ‘우리가 무슨 여유가 있느냐’며 반대했는데, ‘당신이 말리면 안 할게’라는 고단수 설득에 결국 넘어갔다”며 웃었다.

결혼 28년 차 부부인 이들은 지난해 9월, 딸 김연진(22세) 씨와 함께 잠비아월드비전 룽가 지역개발 사업장 카니코치 학교를 방문했다.

김동식, 신현란 후원자

김동식, 신현란 후원자

카니코치 학교는 2012년 김 씨 부부가 1억 원을 기부해 지은 학교다. 단층 건물로 지어진 교실과 화장실, 선생님 숙소까지,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 현장에서 공부하는 190명의 학생들을 직접 만났다.

“1년 만에 완공할 계획이었는데, 3년 걸렸어요. 우기도 많고, 중간에 공사를 시행하는 업체가 도망을 갔어요. ‘가난한 나라에선 학교 하나 제대로 짓는 것도 어렵구나!’ 싶었죠.”201707_story_zambia_02
월드비전과 함께 현장을 방문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다른 학교를 하나 더 지어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원자로서 직접 현장을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쉽지 않은 아프리카행을 결정했다. 부부는 2주 동안 꼬박 200명분의 선물을 포장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나중에는 일손이 모자라 장인·장모님까지 와서 온 식구가 선물 포장에 매달릴 정도였다.

 

잠비아에서 배운 삶의 가치

이틀 걸려 도착한 아프리카. 거기서도 꼬불꼬불한 도로를 4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잠비아 룽가 지역. 이들이 탄 차량이 학교 근처에 도착하자, 엄청난 장구 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

“전교생이 모두 나와서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해주더라고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남편을 데리고 가서, 헹가래를 쳐줬어요.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김동식 씨는 ‘오길 잘했구나’ 싶었다고 한다. 김 씨는 “선생님 화장실과 학생들 화장실이 따로 있는데, 190명 학생들이 쓰기에 푸세식 화장실 건물 하나로는 너무 부족하다”며 열악한 교육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 씨가 잠비아에서 발견한 또 한 가지는 ‘삶의 가치’였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살잖아요. 잠비아에선 가난해도 해맑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행복의 가치가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고 생각되더라고요. 나눠주러 갔는데,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고 왔습니다.”201707_story_zambia_03

이들 가족은 해외아동 3명을 후원 중이기도 하다. 마침 방문기간을 이용, 잠비아 충고 지역개발 사업장에 있는 후원아동 ‘하칼리마’의 가정을 방문했다. 염소가 현지 가정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원아동 가정과 마을에서 특별히 어려운 가정에 염소를 선물하기도 했다. 부부는 “귀한 손님을 위해 내놓은 ‘시마(옥수수가루를 끓여 만든 죽)’ 위엔 지푸라기가 둥둥 떠 있었다”며 그날이 기억나는 듯 빙긋 웃었다. 특히 김 씨의 딸은 말도 통하지 않는 하칼리마의 손을 잡고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저도 월급쟁이인지라 형편이 여유 있는 건 아니에요. 딸한테 늘 얘기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못 다한 건 네가 이어갔으면 좋겠다’고요. 딸이 그러겠대요.

딸 주변 친구들은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가 봐요. 아빠를 존경하는 마음도 생긴 것 같아요.” 쑥스럽다며 인터뷰를 꺼렸던 이들 부부는
“책임감 때문에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기부는 전혀 딴 세상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왔어요. 하다 보니 참 좋은 경험을 조금씩 하게 됐어요. 저 같은 사례를 보면, 기부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업 때문에 해외에 가보면 그들은 기부 문화가 몸에 배어 있어요. 기부를 많이 할수록 나라가 강해집니다. 기부라는 건 결국 같이 살아간다는 것,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 참여한다는 것이거든요.” 닮은 꼴 부부는 ‘기부’라는 삶의 또 다른 페이지를 공유하며, 같이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카니코치 학교 완공식에 참여한 김동식, 신현란 후원자 가족

카니코치 학교 완공식에 참여한 김동식, 신현란 후원자 가족

김동식·신현란 후원자님의 나눔으로 변화된 마을

잠비아 룽가 사업장 카니코치 초등학교 학교 건축사업

– 기간 : 2012.04.21 ~ 2014.10.30

– 사업내용 : 초등학교 1동 (교실 3칸) 신축, 화장실 1동 설치, 책걸상 120명분 60세트 및 교사용 탁자 의자 지원, 교사 숙소 2칸 신축

– 사업성과 : 아동친화적 학교 건축을 통한 교육환경 개선, 학교 건축으로 원거리 통학생이 줄어 출석률 증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의 접근성이 높아지고 학습의 질 향상, 생활에 필요한 문해력, 셈하기, 기초생활 기술을 배워 아동 삶의 질 향상

