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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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1만 2천통의 편지를 번역한, 심무희 할머니 이야기

2004년, 당시 67세였던 심무희 할머님.
해외아동과 후원자님의 교류를 돕는 편지를
한<->영으로 번역하는 ‘비전메이커’ 봉사자로
당당히 합격을 했습니다.

그 후 14년,
심무희 봉사자님은
나이 첫 자리가 두 번 바뀌셨고,
총 1만 2천73통의 편지를  
번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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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심 할머니께 걸려온 전화 한 통.
“14년간 쉬지 않았던 봉사에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봉사자님의 목소리.

그 따뜻한 사연을
지금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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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을 앓던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정신 없이 살았어요. 남편도 암 환자였고.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내 가족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에 부쳤어요. 그러다가 시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애들도 다 출가시키고, 남편마저 천국에 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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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할 수 없이 많아진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무서웠어요. 밥 먹을 때마다 그냥 눈물이 흐르더라고. 그렇게 3년을 울며 지냈어요. 생전에는 속도 많이 썩인 남편인데 왜 그랬는지 몰라. 모래사막에 덩그러니 떨어진 거 같고,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 같고.

보다 못한 동생이 자기가 이런 거(NGO 서신 번역)를 하고 있는데 언니도 시간도 메울 겸 해보라고, 권한 것이 14년 동안 월드비전과 함께 한 시작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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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에 전화를 해서 번역 봉사를 신청했더니, 번역 테스트가 있더라고요. 열심히 본 테스트가 기준에 합당했었는지 합격을 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쉰 적 없이 아동이 후원자에게 후원자가 아동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역해 오고 있어요. 꼬박 14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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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집중할 무언가가 생기니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내가 뭐든 한번 하면 단단히 하는 사람이거든. 한 번도 날짜를 어긴 적 없어. 그런데 말이에요. 이게 어느새 내 아픔을 밀어내고 있더라고.

내가 빨리빨리 번역해서 편지를 보내면 아이들이 후원자님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마음이 쌓이면서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외로움도 자연스레 사라졌어요.”

“번역 봉사가 나를 살렸죠.
후원아동들이,
후원자가 보낸 편지들이
나를 살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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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늘 건강이 걱정이었는데 얼마 전 밤에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다 쓰러졌어요. ‘이제 제 나이와 체력으로는 더 이상 이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14년 만에 처음으로 든 마음이에요.

67살에 시작한 번역 봉사였고 이제 제 나이 81살이에요. 세월이 왜 이렇게 빨라요? 친구들은 이 나이에 무슨 사서 고생이냐고 핀잔도 많이 줬지만 저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성실하고 꼼꼼하게 지금까지 봉사를 해 온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며 스스로 대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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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아동과 후원자들이
주고 받는 사랑을
중간에서 소중하게 전달해 온
14년의 시간과 노력.
그 자체가 ‘행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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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반드시 건강한 어른이 될 거라고 굳게 믿어요. 서신을 번역 하다 보면 얼굴도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애틋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 까지 해요. 정말 소중한 마음들이죠.

그러니 우리 번역 봉사자 ‘비전메이커’들이 그 마음을 귀하게 여기며 번역해야 해요. 다들 잘하고 계시겠지만 이제 일선을 물러나는 선배로서 부탁하고 싶은 건 ‘내가 이 재능으로 후원을 하는 거다’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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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마침표, 첫 문장 대문자 사용 등 기본부터 꼼꼼히 잘 지키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가 아이를 생각하며 편지를 보낸 후원자의 마음을, 후원자를 그리며 꾹꾹 글씨를 써 나간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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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에서는 그간 번역한 편지가 만 통이 넘는다며 대단하다고 하시지만, 전 그냥 성실히 제 몫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번역할 수 있도록 편지를 주고 받은 아동과 후원자님께 감사 드려요. 그 편지들이 제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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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감사하다 하지 마세요.
정말로 제가 감사하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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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무희 할머니 이야기!
생생한 영상으로도 함께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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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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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정에 내몰린 아이들’ 미얀마 난민촌의 삶을 말하다

분쟁극빈가뭄 등
인도주의적 비상사태 속
가장 취약한 존재,
바로 아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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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위협을 피해
피난길에 내몰린 아이들
전세계 2,800만 명.

대한민국 인구 수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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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스바자르 난민촌 전경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는
미얀마에서 도망친
약 100만 명의 난민이 살고 있어요.
이 중 약 55%가 아동이라는 사실.

“여기서 잠깐! 
미얀마 사람들은 
왜 난민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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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소요사태 발생.

로힝야족을 비롯한
미얀마 소수 민족에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
갑자기 들이닥친 낯선 자들은
집과 마을을 불에 태웠고,
가족들은 차가운 총구 앞에 사라졌습니다.

‘인종청소’라 불릴 만큼
끔찍했던 유혈사태.

국경이 인접한 방글라데시의 해안 도시로
살기 위해 떠난 10여 일의 피난길.

그렇게 형성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촌에서
미얀마 난민들은 얇은 방수포 천막으로
겨우 움막 형체를 갖추고.
기본적인 식수, 전기 시설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렇게 벌써 1년이 흘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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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난민촌의 월드비전 아동심리보호센터(CFS)를 찾은 월드비전 총재 케빈젠킨스

그곳에서도
아이들 곁을 지켰던 월드비전.

 오늘은, 미얀마 난민촌에서 활동 중인
월드비전 아동보호 전문가 바네사 씨를 통해
난민 아이들의 실상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월드비전의 구호요원으로 최근 몇 달간 
미얀마 난민캠프에서 활동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그 시간들을 가득 메우고 있죠.

-바네사 사라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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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들은 말합니다. 밤에 불도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다 폭행을 당할 까봐 두렵다고. 많은 소녀들과 여성은 학대와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낮에도 비닐움막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합니다. 어떠한 이정표도 없이 비닐움막으로 가득한 난민촌은 마치 미로와도 같습니다. 소년들 역시 위험에 놓여있습니다. 신발도 없이 땔감을 구하러 숲 속에 갔다가 베이고 멍이들고, 뱀이나 다른 야생 동물을 만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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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은 끔찍한 폭력을 경험했거나 눈앞에서 가족의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Inter-Sector Coordination Group (ISCG)에 따르면 20만 명 이상이 심리치료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합니다. 캠프 내 아이들은 또다시 폭력을 당하거나 가족을 잃게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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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물과 위생시설도 부족하기에 디프테리아와 급성 설사와 같은 질병에도 취약하죠. 많은 이들이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교육의 기회가 박탈 된 상태임은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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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로힝야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박해를 받는 소수민족이라 일컫습니다. 이들의 권리는 수 십 년간 지속적으로 침해 당해왔고, 지난 2017년 8월 소요사태를 기점으로 70만 명 이상이 대탈출을 하기에 이르렀죠.

