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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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캠페인] 호호 추웠던 겨울이 하하 웃는 겨울로

월드비전 난방온 캠페인 결과 보고

 

도심 한복판에 세워진 60㎡(18평) 임대 아파트. 한눈에 보기에도 낡고 오래되어 보입니다.
“계세요?” 하며 문을 똑똑 두드리자, 살짝 열려 있는 현관문 틈으로 우당탕탕 시끌법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손님이 많이 찾아오셨나 싶을 정도로 현관 앞을 가득 메운 신발들. 이곳은 엄마와 7명의 자녀가 함께 살고 있는 승준이네 집입니다.

형 3명, 누나 3명. 승준이는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홉 살 막내입니다. 승준이가 네 살 무렵, 지금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로 이사 왔습니다. 여덟 식구가 다세대 주택을 전전하던 시절에 비하면 처음에는 궁궐 같았습니다.혼자서 7명의 자녀를 돌보는 일도 쉽지 않는데, 지적 장애를 가진 첫째 아들 때문에 엄마는 어디 일하러 갈 수도 없습니다. 매달 정부에서 지원되는 수급비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승준이네. 하루하루 버티는 삶을 살아오는 사이 집은 점점 낡아졌습니다. 방문도 떨어지고 곳곳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겨울이 찾아오면 승준이네 집은 더 이상 따뜻한 보금자리 역할을 할 수 없었습니다. 차갑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아주지 못했고 보일러를 켜도 난방비 부담만 늘어날 뿐, 집 안을 감도는 차가운 공기는 승준이네 가족의 피부에 그대로 닿았습니다.
여덟 식구가 산다고 하기에는 단출한 살림살이, 겨울이 와도 무엇을 더 준비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물려주고 물려 입은 겨울 외투는 해져 있었고, 겨울철 필수품이라는 보온 내의조차 장만할 수 없었습니다.

“큰애 때문에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당장 애들한테 들어갈 돈도 많고, 애들 밥해 주기도 힘드니까…
겨울에도 추우면 추운 대로… 집을 고칠 생각은 아예 못 했어요.”

월드비전에서 지원을 받기 전 집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승준이는 “그때는 방문도 떨어져 있고, 벽에 작은 구멍도 있고… 그래서 슬펐어요”라고 말하며,  엄마와 함께 지난겨울을 떠올렸습니다.

일곱 남매의 신발로 빼곡한 신발장

일곱 남매의 신발로 빼곡한 신발장

작년 겨울, 승준이네 가정을 방문한 월드비전은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알아냈고, 난방온 캠페인을 통해 난방비와 방한용품을 지원했습니다. 더불어 찬 바람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부서진 문을 수리하고 벽의 틈을 메우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승준이 엄마는 월드비전 덕분에 올겨울은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뭐냐는 질문에 승준이는 어떤 장면을 떠올린 듯 신난 웃음으로 대답합니다.

“겨울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랑 눈싸움할 수 있잖아요.”

승준이와 승준이네 가족 모두 지금처럼 겨울을 행복하게 기다리고, 또 지난겨울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 승준이 가족의 모습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집에서 지낼 수 있게 된 승준이 가족의 모습

난방비 지원을 받은 후원아동의 그림일기

난방비 지원을 받은 후원아동의 그림일기

 

2017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발간 보고서에 따르면 노후된 주거지에 사는 저소득 가정은 집 안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 지출이 월평균 18% 더 높다고 합니다.
겨울 방학 동안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주거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난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가정들은 난방비 지출이 늘어난 만큼 식료품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겨울 추위는 결국 아이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국내 위기아동을 지원해 온 월드비전은 2016년부터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복지 사각지대 가정의 아이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난방온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난방비 및 이불, 전기난로, 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 3,870명이 9억원 상당의 지원을 통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고, 2019년 겨울에도 저소득 가정 아이들 2,000명에게 총 6억원 규모의 난방비와 겨울용품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난방온 캠페인 수혜자수

 

 

글. 김지혜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5

[월드비전 사람] 나눔도 변해 가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문화 나눔 선두자,
이광기 홍보대사와의 만남


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마주한 아이의 사진이 지친 하루에 위로를 건넨다. 바로 이광기 홍보대사가 월드비전에 선물해 준 사진이다. 10년간 월드비전과 함께하며 현장에서 만난 아동들과 그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담은 그의 사진들이 월드비전 건물에 층층이 전시되어 있다. 덕분에 월드비전 직원들은 우리가 함께하는 세상을 마주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직원들의 마음을 매일매일 따뜻하게 채워주는 이광기 홍보대사와 변해 가는 시대에 ‘나눔’의 방법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그 안에서 월드비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진지하고 재미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스튜디오에서 환하게 웃고계신 이광기 월드비전 홍보대사님

경기 파주에 있는 홍보대사님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홍보대사님의 마음처럼 밝은 분위기가 스튜디오에 가득하다.

 

아픔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기에

2010년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강진. 여진이 우려되는 위험한 상황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광기 홍보대사님은 아이티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티 아이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세상에는 본인의 상처보다 더 깊은 상처가 많다는 걸, 아픔은 깊이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티에 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던 홍보대사님은 그렇게 아이티에 케빈스쿨을 설립했다. 그때부터 이어져온 월드비전과의 인연은 어느덧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월드비전을 통해 10년간 펼쳐온 이광기 홍보대사님의 나눔 활동은 아이티에서는 학교가 되었고, 에티오피아엔 깨끗한 물이 되었으며, 전 세계 수많은 아이에겐 삶의 풍성함이란 선물이 되었다.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본인의 상처도 치유했다는 홍보대사님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일까?

 

둥글둥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기에

“이제는 모금의 방식이 변화해야 해요. 일방적인 나눔보다는 나누는 사람도 이를 통해 행복을 느껴야만 하죠. 후원자들도 월드비전과 나눔을 실천하며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광기 홍보대사님은 나눔도 ‘공감의 영역’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홍보대사님은 나눔의 즐거움을 전하고자 ‘문화 나눔’에 앞장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0년부터 월드비전과 진행해 온 나눔 경매이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과 홍보대사님의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아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들을 세상에 알리고 수익금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전액 기부해오고 있다. 예술의 아름다움과 나눔의 보람을 느끼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홍보대사님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모두가 공감’하는 나눔인 것이다. 홍보대사님은 이어서 ‘나눔의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미디어 매체도 바뀐 지 오래고요. 동영상이나 센스 있는 콘텐츠가 나눔의 영역에도 너무 필요해요. 나눔의 트렌드도 급변하는 미디어에 익숙한 대중을 반드시 고려해야 해요. 월드비전도 이 점을 간과하지 말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트렌드에 발맞춰 나가야 합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눔에 함께하길 바라는 홍보대사님의 날카로운 지적은 월드비전 직원들에게도 큰 도전과 고민을 안겨주었다.