카니코치 초등학교 등록학생 변화

사업 전 : 40명
2014년 : 183명 ( 여학생 90명, 남학생 93명 )
2015년 : 216명 ( 여학생 106명, 남학생 110명 )
440% 증가

새로 지어진 교실

새로 지어진 교실

새로 지어진 화장실

새로 지어진 화장실

글. 박란희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장
사진.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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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조 가수 조성모와 새내기 후원자, 함께 그린 자립마을

“아이들에게 삼촌이 되어주자.
허락되는대로, 인연이 닿는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아이들의 ‘엉클조’가 되어주자.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 가수 조성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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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아픔의 땅 아프리카 르완다에 다녀온 후 월드비전의 열혈후원자가 된 가수 조성모.  그리고 그의 ‘눈물’에 마음이 움직여서 혹은 그를 향한 ‘팬’의 마음으로 나눔에 동참하게 된 새내기 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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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마음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바라며  가수 조성모와  월드비전 새내기 후원자들이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첫 마음 그리고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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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진을 제 책상 앞에 붙여두고 매일 보고 있어요.” 이노센트, 페르디나, 우지에르… 지금은 후원아동이 된 르완다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소개하는 조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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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이제 막 후원자가 된 새내기 후원자들도 자신의 아동사진을 보여주며 ‘첫 마음’을 나눈다.

“조성모 씨의 팬이라 방송을 열심히 봤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늘 마음 속으로만 생각했던 후원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후원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아동에게 엄마는 아니지만 따뜻한 언니이자이모가 되어주고 싶어요.”
– 김지연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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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살, 8살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입니다. 아내가 셋은 안 된다고 해서 아동후원을 시작했어요(웃음). 이제 후원을 시작한 지 3개월 차라 며칠 전 아동의 첫 편지를 받고 나서 정말 후원을 시작하길 참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 성익현 후원자

두 손 모아 소중하게 쥔 아이들의 사진.  그 뜨거운 진심으로  함께 모인 공간은  점차 따뜻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선물하고픈
기적 , 미라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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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소개 후, 조성모의 우간다 방문이 담긴 영상이 흘렀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보자 금새 미소가 가득해진 조성모. 이내 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르완다에 다녀온 후, 제 삶은 정말 180도 변했습니다. 일단 가정에 더 충실하게 되었고요, 그 동안 제가 가진 상처들이 다 아문 것 같아요. 아이들을 만나면서 ‘내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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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진을 제 책상 앞에 붙여두고 매일 보고 있어요. 그러다보면 바쁜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내 마음 같지 않은 일들에도 그렇게 힘들어지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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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방문 후, 팬들과 함께  ‘미라클 데이’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성모. 아이들이 빈곤으로 인해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놓치지 않도록 학교를 지어주고 싶은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저는 아들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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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인생에서 당연히 갖춰야 할 ‘품격’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의 후원금이 한 마을을 골고루 변화시키는 모습을 직접 보신다면 더욱 뿌듯하고, 오늘 저처럼 이렇게 열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질거예요.  후원에 동참하시는 모든 분들도 저처럼 큰 자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함께 그린
아동을 위한 자립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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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와 후원자들은 아쉬운 만남을 끝내며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바로 후원아동들이 살고 있는 자립마을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 따스한 손 끝에서 ‘우물, 학교, 보건소, 나무 한 그루’까지 하나 둘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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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각 한 조각이 모여 
마을이 완성되는 것처럼 
작은 마음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이뤄나가길 기대한다.

글. 커뮤니케이션팀 김수희
사진. 편형철

해외아동후원하기 가수 조성모의 르완다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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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난민촌 아이들이 그린 내일 : 흑백의 삶을 채색하다

세계 최대 난민 정착촌, 우간다 비디비디(Bidibi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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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라, 내전의 고통에 신음하는 나라,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나라, 남수단.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 죽음의 땅을 피해 남수단 난민 약 90만 명이 우간다로 도피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간다 비디비디(Bidibidi)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이 살고 있는 세계 최대 난민 정착촌입니다. 비디비디에 정착한 난민 중 무려 68%가 18세 미만 아동인 현실.

비디비디 난민촌 아이들

비디비디 난민촌 아이들

90만 남수단 난민 중 59%는 18세 미만 아동입니다. 매일 100명의 아이들이 철저히 홀로 국경을 넘습니다. 낮에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밤에는 전쟁의 악몽으로 낯선 땅에서의 매일을 견디는 아이들.