현재 미얀마 아이들은 두 세계 가운데서 어정쩡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본국 미얀마에서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한채, 피난온 방글라데시에서도 공식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죠. 언제라도 내쫓길 수 있다는 불안은 난민아동들의 24시간을 따라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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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는 아동권리에 대한 유엔협약(UNCRC)을 비준했습니다. 이는 방글라데시 내에 있는 모든 아동이 출신지와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부여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난민촌에서 매일 태어나는 평균 60명의 아이들은 출생 등록이 보류된 상태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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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촌 내에서 월드비전을 비롯한 구호기구들을 통해 아동 교육 활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공식적인 공교육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3-17세 아동 53,000명이 공식적으로 교육의 권리를 빼앗긴 상황이죠. 정부는 난민 아동들에게 어떠한 형태의 공교육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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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채
표류하는 미얀마 난민 아동들.
그리고 전세계 6,500만명의 난민들. 
그들의 용기와 끈기를 기립니다.

-바네사, 월드비전 아동보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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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호 사업 후원하기

 

글. 김유진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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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소녀의 프러포즈 “저랑 결혼해주실래요?”

남수단 난민 소녀 재클린은 우간다 임베피 난민촌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재클린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를 떠났고, 재클린이 10살이 되던 해 엄마마저 다른 남자와 재혼해 재클린을 떠났습니다. 외할머니와 남수단에서 살던 재클린은 전쟁이 심화되자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를 마을에 남겨둔 채 눈물을 머금고 옆집 언니와 피난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량배급을 받는 우간다 임베피 난민촌 난민들의 모습

식량배급을 받는 우간다 임베피 난민촌 난민들의 모습

2017년 초 우간다 난민촌에 도착한 재클린은 언니에게 의지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가 말도 없이 남자친구와 함께 다른 정착촌으로 떠나고 재클린은 그렇게 또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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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놀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있지 않았어요.
제 짐들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어요.”

엄마도 재클린을 그렇게 떠났었기에 재클린이 받은 상처는 더욱 깊었습니다. 재클린은 학교에 갈 수도 없었고, 돈이 없기에 책이나 교복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보호자였던 언니가 사라진 난민촌에서 재클린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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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가까이 혼자 지내던 재클린은 20대 중반의 남자가 결혼할 여자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의지할 사람이 너무나도 필요했고, 가혹한 삶에 지쳤던 재클린은 고민 끝에 이른 아침 그 남자를 찾아가 부탁하였습니다.

“저와 결혼해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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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당장 돈도 없고, 학교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버거웠어요. 고향으로 돌아가 할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까 봐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두렵지만 그 남자에게 저와 결혼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어린 재클린의 부탁을 남자는 흔쾌히 승낙했고, 전통에 따라 재클린은 남성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결혼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시댁 식구들 중 일부가 재클린이 아직 어리고, 원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재클린과 대화 끝에 월드비전에 이 이야기를 알리게 되었고 월드비전은 이에 즉각 대응하였습니다.

월드비전 직원과 임베피 난민촌 아이들의 모습

월드비전 직원과 임베피 난민촌 아이들의 모습

먼저, 월드비전 담당자는 남자의 어머니에게 모든 결혼 계획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또한, 재클린에게 필요한 건 결혼할 남자가 아닌 보호해줄 가족임을 알았습니다. 10km 떨어진 난민보호소에서 재클린의 수양가족을 찾을 수 있었고, 재클린은 두 명의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 재클린의 모습

새로운 가족이 생긴 재클린의 모습

“요즘 생활이 꿈만 같아요!
공부도 너무 즐겁고 가족들도 생기고 말이에요.
언젠가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모든 이야기를 꼭 전해드릴 거예요!”

현재, 재클린은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월드비전은 교과서와 유니폼을 지원하고, 매주 재클린의 집을 방문해 적응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재클린뿐만 아니라 우간다 임베피, 비디비디 난민촌에는  900명의 난민 아이들이 월드비전이 맺어준 부양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재클린은 어른들의 도움으로 결혼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조혼은 전 세계 어린 소녀들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재클린처럼 가난 때문에 또는 전통이란 이유로 교실에 있어야 할 소녀들은 세상을 알기도 전에 누군가에 아내와 엄마가 됩니다.

숫자로 알아본 조혼 이슈. 1350만명-매년,18세 이하 조혼 소녀 수, 1 IN 9 - 9명 중 1명은 15세 이전에 결혼, 50% in Asia - 조혼 비율 중 아시아 50%

매년 1,350만 명의 18세 미만 소녀들이 조혼에 처하고, 이들 9명 중 1명은 15세 미만의 어린 소녀들입니다. 인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혼은 어린 소녀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겪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감히 형언할 수 없습니다. 또한 18세 미만 산모가 출산한 신생아의 첫해 사망 위험률은 60%라고 하니 조혼은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합니다.

자신을 납치한 남자와 2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탈출에 성공한 콩고 민주공화국 마리아

자신을 납치한 남자와 2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탈출에 성공한 콩고 민주공화국 마리아

월드비전은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조혼에 대처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아동 권리 위원회를 만들어 대처하고 있습니다. 또한, 커뮤니티 교육과 인식개선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이 남아와 여아를 동등하게 대하도록 교육합니다. 더 나아가 현지 아동보호단체와 협업하여 조혼 피해사례를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응대하도록 돕고 현지 당국의 법과 정책 개선 활동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소녀들이 교육이란 울타리 안에서 풍성한 행복을 누릴 때까지,
월드비전은 나아갑니다.

꽃처럼 이쁜 아이야, 네가 있을 곳은 우리 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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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월드비전과 지역사회의 변화를 통해 소녀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여러분의 응원을 더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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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구호사업 후원하기

 

글.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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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새내기 후원자 열린 모임] 우리 이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해요!

모임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되는 건 무엇일까요? 프로그램? 그렇죠. 알차고 재미나기까지 한 프로그램, 이거 너무 중요하죠. 예산? 말해 무엇 하겠어요. 하지만 예산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한 터라 이제는 제법 노련하게 최소 비용을 뽑을 수 있다 자신합니다. 이토록 중요한 걱정들과 맞먹는, 두려움에 가까운 그 마음은 ‘과연 몇 분이나 오실까?’입니다 6월의 새내기 후원자 열린 모임이 열리던 날, 월드비전 직원들은 ‘노쇼’를 걱정하며 그러나 한편으론 새내기 후원자님들을 만날 기대에 들떠 바지런히 움직였습니다.

 


 

 

같이 해야죠. 이 좋은 걸.