 

“꿈속에서라도 아빠의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올 초 부룬디에서 만난 열 살 소녀 디빈의 한마디가 홍보대사님의 마음을 울렸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소원은 꿈속에서라도 아버지의 사랑한단 한마디를 듣는 것. 홍보대사님은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나는 얼마나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지. 죽는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렇듯 나누는 순간 보지 못했던 세상과 마주할 수 있다는 것, 나눔을 통해 실크로드처럼 꿈 같은 세상이 깨어난다는 홍보대사님의 말처럼 10년 동안 나눔을 통해 넓혀진 홍보대사님의 세상엔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이 있었다.

“예전엔 저도 나눔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눔을 통해 제 삶의 2막이 시작된 거죠. 나눔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도 연기를 하고 그저 취미로만 그림을 수집했겠죠. 하지만 나눔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다 보니 보지 못했던 인생의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그래서 많은 분께 이렇게 전하고 싶어요. ‘나누면 막막했던 인생의 길이 서서히 열린다’고 말이에요.”

퇴근길, 엘리베이터 옆에 걸려 있는 아이의 사진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오늘도 너를 위해 일한 하루가 정말 즐거웠어.’
나눔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일만이 아니라 결국 나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기에 이광기 홍보대사님이 그리시는 나눔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세상이 하루빨리 세워지길 간절히 꿈꿔보는 밤이다.

월드비전에 기증해 주신 이광기 홍보대사님의 사진

월드비전에 기증해 주신 홍보대사님의 사진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모두 기증되어 누구든지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글. 김보영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조은남 조은나무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6

[높이 나는 갈매기] 그림으로 사람들의 어둠을 서서히 밝히는 새벽이 될래요
경기서부지역본부 박한솔 아동

어떤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아이

조그만 체구에 장난꾸러기 소년처럼 짧게 자른 머리, 방긋 웃는 얼굴이 영락없이 명랑 만화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몇 마디만 나눠보면 금세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버티기 어려운 순간에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변함없이 해나가는 것. 이것이힘든 순간을 견뎌내는 자신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중학교 2학년생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만화가를 꿈꾸는 박한솔입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쁨, 슬픔과 같은 내면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다섯 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한솔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빠가 즐겨 보는 TV 만화 영화를 옆에서 함께 보며 특히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에게 온전히 감정을 몰입하며 보게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림’이 ‘스토리’와 결합되었을 때 그 매력이 배가된다고 생각하는 한솔이는 애니메이션, 웹툰, 일러스트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이 좋아, 초등학교 4학년 때 혼자 등록한 미술 학원

“제가 어렸을 때는 공부엔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방과 후에 남아서 ‘학력 증진반’ 활동을 해야 했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았어요.”

고민하던 한솔이는 그 길로 학교 앞에 있는 한 미술 학원을 들어갔다. 그러곤 원장님을 찾았고 곧바로 학원에 등록했다. 그 이후로 5년째 한솔이를 지도하고 있는 학원 원장님 역시 그날이 생생하다.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멘 조그만 꼬마 애가 혼자 찾아와서는 당당하게 학원에 등록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림에 대한 한솔이의 열정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가끔은 걱정이 될 정도라고 이야기하는 원장님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혼자서 연습을 정말 많이 해요. 쉬는 시간에도 연습장에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을 그려보고 저한테 가져와요. 다른 친구들은 다 쉬거나 놀고 있는데…. 밤에도 일찍 안 자고 늦게까지 그림을 그려서 저한테 바로 보내기도 하고. 저는 한솔이가 좀 더 쉬기도 하고 놀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인데, 지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인터뷰 사전에 한솔이가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넌지시 이야기했었다. 한솔이가 학원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후회스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대중교통으로 학원에 오는 한솔이가 가방을 비롯해 양 어깨 가득 상장과 상패를 이고 지고 등장한 것이다. 수많은 상장은 한솔이의 노력을 보여주듯 감탄을 자아냈다.
“모든 시도와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성공하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굳이 그 끝이 성공일 필요는 없는 거니까. 계속 도전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미술을 할 것 같아요.”
꿈을 키워나가는 다른 월드비전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달란 질문에 대한 한솔이의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고작 중학교 2학년이 모든 노력이 성과 혹은 성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깨닫기까지 혼자서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내왔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원장 선생님의 말처럼 한솔이는 모든 면에서 빠른 아이였고, 대견하면서도 짠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각종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한솔이의 상장과 상패

각종 미술 대회에서 수상한 한솔이의 상장과 상패

인터뷰 중 완성한 한솔이의 수채화 작품

인터뷰 중 완성한 한솔이의 수채화 작품

월드비전이라는 새로운 세상

한솔이에게 월드비전은 어떤 존재인지 묻자 ‘새로운 세상’이라는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찬 답변이 돌아온다. 월드비전을 만난 후 대학교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한솔이. 한솔이의 ‘새로운 세상’에는 친구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 한솔이의 후원자님 역시 포함된다.

“후원자님께 제 일상을 편지로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스스로의 생각이나 고민들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아요. 후원자님께 저는 잘 지내고 있고 요즘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자세하게 이야기하거든요.”
후원자님과 일상을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한솔이. 어른으로서 조언을 하기보다 한솔이와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편이라는 후원자님은 이미 한솔이의 든든한 친구이자 멘토이다.
“항상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저를 잊지 않고 챙겨주시고 생각해 주시는 게 느껴져요.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수업을 앞두고 선생님과 함께 간식을 사러 나가는 한솔이의 얼굴은 세상 행복한 표정이었다.
“버블티 먹어도 돼요?”라고 물을 땐 그제야 한솔이가 제 나이 또래 여중생으로 느껴져 뒤에서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다. 아직은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를 고르며 눈을 반짝일 나이. 지금도 충분히 멋진 한솔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본인의 꿈을 생각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한솔이가 정말 대단하고 훌쩍 성숙했음이 느껴진단다.
일상에서 느끼는 일들에 대해 감사하며 행복을 느낄 줄 아는 한솔이가 앞으로도 멋지게 꿈을 이루어 멋진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 부쩍 기대돼.
한솔이가 꿈을 향해 노력하는 만큼 원하는 결실을 아름답게 맺어가길 언제나 응원할게!”
_월드비전 경기서부지역본부 김보현 팀장

 

 

글. 이누리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201912_story_magazine_top_07

[후원자 이야기] 이토록 애틋한 ‘우리’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이번 여름 케냐 올도니로 마을로 비전로드를 다녀온 후원자님들의 후속 모임이 있었습니다. 언제 올까 기다리는 마음이 꼭 첫 데이트처럼 간질간질하고, 한 분씩 들어올 때마다 반가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점심 식사를 함께 하려고 모였는데 후식에 저녁까지 하고도 못내 아쉬워하며 작별 인사만 15분째.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애틋하게 만들었을까요?