남수단에서 우간다로 넘어온 난민의 수 898,138명 그 중 아동이 59% 매일 남수단-우간다 국경을 홀로 넘는 아동의 수 100명

 

 

흑백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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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한 특별한 콜라보레이션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끔찍한 삶의 기억을 가진 아이들. 세계 난민의 날(6/20)을 앞두고 월드비전은 이 아이들과 특별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6개국의 현대 예술가 7인(Candy Chang(타이완), Sandra Chevrier(캐나다), JR(프랑스), Slinkachu(영국), Maser(아일랜드), Seth(프랑스), Herakut(독일))과 함께 난민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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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아동보호사업담당 “평소에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 아이다운 활동은 심리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제임스 카미라, 월드비전 아동보호사업담당)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
(마크 레오나드, 현대 예술가)
현대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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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 리나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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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남수단 수도 주바의 상황이 악화되자, 우간다로 떠나기로 결정한 리나(Lina)와 리나의 아빠. 우간다로 떠나는 날, 리나는 짐을 챙겨 아빠를 부르러 갔습니다. 아빠가 주무시던 방은 누군가 습격한 듯 엉망진창이었고, 리나는 처마 밑에 매달린 아빠의 시체를 발견 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왜 아빠를 죽인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놀라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도망쳤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아무도 없이 비디비디에 도착한지 11개월.
외로운 오늘과 괴로운 어제를 가진 16살 소녀 리나(Lina)는 캐나다 출신 예술가 산드라 체브리어(Sandra Chevrier)와 함께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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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체브리어는 자신의 작품 ‘상처입은 영웅들’ 시리즈에서 사용한 기법대로 리나를 근접 촬영하고 그 사진을 벽에 투사 했습니다. 리나는 그 위에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여자 영웅들의 모습을 형상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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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린 그림이 정말 좋아요!
이렇게 음영도 넣었어요. 작업을 하는 내내 행복했고, 과거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리나가 완성한 작품, 자화상

리나가 완성한 작품, 자화상

 

 

작품 2. 존, 미래를 채색하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12살 소년 존(John)은 프랑스의 길거리 예술가 세스(Seth)의 작품 ‘더 밝은 미래를 바라보는 소년’을 재창작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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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은 작년 8월부터 비디비디 난민촌에서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남수단 고향 마을에서 벌어진 전쟁의 혼란 속에서, 부모님과 세 형제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시체 더미를 뛰어 넘어다녔어요.
총격이 일어났고, 차가 폭발했어요.
누가 벌인 일인지, 왜 벌어진 일인지 몰랐지만,
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었어요.”

“저보다 어린 아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사지가 잘려 나간 아이들,
총에 맞은 아이들이 지금도 꿈에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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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기억을 잊기 위해 학교 생활과 축구에 몰두하며 바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존. 나이에 맞지 않는 담담함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이 소년도, 매일 밤 홀로 있는 텐트로 밀려오는 슬픔만큼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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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이 그리는 그림, 존이 바라보는 미래

존이 그리는 그림, 존이 바라보는 미래

하얀 텐트 넘어 밝은 주황빛 미래를 바라보는 듯한 한 소년을 그린 존. 그 소년이 마치 자신인 것처럼, 다부진 목소리로 존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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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주는 학교가 있는 세상, 여자 아이들도 차별 받지 않고 교육을 받는 세상, 시골 마을 곳곳 좋은 도로가 있는 세상,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드는 대통령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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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그림이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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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벽을 꽉 채운 자신 있는 얼굴,
텐트 저 너머를 바라보는 뒷모습,
건물 벽에 칠해진 선명한 색.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씩
우리만의 색을 입혀갈래요.
빨간색, 파란색, 주황색.
우리의 그림처럼 우리의 미래도
형형색색 빛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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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미래가 형형색색 빛날 수 있도록 함께해주세요.

해외긴급구호 후원하기

월드비전은 매일 100 명의 남수단 아이들이 홀로 우간다 국경을 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전이 지속될수록 난민에게 지급되는 식량은 줄어들고, 아이들은 각종 폭력과 착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간다 비디비디 지역에서 월드비전은 5만 2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6개 아동심리교육센터(CFS)를 열어 아이들에게 교육, 심리 치료, 놀이 치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생존을 위한 조혼에 노출된 여자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임시 보호자에게 연결해주는 임시 위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존, 리나, 비디비디 아이들의 작품을 감상하세요.

 

 

글. 배고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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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어른을 만났습니다”
배우 유준상의 두 번째 아프리카, 말라위.

“2년 만에 다시 찾은 아프리카”

걱정과 설렘을 안고 떠난 두 번째 아프리카, 말라위. 그곳에서 만난 8살 브라이언의 아침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익숙한 듯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내딛는 소년.