직원들의 걱정이 민망하리만큼 모임 장소에 쏙쏙 도착하고 계시는 우리 후원자님들! 동반 1인이 가능한 새내기 후원자 모임에는 부모님, 친구, 자녀, 할아버지, 할머니와 ‘후원’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함께 오신 후원자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작년 말부터 후원을 하고 있는데요. 친구에게 이 기쁨을 알리고 싶어 함께 왔어요. 지금 아니면 새내기라 할 수 없을 테니까 후원을 처음 시작하는 풋풋한 마음으로! 하하하!”(선우빛나 후원자님)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후원을 시작하게 됐어요. 아직 어리니까 자기가 무얼 돕는지 잘 모르잖아요. 여기에 와서 이렇게 보면 조금이라도 알게 되지 않을까 해서 딸과 신청했어요.”(오향옥 님/임지우 후원자 보호자)

손자가 후원자가 되었는데 이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이 가자 길래 저희야 손주와 오는 거니 좋아서 왔죠. 그런데 와서 보니까 몰랐던 상황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저 같은 사람을 위해 월드비전하는 일이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또 손자가 아직 어린데 지금의 마음을 잘 가꿔서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이 더 커지면 좋겠네요.” (원성현 할아버지 / 원태호 후원자 보호자)

미리 오신 후원자님들은 모임 장소 옆에 작게 마련된 월드비전 활동 국가 전통 의상, 사업 관련 물품 전시를 둘러보고 간단하게 마련된 다과도 즐기며 ‘진짜’가 시작될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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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긴급구호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월드비전 긴급구호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보며 설명을 듣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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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국제사업을 펼치는 나라의 전통의상과 공예품을 직접 체험해 보는 코너도 마련되었습니다.

월드비전 국제사업을 펼치는 나라의 전통의상과 공예품을 직접 체험해 보는 코너도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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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르는 사람 맞나요?

준비된 테이블에 마주 앉은 새내기 후원자님들. 약간의 어색함과 묘한 동질감이 테이블 위에 공존합니다. 하지만 (동료들도 깜짝 놀랐던) 후원 동행팀 이진명 간사의 날아다니는 진행으로 어색함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후원자들은 ‘같은 마음’을 가진 ‘월드비전 후원자’임에 하나가 되어 갑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어느 새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함께 웃고 즐거워하며 어느 새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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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월드비전 안으로.

편안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함께 해나갈 일들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4월, 요르단에 위치한 월드비전 시리아 난민 구호 현장을 직접 방문한 월드비전 나눔 기획팀 김민경 차장은 시리아 난민의 실상과 이들을 위한 월드비전 구호 사업에 대해 차근차근 전해주었습니다.

시리아 난민을 위한 월드비전 사업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월드비전을 이해하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시리아 난민을 위한 월드비전 사업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월드비전을 이해하고 있는 새내기 후원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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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아이들의 을 바라며, 나무피리 만들기

밤은 깊어가고 모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나의 후원 아동과 미얀마-방글라데시 난민 아동들에게 보낼 나무피리 만들기. 새내기 후원자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하나하나 끼워 만든 나무피리는 사랑하는 내 후원 아동뿐만 아니라 관심과 보호가 절실한 난민 아동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미얀마-방글라데시 난민 긴급구호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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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모임’ 이후 ‘새내기 후원자’에게 생긴 일

“나와 같은 후원자가 곳곳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되니 왠지 든든하네요.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이인데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신기해요.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후원자들이 아름다웠어요!” (이미나 후원자)

“모임에서 뭐가 제일 좋았냐면… 음.. 다요! 다 좋았어요! 어려운 친구들에게 ‘희망을 가져, 우리가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원태호 후원자)

“월드비전 통해 후원이란 걸 처음 해봐요. 화장대 위에 10살짜리 아들 같은 후원 아동 사진을 올려놓았어요. 월드비전이 투명하게 잘 하리라 믿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참여하게 되어서 정말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김경순 후원자)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기는 했어요. 하지만 막상 후원을 시작하니까 궁금하고 몰랐던 것이 많았는데 오늘 모임에서 깊이 이해했어요. 이제 월드비전이란 곳이 어떤 곳인지, 후원금으로 무엇을 하는지 확실히 알겠어요.” (김채원 후원자)

“오늘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 후원자가 모여서 더 많은 꿈을 꾸고, 배고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손창덕 후원자)

“사회생활에 찌들려 살다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힐링 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노동열 후원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나눔이나 후원은 오른손, 오른발, 왼손, 왼발이 하는 일 다 소문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일은 알릴수록 더 멀리 퍼져나가니까요. 제가 후원하는 걸 친구가 알았으니까 친구도 이 좋은 일에 동참하게 될 거고, 이 친구가 하는 걸 또 다른 친구가 알게 되면 알게 된 이상 시작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좋은 일의 씨앗이 친구로부터 싹 틔워질 것 같습니다!” (선우빛나 후원자)

“그 씨앗 만들어 보겠습니다!” (선우빛나 후원자님의 친구 이수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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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이야기.

새내기 후원자들이 정성껏 만든 나무피리는 미얀마-방글라데시 난민 아동들에게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눈도, 코도, 입도 웃고 있는 듯한 아이들. 아이들이 신나게 불어대는 나무피리 소리가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 이곳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 미얀마-방글라데시 난민 아동에게 전달된 나무피리는 마침 현장으로 출장을 가는 한국월드비전 구호팀장이 직접 배송했습니다.
* 후원 아동에게 보내는 나무피리는 우편으로 아동에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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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행사 현장! 생생한 영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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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해외아동 후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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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3행시다! – 제1회 월드비전 꿈아이 3행시 기부대회 최종 심사하던 날-

※’꿈아이’는 월드비전 국내대표사업 ‘꿈꾸는아이들’의 줄임말입니다. ‘꿈꾸는아이들’ 사업은 국내취약계층아동이 성장단계에 맞는 통합프로그램과 경제적 도움을 통해 위기에서 보호받고 꿈을 찾아 도전하며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6월 16일 토요일 오후, 월드비전 여의도 본부 9층에 9인의 심사위원이 모였다. 이들은 다름아닌 5월 17일부터 3주간 진행되었던 <꿈아이 3행시 기부대회> 최종 베스트 작품 선정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후원자 심사위원들. 총 3,190개 작품 가운데 10개 베스트를 뽑는 묵직한 임무를 맡게 된 후원자들은 어떤 분들일까? 일단, 후원자 심사위원 라인업(가나다 순)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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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평가를 넘어 우리 아이들의 꿈과 건강한 성장을 지지하는 마음만큼은 최정상급인 월드비전 후원자를 대표하는 9인의 후원자 심사위원은 먼저 ‘꿈아이 3행시’ 기부대회 진행 결과와 심사 방법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었다. 사뭇 진지한 시간이 흐르고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공정한 심사를 위한 워밍업에 돌입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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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문학상 심사를 방불케 하는 깐깐한 심사시간이기도 했지만 기억 속에 방치해 두었던 ‘나의 꿈’이 생각나서인지,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따듯함이 전해진 것인지, 우리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사무쳐서인지. 라운딩 심사를 하며 여기저기서 심사위원들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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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고민고민하며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엮어주신 참여자들의 소중한 마음을 생각하며 9인의 심사위원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꼼꼼히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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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딩 심사시간 막바지까지 심사숙고하는 심사위원들 모습

라운딩 심사시간 막바지까지 심사숙고하는 심사위원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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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별 심층 심사 시간. 더 좋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그룹별 심층 심사 시간. 더 좋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뜨겁게 달아오르며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던 심사가 겨우겨우 마무리 되고, ‘꿈아이’, ‘꿈도전’, ‘꿈나눔’ 주제별로 최종 선정된 작품과 심사평이 발표됐다.