 

우리의 첫 만남

지금은 함께 있는 1분 1초가 아쉬운 우리에게도 눈 한 번 마주치기 어려운 처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좀 걱정했거든요. 가서 할 일이 되게 많겠다고 생각했는데 일할 사람이 없는 거야.
나는 큰일났다. ‘꽃보다 할배’ 짐꾼 느낌으로 가야 하나 부담감이 있었죠”
_유재혁 후원자
“기봉이 형 볼 때 심란했죠. 누가 지각해서 늦게 들어오는데, 표정이~~.
이 사람 진짜다, 범접할 수 없겠다 생각했어요”
_김성중 후원자

부담되고 심란했던 우리의 첫 만남인 사전 오리엔테이션은 공항에서 만나자는 짧은 인사와 동시에 저마다 바쁘게 흩어지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소득증대사업장에서 후원아동의 어머님들께 선물 받은 전통 의상을 입은 후원자들

소득증대사업장에서 후원아동의 어머님들께 선물 받은 전통 의상을 입은 후원자들

수도 설치 봉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혜지 후원자

수도 설치 봉사 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이혜지 후원자

찬란했던 우리의 일주일

약간의 어색함과 큰 설렘을 안고 도착한 케냐. 그곳에서 우리는 찬란한 순간들을 만났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선물 같은 시간을 가졌고

“아동 가정에 수도 시설 설치하러 가서 물 나오기 기다릴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는데 모인 동네 아이들이랑 같이 노래 부르고, 제가 ‘안녕?’ 하면

아이들이 따라 하고.”
_이혜지 후원자

새로이 후원자를 만나게 될 아이들을 위해 직접 아동 등록도 했습니다.

“제가 등록한 아이랑 너무 친해져서 돌아갈 때 아이가 울면서 달려와서 안겼던 순간이 아무래도 제일 기억에 남죠.”
_권형주 후원자

손꼽아 기다렸던 후원아동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안 계셔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선물을 사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저에게도 평생 기억할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_김정현 후원자

 

우린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잊지 못할 순간을 공유하면서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유대감이 쌓였습니다. 함께 웃고 눈물 흘리다 보니 마지막 날 즈음엔 ‘어떻게, 이렇게, 딱 우리가 만났을까? 우린 이렇게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생각할 정도였죠.

“합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사전 모임 할 때는 못 느꼈는데(웃음) 운명 같았어요.
한 명 한 명 역할도 너무 딱 맞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_이혜지 후원자
“우리는 뭐 가족이었지.
이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경험이 없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함께해서 더 값졌던 것 같아요.”

_김성중 후원자

 

이젠 우리 월드비전

한여름 밤의 꿈 같았던 케냐에서의 일주일은 우리의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남겼습니다. 주어진 나의 하루를 더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젠 불평을 안 해요. 학원 다니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전에는 왜 하지 했는데 이제 열심히 해야겠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됩니다.”
_김성중 후원자

 

또 다른 아동후원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아동 등록을 하며 정이 담뿍 든 아이를 직접 후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다녀와서 후원아동이 또 늘었으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_이윤성 후원자

 

월드비전 앞에 자연스럽게 ‘우리’가 들어갈 만큼 월드비전에 대한 애정도 깊어졌고,

“예전에 월드비전은 그냥 많은 NGO 중에 하나였는데 지금은 더 애정이 가요.
내 월드비전? 우리 월드비전? (웃음)”

_이혜지 후원자
“후원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이 생겨서 친구한테도 같이하자고 했어요.
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나니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_유재혁 후원자

 

이 깊은 애정이 동기가 되어 월드비전의 인턴이 된 후원자님도 있습니다.

“예정대로라면 4학년 2학기니까 취업 준비에 바빴을 거예요.
그런데 케냐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경험을 하고 오니까 월드비전이 조금 더 궁금하고 함께 일해 보고 싶어졌어요.”

_장기봉 후원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김성중 후원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김성중 후원자

비전로드 중 촬영했던 사진을 바라보는 유재혁 후원자

비전로드 중 촬영했던 사진을 바라보는 유재혁 후원자

직원들에게도 마음이 더욱 뜨거워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정 내내 후원자님들을 보며 감동했다는 현장 직원은 마지막 날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눔의 특별한 DNA가 있는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마음을 기억하며 현장에서 아이들을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죠.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웃어주고, 안아주는 후원자님의 모습에서, 아이의 닳아 해진 신발과 본인의 새 신발을 기꺼이 바꿔주는 모습에서 무한한 사랑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올여름 가장 뜨거운 날 다녀온 비전로드는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오늘까지도 아니 언제까지고 계속 진행 중인 것만 같습니다. 긴 작별 인사가 끝나고 돌아 걷는 길, 진한 아쉬움과 함께 새로운 기대가 밀려옵니다.
비전로드로 운명처럼 만난 우리는 앞으로 월드비전에서 또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추억들을 쌓게 될까요? 함께할 수많은 날들은 아~ 얼마나 더 좋을까요?

 

 

글. 김다이 후원동행2팀
사진. 임희진 후원상담2팀

201912_story_magazine_top_08

[모금 캠페인 그 후] 그림자만 봐도 웃는 아이 – 동민 아동 캠페인 결과 보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동민이네 집 앞에서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려는 찰나였습니다. 한적한 동네, 저 끝에서 얼굴이 익은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신나게 달려옵니다. 아이는 지난 캠페인 영상 속 체구와 비슷한데 분명 무언가 확실히 다른 기운이 느껴지고 보여집니다.
“안녕?” 하는 인사에 쑥스럽게 얼굴을 돌렸지만 분명 활짝 웃는 얼굴, 한결 가벼워진 몸. 앞장서 6층 집까지 올라가는 걸음마저 사뿐사뿐 가볍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신경섬유종(유전자 질환으로 신경계에 영향을 주면서 나타나는 증상.골격 및 뇌신경 종양 등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짐)이 덮어버린 오른손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던 아이. 지나치는 눈길에도 얼른고개를 숙이고 손을 감추기 바빴으며, 너무 작은 일에도 금방 울음을 터뜨리던 동민이었습니다.
지친 눈빛을 감추지 못하던 이 아이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난 것일까요?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동민이 사정을 접한 시민들은 월드비전을 통해 많은 도움의 손길을 전했어요. 그 도움으로 동민이는 지난 8월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에서 먼저 아픈 손과 등을 수술했습니다. 오른팔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동민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신경섬유종이 오른손을 넘어 온몸에 번지면서 성장을 방해하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오른손과 등 쪽 신경섬유종을 제거한 동민이는 이제 가볍게 몸을 가눌 수 있어요. 내년 4월에 예정된 가슴 쪽 수술까지 잘 마치면 이제 무거운 암 덩어리들은 동민이 몸에서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동민이가 세상과 마주할수록 어떤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야 할지에 대해 감히 누구도 ‘괜찮을 거다’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동민이가 거칠고 단단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지혜롭고 꿋꿋하게 잘 극복해 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심리 상담 치료로 돕고 있습니다. 또 언어 능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동민인 언어 치료도 함께 받고 있어요. 이 치료 역시 후원자님들 덕분에 얻게 된 귀한 기회예요. 동민이는 특히 언어와 심리 치료 시간을 좋아해서 두 달 남짓, 주말을 뺀 나머지 날은 매일 상담센터를 방문하고 있고요. 충분한 초기 상담이 이루어졌다고 판단되어 11월부터는 주 4회, 상담센터를 방문할 예정이에요.
외할머니와 엄마에게 이런저런 근황을 묻는 중에도 동민이는 함께 온 사진작가와 꽁냥꽁냥 장난이 한창입니다. 사진작가가 뷰파인더 속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자 꺄르르르, 셀피를 보여주자 아예 숨이 넘어갈 듯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사진작가와 장난치는 동민이