사진 크레딧 : Photo by 박성훈

Photo by 박성훈

“2015년부터 팔과 허리에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축구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다 했는데…… 이제 뛰기는커녕 걷기조차 힘들죠.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약만 처방해줬어요.”

“브라이언의 시계는 거꾸로 흐릅니다”

망연자실한 엄마의 말에 저의 마음도 답답해졌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혼란스럽습니다. 불공평하단 표현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에겐 너무 힘든 순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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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두 시간을 달려, 말라위 수도 근처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리도 쉬운 일을 참 오래도 돌아왔네요.

“뼈에 생긴 염증에 오른쪽 어깨와 골반 뼈가 이미 부서진 상태에요.” 이 상태로 어떻게 버텨왔느냐며 놀라는 의사. 영영 걷지 못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저는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Photo by 박성훈

Photo by 박성훈

“내일이 학교 시험이라, 빨리 가서 공부해야 되요.” 피부를 뚫고 나온 염증을 치료하는 고통에 기진맥진할 법한데, 아이는 우리를 재촉합니다. 경찰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브라이언의 눈망울이 커다랗습니다.

“너희가 이곳의 희망들이야.”

사진 크레딧 : Photo by 박성훈

Photo by 박성훈

해맑은 눈빛 속에 하늘이 담겨 있고, 호수에 빛나는 태양이 아이의 마음속에 담겨있습니다. 커다란 눈에 제가 눈물이 납니다. 그 눈을 바라만 보아도 말이에요.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먼 곳에 우리 함께 있다는 것에.

사진 크레딧 : Photo by 박성훈

Photo by 박성훈

캄캄할수록 별이 빛나듯, 절망 속에서도 빛을 내는 아프리카 아이들. 저는 이곳에서 키 작은 어른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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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석양이
빠르게 어둠을 재촉한다.
아이들의 밤이 걱정된다.
앞으로 잘 이겨낼지, 잘 견뎌낼지.
우리의 만남이 아이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밤으로 가는 시간을 안타까워한다.

– 유준상 홍보대사

오른쪽 사진 크레딧 : Photo by Robin Kim

(오른쪽 사진) Photo by Robin Kim

2012년 월드비전 홍보대사 위촉 이후,
6년간 따스한 선행을 실천한 유준상 & 홍은희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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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유진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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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떠난 딸이 남긴 특별한 손녀를 10년 간 키웠습니다

여든 셋 고봉서 후원자가 아프리카 케냐 소녀의 손을 꼭 잡고, 10년 전 세상을 떠난 딸의 묘비 앞에 섰습니다.
“하쿠나 라비디 다마이스 하쿠 다잉마 다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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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떠났지만, 신께서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시길 바라요”라는 노랫말을 가진 잔잔한 아프리카 가락이 묘역에 울려 퍼집니다.

 

아이를 좋아하던 내 딸

꼭 10년 전인 2007년 봄 날. 고봉서 후원자의 사랑하는 딸 화숙 씨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 50주년 잔치를 해주고 나서였습니다.

아이들이 좋다며 작은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딸에게 후원하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안 건, 딸이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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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을 정리하다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과 편지를 발견한 고봉서 씨는 언젠가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는데
아프리카 애기 한 명 도와주면 안될까?”

케냐에 사는 7살 수잔. 화숙 씨는 눈이 똘망한 이 아이의 후원자였습니다.

“딸 이름으로 돕던 수잔을, 제가 이어서 후원할 수 있을까요?”

월드비전에 전화를 건 그날부터 77세 고봉서 씨는 월드비전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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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어 힘들지 않게, 내 흔적을 세상에 남기지 말라”던 딸이 남긴, 어쩌면 유일한 흔적,수잔. 유언에 따라 딸의 흔적을 지워낸 고봉서 후원자의 집엔, 수잔이 보내오는 사진과 편지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딸, 그리고 딸이 남긴 손녀딸, 수잔의 흔적이 쌓이는 곳. 2017년 고봉서 후원자님의 딸, 화숙 씨의 방

딸, 그리고 딸이 남긴 손녀딸, 수잔의 흔적이 쌓이는 곳. 2017년 고봉서 후원자님의 딸, 화숙 씨의 방

 

10,000km를 날아

그렇게 사진과 편지로 이어진 할아버지 후원자와 수잔이 10년 만에 두 손을 붙잡았습니다. 수잔이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난생 처음 집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고, 1만 km 거리의 한국을 찾은 것.

새벽 4시, 공항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두 사람.

새벽 4시, 공항에서 서로를 처음 만난 두 사람.