꿈아이 상(2편)
“꿈 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좌절하고 있는 아이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내용이 함축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선정했어요. 정말 저희도 위로를 받을 정도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꿈도전 상(4편)
“특정한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꿈’이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꿈’에 대해 이야기 하며 따듯한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을 골랐습니다. ‘통일’을 언급한 작품은 시대 흐름을 읽는 시사성에 점수를 줬어요.”꿈나눔 상(4편)
“사실 ‘꿈’ 하면 듣고 흘려버리는 단어일 수 있잖아요. 이런 점에서 울림이 있고, 기억에 남는 ‘꿈’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시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순수하고 라임도 살아있었고요.”

그리고 아차상(2편)
월드비전 계획에는 없었던 아차상. 심사위원들의 떨어뜨리기에는 도무지 아까운 작품이란 간절한 요청으로 추가되는 행운이!

최종 BEST 작품 보러가기

대망의 선정작 발표와 심사평 시간

대망의 선정작 발표와 심사평 시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말 그대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던 제1회 꿈아이 3행시 기부대회는 후원자들의 다정한 소감으로 마무리 되었다.

 


 

전,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품고만 있다가  펼칠 수 있게 된 시간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3행시 심사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내 꿈만 이룬 게 아니라 꿈을 펼치는 나를 보며 어른들도 꿈을 꾸고 기뻐하셨을 것 같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어요.”(윤소정 후원자)

 아프리카 말리에 갔을 때 영혼 없이 텅 빈 아이의 눈을 보았어요. 꿈이 없는 눈이었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오늘 심사를 하면서 저도 꿈이 생겼어요. 작가로서 어려운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작품도 많이 쓰고요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서 더 많은 아이들 도울 거예요.” (허윤정 후원자)

“36년 전, 음성 한센병 환자촌의 자녀를 후원하며 월드비전과 인연을 맺었네요. 아이들을 위해 지금까지 꾸준히 일하는 월드비전이 있다는 게 고마워요. 수화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제가 좀더 욕심을 내서 제안 드리자면 장애가 있는 부모의 자녀 등 더 깊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아동들에게도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고연강 후원자)

전 애들을 별로 예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애 셋을 낳고 키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달라졌어요. 길을 가며 만나는 아이가 웃으면 내 아이가 웃는 것 같고. 우는 아이를 보면 내 애가 우는 것 같았어요. 그냥은 못 지나치게 되더라고요.   나 말고도 아이들을 보듬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든든하네요.” (강민정 후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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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심사위원 한 분 한 분의 삶이 녹아 있는 소감은 그대로 한편의 단편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 되었지만 결국은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되는 선하고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지키고 있는 아이들은 거친 인생 속에서도 꿋꿋이 꿈을 꾼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다시 후원자의 꿈이 되고 기쁨이 된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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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꿈을 말해줘!” 특별한 멘토들과 함께 한 꿈꾸는 아이들의 이야기

여름 햇살이 가득한 토요일,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따라 도착한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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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월드비전 아동 200여 명이 함께 모여
꿈을 이룬 12명의 멘토들을 만나는

“월드비전 
<꿈꾸는 아카데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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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월드비전 꿈꾸는 아카데미가 열리는 경기대학교입니다~ 저희는 경기대 월드비전 봉사동아리 학생들이에요. 오늘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멘토 분들을 만난다 해서 일일 안내요원으로 함께하게 됐어요. 아이들이 진로를 탐색하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4학년 이유경, 이시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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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요리사,
메이크업아티스트,
네일아티스트,
유치원교사,
만화가,
프로그래머,
로봇공학자,
디자이너,
간호사,
교사

다양한 분야의 멘토 분들과 함께한
<월드비전 꿈꾸는 아카데미>
생생한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그 서막을 열어준
스페셜 깜짝 게스트!
래퍼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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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비트 위의 나그네 “
 멋진 랩과 함께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고통은 성장의 밑거름,
난 언제나 자신을 믿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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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학교생활 재밌어요? (아니요~) 많이 힘들죠. 저도 그랬어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시험까지. 항상 따라다니는 시험에 스트레스가 가득했죠. 그러다가 대입에 실패하고 원치 않는 학과에 들어갔어요. 원치 않는 공부를 하는 것의 고통? 여러분도 아시죠.

20살 때, 큰 결심을 하고 학교를 그만두고 언더그라운드 생활로 뛰어들었어요. 멋지게 꿈을 찾아 나섰지만, 결과는 처참했어요. 8년 동안 무명이었죠. 1집 앨범 남자답게를 발매한 후에도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쉬지 않았어요. 매일 제 자신에게 말했어요. ‘넌 지금 잘하고 있어.” @래퍼 아웃사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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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직업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요.
멈추지 말고 여러분이 좋아하는 꿈을 찾으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해주세요.
– 래퍼 아웃사이더”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그.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멘토이자
멋진 래퍼로 함께한
그의 이야기로 현장은 더욱 뜨거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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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멘토 분들과 함께
교실로 이동해서
<꿈꾸는 아카데미>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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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학생 때, 방향성이나 무얼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막막했었어요. 간단한 가이드라인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꿈꾸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멘토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전수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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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당연한 것들에 대해 ‘왜 그럴까?’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해요!  학교에서는 ‘시험에 안 나온다’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라고 말하곤 하죠. 그런 이야기에 흔들리지 말고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궁금증에 대해 정답을 찾으려는 게 중요해요!” @김관수 로봇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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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네일아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손님 한 분 한 분과 친밀하게 관계를 맺는 게 참 중요해요. 네일아트가 단순한 미용을 넘어서 심리적인 위안과 힘을 주기도 하거든요. 각질관리와 같은 케어는 피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무를 가지고 매일 연습했어요. 얇게 조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이제는 이쪽 분야에서 손님들이 믿고 맡겨주세요. 여러분도 꿈꾸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끊임없이 연습하다 보면, 분명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유정은 네일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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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분들의 열정 넘치는 강의로
월드비전 아동들은
한 발짝 꿈에 다가갑니다.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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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라는 꿈을 꾸면서도 어딘지 막막하게 느껴졌고, 주변에 조언을 구할 데가 없었어요. 오늘 직접 만나서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문효빈 학생

“제 꿈은 로봇공학자예요. 사실, 프로그래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랐는데,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잘 준비해서 꼭 꿈을 이루고 싶어요!” @이영호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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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프로그램을 통해서 꿈탐색 과정을 겪으며 ‘경찰’이란 꿈을 갖게 되었어요. 제 적성이랑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오늘 경찰관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시민들을 지켜주는’ 멋진 경찰이 되고 싶어요.” @이유빈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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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명의 꿈꾸는 아이들과
꿈을 이룬 멘토들이 함께한 시간.