사진작가와 장난치는 동민이

“수술하고 나서 동민이가 정말 많이 밝아졌어요. 전에는 손 감추느라 어디 나갈 때도 사방으로 눈치 보기 바빴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격까지 예민해져서 할머니인 저한테도 살갑게 구는 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저리 바뀌었네요.
이제 그림자만 봐도 웃어요. 인사도 곧잘 하고, 좋으면 좋다는 표현도 잘하고요.”

할머니는 동민이가 변한 모습을 이야기하며 눈가가 금세 붉어집니다.

“참,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벌어지니 도와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달리 무슨 말을 찾을 수가
없네요. 너무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아이가 살고 우리 집이 살았어요.”

 

함께 이겨내고 있는 아픔

우리는 가끔 말하곤 하지요. 어른도 견디기 힘든 일을 아이가 이겨내는 게 대견하다고요. 그런데 그 말을 차마 동민이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큰 수술도 잘 받았고, 언어 심리 치료도 즐겁게 받고 있는 의젓한 동민이지만 그 작은 마음이 큰 두려움에 얼마나 콩닥거렸을까요? 닥친 현실 앞에서 동민인 용기를 내었다기보다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수많은 후원자님의 응원 속에서 함께 버틴 걸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병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기만 바라요. 아이가 아파하는 소리, 어머니 눈물 짓고 한숨 짓는 모습만 있던 날들이었는데, 여러분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웃을 일이 많아졌어요. 이제야 사는 게 재미나는 거구나 싶어요.”

동민이에게 가난도 모자라 병까지 물려준 거 같아 미안하기만 했던 엄마의 얼굴에도 미소가 끊이질 않습니다.

함께 책을 읽는 동민이와 어머니의 모습

함께 책을 읽는 동민이와 어머니의 모습

활짝 웃는 할머니, 어머니와 동민이

활짝 웃는 할머니, 어머니와 동민이

동민이를 위해 배달되는 영양 가득한 사랑의 도시락

동민이를 위해 배달되는 영양 가득한 사랑의 도시락

아이의 한쪽 팔을 포기하는 큰 수술을 감당한 가정이라 조심스럽게 취재 준비를 했는데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웃음소리를 들었던 두어 시간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 후원자님들이 동민이와 가정에 선물한 것은 수술비와 치료비뿐 아니라 일상의 즐거움, 누군가 함께한다는 든든함까지 돈으로 살 수 없는 눈부신 희망이었습니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위기의 아이들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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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받은 것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에요
오성삼 교수에게 전해 들은 나눔 교육 철학

60여 년 전 월드비전의 후원아동이었던 그가 밥피어스아너클럽(누적 1억원 이상 후원한 월드비전고액 후원자들의 리딩 그룹) 후원자가 되기까지, 오성삼 건국대 명예교수가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스토리.

 


 

가치관이 있어야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어요.
나눔을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감사하는 마음이 선행하지 않아서라고 봐요.

기부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성삼 교수는 가치관 없는 행동은 실행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감사의 마음은 가치관이고 나눔은 행동이라는 것. 그래서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그에게서 참교육자의 형형한 빛이 난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돌아보면 내가 도움받은 사람들이 꼭 있잖아요. 하다못해 부모님만 해도 그렇죠. 삶의 선물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들이 베푸는 나눔이 다시 선한 영향력으로 자연스레 이어지지 않겠어요? 그래서 가치관 교육이 중요하다고 봐요. 감사하는 습관이 체화되도록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가치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죠.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는 선한 욕망을 품게 되니까요.”

그는 건국대학교 사범대 교수 생활을 마치고 교육대학원 원장을 3회 역임하였다. 그 뒤 꿈나무 양성을 위해 송도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현재는 송도고 부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송도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인성 교육’과 ‘가치관 교육’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지금도 송도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감사와 나눔의 날’ 행사가 진행된다. 오성삼 교수의 ‘나눔 교육 철학’이 곳곳에서 결실을 맺는 중이다.

 

돌이켜보면 감사할 일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빚으로 남은 월드비전의 도움,
1억원으로 되돌려주기까지

학비가 부족해 박사 과정 중단 위기에 놓였을 때, 월드비전미국으로부터 도움받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오성삼 교수님

학비가 부족해 박사 과정 중단 위기에 놓였을 때, 월드비전미국으로부터 도움받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오성삼 교수님

 

지나고 나서 알았다고 한다. 구르고 넘어지면서 올랐던 바위산 하나하나가 그의 삶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었음을. 그 조각을 손에 쥐게 해준 수많은 손길이 있었음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건 월드비전이었고, 월드비전이었고, 월드비전이었다. 보육원 시절에 월드비전 후원아동이 되어 미국인 부부인 후원자와 많은 응원의 편지를 주고받았고, 대학교 진학 후에는 월드비전 장학금을 통해 학업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가족사진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가족사진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주고 받은 편지들

어린 시절, 미국인 월드비전 후원자가 보내주신 주고 받은 편지들

 

제대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 등록금도 월드비전 장학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눈앞이 캄캄해졌던 미국에서의 박사 과정 마지막 학기의 부족한 등록금을 기적처럼 지원해 준 것도 월드비전이었다. 그때 받은 도움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한국으로 돌아와 모교 대학의 교수가 되어 마음의 빚을 돌려줘야만 했다는 오성삼 교수. 언뜻 들으면 으레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공부하면서 빚을 많이 졌어요. 교수가 되었지만 다달이 융자금을 갚느라 생활이 실로 빠듯했습니다. 그러나 후원은 지속해야 했어요. 내가 받은 것이 너무 많았잖아요.”