수잔에게 가장 예쁜 꽃을 선물하고 싶어, 손수 꽃다발을 고르고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물병에 꽂아 놓으셨다는 자상한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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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앞에서 사진을 찍은 수잔의 모습을 기억해 손수 찐 옥수수 간식도 준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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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서 후원자는 혹시라도 통장에 돈이 없을까, 수잔을 위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한 번도 후원금을 거른 적이 없고, 매년 염소나 닭도 선물 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닭을 키워 염소를 사고, 염소를 키워 밭을 사고, 학교도 잘 다니고 있어요. 엄마가 혼자 4남매를 키우느라 힘드신데,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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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듯, 7살에 만난 작은 아이는 어느새 꿈을 약속하는 야무진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우리 딸만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쓸쓸한 이 노인네의 마음을,
우리 수잔이 위로해주네요.
해준 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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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도 아닌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참 부끄럽다며,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전해주시던 이런 저런 이야기.
딸이 남긴 손녀이기에, 힘이 닿는데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
떠나는 수잔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힘차게 손을 흔들던, 여느 할아버지의 인사.
이것이 83세 할아버지 후원자, 고봉서의 ‘10년 후원 이야기’입니다.

고봉서 후원자, 조봉녀 할머니, 수잔, 수잔의 엄마

고봉서 후원자, 조봉녀 할머니, 수잔, 수잔의 엄마

 

글. 배고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배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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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모래시계는 흐른다”

다시 찾은 땅, 그곳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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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드비전과 <희망TV SBS> 촬영차 케냐 투르카나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1회부터 함께한 프로그램이었고 아프리카엔 열 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이번에 겪은 일들은 낯설고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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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이어진 동아프리카 기근이 그 땅에 죽음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말라버린 땅 위엔 마른 생명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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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마주한 광경은 가뭄으로 말라버린 강줄기와 그 옆에 쌓여있는 수십 마리의 염소 무덤이었습니다. 사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한 중년 남성이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일군 200 마리의 염소가 그렇게 죽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당일 아침에 죽은 염소도 세 마리나 됐습니다. 염소에서 얻는 고기와 우유 등을 주식으로 삼으며 먹을 걱정 없이 지내던 가족은 당장 한 끼를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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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염소의 내장을 꺼내 먹고 있는 아이들과 그 옆에서 사체들을 태우는 오 남매의 아버지를 보며, 월드비전 친선대사이기 이전에 한 명의 아버지로서 제 마음도 한 줌의 재가 되는 듯했습니다.

 

아이에게 닥친 가뭄이란 현실

주로 목축으로 삶을 영위하던 이 지역에 가뭄은 그야말로 직격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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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은 죽고, 선인장까지 마르는 극심한 가뭄에 그곳에 가장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고,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아이, 레이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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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4개월 된 이 아이는 심각한 영양실조로 소리 내어 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백일을 갓 넘긴 여느 아이였다면 한창 포동포동 살이 올랐어야 할텐데. 제 손가락보다 얇은 팔다리를 가진 레이몬드를 품에 안을 땐, 아이가 다칠까 유독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의 젖도, 영양식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는 아이. 이 생명을 지키려면 링거액과 바늘이 필요하지만, 기근이 계속된 투르카나 지역 보건소에선 당장 레이몬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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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었습니다. 레이몬드와 같은 아이들이 그저 먹을 것이 없어, 먹을 물이 없어 죽어가는 현실. 그 ‘현실’이 너무도 무거워 한참 동안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아야 했습니다.

 

절망 속 희망을 보다

‘이런 무거운 절망 가운데, 과연 내가 희망을 말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발걸음을 옮기며 만난 11살 릴리. 뜻밖에도 이 작은 소녀가 저에게 먼저 희망을 말했습니다. ‘먹을 거라곤 독성이 있는 야생 콩 뿐인데, 독을 없애려면 물이 필요하다’며 매일 12시간, 50km를 걸어 물을 긷는 소녀. 릴리가 아니면 아픈 할머니와 세 살배기 동생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매일 맨발로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그 절망의 길에서 릴리는 또렷한 눈망울로 희망을 말했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의사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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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눈망울을 바라보며 제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 작은 어깨에 지어진 큰 짐을 잠시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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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한다면, 힘을 모아 그 무게를 덜어준다면, 릴리가 걷는 절망의 길은 희망으로 가는 길목이 될 것입니다. 릴리에겐 너무도 긴 이 절망의 시간이 언젠가 희망의 시간으로 바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른 강에 다시 희망이 흐르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물 다음에는 염소가, 염소 다음에는 사람이 그 땅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자꾸만 마음을 스칩니다. 잠시 머문 저조차도 그 위급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지금 이 순간 절실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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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우리나라도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던 시절이 있으나, 지금 이렇게 나아졌듯이 투르카나 사람들에게도 보다 밝고 풍요로운 미래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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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모래알이 천천히 흘러 모래시계를 채우듯, 우리의 작은 희망이 모여 절망의 땅이 채워지는 기적을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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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상원 친선대사
사진. 최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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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 기근,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남수단과 소말리아 아이들은 굶주림으로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케냐 북부 지역과 에티오피아도 벼랑 끝에 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26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1년 동아프리카 기근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지금’ 대응해야 합니다.