따사로운 여름 햇살만큼
우리들의 꿈도 반짝입니다.
우리 함께 외쳐볼까요?

너의 꿈을 말해줘!
너의 꿈과 함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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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유진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꿈꾸는아이들 국내사업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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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맞추다:프롤로그] 축하해요. 아르항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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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와 가뭄이 이어지며 먹을 것도 살 곳도 구하기 어려웠던 곳. 한 가정의 월평균 가계 소득이 5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마을. 자연재해와 가난이 겹치며 가장 연약한 존재인 아동의 사망률(아동 1,000명당 23.4명 사망)이 너무나 높아서 마음 아프던 곳.

13년 전, 몽골 아르항가이 마을의 현실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한국월드비전은 후원자들의 나눔과 사랑을 싣고 몽골 아르항가이로 향했습니다. 모든 이의 사랑과 노력이 하나로 모이며 한 마을이 변화되고, 한 아이의 삶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우리의 간절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보고 있어야 했던 연약한 마을이 스스로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과 내일을 튼튼하게 돌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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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행복한 학교, 행복한  교실 문화를 위한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넌 나의 친구야 소중한 친구야 희망이 가득 넘치는 교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우리 노력으로 만들어가요.”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의 노랫말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희망이 가득한 교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이들. 캠페인을 통해 희망, 행복, 추억을 그려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수동적인 교육보다 함께 춤추며 하나 되는 것이 학교폭력 해결책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즐겁고 행복해야 할 학교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가장 두려운 곳이 되어버린 현실. 월드비전은 우리 아이들의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 2012년부터 ‘교실에서 찾은 희망’(교찾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2,046개 학급의 50,765명이 참여한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하반기부터는 베트남과 중국에서도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날이 높아지는 인기 속 많은 참여 학급 중 3년 연속 참여한 창일초등학교 정유선 선생님의 5학년 5반 학급을 찾아가 교찾희의 매력을 살펴보았다.

창일초등학교 5학년 5반의 캠페인 참여 영상 보러 가기
“교찾희의 매력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반 아이들이 함께하니까 소속감이 강해지고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거예요. 함께 춤을 추며 성취감과 추억을 공유하잖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이 친해지니 학교폭력이 예방되더라고요.”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동화책’이라고 말하는 정유선 선생님. 학기 초마다 첫 만남에 서로 한마디도 안 하며 수줍어하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걱정돼 교찾희 캠페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다 보면 아이들이 금세 친해지고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겨 교실 분위기까지 밝아지기 때문이다.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새로운 주제로 진행하다 보니 다채로운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연습하며 항상 행복한 일만 있는 건 아니에요. 위기와 고난이 있지만 극복하고 결국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도 동화책 같아요. 또 동화책 한 권을 다 읽고 덮으면 여운이 오래 남잖아요. 캠페인에 참여하고 나면 저와 아이들 마음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오랫동안 남는 것 같아요.”

1년에 한 번씩 교찾희 캠페인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학급들. 이런 색색의 동화들이 모여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아름다운 결말로 전국의 모든 학급이 채색되길 바라본다.

하얀 아이스크림처럼 순수한 5학년 5반 친구들이 그려낸 달콤한 캠페인 결과가 참으로 흐뭇했다. 그렇다면 창일초등학교 5학년 5반 친구들에게 교찾희 캠페인은 어떤 의미일까?

친구와 친해지는 지름길이에요. 연습하다 보면 서로 금세 친해지거든요. 어느 순간 우리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어요. - 이윤서

행복한 학교생활이에요. 친구들과 연습하면서 협동심을 기르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2학기에도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 정승익

교찾희는 기대예요. 친구들과 1학기 동안 교찾희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아주 친해져서 2학기도 무척이나 기대돼요. - 김민영

뜻깊은 추억이에요. 네 달 동안 함께 열심히 배우고 연습한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서민혁,임지환

교실에서 찾은 희망을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 모두가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학교폭력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월드비전은 그릴 것이다. ‘교실에서 찾은 희망’을 말이다.

 

2019 교실에서 찾은 희망 참여 후기

교실에서 찾은 희망을 하면서 실수해도 괜찮다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내 옆에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직접 편집, 기획하고 촬영을 해서 완성된 영상을 보니 뿌듯했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이 화내지 않고 서로 도와주고 협동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 학생 김*우


처음에는 춤추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시작이 쉽지만은 않은 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아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이렇게 모두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란 생각에 매년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 교사 공*욱


부모의 입장에서 ‘교실에서 찾은 희망’ 영상을 엄마 미소를 지으며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 친구가 보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고, 선생님의 마음도 길이길이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각자의 움직임이 하나가 되어 예쁜 학창 시절을 꽃피웠네요. 노력한 아이들, 고생하신 담임 선생님 모두가 고생 많으셨습니다. – 학부모 박*영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에 참여하며 혹시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 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캠페인이 너무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학교폭력 가해자도 이 캠페인을 보고 다시 한 번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 학생 이*원


교찾희 가사 중 “조금의 관심이면 모두 행복해져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에게 또 주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선한 영향력을 갖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교사 오*민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교찾희는 그야말로 희망을 선물해주는 캠페인인 것 같습니다. 사춘기 아이가 방황을 무던하게 빨리 끝내고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사회 속의 한 인간으로 잘 자라게 하는 초석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교찾희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아이들이 큰 사랑을 느끼길 기대합니다. – 학부모 한*아

교실에서 찾은 희망 참여 방법 1. 캠페인 동영상을 본 뒤 친구들과 함께 캠페인송과 플래시몹을 연습한다. 2.캠페인송과 플래시몹에 미션 수행을 더해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든다. 3.친구들과 함께 만든 재미있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4.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의 URL, 참여 소감을 홈페이지에 등록하면 완료!

2023년에도 참여하고 싶다고요?

2023년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보기

글.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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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캠페인] give a nice day

give a nicw day 로고

전 세계 아동 6명 중 1명은 하루를 잃고, 일 년을 잃고,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전쟁 피해 아동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0명 중 93명의 아이가 강제로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시리아에서는 지금도 100명 중 79명의 아이가 가족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남수단에서는 200만 명의 아이가 분쟁으로 인해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6,000명의 아이가 소년병이 되었습니다. 남수단 청소년 2명 중 1명은 성적 학대를 경험합니다. 전쟁 속에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숫자의 나열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공포이고 아픔일 것입니다. 월드비전은 이 아이들에게 공포가 아닌 평화가 일상이 되는, 너무나 당연한 하루를 찾아주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말이죠.

