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3월 15일은 시리아 내전 발생 9주년입니다.

3월 15일은 시리아 내전 10주기,
사마에게, 아이들에게 일상을 되찾아 주세요

지금부터 딱 10초만 시선을 고정하셔서

아래 포스터 속 엄마와 아이의 얼굴을 바라봐주세요.

전 세계 영화제 61관왕의 화제작.

올해로 10주기를 맞은, 시리아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입니다

영화 사마에게

영화 ‘사마에게’ 공식 포스터 (캡처)

전쟁이 한창인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태어난
갓난아이 사마는, 큰 폭격 소리에도
절대 울음을 터뜨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들었던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기 때문이겠지요.

어른들도 겁에 질릴 만큼 큰 소리가 나도
사마는 눈이나 몸을 움찔거릴 뿐 우는 법이 없습니다.

사마가 처음 배운 세상은 폭탄이 터지고, 도망가고,
그러다 가까운 사람이 죽기도 하는 곳입니다.

사마의 평범한 일상이죠.

영화 사마에게

[출처: 엣나인필름]영화 말미에서는 사마의 동생도 태어났고 희망의 메시지가 언뜻 비치기도 합니다.

영화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사마의 가족은 그 후로 평화로운 시리아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는 흔한 결말이 아닙니다.

2011년 3월 발발한 시리아 전쟁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1,200만 명의 (2019년 7월 기준)
난민과 국내 실향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

난민과 국내 실향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 가운데,
아이들은 매일 공포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특히, 시리아 북부 이들립 지역에서는
터키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의
치열한 전투가 최근까지도 계속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공포를 견디며 살아갑니다.

2020년 들어서만,
북서부 시리아에서 사망한 아동은 최소 86명.
22개의 학교가 포화에 무너졌고,
2/25일 하루에만 학교 10개가 공격당했습니다.

72개의 병원과 보건시설이 운영 중단돼
적절한 의료 지원도 불가능합니다.
지난 3월 5일 극적 휴전에 협약했지만
시리아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아래의 위성 사진을 보면,
시리아 북서부 지역이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되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시리아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왼쪽은 2018년 7월에,
오른쪽은 2019년 5월에 찍힌 사진입니다.
하얗게 보이는 부분들이
공중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의 흔적이죠.

시리아는 여전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학교 등의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전체 건물의 1/3이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해도,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던 마을을 떠나,
난민 캠프로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위성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공중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의 흔적

2017년, 2018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촬영된 실향민 캠프의
위성 사진입니다.

2년 반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캠프 규모는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난민 캠프가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실향민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난민촌 환경에,
실향민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아동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동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실향민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임시 거처를 찾지 못한
1만 7천여 명의 피난민들은,
가건물이나 임시 텐트에 거주합니다.

영하의 추위를 견디느라 플라스틱을 태워도,
영유아와 아이들이 얼어 죽는 비극은
매일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피해 아동과 주민을 위해
여러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당신의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월드비전은 피해 아동과 주민을 위해 여러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피해 아동과 주민을 위해 여러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내 실향민들에게 임시 거처를 비롯해
난방용품, 위생용품 등의 물품을 지원하고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병원과 이동진료소 운영을 통해
긴급 의료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전시 상황 가운데
폭력 및 성적 범죄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보호센터를 운영 중입니다.

“시리아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 경험한 것이
전쟁을 겪고 집을 떠나온 것뿐입니다.
대여섯 살 되는 아이들이 소리만 듣고도
어떤 폭탄인지 다 알아맞히지만,
정작 자기 이름을 쓰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월드비전은 피해 아동과 주민을 위해 여러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 시리아 대응 책임자,
요한 무지(Johan Mooji) 씨는 말합니다.

“어떠한 아이도 이러한 고통을 겪어서는 안됩니다.
월드비전은 아이들의 지원하기 위해서,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것’ 만이
비극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2021년 3월로 내전 10주기을 맞이할 시리아 아이들에게,
시급한 해결책은 전쟁을 멈추는 것입니다.

월드비전은 피해 아동과 주민을 위해 여러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안보리 회원국이나 강대국들은
국제인도법과 인권 법을 준수하고,
각자의 이익보다 인류애를 우선으로 하는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다.’
‘아이들의 고통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이 시리아 아이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동참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것 말이죠.

2021년 3월 15일은 시리아 내전 발생 10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시리아 내전 발생 9주년입니다.

아이들이 차가운 길가에서
폭격에 맞거나 얼어 죽는 것이
더 이상 일상이 되지 않도록,
끝나지 않은 시리아의 고통을 기억해 주세요.

내년 3월에는,
사마와 같은 시리아 아동들이
아이다운 하루를 보내길 바라봅니다.

*위의 내용은, 최근 발표된 월드비전과
세이브더칠드런, 하버드대학교 인도주의 이니셔티브의
공동 분석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글. 강혜빈 옹호시민참여팀
편집. 김유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전쟁으로 삶이 파괴된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세요.

월드비전 긴급구호사업 기부하기

긴급구호KIT를 준비중인 월드비전 직원들

코로나 19 확산 대응
국내취약가정 식료품 kit 긴급 지원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저소득 가정 아동은 먹을 권리마저 침해되고 생존을 위한 기본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감염병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을 지원받던 대상자들의 끼니 걱정 해결을 위해, 월드비전은 직원들이라도 직접 나서야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진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온 나라와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지며, 텅 빈 대구경북 시내의 거리 모습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지며, 텅 빈 대구경북 시내의 거리 모습

 

특히나, 사회취약계층 아동들은 마스크, 손 세정제 등 위생 용품 부족 문제에 더해 끼니 마저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긴급구호 KIT 를 전달하는 월드비전 직원

긴급구호 KIT 를 전달하는 월드비전 직원

월드비전 긴급구호 KIT

월드비전은,
코로나19 사태로 개인 간 접촉이 어렵고

사랑의도시락* 배송을 위한
자원봉사자의 활동이 어려워짐에 따라,

매일 배송하던 사랑의도시락을 대신해
일주일 분량의 식료품 키트를
긴급 지원했습니다.

KIT 구성품-식료품

KIT 구성품-식료품

KIT 구성품- 의료품

KIT 구성품- 의료품

키트에는 햇반, 스팸, 라면 등의 식료품 외에도
예방을 위한 KF94 마스크,손 소독제 등의
물품이 포함됐습니다.

뭇국 조리중인 월드비전 직원

뭇국 조리중인 월드비전 직원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첫 배달이 진행된 3월 2일에는 ‘도시락 조리는 중단되었지만, 국이라도 따뜻하게 드셨으면’ 하는 마음에 직원들이 손수 준비한 뭇 국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행인 한 분께서는 가정 별로 배달 중이던 월드비전 직원에게 찾아오셔서 마스크 나눠주는 데에 더해 쓰라고 하시며 가지고 계시던 마스크 한 박스를 직접 주셨답니다.)

KIT 를 문앞까지 배달

철저한 방호 준비를 한 월드비전 직원들이 직접 문 앞까지 배달했으며, 앞으로도 매주 1회 전달할 예정입니다.

 

긴급 식료품 및 위생 용품 키트 지원은 월드비전의 사랑의도시락을 지원받는 전국의 사회취약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확대 진행될 예정입니다.