월드비전으로부터 받은 금액을 갚은 이후 이제 어려움에 처한 다른 나라의 어린이를 후원하기 시작한 그는, 1억원 이라는 후원 목표 금액을 세우고 무려 24년에 걸쳐 그 목표를 이루었다.

한국전쟁을 겪고 극심한 빈곤을 극복하고 그 오르기 어렵다는 ‘나 자신의 산’ 정상에 우뚝 선 오성삼 교수. 이제 그는 나눔 가치관 교육에 여전히 힘쓰고 있다.

 

남은 생, 여러 사람 뜻 모아 분쟁 지역 난민촌 아이들을 위한 교육 활동하고 싶은
‘본 투 비(Born to be)’ 선생님

“함께하실 분들이 곳곳에 계실 거예요. 모진 어려움을 겪고 치열하게 살아낸 한국 사람은 누구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심장을 가졌어요.”

창창한 여름날의 해처럼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흡수해야 할 아이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는 분쟁 때문에 ‘어떤 아이들’은 소멸되는 시간을 살고 있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는 그. 이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뜻을 모아 난민촌에서 학교를 짓고 선생님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주어진 같은 시간 속에서 난민촌 아이들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야 해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의 시간을 소멸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에요. 한번 교육자에게는 영원한 교육자의 사명이 있어요. 끝까지 아이들에게 배움을 제공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은 많은 은퇴한 선생님들의 소망일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런 소망을 한데 모아보고 싶습니다.”

온 세상이 키워낸 사람은 온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래서일까? 다시 또 세상을 담을 그릇들을 빚어내겠다는 꿈을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받은 것을 되돌려주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쌓는지도 모른다.

 

 

글. 박소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조은남 조은나무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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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인터뷰]
아버지에게 ‘월드비전’은 저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을 거예요

월드비전 설립자 밥 피어스의 딸 메를린 피어스를 만나다

내년에 다가올 월드비전 70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월드비전 설립자 밥 피어스의 딸 메를린 피어스. 어린아이였던 그녀가 아버지라는 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 밥 피어스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수많은 고아들의 눈물을 알리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아버지가 설립한 월드비전이 전 세계 2억 명의 아이에게 기적 같은 변화를 선물하기까지 그 70년을 바라보는 딸의 소감은 어떨지 설레는 마음으로 메를린 피어스를 만나보았습니다.

 

Q. 한국에 오랜만에 오셨는데 느낌이 어떠세요?

한국에 올 때마다 아버지의 흔적이 느껴져요. 이번이 6번째 방문인데 70주년을 앞두고 다시 오니 감회가 참 새롭네요. 한국은 꾸준히 성장했고 아름다운 국가가 되었어요. 처음 목격했던 모습과는 달리 발전한 모습을 보니 감격스럽습니다. 한국이 오랜 기간 회복의 과정을 거쳐 건강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면서 ‘아버님이 하신 일이 결실을 맺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Q. 아버지를 따라 월드비전에서 20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데, 월드비전을 통한 세상의 변화가 느껴지시나요?

물론이에요. 어른으로 성장한 후원아동들이 변화의 증거죠. 월드비전에서 일하며 40개 국가를 방문했어요. 선생님, 의사, 정치인 등 훌륭하게 성장해 꿈을 이룬 후원아동들을 만났죠. 물과 음식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조차 누리지 못했던 아이들이 꿈을 이루어냈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에요. 후원을 통해
아동의 삶이 변화되고, 더 나아가 마을, 국가가 변화한다는 것은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 월드비전이 실현하고 있는 일이에요. 이 모든 변화의 주체는 바로 후원자님이시죠. 후원자님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계신 거예요.

 

Q. 월드비전 설립자인 아버지 밥 피어스는 어떤 분이셨나요?

저는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많이 없어요. 제가 월드비전이 설립된 연도에 태어났거든요. 저희 아버지에겐 저보다 월드비전이 더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을 거예요. 아버지는 거의 1년 중 10개월을 해외에 계셨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셨거든요. 미국에 오셨을 때조차 여러 지역에서 강연을
하며 한국 아이들의 고통을 전하셨어요. 아버지는 본인이 생각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에요. 적당히 휴식도 취하고, 본인이 가진 고민, 걱정 등을 저희에게 털어놓기도 하면서 가족들에게 위안을 받으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들어요.

전쟁으로 다리를 잃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밥 피어스

전쟁으로 다리를 잃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밥 피어스

밥 피어스가 전쟁 직후 한국에 방문했던 당시의 한강 천막촌 모습

밥 피어스가 전쟁 직후 한국에 방문했던
당시의 한강 천막촌 모습

 

Q. 한국의 월드비전 후원자님들께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후원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에요.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에겐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항상 말씀하셨죠. 한 아이를 후원함으로써 세상을 바꿀 기반을 다져나가는 거예요. 실제로 커피 몇 잔의 금액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어요. 저희 같은 개인이 모여 우리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모이면 분명 더 큰 힘이 되겠죠. 아버지조차 후원자님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큰 변화를 이루어내셨겠어요. 한국 사람들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이미 그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저는 당신들의 열정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글. 이누리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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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지난 6년간의 성장을 돌아보다

막막한 현실에 좌절할지라도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힘 ‘꿈(Dream)’, 현실의 벽 앞에 아이들의 꿈이 좌절되지 않도록 월드비전은 2013년부터 국내 사업 <꿈꾸는아이들>을 시작하였습니다.

<꿈꾸는아이들> 은 ‘결식아동지원사업’, ‘위기아동지원사업’ 그리고 ‘꿈지원사업’ 꿈디자이너, 꿈날개클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꿈지원사업은 아동이 성장 단계에 맞게 꿈을 탐색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맞춤형 통합 프로그램을 지원하여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통해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꿈꾸는아이들 활동 구성]

 

월드비전은 자문 교수단과 함께 지난 6년간의 시간 동안 꿈꾸는 아이들의 꿈 지원 사업에 참여한 208명의 성장과 변화를 추적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발견한 반짝반짝 빛나는 아동들의 변화 과정을 후원자 여러분들께 나누고자 합니다.

 


 

변화 1. 꿈과 희망을 키우다

 

“ 꿈이라는 것이 있으니깐 그 꿈에 다가기기 위해서 열심히 살게 돼요. ”
– 참여아동 김00의 후기 中

 

가난함과 좌절, 인정받지 못함에 익숙해져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 아이들. 현실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며 무기력에 빠졌던 아이들은 월드비전 꿈꾸는 아이들 사업을 만나며 달라졌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은 진로성숙도가 높아지면서 꿈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되었고 구체적인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 아동은 꿈날개클럽 참여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높아졌고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 진로 성숙도 ]
아동이 자신의 진로를 준비하고, 이를 위해 대처하는 태도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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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 대한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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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2. 힘과 믿음이 생기다

 

“제가 원래 끈기도 별고 없고 뭘 하다가 중간에 잘못되거나 틀어지면 엎어버리는 성격이었어요.
근데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꿈이 생기고, 목표가 있으니까 계속 끝까지 하려는 끈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
– 참여 아동 신00의 후기 中

 

자기성장계획서 작성과 같은 자기주도적 프로그램은 아동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배움과 성장을 경험하게 하였으며 이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습니다.