 


 

보호자 없는 난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하얀 팔찌

보호자 없는 난민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하얀 팔찌

하얀 팔찌를 찬 아이들

매일 100명. 남수단 전쟁을 피해 홀로 국경을 넘는 아이들의 숫자입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이들은 국제기구에서 마련한 임시 보호소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임시 보호소에서 처음 하는 일은 나라 잃은 아이들의 신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꼬박 일주일을 걸었다는 세 소년. 난민 등록 심사 후 피타, 존, 산토의 팔에 하얀색 팔찌가 둘러집니다. 셋은 날 때부터 이웃집에 살던 동네 친구입니다. 무장한 군인들이 쳐들어와 가족을 무차별하게 죽이는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세 소년은 서로를 의지하며 국경을 넘었습니다. 세 친구에게 둘러진 하얀 팔찌는 보호자 없이 홀로 국경을 넘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표시입니다. 난민 등록을 마친 아이들은 임시 거처로 옮겨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물품을 배급받았습니다. 이제 팔찌는 아이들의 생명 줄입니다.

월드비전 직원의 보호를 받으며 모기장, 비누 등 구호물자를 지급받는 피타, 존, 산토

월드비전 직원의 보호를 받으며 모기장, 비누 등 구호물자를 지급받는 피타, 존, 산토


 


난민촌 아이들을 지키는 팔찌

실제 난민촌 아이들 팔목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세 가지 색상의 팔찌가 채워집니다.

팔찌 파란색은 난민으로 정식 등록, 노란색은 특별보호가 필요, 하얀색은 전쟁고아처럼 보호자가 필요한 아동을 의미


 

아이의 당연한 하루를 지키는 하루팔찌

팔찌 이미지
월드비전 give a nice day 캠페인에 참여한 모든 분께는 하루팔찌가 전달됩니다. 난민촌에서 피난민 최초 등록 시 사용하는 팔찌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하루팔찌. 이 하루팔찌를 찬 당신은 전쟁 속 아동의 하루를 지키는 바로 한 사람이 될 거예요. 하루팔찌 안쪽에는 숫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숫자와 함께 하루팔찌가 늘어날수록 그만큼 많은 아이가 보호를 받습니다. 함께한다면 지킬 수 있는 아이가 더 많아진다는 의미이지요.

 


 

전쟁 속 아이의 하루를 지키는 하루팔찌

팔찌 사진
월드비전은 하루팔찌를 찬 여러분과 함께 전쟁 속 아이들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켜나갈 것입니다.


 


아이의 당연한 하루를 지키는 인사
‘give a nice day’

월드비전 홈페이지의 give a nice day 캠페인 페이지를 통해 전쟁 속 아이들에게 당연한 하루를 지키는 인사를 건넬 수 있습니다.

월드비전 홈페이지
pc www.worldvision.or.kr  / 모바일 m.worldvision.or.kr
검색창에 ‘월드비전’을 검색해주세요.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월드비전, 슬로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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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주민이 마을의 주인이 되기까지

말라위월드비전 상가 사업장은 아름다운 호수를 곁에 두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 위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을 보고 있노라면 이 세상 평화로움이 아닌 듯싶다. 이렇게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에 소년소녀가 몸을 묶은 채 밤새 춤을 추는 악습이 있었고, 아름다운 호수는 아동 노동의 현장이었으며, 십대 소녀들이 결혼에 내몰리는 아픈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하니 이방인의 철없는 감성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이런 부끄러움을 날려줄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이 글은 일주일 남짓 마을에 머물며 목격한 굉장한 시민 의식과 변화의 실체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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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잘못이 아니야
아난스탄지아 : 7학년에 복학한 파일럿이 꿈인 학생

무표정한 얼굴, 하나로 빠짝 묶은 머리. 선뜻 말 걸기가 망설여지는데 아이가 먼저 씽긋 웃어 보인다. 이렇게 다른 느낌이었어? 먹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듯 어두웠던 표정에서 1초 만에 담기는 해맑은 미소라니. 어려운 질문을 하기 전에 미안하다는 사과를 먼저 건넨 뒤 아이의 과거를 물었다.

빠듯한 형편에도 손녀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도울 거라는 아난스탄지아의 할머니. 그녀 역시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이다.

빠듯한 형편에도 손녀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도울 거라는 아난스탄지아의 할머니. 그녀 역시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이다.

“7학년 때 임신을 했어요. 남자 친구가 있었는데 강제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유산을 했죠. 그 후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어요.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 게 뻔하니 가고 싶지 않았어요.” 왜 아니겠는가. 아이는 먹먹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빠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엄마와 할머니랑 농사일을 하며 살고 있어요.” 아난스탄지아(19세)는 마을의 수많은 여자아이가 겪은 일을 피하지 못했다. 임신과 유산, 그 후에 이어진 학업 중단.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녀는 자꾸만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아난스탄지아에게도 희망이 찾아왔다. 월드비전이 그녀의 집을 방문해서 그녀와 어머니를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아난스탄지아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난스탄지아도 마을 악습의 피해자예요. 이렇게 집에 숨어 지낼 이유가 없어요. 다시 용기를 내어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마침내 아난스탄지아는 학교로 돌아갔다. 7학년에 복학한 그녀의 성적은 반에서 2등.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본 적은 없지만 파일럿이 되어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고 싶다는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그 첫발이 참 힘들고 오래 걸린 만큼 앞으로 어떤 시련을 만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단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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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마을을 지켜야 할 이들은
나와 너
아서 :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

아난스탄지아를 학교로 돌려보낸 월드비전 프로젝트를 현지에서는 CVA라 부른다. Citizen Voice and Action의 줄임말인데 우리말로는 ‘주민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마을과 정책 변화’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상가 마을은 조혼, 아동 노동, 낮은 진학률 등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주민들의 인식 속에 깊이 뿌리박힌 교육에 대한 무지, 악습 등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누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깨닫고 변화를 이끌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에 더 어려웠다.

“호수가 가까운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낚시를 시켜 돈을 벌게 하는 일이 잦았어요. 교육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았죠.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기 위해 벽돌을 쌓자고 해도 왜 내가 그 일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주민이 상당수였어요.” – 아서,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인 아서가 마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매니저인 아서가 마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지만 꼭 해야 할 일,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어나가는 일에 월드비전이 팔을 걷어붙였다. 앞서 설명한 CVA 프로젝트에 주민들을 참여시켜나갔다. 특히 ‘치마마치라 춤’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악습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치마마치라 춤은 소녀와 소년을 하나의 천으로 묶고 밤새 성적인 춤을 추게 하는 이 마을의 오래된 악습이다. 임신, 조혼 등의 이슈를 당연히 가져왔다. 월드비전은 지역발전위원회, 학교발전위원회와 협력해서 이 춤의 문제점을 알렸다. 한 번, 두 번, 주민들과 월드비전이 만나는 횟수가 쌓이며 주민들이 바뀌고 있음이 느껴졌다. 주민들의 삶 속에 배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사람들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치마마치라 춤은 2014년부터 서서히 없어져서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어느새 주민들은 조를 짜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동이 있는 집을 찾아가 보호자를 설득했고, 아이들을 안전한 학교에서 교육시키기 위해 사비를 털었다. 보다 실질적인 변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지역 정부에 필요한 법안을 제안하여 통과시키는 쾌거도 여러 번 이루었다.이제 아동을 학교 대신 일을 하러 보내는 부모가 발견되면 벌금을 내거나 학교에 와서 노동을 하게 한다. 자신들의 목소리와 행동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실감한 주민들은 더욱 신바람이 났다. CVA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월드비전 아서 매니저에게 물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이곳의 변화를 보았기 때문이에요.”