 

후원자님께서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전달해주신
소중한 후원금은 이렇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 호흡기질환 예방 물품

    68,379 개237,500 개 지원 목표

    대상
    1) 전국 월드비전 지원아동
    2) 지역내 기타 저소득가정
    3) 가정밖 청소년아동
    내용
    마스크 / 손소독제 / 손세정제
  • 긴급 식료품 키트

    13,60013,500 개 지원 목표

    대상
    1) 대구지역 결식 위험 아동
    2) 기타 지역 저소득 가정 아동
    내용
    밥류, 반찬류, 라면 등 주부식
  • 긴급지원금

    6,0003,530 명 지원 목표

    대상
    1) 전국 월드비전 지원아동
    2) 지역내 기타 저소득가정
    내용
    아동 1인당 100,000원 이내 지원금
    (마스크, 손소독제 등 감염 예방품 및 긴급식료품 , 생필품 구입)
  • 방호복

    10,40013,000 벌 지원 목표

    대상
    1) 대구지역 의료진
    2) 대구지역 방역 인력
    내용
    방호복 , 장갑, 발싸개 등

※ 이외 쿨테크의류(10,000벌), 스마트기기(1,200개)를 지원했습니다.

전국을 대상으로 14차 긴급 구호가 진행되고 있으며, 2020년 12월 31일 기준 2,091,982,000원을 지원 완료하였습니다.
(* 모금 상황에 따라 지원 계획은 지속적으로 확대됩니다. )

 

코로나19의 장기화와 확산으로
모두가 불안에 휩 쌓인 때이지만,
서로를 향해 건네는 응원과 마음이 모여
어려움을 극복 해내리라 믿습니다.

월드비전은 후원자님들의 나눔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과 아이들을 위해
가장 적절히 사용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의도시락은?
월드비전이 지난 2000년부터, 전문 영양사와 함께 5대 영양소가 포함된 1식 3찬의 도시락을 결식아동 및 사회 취약 계층에게 전달해온 사업입니다. 전국 8개 사업장을 통해 일 평균 1,267개의 사랑의도시락이 전달되며, 지난 19년간 전달한 도시락은 781만 개에 달합니다.

글. 김유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 코로나19 국내 긴급 지원 현황 및 후원하기 ↓

정기 후원하기 > 일시 후원하기 >

 

미술관에서 작품에 집중하는 은혜

은혜야, 안녕?

 

미술관 작품에 집중하는 은혜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금 기차 타서 가고 있어요. 어제 정말정말 감사했어요 ㅠㅠ 잘 쉬시고 다음에 또 봬요!”

집으로 돌아가는 은혜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같이 밥 먹고, 차 한잔 마시고, 미술관 휙 둘러본 건 뿐인데.. 만나는 내내 너무나 신나 하던 은혜의 모습과 ‘정말정말’이라는 단어가 맴맴 돈다.

2016년, 은혜 가족은 큰 시련을 겪었다. 팔팔 끓는 가마솥에 동생 은선이가 발을 헛디뎌 빠졌고, 지적 장애가 있는 부모님은 이를 보고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은혜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발만 동동 굴렀다. 늦게나마 은선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다섯 살 은선이의 여린 피부에는 심각한 화상을 입어 앞으로 정기적으로 수술을 받아야만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예상되는 수술비와 치료비는 1억 원이 넘는 돈. 지금도 정부 지원금과 부모님 장애인수당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은혜 가족에겐 감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액수.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은 굴곡 많은 은혜 가족에게 또다시 절망을 안겼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은혜네 사정을 알게 된 월드비전이 이 가정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모였다. 덕분에 시급하게 필요했던 은선이 화상 치료비 말고도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은혜의 대학 학비까지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월드비전은 은혜 은선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가정을 돌봐 줄 수 있는 복지관과 협약을 맺고 후원자들의 나눔이 투명하고 정확하게 가정에 전달될 수 있도록 촘촘히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4년 뒤. 은혜를 서울에서 만났다.

너가 은혜야?

모든 아이들이 소중하지만 간혹 유난히 마음에 남는 아이가 있다. 월드비전 직원들 사이에서 은혜가 그렇다. 워낙 많은 분들의 관심이 모아졌던 캠페인이기도 했고, 가장이나 다름 없이 가정을 돌보는 열 다섯 살 아이가 겪은 일이 너무 아팠던 데다 은혜를 만난 직원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쩌면 그렇게 선하고 굳센지 모르겠다며 한결같이 입을 모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은혜를 나도 한번쯤은 만나고 싶었는데, 은혜가 고3을 앞두고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연을 맺은 월드비전 선생님과 하루를 보내기 위해 서울에 다니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 다정한 만남에 슬쩍 끼어들기로 했다. 마침 만나기로 한 선생님에게 급한 스케줄이 생기는 바람에 은혜의 서울 나들이의 시작부터 함께 하게 되었다.

용산역. 3년 전, 캠페인 사진으로만 봤던 얼굴인 터라 은혜를 알아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전화기를 꼭 붙잡고 있는데 기차 도착 시간에 맞춰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은혜에요.”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친절한 여유가 묻어나는 목소리)
“응 그래. 은혜야. 어디니?”(잔뜩 긴장한 건 오히려 나)
“저기 제가 지금 보이는 게…”
단정한 머리에 마스크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도 저 만치서 전화기를 들고 서성이는 아이가 은혜인 줄 한 눈에 알겠다.
“너가 은혜야?”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법 어른 티가 날락말락한 얼굴의 은혜가 씽긋 웃는다.

그 땐 모든 게 다 신기했어요.

초코 음료를 쪽쪽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엽기만 한 은혜. 그런데 또 “선생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한 마디에 “선생님 코트랑 가방은 저 주고 가세요.” 하며 이리저리 챙기는 모습에서 몸에 배인 배려가 남다르다. 은혜는 올해 고3이 되었다. 기억하기 싫은 이야기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이 그 날 이후의 근황을 묻는다.

“은혜야. 은선이는 많이 좋아졌어? 어떻게 지냈니?”
“은선이는 계속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아직 어려서 피부 이식 수술 같은 건 좀더 지켜보며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병원에 다닐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래. 다행이다. 집은?”
“정말 좋아졌어요. 화장실이 밖에 있었는데, 안으로 들이는 공사를 했거든요.”

은혜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동생이 치료를 안심하고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불편했던 화장실이 편리하게 바뀐 것도 또, 가족을 위해 접어두어야 맞는 것 같았던 꿈을 꾸게 된 것도, 모두 그저 신기할 뿐이라고 한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줄곧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던 은혜는 지금도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하고 있다. 가능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길 바라지만 집안 사정도 고려해서 집과 가까운 대학교로 진학도 생각하고 있단다. 대학은 아직 두고 봐야 하지만 어느 대학이든 가고 싶은 분야는 확실하다. ‘심리상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은 생각이 커졌어요. 또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도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저는 정말 잘 알잖아요. 병원비도, 집 수리 비용도, 또 제 학비도 정말 큰 도움이었지만, 얼굴도 모르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은선이를 걱정해 주고, 저와 엄마, 아빠를 무조건 격려해 준다는 게 진짜 신기하고 또 든든하더라고요. ”

천천히 은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은혜는 설사 심리상담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어떤 모습으로든 다른 사람의 마음 곁을 든든하고 따듯하게 지켜줄 좋은 어른이 되겠구나.’

