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월드비전 상가 사업장은 아름다운 호수를 곁에 두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 위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 평화로움이 아닌 듯싶다. 이렇게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에 소년소녀가 몸을 묶은 채 밤새 춤을 추는 악습이 있었고, 아름다운 호수는 아동 노동의 현장이었으며, 십대 소녀들이 결혼에 내몰리는 아픈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니 이방인의 철없는 감성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이런 부끄러움을 날려줄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이 글은 일주일 남짓 마을에 머물며 목격한 굉장한 시민 의식과 변화의 실체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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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잘못이 아니야
아난스탄지아 : 7학년에 복학한 파일럿이 꿈인 학생
무표정한 얼굴, 하나로 빠짝 묶은 머리. 선뜻 말 걸기가 망설여지는데 아이가 먼저 씽긋 웃어 보인다. 이렇게 다른 느낌이었어?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 어두웠던 표정에서 1초 만에 담기는 해맑은 미소라니. 어려운 질문을 하기 전에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 건넨 뒤 아이의 과거를 물었다.
빠듯한 형편에도 손녀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도울 거라는 아난스탄지아의 할머니. 그녀 역시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이다.
“7학년 때 임신을 했어요.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강제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유산을 했죠. 그 후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어요.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게 뻔하니 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 아니겠는가. 아이는 먹먹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빠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엄마와 할머니랑 농사일을 하며 살고 있어요.” 아난스탄지아(19세)는 마을의 수많은 여자아이가 겪은 일을 피하지 못했다. 임신과 유산, 그 후에 이어진 학업 중단.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녀는 자꾸만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아난스탄지아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월드비전이 그녀의 집을 방문해서 그녀와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아난스탄지아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난스탄지아도 마을 악습의 피해자예요. 이렇게 집에 숨어 지낼 이유가 없어요. 다시 용기를 내어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마침내 아난스탄지아는 학교로 돌아갔다. 7학년에 복학한 그녀의 성적은 반에서 2등.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은 없지만 파일럿이 되어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고 싶다는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 첫발이 참 힘들고 오래 걸린 만큼 앞으로 어떤 시련을 만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단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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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마을을 지켜야 할 이들은
나와 너
아서 :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
아난스탄지아를 학교로 돌려보낸 월드비전 프로젝트를 현지에서는 CVA라 부른다. Citizen Voice and Action의 줄임말인데 우리말로는 ‘주민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마을과 정책 변화’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상가 마을은 조혼, 아동 노동, 낮은 진학률 등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주민들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박힌 교육에 대한 무지, 악습 등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누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깨닫고 변화를 이끌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더 어려웠다.
“호수가 가까운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낚시를 시켜 돈을 벌게 하는 일이 잦았어요. 교육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았죠.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기 위해 벽돌을 쌓자고 해도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주민이 상당수였어요.” – 아서,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인 아서가 마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일에 월드비전이 팔을 걷어붙였다. 앞서 설명한 CVA 프로젝트에 주민들을 참여시켜나갔다. 특히 ‘치마마치라 춤’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악습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치마마치라 춤은 소녀와 소년을 하나의 천으로 묶고 밤새 성적인 춤을 추게 하는 이 마을의 오래된 악습이다. 임신, 조혼 등의 이슈를 당연히 가져왔다. 월드비전은 지역발전위원회, 학교발전위원회와 협력해서 이 춤의 문제점을 알렸다. 한 번, 두 번, 주민들과 월드비전이 만나는 횟수가 쌓이며 주민들이 바뀌고 있음이 느껴졌다. 주민들의 삶 속에 배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치마마치라 춤은 2014년부터 서서히 없어져서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느새 주민들은 조를 짜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이 있는 집을 찾아가 보호자를 설득했고, 아이들을 안전한 학교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사비를 털었다.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역 정부에 필요한 법안을 제안하여 통과시키는 쾌거도 여러 번 이루었다.이제 아동을 학교 대신 일을 하러 보내는 부모가 발견되면 벌금을 내거나 학교에 와서 노동을 하게 한다. 자신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실감한 주민들은 더욱 신바람이 났다. CVA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월드비전 아서 매니저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이곳의 변화를 보았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문제인 줄
몰랐어요
에미 :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 前 ‘치마마치라 춤’ 리더
에미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상가 마을의 가장 큰 문제였던‘치마마치라 춤’의 리더였던 에미를 만났다. 오십 줄에 접어든 나이에도 그녀는 춤사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15세 때부터 이 춤을 추었어요. 내가 왜 춤을 추게 되었는지, 리더가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전통을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에요. 대대로 내려오던 춤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동네 사람들은 액운을 쫓아준다고 여겼어요.” 무지가 가져온 대가는 컸다. 어린 소녀들이 이 춤을 추다 임신을 하고, 조혼에 휘말렸다. 어린 나이의 임신은 유산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2012년에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와 치마마치라 춤이 왜 나쁜지 알려주었어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춤 때문에 생기는 나쁜 일들을 듣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 후부터 치마마치라 춤을 추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이 춤은 사라졌어요.”
무엇이 문제인 줄 몰라서 그저 살던 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자 상가 지역은 어느 곳보다 아이들의 권리와 보호를 우선하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치마마치라 춤이 사라지니 조혼이나 임신 비율이 낮아졌어요. 이것이 가장 큰 결실이죠.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말라위 전체에서 치마마치라 춤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라요.”
한때 치마마치라 춤의 리더로 이름을 날리던 에미는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잘 나가고 있는지 모니터링 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다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 중이다.
치마마치라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미
이제
멈추지 않는 자립을 향하여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치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들
기운찬 변화를 주도하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에너지가 엄청나다. 잠시 숨을 돌린 뒤 한 명씩,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이야기를 일부 옮겨본다.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에 제안을 하면 이것이 정부가 법률을 제정하는 데 반영돼요.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법에 의해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보람차죠.” – 스티븐가가(39세)
“CVA 활동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이 마을은 우리 것이고, 학교도 정부도 시민의 것이지요. 이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아요.” – 도리스호지(38세)
“우리의 역량이 강화된 것을 느껴요.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죠. 또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안할 수도 있어요.” – 바이올렛치에이타(23세)
그들은 하나같이 모든 아이가 학교에 가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으며, 더 이상 조혼에 시달리는 여자아이들이 없고, 원하지 않는 임신은 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월드비전이 떠나도 마을의 발전이 멈추지 않길 바란다”라고 했다. 월드비전이 늘 외치던 이 이야기를 주민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오후였다.
CVA 활동 후 상가 마을의 변화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