 


 


무엇이 문제인 줄
몰랐어요

에미 :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 前 ‘치마마치라 춤’ 리더

에미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에미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상가 마을의 가장 큰 문제였던‘치마마치라 춤’의 리더였던 에미를 만났다. 오십 줄에 접어든 나이에도 그녀는 춤사위를 기억하고 있었다. “15세 때부터 이 춤을 추었어요. 내가 왜 춤을 추게 되었는지, 리더가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전통을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에요. 대대로 내려오던 춤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동네 사람들은 액운을 쫓아준다고 여겼어요.” 무지가 가져온 대가는 컸다. 어린 소녀들이 이 춤을 추다 임신을 하고, 조혼에 휘말렸다. 어린 나이의 임신은 유산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았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늘어났다.

“2012년에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와 치마마치라 춤이 왜 나쁜지 알려주었어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춤 때문에 생기는 나쁜 일들을 듣다 보니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 후부터 치마마치라 춤을 추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이 춤은 사라졌어요.”

무엇이 문제인 줄 몰라서 그저 살던 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자 상가 지역은 어느 곳보다 아이들의 권리와 보호를 우선하는 마을로 탈바꿈했다. “치마마치라 춤이 사라지니 조혼이나 임신 비율이 낮아졌어요. 이것이 가장 큰 결실이죠. 그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말라위 전체에서 치마마치라 춤이 사라지는 날이 오길 바라요.”

한때 치마마치라 춤의 리더로 이름을 날리던 에미는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 잘 나가고 있는지 모니터링 하고 그렇지 못한 아이가 있다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돕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로 활동 중이다.

치마마치라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미

치마마치라 춤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미


 

이제
멈추지 않는 자립을 향하여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치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들

한자리에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치는 월드비전 CVA 프로젝트 멤버들

기운찬 변화를 주도하는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에너지가 엄청나다. 잠시 숨을 돌린 뒤 한 명씩,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 이야기를 일부 옮겨본다.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에 제안을 하면 이것이 정부가 법률을 제정하는 데 반영돼요. 우리 자신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법에 의해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보람차죠.” – 스티븐가가(39세)

“CVA 활동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어요. 이 마을은 우리 것이고, 학교도 정부도 시민의 것이지요. 이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아요.” – 도리스호지(38세)

“우리의 역량이 강화된 것을 느껴요. 스스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죠. 또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할 수 있게 되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안할 수도 있어요.” – 바이올렛치에이타(23세)

그들은 하나같이 모든 아이가 학교에 가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으며, 더 이상 조혼에 시달리는 여자아이들이 없고, 원하지 않는 임신은 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월드비전이 떠나도 마을의 발전이 멈추지 않길 바란다”라고 했다. 월드비전이 늘 외치던 이 이야기를 주민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오후였다.
 


 

CVA 활동 후 상가 마을의 변화

CVA 활동 후 상가 마을의 변화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201909_story_magazine_top_07

[높이 나는 갈매기] 나는야 미래의 보치아 국가대표 – 보치아 유망주 김현경 아동

 

대한민국이 강국이라고 불리는 스포츠 종목이라 하면 대부분 ‘양궁, 태권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강국이라 불리는 또 다른 종목이 있다. 바로 장애인 스포츠 경기인 ‘보치아’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대회부터 2016년 리우패럴림픽대회까지 8개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의 기상을 이어받아 미래의 국가대표를 꿈꾸는 보치아 꿈나무 현경이를 만나보았다.

보치아는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가죽으로 만든 공을 던지거나 굴려 표적구와의 거리를 비교하여 점수를 매겨 경쟁하는 구기 스포츠다. 1984년 뉴욕 패럴림픽대회 때 보치아 경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1988년 서울 패럴림픽대회에서 첫 정식 경기가 이루어졌다.


 

우연히 현경이에게 다가온 ‘보치아’

멋진 007 가방을 들고 등장한 현경이. 가방 안에는 빨간 공과 파란 공 6개, 그리고 표적구인 흰색 공 1개가 들어 있다. 각 선수가 공을 던져 표적구에 가까이 놓인 공의 점수를 합하여 승패를 겨루는 보치아는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과 운동성 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는 장애인 스포츠이다. 언뜻 보면 쉬워 보이나 섬세하고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경기이다. 연습에 들어가자 아이돌 이야기에 꺄르르 떠들던 현경이는 어느새 매서운 눈매로 상대의 공을 주시한다. 단연 프로답다. 현경이는 어떻게 보치아를 시작하게 됐을까?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더 놀고 싶어서 방과 후 보치아 수업을 들었어요. 우연히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재미로 시작한 보치아에 현경이는 소질을 보였고 선수로 키우면 좋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본격적으로 보치아 선수의 길을 가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하고, 올해 열린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수상한 소감을 묻자 인터뷰 중에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한다. 현경이의 행복이 주변을 밝히는 순간이다.

(좌)꿈날개클럽 지원을 받게 되면서 구입한 현경이의 개인 공, (우)제13회 전국체전 혼성단체경기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현경이

(좌)꿈날개클럽 지원을 받게 되면서 구입한 현경이의 개인 공, (우)제13회 전국체전 혼성단체경기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현경이



세상을 향한 스피커 엄마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현경이는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말은 다소 서투르다. 현경이의 대답을 이해하기 위한 잠깐의 침묵이 흐를 즈음 어머니가 현경이의 말을 대신 전해준다. 현경이의 마음을 읽어내는 어머니를 보며 넘치는 사랑에 가슴 한쪽이 따스해졌다. 현경이의 세상을 향한 스피커가 되어주는 엄마의 또 다른 역할은 바로 감독이다. 장애인 스포츠로는 인기 종목이지만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한 스포츠인 보치아는 연습장은 물론이거니와 지도자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부딪혀도 보치아에 소질을 보이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엄마는 자타 공인 보치아 전문가가 되었다.

“현경아, 좀 더 가깝게 던져야지.” “마찰이 약하니까 강하게 던져봐.” 연습 중에도 섬세하게 현경이를 지도한다. “아이가 실력이 좋아질수록 더 어려운 일이 많더라고요. 처음엔 아이가 좋아하니까 함께 즐겨주면 됐는데 이제는 진지하게 좋은 결과를 위해 함께 성장해나가야 하다 보니까 혼낼 때가 많아요.”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지만 엄마는 현경이를 보며 힘을 낸다. “몇 년 전만 해도 걷기조차 어려워하던 아이가 이렇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고 감사해요. 또 올해부터 월드비전 꿈날개클럽 지원을 받게 되면서 개인 공도 구입할 수 있게 되고, 그 덕분에 경기력도 더 향상되었어요.”