                                                     월드비전 동아프리카 지역 긴급구호 디렉터, 크리스토퍼 호프만

 

유엔이 1945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표현한 동아프리카 기근.

이 기근으로 지금 2,500만 명이 고통받고 있으며, 약 100만 명의 아동이 영양실조로 죽음에 이를 위기에 처했습니다.

 

 

동아프리카 기근 현황

2017년 5월 25일 기준으로 동아프리카 기근 때문에 시급한 도움이 필요한 인구입니다. 특히 남수단,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를 중심으로 피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수단: 750만 명, 에티오피아: 770만 명, 케냐: 270만 명, 소말리아: 620만 명

동아프리카 기근으로 긴급지원이 필요한 주민: 2500만 명, 5세 이하 영양실조 아동: 350만 명, 보건 지원이 필요한 주민: 1440만 명

 

 

동아프리카 4개국 피해 현황

2017년 9월까지 동아프리카의 식량위기는 확대될 것입니다.

남수단은 이미 최고 수준의 식량위기를 가리키는 ‘기근*’ 단계가 선포되었으며, ‘기근’ 단계의 지역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 ‘기근(famine)’ 단계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정한 식량안보단계 중 가장 심각한 단계입니다. 전체 가구의 20% 이상이 식량 부족으로 생존을 위협 받고, 인구의 30%가 영양실조를 보이며, 하루에 굶주림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10,000 명당 2명 이상일 때 선포됩니다.

(170531) 5월 인포그래픽(동아프리카기근)(out)_font

올해 유독 심각한 가뭄을 불러온 기상이변 그리고 정치적 불안과 분쟁, 식량가격 상승 등의 요인이 결합되어 동아프리카 기근 피해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남수단 : 주요 곡물가격 상승률 480%, 국내 실향민 & 난민 360만 명, 5세 이하 영양실조 아동 84만 명 케냐 : 주요 곡물가격 상승률 115%, 페스트 피해를 입은 농경지 143,000hr, 우간다로 떠난 식량난민 3만 명 소말리아 : 콜레라 감염자 28,408명, 홍역 감염자 4,500명, 5세 이하 영양실조 아동 36만 명 에티오피아 : 급성설사 및 콜레라 환자 9,600명, 페스트 피해를 입은 농경지 10,700hr (남부 국가 민족 주 & 오로미아 주, 의료 지원이 필요한 주민 437만 명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습니다.

대대로 염소와 낙타를 키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가뭄 때문에 가축이 대부분 죽었습니다.
물과 식량도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물과 목초지를 찾아 대대로 일궈오던 땅을 떠나왔습니다.”

월드비전 긴급식수 지원을 받고 있는 소말리아 국내실향민 파두마 할머니

 

 

월드비전의 대응

월드비전은 전세계가 대응해야 할 최고재난대응단계 ‘카테고리 3*’를 선포하고, 동아프리카 기근 피해가 가장 심한 곳에서 긴급구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월드비전 재난관리기준에 따라 재난 및 피해 규모, 복구 기간 등을 고려하여 카테고리 1~3으로 나누어 긴급구호 대응을 합니다. 동아프리카 기근과 같이 카테고리 3이 선포된 재난은 월드비전 모든 파트너십 국가의 협력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위기 상황을 말합니다.

식량배분 및 생계지원을 받은 주민: 840,045명, 영양실조 치료 및 보건 지원을 받은 주민: 271,095명, 식수 및 위생 프로그램 지원을 받은 주민: 440,100명 아동보호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받은 아동: 38,710명 주거지 및 긴급구호물자 지원을 받은 주민: 30,034명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합니다

동아프리카 기근 긴급구호 목표금액: 1억 1030만 달러 현재 모인 금액 4110만 달러 (37%) 앞으로 필요한 금액 6920만 달러 (63%)

 

지금까지 국제월드비전은 동아프리카 기근 긴급구호를 위해 모인 후원금 4,110만 달러로 150만 명을 지원하였고, 앞으로 270만 명을 대상으로 긴급구호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6,920만 달러의 후원금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6개월 간 동아프리카 기근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동아프리카 일시후원 긴급구호 정기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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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HOLA~! ‘파파’ 아르만도의 기분좋은 인사

매니저 말고 ‘파파’라 불러주세요~!