그간 지냈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는 은혜

그간 지냈던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는 은혜

은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마침 서울에서 열려 함께 관람했다.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는 은혜.

은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마침 서울에서 열려 함께 관람했다.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는 은혜.

은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마침 서울에서 열려 함께 관람했다.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는 은혜. 은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알폰스 무하’ 전시회가 마침 서울에서 열려 함께 관람했다. 그림에 빨려 들어갈 듯 집중하는 은혜.


저마다 짊어질 삶이 무게가 있다는 말이 당연하다 싶다가도 문득문득 억울하곤 했다. 왜 그 무게가 사람마다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숨이 찼고, 왜 힘든 사람들은 더 힘들어지는 건지 답답한 가슴을 풀어내지 못할 때도 있다. 반나절, 은혜와 내가 함께 한 시간. 서로를 잘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열 일곱 살 은혜는 마흔을 넘은 나를 그 해맑은 미소로,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다정한 이야기로 위로한다. 괜찮다고. 정말 힘이 들 땐 그 짐을 나눠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신기한 사랑의 힘을 믿고 용기를 내라고. 은혜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될 거다. 이미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지만.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보스니아 축구 국가 대표가된 아드난

제 후원아동이 보스니아 축구 국가 대표가 됐어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드난

“제 후원아동이 보스니아 축구 국가 대표가 됐어요!”
– 월드비전 후원자 ★특급★ 제보 –

 

이진희 후원자님의 후원종결아동인 ‘아드난’의 유년시절

이진희 후원자님의 후원종결아동인 ‘아드난’의 유년시절

” 아드난은 언젠가 나의 한글 편지를 보고,
‘사랑해’ 라는 그리다시피한
한글을 적어준 적이 있다.

난 답장으로,
발음하는 법을 알려주었었다.

… 아이와 함께 걷는데,
아이가 손을 쓱 내밀며 손을 잡자고 한다.
그러곤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로
“사랑해”라는 서툰 한국말로
뜬금없는 고백을 한다.. “

@ 이진희 후원자

축구선수를 꿈꾸던 보스니아 소년, 아드난.
이진희 후원자님은, 월드비전의 아동후원을
통해 10살 꼬마 아드난을 처음 만났어요.

 

6년 사이, 폭풍성장으로 멋진 청소년이 된 아드난

6년 사이, 폭풍성장으로 멋진 청소년이 된 아드난

“제가 프로 축구선수가 되서 경기에 나갈 때, 후원자님이 경기장에 오셔서 저를 응원해주는 상상을 해요!.”

@아드난

“아드난이 10살 때부터 후원을 했는데, 아이는 꿈이 축구 선수라고 했어요. 그 희미한 꿈을 응원하고 지지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 희미함이 선명해졌어요. 흐뭇하게 웃어넘겼던 아드난의 이야기들이 정말 현실이 되는 건가 싶어요.”

@이진희 후원자

어린시절 아드난의 모습

매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후원자님을 위한 생일카드를
꼬물꼬물 손수 만들던 소년, 아드난.

후원자님은 월드비전과의 논의 후,
아드난을 만나기 위해 직접
보스니아에 방문하기도 했죠.

 


 

2015년 7월. 불가피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돈은 없었으나 시간이 생겼으므로 후원아동을 만나러 가야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고민 끝에 항공권을 결제하고, 10월 6일. 두 번 경유 끝에 27시간이 걸려 사라예보에 도착했다. 가톨릭과 이슬람이 공존하며 복잡한 정치체계를 가진 나라. 바로 여기 내 후원아동이 살고 있다. 사라예보와 아드난이 사는 kakanj 포함해 북쪽은 보스니아, 남쪽은 헤르체고비나라 부른다.

…. 다음 날 아침 8시에 월드비전 직원들을 만났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라틴다리에서 10분 가량 달리니 월드비전 사라예보 사무실이다. 직원들은 한국에서 온 나를 환영해줬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나를 배려한 나이 지긋한 직원 한 분이 전산에 저장되어있는 아동정보를 보여줬다. 아동 정보에는 아동의 인종, 지역(학교명), 가족관계, 결연 시기 등 중요한 정보들이 있었으며, 내가 여태껏 보낸 편지와 선물 목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날짜별로 기재해 보관하고 있다. 현재 보스니아를 후원하는 후원국은 대만과 한국, 두 나라다. 그래서인지 사무실은 동양의 흔적이 가득하다.

아드난은 투룸바 케이크와 피자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난 투룸바를 사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적어 두었다. 40분을 달리니 라쉬바 사업장이다. 마켓에 들러, 아드난이 가장 좋아하는 투룸바를 손에 쥐고 아드난의 학교로 향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항상 아드난이 사진을 찍을 때 배경이 되었던 공간에서 잠시 대기한 후에 아드난의 교실로 향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선생님이 보인다. 선생님은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고 하는데 난 망설여진다. 이런 식으로 첫 만남이 이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선생님의 손짓과 등 떠미는 직원의 성화에 못 이겨 교실에 들어선 순간 한 눈에 알아봤다. 나를 향해 누구보다 밝게 웃고 있는 아이는 아드난이다.

“아.. 내가 정말 너를 만났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아드난은 서툰 영어로 나에게 뭐든 설명을 해주고 싶어 했다. 길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어떤 열매인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영문 설명판이 나오면 내게 읽을 시간을 주면서 묵묵히 기다려준다. 하트를 닮은 나뭇잎을 주워 내게 수줍게 내민다. 온 가족이 내게 호두를 따주기 위해 뛰어오르고, 가방을 던져서 땀범벅이 됐다. 아드난의 가족들은 날 위해 선물을 준비했는데, 작은 곰인형과 목걸이다. 목걸이에는 수줍게 내 이름과 아드난의 이름이 새겨져있었고, 나 역시 수줍게 목걸이를 내미니 아이가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다. 아드난은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거라는 걸 직감했는지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운다.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안됐다. 아드난을 꼭 안아주고, 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아드난과 헤어지고 사라예보에 돌아와 편지를 썼다. “좋은 곳에 가면 그 곳에 네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너와 함께 하고 싶어.” 잊지 않을게 너와 함께한 시간들.

– 2019년 6월 16일, 이진희 후원자의 글 중에서.

 


 

이렇게 후원자님의 든든한 지지와 응원을 받은
아드난은 최근, 보스니아 유소년 축구(U-17)

국가대표로 선발 됐어요!

빨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중인 아드난

빨간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바로 아드난

“아동후원이라는 게 참 길고 긴 여정이고 어쩔 땐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한 아이의 반짝이는 어린시절을 가장 많이 공유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기적같은 일이에요. 후원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에요.(웃음)

제가 아드난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에요. 1년에 15cm는 자라는 아이의 키가 신기했고, 꼬물꼬물 매년 나를 위한 생일카드를 손수 만드는 소년이 지구 반대편에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설레였어요.