자신의 꿈을 설명하며 미소 짓는 현경이

자신의 꿈을 설명하며 미소 짓는 현경이


 

 보치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각종 대회에서 현경이가 수상한 메달과 상장들

각종 대회에서 현경이가 수상한 메달과 상장들

“왜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란 물음에 “국가대표가 돼서 엄마에게 멋진 집을 선물해줄 거예요.”라고 답하는 현경이. 엄마를 향한 사랑이 현경이의 원동력이 되는 듯하다. 현경이의 또 다른 꿈은 좋은 성적을 거둬 세상에 보치아를 알리는 것이다. “저처럼 힘이 없고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할 수 있는 경기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즐기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보치아가 빛을 보길 바라며 현경이는 오늘도 275g의 공을 수십 번 던진다. “부족한 저에게 끝없는 후원과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지켜봐주세요. 꼭 훌륭한 선수가 되겠습니다.” 후원자님께 당찬 포부를 전해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꿈을 그려나가는 친구들에게 응원도 잊지 않는다. “즐겁게 웃으면서 하고 싶은 걸 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고 생각해. 성실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우리 함께 끝까지 노력해보자!” 현경이의 밝은 미소처럼 보치아 스포츠에도 밝은 햇살이 비치길 바라본다.

“힘든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고 늘 씩씩하게 꿈을 향해 노력해가는 현경이가 정말 자랑스러워. 꿈과 목표가 생긴 후 빠르게 성장해가는 현경이를 보면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단다. 항상 지금처럼 밝은 웃음과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한다면 ‘보치아 국가대표’라는 꿈을 반드시 이룰 거라고 생각해. 지금의 노력이 값진 열매를 맺을 때까지 묵묵히 걸어가는 현경이가 되길 늘 응원할게!” – 월드비전 송파종합사회복지관 김수희 차장

 

글.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201909_story_magazine_top_08

[후원자 이야기] 이민성·김순자 후원자님

정말 재미있는
‘나      눔’

‘청.주.’ 이름을 부를 때부터 낭랑한 느낌이 드는 곳. 미얀마에 교실 9개가 있는 3층짜리 학교를 우뚝 세우고도 별로 한 게 없다는, 그래서 앞으로 매년 이곳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겠다는 이민성 후원자와 사랑 많은 가족이 사는 도시를 찾았다.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와는 달리 오히려 궂은 여름날에 기분 좋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비가 내렸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다. 이민성 후원자가 들려준 이야기는 장대비 속을 뚫고서라도 들을 만큼 소중했으니까.

 


 

사업이라는 게 참 어려워요

이민성 후원자에게 남아 있는 1960년대 기억은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학교와 먹고사는 일에 매달리던 일상이다. 그는 한국의 그때가 지금의 미얀마보다 더했을 것 같다고 했다. 누구나 하는 고생이니 ‘아야’ 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던 날들을 버텨내며 이민성 후원자는 건축업에 발을 들였다. 굳게 마음먹고 도전했지만 크고 작은 시련들은 그를 정신없이 내리쳤다.

“사업이라는 게 말이죠. 참 어려워요. 우리라고 뭐 달랐겠어요? 다만 한 가지 원칙만은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아무도 속이지 말고 진심으로 성실히 하자!’ 당시엔 건설업 한다고 하면 사기꾼 아니냐고 오해부터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계약 일정을 하루라도 늦추거나 대금 지급을 미룬 적이 없어요. 정말 이를 악물었어요. 그런 날이 쌓이자 주변에서 ‘이 사람은 틀림없다’라며 인정해주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보니 사업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더라고요.”

미얀마 학교 완공식에 참석한 이민성 후원자 가족

미얀마 학교 완공식에 참석한 이민성 후원자 가족



가족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꿈꾸지 못했을 일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킨 그는 충북 지역 월드비전 후원회 회장이 되었다. 전국에서 두 번째 생긴 후원회였다. 어렵게 살던 시절, 못 먹고 못 입던 설움이 마음속 깊이 남은 이민성 후원자는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자 어려운 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처음엔 선뜻 무엇을 나눈다는 것이 어려웠다. 다른 이를 도울 돈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옷이라도 한 벌 더 사 입힐 텐데 하는 생각에 나눔의 문턱에서 머뭇대던 그에게 용기를 준 건 아내였다. “우리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삽시다. 같이 벌고 나누고 사는 건데 아까울 게 뭐 있어요?” 아내의 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후원하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나눔은 일상이 되고 후원은 삶이 되었다. 그렇게 주변을 돌아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 이민성 후원자는 *월드비전 밥피어스아너클럽 회원이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미얀마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준 아들 이규철씨

부모님과 함께 미얀마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준 아들 이규철씨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배움

이민성 후원자의 후원으로 완공된 미얀마 학교

이민성 후원자의 후원으로 완공된 미얀마 학교

“아프리카 지역을 방문하고 교육의 중요함을 많이 느꼈어요. 아이들이 어려운 환경이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공부를 하고, 그 지식으로 지혜롭게 운명을 헤쳐나간다면 아프리카의 풍부한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들이 배출되지 않을까요? 어떤 환경에서도 먼저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실천을 하네요.”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이민성 후원자의 꿈은 미얀마 피지다곤 학생을 위한 학교를 지으며 실현됐다. 워낙 낙후된 나라여서 공사가 잘될까 걱정도 많았지만 월드비전으로부터 중간중간 건축 진척 상황을 보고받으며 걱정 대신 완공된 학교를 기대하게 되었다. 본인도 건설업을 오래 해왔지만 직접 가서 보니 튼튼하게 잘 지었다고 활짝 웃는 이민성 후원자. 한국의 건설 수준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있지만 미얀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학교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더욱이 학교를 지어주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을 채워가며 점점 더 완성된 모습의 학교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한다는 꿈도 펼쳐본다. 후원자의 꿈은 미얀마 아이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니까 좋아요. 나누며 살다 보니 우리 마음이 편해지고, 건강해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걸 느껴요. 진정한 마음에서 나오는 나눔이라 그런지,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 재미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남긴 이민성 후원자의 이야기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귓가에 맴돈다. ‘잘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오랜 교훈이 ‘나눔’에도 녹여질 수 있음에 왠지 뭉클하다. 미움도 다툼도 없이 서로 함께 기대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마치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던 날, 바로 이민성 후원자 부부를 만났던 그날이다.

월드비전 비전소사이어티, 밥피어스아너클럽 로고, 담당 팀에 전화 주시면 후원 방법, 사업 내용, 결과 보고에 대해 상담해드립니다. 02-2078-7229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 쿰 스튜디오, 월드비전/ 기업특별후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