올라!
과테말라월드비전 산후안에르미타 사업장 매니저 아르만도가 멀리서 한국의 후원자님들께 인사 전합니다. 사실 저는 매니저보다는 ‘파파’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요. 마을 주민과 아이들, 동료들 모두 저를 그렇게 부르거든요.

과테말라에서 농업 분야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수입이 괜찮은 직업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좋은 직장은 ‘파파’ 아르만도에게 큰 의미가 없었지요. 그의 시선은 ‘어린이’와 ‘주민’을 향해 있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농업 분야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수입이 괜찮은 직업을 보장합니다. 하지만 높은 연봉과 좋은 직장은 ‘파파’ 아르만도에게 큰 의미가 없었지요. 그의 시선은 ‘어린이’와 ‘주민’을 향해 있었습니다.

나의 하루하루는 행복으로 꽉 차 있답니다.

월드비전에 입사하기 전에는 과테말라 농림부에서 일했어요. 농업공학과의 살충제 및 살균제 안전관리 분야 박사과정을 졸업한 터라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정한 거예요. 그런데 늘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농림부를 그만두고 마이크로 금융펀드 회사도 다녔지만 허전한 마음은 여전했지요.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지났는데 월드비전에서 후원아동 관리 자문위원을 구한다는 거예요. 당장 지원했죠. 그렇게 2009년부터 지금까지 월드비전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율하는 책임을 맡으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전 직장에서와 달리 하루하루가 꽉 찬 행복 그 자체예요.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죠. 아이들과 주민들의 삶이 변화하는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제가 누리는 큰 혜택이에요.

‘파파’ 아르만도는 마을 아동과 주민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아동 모니터링 담당 직원의 가정 방문을 종종 동행하지요~!

‘파파’ 아르만도는 마을 아동과 주민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아동 모니터링 담당 직원의 가정 방문을 종종 동행하지요~!

 

주민들과 월드비전의 중심은 ‘아동’을 향해 있어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과테말라에는 아직 우리가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아요. 최근 가뭄이 계속되어 물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에요. 물이 부족하니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고, 이것이 식량 부족 문제로까지 이어져서 영양실조 발생률도 높아졌어요. 특히 아동 영양실조는 치료 시기를 놓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각별한 관리를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2015년에는 예보된 기상상황을 참고해서 취약가정에 필요한 식량 지원 일정을 앞당겼어요. 키, 몸무게, MUAC* 같은 항목을 바탕으로 사업장 아동의 영양 상태를 조사하여 빨강(영양실조), 노랑(저체중), 초록(예방 차원) 단계로 나누었어요. 그런 다음 위험 징후가 있는 아동 가정에 식량팩을 먼저 배분했죠. 그 결과 2015년 산후안에르미타 사업장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답니다!

MUAC란?
MUAC(Mid Upper Arm Circumference)은 영양 상태를 측정하는 도구로, 왼팔을 구부린 상태에서 어깨와 팔꿈치 사이 중간 지점의 둘레를 재는 ‘줄자’입니다.
MUAC로 영양 상태를 점검 받고 있는 아동

MUAC로 영양 상태를 점검 받고 있는 아동

남은 평생을 이 일에 바칠 거예요.

저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바르고 선한 사람으로 자라서 올곧은 가정을 이루고, 건강한 마을을 꾸리고, 정의로운 ‘전문가’가 되기를 꿈꿉니다. 저마다 귀한 보물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가 사랑을 전한다면, 분명 과테말라에 희망을 가져오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 믿어요. 전 남은 평생을 이 일에 바칠 거예요.

 

“과테말라 후원자님, 혹시라도 지구 반대편 내 아이가 사는 마을이 걱정되시나요?
파파 아르만도와 직원들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으며 세심하게 돌보고 있으니 마음 푹 놓으세요.

늘 고마운 후원자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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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리에 있지만 마음만은 그대로인, 내 소중한 친구 에르멜리나에게

2016년 ‘너와 나의 이야기’ 후원자 수기 공모전에서 1등을 한 이채원 후원자의 수기를 소개합니다.

 

대전에 살고 있는 14살, 평범한 학생 이채원입니다! 이 글은 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 썼어요. 친구 이름은 에르멜리나예요.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아름다운 나라 알바니아에 살고 있어요.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를 주고받았어요. 두툼한 편지들의 두께만큼 에르멜리나와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어요. 국경을 넘어 조금 특별한, 그래서 몇 배는 더 행복한 우리의 우정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2016년 4월, ‘다른 사람도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평범한 마음으로 후원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며 ‘간식 살 돈을 아끼면 나도 먹고, 내 친구도 먹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누면 행복하니까 더 나누어야겠다고요. 후원을 하는 목적이 바뀐 거예요!