@이진희 후원자

축구 경기중인 아드난

실제 경기에서 뛰고 있는 아드난의 모습

“후원은 종결 되었지만 아드난이 소속된 축구클럽과 보스니아 축구협회 사이트 등을 통해서 아드난의 경기와 수상소식들을 운 좋게 계속 접할 수 있어요. 아이가 편지에 썼던 것처럼, 곧 아드난의 싸인이 담긴 축구화와 유니폼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뻐요.(웃음)”

메달과 트로피를 들고 있는 아드난

출처: _berbashhh(인스타그램)

‘아드난이 프로 축구 선수가 되어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 이게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꼭 지켜질 약속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다시 만날 땐 꼭 아드난이 보스니아 국기를 자랑스럽게 달고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진희 후원자

아드난을 직접 만난 이진희 후원자의 모습

아드난을 직접 만난 이진희 후원자의 모습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나의 친구 아드난 안녕 –

@이진희 후원자

 

 

글과 사진. 이진희 후원자

편집.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아이들이게 기생충에 대해서 설명중인 특별사업팀 김은석 차장

기생충 박사님의 현장 이야기

 

“ 그렇죠.
이제 한국에서 ‘기생충’하면 진지한 자랑스러움이 차오르며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당당히 선 우리의 봉준호 감독과 배우, 스텝들을 생각하게 되었죠. 여기 또 한 사람. 아프리카에서 ‘기생충’ 하면 빠질 수 없는 이름이 있다는 데요. ‘기생충 박사’라 불리는 그를 직접 만나 보았습니다.

아이들이게 기생충에 대해서 설명중인 특별사업팀 김은석 차장

 

저는 차장님을 ‘기생충 박사님’이라고 들어 왔어요. 정확한 자기 소개 부탁 드려요.

김은석 차장(이하 ‘김’): 저는 월드비전 GRANT/특별사업팀 김은석 차장입니다. 지금은 우간다 마유게 지역에서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을 하고 있어요. 인구가 50만 정도 되는 마유게 지역은 빅토리아 호수라는 큰 호수 근처에 있어 특히 소외열대질환이 심각한 지역이에요..

 

우간다에서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드비전 GRANT/특별사업팀 김은석 차장.

우간다에서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드비전 GRANT/특별사업팀 김은석 차장.

소열대질환이요?

김: 소열대질환 아니고, ‘소외열대질환’! 이게 뭐냐면 아열대 지역에서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을 모두 말하는 거예요. 기생충 질환, 세균성 바이러스 질환 등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월드비전은 특별히 주혈충증, 장내기생충 퇴치 사업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차장님은 수많은 국제개발 사업 중 어떻게 ‘기생충’ 퇴치 사업에 뜻을 두게 되었나요?

김: 공부를 하며 막연히 의사가 되고 싶다 정도였지 ‘난 기생충을 공부할거야.’ 이런 마음은 없었어요. 그런데 의과대학 진학 후 군의관이 아닌 국제협력의사라는 제도에 지원하게 됐어요(지금은 없어짐ㅠㅜ). 페루와 카자흐스탄 중 전 페루에 지원을 했죠.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했어요. 페루가 멀기는 하지만 도심 쪽 보건소는 괜찮겠지, 하면서 크게 걱정은 안 했어요. 이게 왠 일? 아마존으로 가라는 거예요. 3년을요. 아시죠? 아마존. 하아.. 그런데 말도 안되게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도 바고 이 시점이에요. 참 신기해요. 사람 사는 일이.

 

아마존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

김: 독일에서 온 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마존에서 어렵게 의료 활동을 하고 계셨어요. 독일에 있었으면 의사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여기까지 와서 고생을 자처하는 게 이상했어요. 무엇보다 본인도 당뇨를 앓고 있었거든요. 날 잡아서 하루는 물었죠. 선생님도 병이 있는데 굳이 왜 이런 곳에서 일하시는 거냐고. 그랬더니 오히려 되묻는 거예요.

“김선생님. 우리가 세상을 몇 번 살 수 있나요?”
“네? 한, 번이요.“
“맞아요. 한번 밖에 못사는 삶인데 내가 가진 능력을 가장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며 살고 싶어요.”

제 삶을 바꿔놓은 대화였어요.

강렬한 순간이었네요. 그럼, 월드비전과 인연은 어떻게 닿았나요?

김: 국제협력의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내과 전임을 했어요. 그러면서아프리카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알아봤어요. 그러다 2011년, 말라위에 있는 병원에서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3년 반 동안 내과 의사 겸 병원에 딸린 부속 간호 대학 강사로 일했어요. 현장에 보다 도움이 되려면 공부가 더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런던으로 건너가 국제보건전문대학에서 국제보건학석사를 전공했어요. 개발도상국에서 의료보건 전문 인력으로 활동할 때 필요한 이론은 물론 의료 기술 까지 참 많이 배웠어요. 학위를 받자마자 우간다로 넘어와 릴롱궤 지역에서 여러 의료 기관과 일을 하다 마침 모자보건 사업을 준비 중이던 월드비전을 만났어요. 전 보건 전문가로 일하게 됐죠. 그 사업을 잘 마치고 2019년 4월부터 소외열대질환 퇴치 사업을 시작한 거예요. 이 사업에서도 제가 맡은 건 보건 전문 분야이고요.

기생충 약을 처방 받고 있는 마유게 지역 아이들

기생충 약을 처방 받고 있는 마유게 지역 아이들

전문의에 현장 경험도 정말 탄탄해서 여러 기관에서 탐내는 인재였을 것 같아요. 그런 차장님이 굳이 월드비전과 함께 하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김: 아프리카에서 다른 기관들과 활동을 하며 여러 한계점을 부딪쳤어요. 이런 어려움을 겪다가 월드비전을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여러 장점을 발견했죠. 가장 큰 건,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할 충분한 인력과 경험이 있다는 거예요. 제대로 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 거죠. 또 아프리카에서는 NGO가 활동할 때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 말고도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해요. 아무리 좋은 사업을 제안해도 신뢰가 없으면 실제 사업을 진행하기가 무척 어렵죠. 월드비전은 우간다에서 이미 30여 년 동안 일을 하며 믿음을 주고 받는 관계를 잘 쌓아놨어요. 무엇보다 약을 나눠 주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지 주민과 의료진에게 모든 노하우를 전하고 마을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월드비전이 떠난 후에도 주민 스스로 마을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지금 현장에서는 기생충 퇴치와 질병 예방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있나요?

김: 기생충 노출 위험이 큰 사람들에게 대규모로 예방약을 투여하고 있어요. 상당히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지만 질병을 완전히 퇴치하기는 어렵죠. 그래서 월드비전은 대규모 예방약 투여뿐 아니라 깨끗한 물과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돕는 보건 사업, 지역 의료진 역량강화, 주민들 보건 인식개선 사업 등 보건 환경을 전체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해요. 근본 원인을 해결해서 지속적인 사업 효과를 이끄는 거죠.

월드비전에서 훈련 받은 마을 보건 의료진이 아이들에게 직접 기생충 예방약을 먹이는 모습

월드비전에서 훈련 받은 마을 보건 의료진이 아이들에게 직접 기생충 예방약을 먹이는 모습

정말 쉼 없이 달려오셨네요. 차장님. 이제 이야기의 시작인 것 같은데, 지면 상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겠어요. 마지막으로 차장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김: 아마존에서 만났던 독일 의사 선생님의 꿈이 제 꿈이 되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꼭 필요한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 곳이 어디든 상관 없이요.