 

[ 회복탄력성 ]
고난을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서는 마음의 근력

 

[ 자기 효능감 ]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이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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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3. 든든한 부모님,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

 

아동의 진로 탐색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부모 지지체계 강화 활동’ 을 통해 부모와 아동이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며 꿈을 믿고 지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또한 꿈꾸는아이들 사업참여를 통해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가며 서로를 지지해 줄 든든한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 아동의 꿈에 대한 부모의 지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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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의 꿈에 대한 친구의 지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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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아이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동의 자기성장계획서 中 ]

 

[꿈꾸는아이들 캠프를 통해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도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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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4. 마침내 만난 나의 꿈, 꿈 스위치 ON

 

6년간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사업을 통해 성장한 아동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꿈은 그저 막연하고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가는 것’, ‘결과보다는 과정’, ‘성공이 아닌 행복을 위한 여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며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꿈꾸는아이들’ 참여 아동에게 물었습니다 !
꿈꾸는아이들’에 참여하며 가장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고 oo 계획적인 습관이기보다 즉흥적으로 일을 해결하고 결정했었다면, 꿈 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체계적으로 계획을 모색하고 수행해내는 습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 목표 의식과 성실한 생활태도가 생겼어요.
김 oo 이제는 더 이상 옛날처럼 ‘꿈’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깊고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흥미과 목표, 꿈을 구분하며 단순히 막연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원 oo 월드비전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하는 시간이나 처음 보는 친구들과 조별 모임을 많이 하게 되며, 낯을 가리고 소극적이던 성격에서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 본 내용은 아동이 작성하는 ‘생각노트’ 에서 발췌하였으며, 아동 보호를 위해 이름을 가명 처리하였습니다.

 

 

 

자유롭게 꿈꾸는 것은 모든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에,

월드비전은 더 많은 아동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아동과 보호자, 지역사회, 파트너십기관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여
꿈사업 전문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동이 꿈을 주저하지 않도록 함께 응원해주세요!

 

 

글. 국내사업전략팀 황우람
자료. <꿈꾸는아이들 6년 성과연구> , 월드비전 아동미래연구소

 

전 세계 우물 100개를 설치하겠다는 아름다운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방영기∙박은진 모녀

아름다운 약속
– 방영기·박진은 후원자 이야기

담쟁이 넝쿨이 다닥다닥 예쁘게도 자란 집 앞에서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른 박진은 후원자가 일행을 반긴다. 활짝 웃으며 “월드비전 이시죠?” 묻는 박진은 후원자의 모습이 꼭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잠시 머뭇거리는 데, “먼 길 오셨어요.” 하며 또 한 명의 후원자가 인사를 건넨다. 선한 눈빛이 똑 닮은 두 사람. 박진은 후원자의 어머니 방영기 씨다.

커다란 2층 공장을 손수 개조한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다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듯 근사한 인테리어에 다시 한번 놀란다. 물 잔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이 곳은 박진은 후원자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제이엘 627-4>. 서울과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층 테이블을 채운 손님들은 아늑한 공간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레스토랑 주소를 받고 찾아가는 내내, ‘설마 이런 곳에?’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지만 경기도 화성의 투박한 공장들 틈 속에 따듯한 자태로 세워진 레스토랑은 입 소문을 타고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월드비전과 함께 6개 나라에 우물 8기를 세운 방영기∙박진은 모녀를 이 곳에서 만나 제법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그 날의 화창한 오후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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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다모이랏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있는 주민들

미술 전공을 한 박진은 후원자는 스튜디오 사업을 시작하며 두 개의 통장을 만들었다. 하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한 것이라 생각한 ‘십일조 통장’ 그리고 ‘나눔을 위한 통장’이었다. 사업 초반 어려움도 있었지만 감각적인 촬영공간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며 한 팀, 두 팀, 스튜디오를 대여하는 곳이 늘어났다. 곧 스튜디오 스케줄이 빈 틈 없이 꽉 차기 시작했다.

“제 나이에 만져볼 수 없는 돈을 벌게 되었어요. 그런데 돈을 벌면 벌수록 이건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수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생각 때문인지 사업 초반부터 만든 두 개 통장에 매달 빠짐없이 돈을 모으면서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수입이 늘면서 나눔 통장도 두둑해져 갔다. 어렵게 모은 만큼 귀하게 사용될 곳을 고민하던 중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들이 세계 오지에 우물을 파고 지역 주민들을 돕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정말 그러네. 살면서 정말 없으면 안 되는 건 깨끗한 물이잖아.’ 박은진 후원자의 마음 속에 우물이 훅, 들어왔다. 그 때 즈음 어머니 방영기 후원자가 월드비전 이라는 기관이 후원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더 지체할 것이 없이 모녀는 은행에 들러 수표를 찾아 월드비전을 찾았다. 두 모녀가 꿈 꾼 나눔이 실현되는 첫 순간이었고, 이렇게 잠비아 뭄브와 마을 주민들은 안전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르완다 무수바티 지역에 설치된 안전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는 모습

엄마와 딸은 매년 12월이면 서울 여의도로 향한다. 월드비전 본부를 방문해 우물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도와주기 위해서다. “월드비전에서 준비해 주신 우물이 필요한 곳 자료를 보고 모아진 금액도 고려해서 엄마가 함께 지원할 곳을 결정해요. 월드비전을 찾아가는 길이 정말 신나고 즐겁죠. 이 기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2013년 잠비아를 시작으로 모녀의 사랑은 흘러흘러 우간다, 르완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 6개 나라에 식수대 8기를 설치했다. 이제 곧 설치될 케냐의 식수대까지 합치면 어느 새 9개 식수대 설치가 눈 앞에 있고, 후원 누계 금액은 1억원을 넘어선다.

캄보디아 상큼트머이 지역에 설치된 식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자 주민들과 어린이가 즐거워하고 있다.

“금액이 그렇게 된 것도 모르면서 했고요. 2013년 처음 우물을 파고 난 뒤로 저에게 목표가 생겼잖아요. 우물 100개. 그것만 생각했어요. 물론 그 우물이 다 필요 없을 만큼 세상이 좋아지면 가장 좋겠지만 가끔 뉴스나 방송 프로를 보면 물 때문에 고통 받는 어린이들이 너무 많아요. 100개 우물로는 그들을 다 도울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려고요.”