에르멜리나에게 처음 편지를 쓰고 설레는 마음으로 답장을 기다렸어요.

마침내 편지가 왔어요. 한글 못지않게 아름다운 알바니아어로 쓰인 편지, 한국어와 영어 번역 편지. 그리고 예쁜 에르멜리나의 사진이 들어 있었어요. 전 정말 에르멜리나가 가깝게 느껴졌어요. 몇 주 후면 에르멜리나의 생일이었기때문에 사전을 찾아 적은 알바니아어 쪽지와 함께 작은 선물을 보냈어요.

‘내 글씨가 이상해서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선물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 한라산처럼 치솟은 걱정은 얼마 뒤 도착한 에르멜리나의 편지에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어요. 선물 잘 받았다고, 너무 예쁘다며 제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어요! 예쁜 마음으로 고맙게 받아준 에르멜리나가 오히려 전 더 고마웠지요. 에르멜리나는 편지에서 알바니아를 방문해달라고 했어요. 뛸 듯이 기뻤죠. 알바니아에 초대받은 사실이, 숙제를 안 한 줄 알았는데 해갔을 때보다 더 기쁜 거 있죠?

저는 언젠가 에르멜리나를 만나러 가고 싶어요. 그래서 100원이라도 더 아끼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 에르멜리나의 사진을 봐요. 만나는 날까지 에르멜리나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도록요! 제 뇌에 ‘제발 꼭 기억해줘’ 하고 부탁하는 거예요.

첫 편지를 받던 날,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생겼어요. 이 꿈도 에르멜리나 덕분에 생겨난 꿈이죠. 바로 알바니아어 공부하기예요. 사전으로 간단한 회화를 공부하기로 했어요. 조금씩 단어와 문장이 쌓여나가면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에르멜리나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요. 이제 알바니아어로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날을 꿈꿔요. 참 신기하지 않나요?

에르멜리나는 제게 편지만으로 꿈과 목표를 선물해주었어요. 친구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가끔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에르멜리나가 보내준 편지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엄마랑 싸웠을 때, 우울할 때, 잠이 안 올 때, 에르멜리나의 편지를 읽곤 해요. 그럼 에르멜리나가 마치 절 위로해주는 것 같아서 힘이 나요.

 

“에르멜리나! 난 네가 ‘You are my best pen friend’라고 해주었을 때 정말 기뻤어.
넌 매번 고맙다고 하지만 난 정말 한 게 없어. 오히려 네가 날 도와주었는걸?
표현을 잘 못 해서 친구들이랑 친해지는 게
조금 어렵기도 한 나를 너는 진짜 친구로 대해주었어.
평범하고 단조로운 내 일상에 생기를 선물해준 네가 고마워.
덕분에 다시 꿈을 꾸게 되었어. 2017년은 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더 좋은 친구가 될게!”

 

여러분! 나눔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 작가가 지은 <쿠키 한입의 인생 수업>이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서로 돕는다는 건 이런 거야. 내가 반죽을 저을게, 너는 초콜릿 조각을 넣어줄래?’ 반죽을 젓고, 초콜릿 조각을 넣은 후에는 맛있는 초콜릿 쿠키를 먹을 수 있겠죠?

나눔도 비슷한 것 같아요. 여러분이 다른 친구를 위해 조금만 힘을 보태주면, 그 친구는 힘을 쑥쑥 내서 나라를 이끌어갈 자랑스러운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도 돈 주고 살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어요. ‘진정한 친구’ 같은 소중한 가치가 바로 그것이죠.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우리 조금씩만 천천히 서로 나누면 어떨까요? 작은 씨앗에 물을 주고 아름다운 말 한마디만 건네어도 이 씨앗들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꿈을 꾸고, 마음껏 뛰놀며 공부하는 새싹이 될 거예요. 이 새싹들은 아름다운 꽃이 되어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는 소중한 존재가 될 거예요!

 

2017년 2월 6일, 이채원 후원자님의 이름으로
에르멜리나와 반 친구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전달됐습니다.

친구 채원아,
슬플 때마다 내 사진과 편지가 네게 힘이 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 고맙고 사랑해.

_알바니아에서 에르멜리나

에르메릴리나와 반 친구들에게 전달된 선물

에르메릴리나와 반 친구들에게 전달된 선물

이채원 후원자의 수기와 편지를 받은 후원아동 헤르멜리나

이채원 후원자의 수기와 편지를 받은 후원아동 헤르멜리나

알바니아 친구들이 채원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인사

알바니아 친구들이 채원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인사

글. 이채원 후원자
일러스트.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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