씻고 먹고 자는 것, 세월이 흐르며 익숙해진 불편함 말고도 아프리카에서의 일상은 녹록치 않습니다. 강도를 당한 적도 있고 틀림없다던 날짜에 약품이 도착하지 않아 공들여 모아놓은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지요. 짜증도 나고, 좌절도 했지만 포기만은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기생충 박사님 마음 속에 품어져 버린 꿈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인터뷰 바로 다음 날 우간다로 돌아가신 차장님. 지금도 기생충과의 한판 승을 벌이고 있는 차장님께 오스카 상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을 향해 보냈던 찬사와 박수만큼이나 큰 격려와 자랑스러움을 보냅니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월드비전에서 웹 개발자를 모집합니다

월드비전에서 웹 개발자를 모집합니다

적어도 한국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웹 개발자에게만큼은
꼭 누리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동과 지역을 변화시키는 즐거운 경험,
개발자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기획자, 디자이너 동료들,
그리고 워라밸(웍 앤드 라이프 밸런스)을요.

월드비전과 함께 할 개발자를 모집합니다.
개발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지원을 기다립니다.

월드비전. 새명의 아이들이 정면을 보고 웃으며 손목을 보이는 모습

월드비전 개발자의 하루

국내 최대 NGO, 월드비전의 웹개발자는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요?

  • 월드비전 개발자 업무 스케줄 확인 키보드 치는 모습

    am 08:00

    사내 업무 요청 게시판을 확인해, 신규 요청들의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진행 중인 개발 업무의 경과와 스케줄을 확인합니다.

  • 월드비전 개발자 페이지 개발하는 모습

    am 09:00~12:00

    아프리카의 난민 상황이 악화돼 급히 페이지 제작을 결정했습니다. 개발자는 후원금 결제 모듈 설정 및 데이터 연결을 수행합니다. 서비스 검수 뒤 서버에 오픈하죠.

  • 여의도 벚꽃

    점심시간

    여의도엔 맛 집이 많습니다. 팀원, 다른 직원들과 약속을 잡고 맛난 점심을 즐기면 됩니다. 틈틈이 산책할 여의도 공원과 윤중로 벚꽃도 작은 기쁨이죠.

  • 회의하는 모습

    pm 1:00 ~ 3:00

    해외후원 아동과 사업장 소식을 개인별 웹 페이지로 구현하는 탬플릿과 정보 암호화 작업을 후원자 서비스 부서와 협의합니다. 수정 요소를 추가 검수합니다.

  • 온라인으로 대화중인 기획자와 디자이너

    pm 3:00 ~ 5:00

    기업 고객의 나눔 이벤트 신청 페이지와 결제 페이지를 연동 작업한 결과물을 기획자, 디자이너와 공유합니다. 최소화한 추가 요청을 기능 구현 항목에 더합니다.

  • 영어책을 펼쳐놓은 모습

    pm 5:00 ~

    퇴근합니다. 야근은 매우 적습니다. 어학 등 자기계발 지원도 있어, 영어 수업 등을 듣기도 합니다.

월드비전 개발자의 한마디

현재 근무중이 월드비전 개발자가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서버와 플랫폼 지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직원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IT기술로 구현하기 위해 사람, 그리고 컴퓨터를 잇는 원활한 소통과 전달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지구 반대편 아이를 돕고 싶어서 들어왔고, 4년이 지났는데요. 개발자가 필요한 분야들이 많습니다.
들어오시면, 자동화, 고도화 등 역량을 발휘하면서 누리는 기쁨도 크실 거예요.”

지구촌 극빈국 아이들과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월드비전에 관심이 있는 개발자라면 지금 지원해주세요.
개발자님과 함께 할 날이 무척 기대됩니다.

저희가 모집하는 개발자는…

• 채용형태 : 경력/정규직 (수습 6개월)
• 프로세스 : 서류 전형 → 인적성 → PT/면접→ 합격
• 주요업무
– 홈페이지 개편 사업 내 웹 개발 코디네이션
– 모금 캠페인 등 홈페이지 웹개발
• 자격요건
– 3년 이상 경력자로, JAVA에 익숙하고 기타 언어를 경험하신 분
– Apache, Tomcat, MySQL, Oracle DB 운영 또는 경험하신 분
– 프론트 엔드 개발 기술을 가지신 분
– 기독교 글로벌 NGO 이해와 월드비전의 가치를 사명으로까지 생각하시는 분
• 우대사항
– 관련 전공을 졸업하신 분

채용공고 보러가기

(※ 입사 지원은 PC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의 도시락을 들고 밝게 웃고있는 오상택 봉사자님

우리 아이들을 키워준 사랑의 도시락, 뭐라도 해야죠!

 

“택시 운전을 하면서 두 아이 끼니를 제 때 챙기는 건 너무 어렵죠.
아이들 밥 때는 다 되어 가는 데 멀리가시는 손님이 타기라도 하면 마음이 철렁 하지만 또 돈도 벌어야 하니까 안 모실 수도 없잖아요.

사랑의 도시락은 동동거리던 아빠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어요.”

 

왜 어려운 일은 한번에 몰려오는 지..

다부진 눈매로 조근조근 지난 날을 이야기 하는 오상택 봉사자. 이제는 공군으로, 요리사로 잘 커 준 두 아이들이 든든하지만 이렇게 키워내기까지 참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리고 결코 아빠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봉사자님은 사업을 하다 실패했고 가정은 크게 흔들렸다. 여러 어려움들이 겹치며 아내와도 헤어지게 되었고 두 아이들은 아빠와 남았다. 아빠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장시간 운전이 익숙하지 않았던 아빠는 다리에 마비가 오며 운행을 오래 할 수가 없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먹이기도 힘에 부치는 시절이었다. 형편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점점 안 좋아지기만 했고 아빠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이 찾아와 주셔서 얼마나 감사하던지.

오상택 봉사자의 가정이 이렇게 위태로울 때 월드비전을 만나게 되었다. 봉사자 가정의 어려운 사정을 월드비전이 알게 되었고, 두 아이가 하루에 한 번 사랑의도시락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가 벌써 2004년. 큰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애가 2학년 무렵이다. 아이들 끼니 걱정 없이 택시 운행을 할 수 있게 된 봉사자님은 아이들이 건강 걱정과 부모로써 기본도 해 주지 못하는 듯 한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마음에 담아만 둘 수 없어 택시 일을 하다 짬이 날 때마다 봉사할 것을 찾아 월드비전 복지관을 찾아 자원봉사를 했다. 시간이 맞으면 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고된 노동에 봉사까지 힘들 지 않을 수 없지만 아빠의 발걸음과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요?”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을 만나 자원봉사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시는 오상택 봉사자님

월드비전 사랑의 도시락을 만나 자원봉사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시는 오상택 봉사자님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아빠는 정식 봉사자가 되고.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도시락 지원은 이어졌고, 영양 만점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자신들의 꿈을 찾아 첫째는 공군이, 둘째를 요리사로 제 몫을 해나가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빠는 2014년부터 정기적인 날짜를 정해서 사랑의도시락을 배달하는 정식 봉사자가 되어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지금은 건물 경비 일을 하는 오상택 봉사자는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나눔의 집을 찾는다. 그리고 두어 시간 남짓 13가정에 26개 도시락을 배달한다. 오래 살던 동네라 길이 익숙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고 머쓱해 하셨지만, 고된 경비 일을 마치고 다시 고갯길을 찾아가며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은 만만치 않을 거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드린 것처럼 우리 가정이 월드비전에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컸어요. 그에 보답 드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봉사를 하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하고 있어요.”