전 세계 우물 100개를 설치하겠다는 아름다운 약속을 실천하고 있는 방영기∙박은진 모녀

유쾌한 모녀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새 창문 밖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자리를 정리하며 돌아올 답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질문을 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요?”
“당장 연말 예약이 잡힌 레스토랑 행사들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 그리고 우물 100개 파는 거죠.”

당차게 말하는 박은진 후원자와 그런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름답다. 전 세계 곳곳 모녀가 세운 식수대에서는 깨끗한 물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도 흘러갈 것이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국민일보,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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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기쁨
고아를 품에 안은 정주은 후원자

“이전 마을돌봄센터는 너무 작고 허름해서 아이들을 다 수용하지 못한데다 교육을 받기에도 불편했어요. 우기에는 요리할 곳이 없어 아이들에게 끼니를 제대로 챙겨줄 수 없었죠. 그런데 새로 지어진 돌봄센터는 깨끗하고 안전한 교실, 울타리 덕분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어요. 재미나고 다양한 책도 넉넉히 채워졌고요. 손 씻는 시설이 생겨 위생습관을 어려서 부터 기를 수 있지요. 게다가 새롭게 섶치된 놀이기구 덕분에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_에스와티니 음키웨니 마을 주민, 파이킬레 씨

 

에스와티니 작은 시골 마을 음키웨니에 말끔한 건물이 세워졌다. 보호자의 돌봄을 거의 받지 못하거나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마을돌봄센터’다. 주민 파이킬레 씨 말처럼 이전에도 있었던 센터이나 아이들이 사용하기에는 위험하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 새롭게 지어진 이 곳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작은 가슴 속에 큰 꿈을 키워 나갈 것이다. 마을 주민들과 아이들에게 단단하고 다정한 사랑을 전해준 이는 한국의 정주은 후원자. 쌀랑한 초겨울 추위를 녹여주는 허브차와 함께 옥수동에 위치한 토브(TOVE) 매장에서 정주은 후원자를 만났다.

토브는 배우 정주은 후원자 운영하는 가방 기업이다. 히브리어로 ‘좋은, 선한, 아름다운 일, 완벽한’ 이란 뜻을 담고 있다. 6년 전 입소문으로 팔리던 가방은 이제 어엿한 매장이 생겼고 열성팬이 생길만큼 사업은 번창했다. 하지만 정주은 후원자에게는 고된 시간이었다.

 

“지난 6년을 정말 정신없이보냈어요. 가방을 만들고 택배 포장을 하고 다시 가방을 만드는 일의무한 반복이었죠. 하지만 우리 가방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또 마음에 품은 꿈 때문에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 같아요. 사실 디자인이나 사업에 전혀 경험이 없었던 터라 지금 토브의 성공은 기적과도 같아요.”

 

2010년 결혼한 정주은 후원자는 간절하게 기도하던 임신이 잘 되지 않아 마음이 조급했다. 아이를 좋아했었고, 탤런트인 그가 휴식기를 갖기로 마음 먹은 것도 아이를 갖고 싶어서였는데 마음 같지 않았다.

 

“염색체에 이상이 있어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아이가 생겨도 건강하지 못할 수 있다고도 했어요. 매일이 눈물이었죠. 하지만 이 상황만 생각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취미 삼아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되면 수익의 50%를 고아를 돕는 일에 사용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어요. 그 일이 생각지도 않게 시작된 거죠. 아이들을 위해 섬기며 살아야 하는 제 사명을 깨닫게 됐어요.”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어서인지 불경기 속에서도 토브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사업이 성장하며 맺어진 열매들은 사랑이 되어 에스와티니 음키웨니 마을에 전해졌다. 정주은 후원자의 나눔으로 음키웨니 마을 고아와 어려운 형편의 영유아들에게 안전한 돌봄 시설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 것이다.

 


에스와티니 음키웨니 마을에 전해진 정주은 후원자님의 나눔.마을돌봄센터 건물 신축.교육 필요물품 지원.마을 주민 참여 교육.식수위생시설 설치. 도움을 받은 마을 어린이와 주민 : 총 460명(여아 47명, 남아 53명, 여성 216명, 남성 144명)


건축 전 열악한 아동돌봄센터 모습과 완공 후 안전하고 깔끔하게 변신한 아동돌봄센터에서 즐거운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 모습
사업과 나눔에 열정하던 중 간절했던 아이도 생겼다. 2015년 걱정하며 기도했던 것과 달리 건강한 아들을 출산한 정주은 후원자는 아이를 키우며 전 세계 고아를 향한 마음이 더욱 더깊어졌다고 한다.

 

워킹맘으로, 기업 대표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온 정주은 후원자는 사업을 시작한 6년 동안 제대로 쉬어 본적이 없다.

“햇볕이 따가운 바닷가에서 타이어 10개를 끌고가는 느낌이랄까… 계속 가방 디자인, 사업만 생각하니 두통이 가실 날이 없었어요. 퇴근 후와 주말엔 아이와 최선을 다해 놀아줘야 했고요. 하루가 멀다하고 병원을 들락거리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그래서 내년 초까지 사업을 잠시 쉬고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계획이에요.”

 

정주은 후원자는 지친 일상에서도 월드비전에서 보내오는 후원하는 곳의 아이들과 동영상을 보면 마음에 쉼표가 찍힌 다고 한다.

“제가 아이들에게 쉴 곳과 공부할 곳을 마련해주었지만 정작 그로 인해 마음의 안식을 얻는 건 저예요. 아이들이 행복하면 할수록 내 마음의 평화가 더욱 더 차오르는 걸 느껴요.”

 

정주은 후원자의 기부로 설립된 에스와티니 마을돌봄센터 외, 현재 두 곳의 센터가 공사 중에 있으며 2020년 완공 예정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랑이자 기쁨이라는 정주은 후원자. 이토록 다정한 마음은 지구 반대편 아이들에게도 오롯이 전해져 아이들이 외롭고 쓸쓸할 때 든든한 힘과 위안이 되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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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과 함께 우간다를 방문한 정주은 후원자와 아이들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국민일보,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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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희망더하기] 방송인 박미선,
아프리카 우간다 아이들과 다시 만나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어린아이들이 내동댕이 쳐져 살아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늪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누군가 잡아주지 않아서 늪에 빠진 거거든요. 작은 손으로, 여린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우리에게 SOS를 하고 있는 거예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여러분이 전한 작은 씨앗이 잘 자라서 우간다를 가득 채울 수 있어요. 그게 바로 희망이에요.” – 방송인 박미선

2016년,
친한 동생인 배우 이광기의 권유로
월드비전과 아프리카 우간다를 처음 다녀온 뒤,
우간다를 다시 방문한 2019년…

우간다 가족과 앉아서 대화하고 있는 박미선

그녀를 다시 만난 우간다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전했을까요?
그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어린 자매 파스카와 마리아”

신발이 없는 아이를 보고 있는 박미선

나무를 구하러 산에 갔다가,
사고가 나서 돌아가신 아빠.
오랜 투병 끝에 하늘나라에 간 엄마.