 

도시락이 처음 배달되던 날을 잊지 못해요.

어려운 형편에서 아이들을 키웠지만 아빠는 아이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정직’과 ‘감사’를 가르쳤다.

“처음 파란색 사랑의 도시락이 두 개 배달되어 왔는데, 애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반찬도 실하고 밥도 넉넉하고요. 한창 자라는 두 사내 아이가 먹기에 모자람이 없었죠. 그 때 이 도시락을 준비했을 여러분들이 떠올랐어요. 식단을 짜시는 분, 조리를 직접 하시는 분, 또 배달을 하시는 분… 그리고 이런 사업을 위해 후원을 하시는 분. 참 어렵고 힘든 일인데 그 모든 분들의 사랑이 이 내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구나 생각하니 감사하고 또 감사했어요.”

‘정직하게만 살면 그 삶은 부끄럽지 않는 거다.’라는 아빠의 가르침을 꼭 닮은 두 아들은 올곧고 바르게 자랐다.

 

아이들은 이제 다 자라 사랑의 도시락을 더 이상 먹지 않지만, 아빠는 매주 금요일이면 양손 묵직하게 도시락을 들고 배달 봉사를 나선다. 이 길이 옳은 길이기에 멈출 수 없다 하는 봉사자님의 얼굴엔 햇살 닮은 따뜻한 웃음이 가득 이다. 그래, 달리 사랑의 도시락이겠는가.

양손에 하나씩,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배달을 가는 오상택 봉사자님

 

아이들에게 사랑의 도시락 보내기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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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월드비전 패밀리데이, 박미선의 보이는 라디오!

찬바람이 온 몸을 감싸는 12월 어느 금요일 저녁!
시끌시끌, 북적북적, 꺄르르륵~

레트로 감성을 물씬 풍기는
행사장 로비에는 월비사진관, 월비다방, 월비상회 등
다양한 부스가 운영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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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데이에 오신 월드비전 가족들을 위한
스페-샬 간식과 재미있는 뽑기도 준비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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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시간 한참 전부터 오셔서
로비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고 계신 후원자님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월드비전 패밀리데이에 어떻게 오시게 되었나요?

 

 


다양한 이유로 친구와 가족들과
따뜻한 마음을 한 가득 가지고
참석하게 된 패밀리데이~

패밀리데이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본격적으로 구경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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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감성으로 패밀리데이의
포문을 열어준 허지영 밴드부터,
감미로운 목소리 가수 홍대광,
패밀리데이를 축하하는 가수 별의
특별한 무대까지 다채로운 공연이 가득했답니다.

그리고, 2019 패밀리데이!
박미선의 보이는 라디오에서
준비한 첫 번째 코너

“처방은 내가 할게, 고민은 누가할래?”

DJ 박미선 씨와 가수 조성모 씨가
후원자님들의 사연을 소개 해주시고,
바로 바로 고민을 해결해 주었는데요.

20~30대 후원자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로 취업, 연애, 육아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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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사랑을 했다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원자님께 드리는
DJ 박미선 씨의 처방!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됩니다.
하지만 서두르면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100% 맞는 사람은 없어요.
서로 맞추어 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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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코너, ‘월비의 만찬’

DJ 박미선 씨가 실제로 다녀온
아프리카 현장 영상을 함께 보며
가수 이지혜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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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서너 차례 아프리카에 다녀온
박미선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아이들은
우간다의 ‘로참과 이콜롱’이였답니다.

​박미선 씨가 만났을 때,
아이들은 모레 벼룩으로 손에도 상처도 많고,
제때 먹지도,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3년 후, 아이들을 다시 찾아갔을 때,
아이들은 치료를 받아 예쁜 손으로 회복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고 해요.

감동적인 코너를 마친 후,
전이수 작가가 영상으로 깜짝 등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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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새내기 후원자가 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전이수 작가!

​노숙자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그동안 모은 돈 300만 원을
어려운 아이들에게 기부해 주신 사연을 듣고
그린 그림을 소개와 함께 만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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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더라고요. 힘든 사람이 ‘힘듦’을 알기 때문에 힘든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거예요. ‘힘든 사람들을 누군가가 도와주고 아껴준다면 힘든 사람들의 힘든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함께니까…” @전이수 작가

 


 

올 한해도 월드비전과 함께해주시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먼저 손 내밀어 주신 후원자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글.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박현아
자료. 편형철,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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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201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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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월드비전 국제사업

여기 매일매일 가난과 질병,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느닷없는 재난과 전쟁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이 겪는 공포와 고통은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된다. 부서진 일상 속에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함께 무너져간다.
월드비전은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런 아이들을 찾아간다. 후원자의 나눔과 사랑은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민첩하게 하고 보다 전문적으로 움직이는 데 든든한 힘이 되어 함께한다. 긴 호흡으로 진행되는 월드비전의 국제사업. 쉽지 않은 여정 속에 포기하지 않고 발걸음을 함께한 후원자, 현장의 아이들과 주민, 월드비전이 일으키는 변화의 증거를 차근차근 살펴보려 한다.

 


 

깜깜했던 하루하루에 밝은 빛이 비쳤어요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피리야. 외톨이였던 피리야에게 안녕 인사를 처음 건넨 건 월드비전이었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피리야.
외톨이였던 피리야에게 ‘안녕’ 인사를 처음 건넨 건 월드비전이었다.

 

눈을 맞춰 인사할 순 없지만 환한 미소와 단단한 말투가 그대로 마음에 새겨지는 아이. 피리야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인도에서 에이즈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도시인 넬로어에 사는 피리야는 앞을 보지 못한다. 에이즈 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피리야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감염자였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두렵고 무지했던 부모는 피리야에게 적절한 치료약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피리야는 결국 에이즈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깜깜한 오늘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살 이유가 없었어요. 앞이 안 보여서만은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요. 그냥 하루를 살면 다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무기력한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지만 저 역시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릴 거란 생각에 집 밖으로는 나갈 생각도 안 했어요.”

 

부모님도 피리야 곁을 떠나고 할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피리야의 가정에는 짙은 절망만이 가득해 말하고 숨 쉬는 당연한 일들조차 힘이 들었다. 모든 것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손녀딸을 보는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시밭이죠. 아무 죄 없는 아이가 저리 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에요. 저도 이런데 본인은 어떻겠어요? 웃는 법도 없고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그렇게 살아왔어요.”

 

 

피리야를 집 밖으로 불러낸 건 월드비전이었다.
어느 날, 월드비전 직원과 에이즈 환자 모임의 리더라는 사람이 피리야를 찾아왔다.

“안녕, 피리야.”

 

 

‘우리’는 ‘우리’가 지켜요

인사를 건네던 월드비전 직원의 목소리가 피리야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이제껏 피리야는 이렇게 다정한 인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피리야와 같은 에이즈 감염자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도 불쾌해했다. 월드비전 직원이 전하는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피리야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죄 지은 사람처럼 집 안에만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월드비전 직원의 이야기를 들은 피리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피리야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월드비전은 우선 피리야가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점자 교육에 참여하도록 했다. 집 밖으로 나오니 피리야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월드비전은 이들을 한데 모아 연대하여 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돕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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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드비전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피리야와 같은 에이즈 감염 환자들을 위해 진행한 점자 수업. 피리야는 이 수업을 통해 글을 읽고 쓰는 걸 배워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 넬로어 사업장의 에이즈 감염자들의 모임 ‘긍정 네트워크(Positive people network)’는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있기에 서로 연대하며, 모임에서 가장 어려운 회원을 우선적으로 돕는다.

 

3.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피리야의 할머니에게 월드비전에서는 재봉 직업 기술 훈련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월드비전은 재봉틀도 제공했다. 할머니는 이제 동네에서 알아주는 재봉사로 이름을 날리며 넉넉히 가정을 돌볼 수 있게 되었다.

 

4. 강제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거나 스스로 주변의 눈이 무서워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에이즈 감염자들을 월드비전은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해서 만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5. ‘긍정 네트워크’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에이즈 감염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 개선과 올바른 건강 관리 방법 등을 논의하고 실천한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기본 + 행동도 바뀌어야
= 진짜 변화!

월드비전은 피리야의 마을에서 진행했던 것처럼 어렵지만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 일상의 행동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꾀한다. 물론 식수가 필요한 곳에 식수 시설을 짓고, 학교가 필요한 곳에는 학교를 짓는 등 환경을 바꾸어나가는 사업도 활발히 펼친다. 이런 기본적인 사업에도 중요한 비중을 두지만 무엇보다 아동과 주민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 힘을 쏟는다.

환경을 바꿔주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교육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5년에서 20여 년까지 한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눈에 보이는 문제만 없애주는 게 아닌, 그 문제가 왜 생겼는지 끝까지 파고들어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야 마는 월드비전의 사업 방식은 월드비전이 떠난 후에도 주민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월드비전 국제사업 과정

환경 바꿔주는 사업 + 행동 바꾸도록 교육

보건영양, 보건소 개선 및 보수와 이유식 조리법 교육. 식수위생, 식수 시설 및 화장실 설치와 식수관리위원회 훈련. 교육, 시설 개부소 교사 역량 강화 와 아동 연령별 맞춤 교육. 소득증대, 생계 수단 지원과 저축 그룹 활동. 아동보호, 아동 문제 알릴 창구 마련과 아동 클럽 자기 방어 훈련

 

 

좋은 것은 확실히 늘었고
나쁜 것은 확실히 줄었어요!

피리야는 결국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뤘다. 내일도 오늘처럼 깜깜할 거라며 절망 속에 살던 피리야를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잡아준 월드비전과 지역주민 그리고 한국의 후원자들 덕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월드비전이 펼친 사업이 거둔 실질적인 변화는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다.

70년 가까이 진행된 월드비전의 사업으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확실히 줄었고, 튼튼한 가정과 마을을 만드는 점들은 확실히 좋아졌다. 오랜 세월이 흘러 보니 위태롭던 아이들과 주민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 것뿐 아니라 이들을 응원하며 사랑과 응원을 아낌없이 보낸 후원자 그리고 월드비전 직원들의 삶 속에도 만만찮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함께 성장했으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월드비전 국제사업 과정

5개 핵심 문제의 실제 변화

[2017 방글라데시 자립마을 보고서]

보건 영양, 저체중 아동 26%에서 6%로 감소. 식수 위생, 식수 접근율 56%에서 97%로 증가. 교육, 중등학교 졸업률 45%에서 97%로 증가. 소득증대, 저축액 향상 주민 38%애서 84% 증가. 아동보호에서 조혼비율 39%에서 17%로 감소.

 

해외사업 후원하기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자료. 이은규 지역개발팀, 월드비전 글로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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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대화의 막바지, 아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주로 내가 하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고,  평생 처음 받아본 내용이어서 ‘으응?’ 하는 기색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그의 질문은 이것.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아쉬는 동네 친구들과 똑같이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들 어렵게 살았기에  특별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다만 엄마, 아빠, 아쉬 그리고 여동생 둘이 빠듯하게 사는 하루하루의 끝이 어디일지 떠올리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니 나에게 미래란 있는 걸까? 이렇게 무료한 하루하루를 계속 살게 되는 걸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오늘의 반복’이 될 거란 생각이 들면 가슴 저 끝까지 답답해졌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2000년. 아쉬가 살던 몽골 날라이흐 마을에 새로운 기운이 돋았다. ‘월드비전’이라는 기관이 마을의 고민거리에 함께 머리를 맞댄다고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월드비전과 수시로 만나 무엇부터 바꿔나가야 할지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길어져 낮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진 날도 있다. 꼬물꼬물 웅크린 애벌레가 날개를 터트리듯,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던 마을에 드디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후된 학교 시설이 고쳐지고 모자랐던 교실이 생겼다. 깨끗한 물이 언제나 콸콸 뿜어 나오는 식수 시설도 생겼으며, 위생 습관도 자리 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후원자가 생겼다는 것! 아쉬도 편지와 사진으로 후원자를 만났다. 후원자는 종종 공책, 연필, 사탕 등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내 왔다.

“한국에서 보내 주신 선물을 받으러 막 뛰어가던 어릴 때 제 모습이 떠올라요.”

어린 아쉬에게 후원자의 관심은 신기하고 따뜻했다.

“월드비전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참여했어요. 생일 파티, 야외 단체 활동, 손 씻기  캠페인, 재난 때 행동 방법, 나쁜 습관 방지 캠페인, 아동 보호… 정말 많이 활동했죠?  활동을 하며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변화는 많은 친구들이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재능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월드비전 프로그램으로 저와 같은 아이들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월드비전 선생님들도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고요.”

 

몽골대학교 엔지니어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몽골대학교 엔지니어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 아쉬는 이제 어엿한 몽골대학교의 학생이다. 방학 동안 공사장 일용직에, 가로등 설치 시스템 구축 일 등 아르바이트를 두 개씩 뛰며 학비를 마련해야 하지만 굳게 품은 꿈이 있기에 힘들어도 꾹 눌러 참아본다. 아쉬의 꿈은 수도 공급 시스템 엔지니어. 심각한 대기 오염이 문제인 몽골은 물 부족과 오염도 만만찮은 골칫거리다. 정수 및 공급 시스템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쉬가 전공하고 있는 엔지니어학과는 졸업 후 취업률이 높다. 실업률이 심각한 몽골에서 흔치 않은 일인 데다 2020년 졸업 예정인 아쉬는 벌써 몽골 정부로부터 졸업 후 물 관련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다. 아쉬와 몽골대학교의 한적한 강의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듬직하게 잘 자랐다는 것이 어떤 것임을 본다.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의 후원자에게 남길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몽골의 찬 공기 속 다정한 기운이 훅 풍기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쉬가 후원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와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심장이 쿵 하던 그 순간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후원자님! 후원자님에게 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어렸을 때 월드비전 선생님이 후원자에게 소식이 왔다고 하면 기뻐서 달려갔던 기억이 나요. 그 순간,  그 떨리던 심장 소리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후원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던 아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더듬더듬 대답을 한다.