10살 파스카와 7살 마리아 자매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습니다.

나무 기둥에 볏짚을 덮은 집.
벽이 없이 훤히 뚫린 집은,
어린 자매를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울고있는 우간다 어린이

“저는 엄마도, 아빠도, 집도 없어요. 먹을 것도 없어요.” – 파스카

우는 언니의 모습에
동생 마리아도 따라 웁니다.

학비도 생활비도 없기에,
이웃집 소일거리를 돕거나
베이비 시팅 일을 하며 돈을 버는 파스카.

눈물을 흘리는 박미선

10살에 불과하는 어린 나이지만,
더 어린 동생이 있기에
파스카는 더 씩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간다 소녀와 포옹하고 있는 박미선

“부모님도 안 계시고, 제대로 된 집도 없고. 아이들이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너무 기가 막힌 상황이더라고요.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 그게 가장 힘든 거잖아요. 몸이 힘든 거보다 마음이 힘든 거.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Tree(나무), Sky(하늘), Cloud(구름) 가르쳐주니까 곧잘 따라 했어요. 아이들은 회복이 빠르잖아요. 희망을 되찾아주고 싶어요.” – 박미선

파스카와 같은 나이인
버나드와 동생 루피나도 남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의료시설과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해
병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가 많다.

“7살 여동생 루피나를을 위해
세차를 하며 돈을 버는 10살 버나드”

우간다 어린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박미선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릴 적 돌아가신 부모님.
남매는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동생을 돌보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10살 소년 버나드는 세차 일을 한다.

매일같이 집 앞 강가 근처에서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닦는다.
아이에게는 너무 위험한 일이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동생과 길거리에 앉아있는 버나드

여동생 루피나는 저에게 공주 같은 존재예요. 저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너무 예뻐요. 열심히 돈을 벌어서, 동생이 학교 다닐 때 입을 교복과 신발을 꼭 사주고 싶어요.” – 버나드

어렵게 먹을 것을 구해와도
동생을 먹이는 게 우선인 아이.
자기도 배가 고플 텐데,
동생이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박미선과 대화를 하고 있는 버나드 남매

“어쩌다 벌써 가장이 됐을까요. 어쩌다 벌써 이렇게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살아가게 됐을까요. 잠깐을 봐도 알 수 있었어요. 버나드가 참 성실하구나, 똑똑하구나, 열심히 사는구나. 동생만 학교에 보내고 자기는 일터에 가야 하는 10살 아이의 마음이 어땠겠어요. 한참 웃고 뛰어놀아야 하는 나이인데.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주고 싶어요.” – 박미선

이 외에도 버거운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름의 최선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작고 여린 아이들이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스한 손을 건네주세요.

MBC 희망 더하기 스튜디오에서 MC들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미선

기억 속 우간다 카라모자를 다시 회상하는 박미선.
그리고 나눔을 통해 아이들에게 찾아온 작은 기적.
5월 31일 월요일 낮 10시 45분
[MBC 희망더하기]를 통해 방송됩니다.

글. 김유진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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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영웅들을 만나다│마음의 벽을 열어준 한 소녀와의 만남, 송찬호 후원자

2006년 겨울,
TV를 통해 우연히 듣게 된 한 소녀의 사연.

은주(가명)의 수술비 후원과 더불어
월드비전과 함께한 지 벌써 15년.

“기부를 통해 삶이 달라졌다’ 말하시는
‘작은 영웅들을 만나다’ 다섯 번째 주인공,
송찬호 후원자님을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등산과 마라톤을 좋아하는
엔지니어 송찬호입니다.”

“엔지니어로 일한 지 28년이 되어가요. 대학을 졸업해 어엿한 사회인이 되기까지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빚을 진 것 같아요. 어릴 때, 집이 가난하니까 큰 누님은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버셨거든요. 누님의 희생으로 저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대학교는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어요.”

 

“성실하게 꿈을 응원해준 가족들,
그리고 대학 장학금까지,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예요.”

 

“제가 진 빚을 사회에 갚아야 한단 생각과 책임감이 늘 있죠. 내 가족, 친척, 우리 마을을 넘어서 전 세계 그리고 다음 세대에 대한 마음이 커요. 후원도 그런 마음으로 15년 가까이 이어온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기억하는 아이,
첫 후원아동 은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아동이 7명 정도 돼요.
그 시작은 동해에 사는 은주(가명)란 아이였어요.”

“사실 전 사람들과 깊게 인연 맺는 걸 좋아하진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은주에게 편지도 쓰고, 사진도 주고받고, 생일도 챙겨주고, 방학이면 책도 보내주고 하면서 마음이 많이 열리더라고요. 은주가 참 제 조카 같은 마음도 들고. ”

“은주는 근육이 약해지는 병을 앓고 있어서 연필을 잡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답장을 쓸 때면 손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편지를 써서 보내주곤 했어요. 그게 참 뭉클하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렇게 후원을 이어가던 어느 날, 월드비전에서 전화가 왔어요. 하루 전날 은주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먹먹하더라고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일찍 하늘나라에 갔다는 게, 그동안 더 신경써주지 못했다는 게.”

은주를 통해 나눔에 대한 마음이 열린 것 같아요. 마음의 벽이 무너진 느낌? 지금은 여러 국내아동들과 해외아동들을 후원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는 게 제겐 정말 큰 의미예요. 아이들의 편지와 사진은 다 모아서 간직하고 있어요. 조카들 보라고 집 벽에도 걸어뒀어요.(웃음)”

“조카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너희들도 첫 월급을 받으면 기부부터 시작해라.
인생이 정말 달라진다’고요.”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가진 것을 나누는 송찬호 후원자


“사실, 저는 돈에 관심이 없어요. 옷이나 집, 재산을 갖고자 하는 욕심도 없지요. 그런데 후원을 시작하면서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되었어요. 내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수록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눌 것이 풍성해지는 거잖아요. 저도 학생 때 장학금이 없었으면 대학에 못 갔을 테니까, 후원 아동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보태주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일 할 생각입니다. (웃음)”

“사람들은 영원히 살 거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언젠가는 우리 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오잖아요.
‘살아가면서 내가 가진 것을 흘려보내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송찬호 후원자


 

우리의 일상 속 곳곳
세상의 온도를 1도씨 높여주는
작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풍성한 삶, 함께하기



글. 김유진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황주호 기업특별후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