“아니요, 아니요. 저는 후원자가 없어요.”

다시 아쉬의 말이 이어진다.

“그럼 이 감사와 이 기쁨을 모를 거예요.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는 정말 어마어마해요. 후원자님, 어렸을 때 그런 기쁨을 맛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후원자님, 제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거예요. 어디서든 당당하게 열심히 일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마을이 자립을 해서 월드비전은 떠났지만 우린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었어요. 저 역시 후원자님처럼 월드비전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어서 신나고 좋았습니다.”

 

부자보다는 당당하고 훌륭한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부자보다는 당당하고 훌륭한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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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 2019 월드비전 10대 뉴스

후원자님과 월드비전이 함께 만든 2019년의 하이라이트,
그 빛나는 순간을 함께 살펴보아요.

 


 

1.
자립을 축하해요!

 

올해 스스로 아이를 지키고 돌볼 수 있는 자립마을이 된 에티오피아 굴렐레, 노노 사업장, 보스니아 라스바, 버바스 사업장, 인도 부바네스와르, 군들루펫 사업장.
에티오피아 굴렐레 사업장 아이들이 월드비전을 처음 만났던 17년 전, 충분히 식사할 수 있는 가정의 비율은 35%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2019년 자립을 맞으며 이제 86%가 넘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영양가 있는 식사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97%가 넘는 아이들이 지역 내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이들의 풍성한 삶과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꿈! 모두 후원자님 덕분이에요.

 

 

2.
후원을 통해 변화된 아이들의 삶

 

10배 빠르게 자라는 피부 각질로 완치가 불가능한 희귀병 ‘선천성 어린선’을 앓는 유진이.
유진이의 사연이 전해진 후 많은 후원자님께서 온정을 더해 주신 덕분에 유진이는 병원비, 양육비 걱정 없이 마음껏 치료받고 유치원도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유진이뿐 아니라 일시, 만성적인 위기 상황(질병,사고, 자연재해, 실직 등)에 놓인 아동, 청소년 가정들이 후원을 통해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다시 되찾아가고 있어요.

 

 

3.
전국구로 열린 월드비전 후원자 모임

 

서울, 대전, 광주, 부산 그리고 사업 시작 이후 25년 만에 처음 개최된 북한사업 후원자 모임까지! 올해 월드비전은 전국 각지에서 후원자님과 조금 더 가까이 만났답니다! 아직 찾아가지 못한 지역이, 뵙지 못한 후원자분이 너무나 많지만 가슴 뛰는 그 여정을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후원자님께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월드비전이 되도록 더욱 노력할게요! 계속 함께해 주실 거죠 ?

 

 

4.
긴급구호 현장, 가장 빠르게,
가장 필요한 곳에, 가장 마지막까지

 

올해에도 세계 곳곳에서 태풍, 사이클론, 홍수 등의 가슴 아픈 자연재해 소식이 많이 들려왔어요. 특히 올해는 남부 아프리카 3개국을 강타한 사이클론 이다이(IDAI)로 말라위, 모잠비크, 짐바브웨 지역에서 약 1,000여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요. 영양실조가 우려되는 3개국의 이재민 총 131,992명에게 영양 지원을 했고, 식수대 설치, 화장실 재건 등을 통해 총 834,872명에게 식수와 위생시설 지원을 완료했어요.
월드비전은 일시적인 지원으로 그치지 않고 이들의 삶이 안정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구호 및 재건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5.
꿈을 향한 100km, 국토대장정

 

월드비전은 가정 환경과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좌절을 경험하고 그 좌절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성취감’을 통해 자신감을 얻도록 올해도 국토대장정을 실시했어요.

“파주부터 임진각을 거쳐 여의도까지 100km. 우리는 나와 친구들, 모두의 꿈을 생각하며 걷는다. 때론 주저앉고 싶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끝까지 완주하려 한다. 그리고 이 힘으로 앞으로 내가 만날 세상에서 그 무엇도 헤쳐나갈 것이다.”
_꿈꾸는아이들 국토대장정 단원 일동

아이들이 실패와 좌절을 넘어 꿈을 향해 끝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6.
좀 더 특별한 후원, 비전스토어

 

“내가 가던 그 빵집이 비전스토어였다니!”

혹시 단골 빵집, 커피숍, 꽃집, 내 아이의 학원에서 비전스토어 현판을 보신 적 있나요? 2017년 1호 출범 이후 2019년 2,803호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가게·기업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착한 소비 문화를 확산시켜주고 계시답니다! 후원자님께서도 일상 가운데 비전스토어를 발견하신다면 아이를 위한 착한 소비에 함께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7.
깨끗한 물을 위한 달리기,
Global 6K for Water

 

개발도상국 아이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걷는 평균 거리, 6km. 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하기 위해 참가비를 기부하고 함께 6km를 뛰거나 걷는 ‘Global 6K for Water’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최되었어요. 작년에는 약 2,000명의 참가자가 함께해 주셨는데 올해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창원, 고양 등 전국 11개 도시 13곳에서 무려 약 15,000명이 참가했어요. 특별히 유지태 홍보대사도 아이들의 깨끗한 물을 위해 6km를 끝까지 함께 달려주셨답니다!
달리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해 주신 참가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8.
아름다운 평화의 하모니,
2019 월드비전 합창단 신년 음악회

 

분쟁 피해 아동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고자 개최된 2019 월드비전 합창단 신년 음악회 ‘분쟁 피해 아동을 위한 평화의 노래’. 월드비전 합창단원들은 2018년 여름 유럽 공연 당시 분쟁 피해 아동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노래하고 돌아왔는데요. 그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33명의 목소리와 11개의 현악기가
만든 하모니는 1,600명 관중의 마음에 따뜻하게 녹아들었어요. 모든 이가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우리의 노래가 저 멀리 분쟁 피해 지역에 닿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9.
Basic for girls,
해외 여아 위생사업 캠페인

 

월드비전은 2016년부터 여자아이들의 기본 권리를 보호하여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베이직포걸스(Basic for girls)’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올해는 1년 중 60일에 이르는 생리 기간 동안 헝겊, 매트리스 솜, 마른 잎으로 버티는 소녀들에게 생리대 및 성·위생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Protect 60’ 캠페인을 진행했답니다. 꾸준한 지원을 통해 2018년에는 국내외 4,712명의 아이들이 생리대를 지원받고 11,300명의 아이들이 성·위생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는 여전히 1억 명에 달하는 여자아이들이 비위생적인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끊임없는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려요!

 

 

10.
비전로드, 나의 후원아동을 만나다

 

7월, 소중한 휴가를 반납하고 6박 9일의 일정으로 후원아동을 만나기 위해 12명의 후원자가 케냐로 함께 떠났어요.
“월드비전의 행보와 직원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여러 사업장을 다니며 느낀 점은 월드비전은 단순한 원조를 넘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월드비전 후원자로서 자부심을 느낀 여행이었다.”
_유재혁(31) 후원자

후원아동을 만나 그들이 어떤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는지, 월드비전의 사업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직접 보는 것은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큰 감동과 기쁨을 준답니다. 후원자님, 내년에는 함께 떠나보시겠어요?

 

 

글. 신호정 후원동행2팀
사진. 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