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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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대화의 막바지, 아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주로 내가 하던 터라 적잖이 당황했고, 평생 처음 받아본 내용이어서 으응? 하는 기색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그의 질문은 이것.

 

 


 

몽골대학교 엔지니어 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몽골대학교 엔지니어 학과에 재학 중인 아쉬

 

아쉬는 동네 친구들과 똑같이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들 어렵게 살았기에 특별히 눈치 볼 일도 없었다. 다만, 엄마, 아빠, 아쉬 그리고 여동생 둘이 빠듯하게 사는 하루하루의 끝이 어디일지 떠올리다 보면 한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우리 가족에게, 아니 나에게 미래란 있는 걸까? 이렇게 무료한 하루하루를 살게 되는 걸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오늘’의 반복이라고 될 거란 생각이 들면 가슴 저 끝까지 답답해 져왔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일상이 이어지던 2000년. 아쉬가 살던 날라이흐 마을엔 새로운 기운이 돋았다. ‘월드비전’이라는 기관이 마을의 고민거리에 함께 머리를 맞댄다고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월드비전과 수시로 만나 무엇부터 바꿔 나가야 할 지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길어져 낮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진 날도 있다. 꼬물꼬물 웅크린 애벌레가 날개를 터트리듯,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던 마을에는 드디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후 된 학교 시설이 고쳐지고 모자랐던 교실이 생겼다. 깨끗한 물이 언제나 콸콸 뿜어 나오는 식수 시설도 생겼으며, 위생 습관도 자리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변화. 아이들에게 한국의 후원자가 생겼다는 것! 아쉬도 편지와 사진으로 후원자를 만났다. 후원자는 종종 공책, 연필, 사탕 등 선물과 편지를 보내왔다.

“한국에서 보내주시던 선물을 받으러 막 뛰어가던 어릴 때 제 모습이 떠올라요.”

어린 아쉬에게 후원자의 관심은 신기하고 따뜻했다.

“월드비전에서 하는 거의 모든 활동에 참여했어요. 생일파티, 야외단체 활동, 손 씻기 캠페인, 재난 때 행동 방법, 나쁜 습관 방지 캠페인, 아동 보호… 정말 많이 활동했죠? 활동을 하며 제가 기억하는 가장 큰 변화는 많은 친구들이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재능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월드비전 프로그램으로 저와 같은 아이들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월드비전 선생님들도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고요.”

부자 보다는 당당하고 좋은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부자 보다는 당당하고 좋은 전문가가 되길 바라는 아쉬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보낸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 아쉬는 이제 어엿한 몽골대학교의 학생이다. 방학 동안 공사장 일용직에, 가로등 설치 시스템 구축 일에 두 개씩 아르바이트를 뛰며 학비를 마련하지만 굳게 품은 꿈이 있기에 힘들어도 꾹 눌러 참아본다. 아쉬의 꿈은 수도 공급 시스템 엔지니어. 심각한 대기 오염이 문제인 몽골은 물 부족과 오염도 만만찮은 골치거리다. 정수 및 공급 시스템 전문가 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쉬가 전공하고 있는 엔지니어 학과는 졸업 후 취업률이 높다. 실업률이 심각한 몽골에서 흔치 않은 일인데다 2020년 졸업 예정인 아쉬는 벌써 몽골 정부에서 졸업 후 물 관련 일을 하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다. 아쉬와 몽골대학교 한적한 강의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듬직하게 잘 자랐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본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한국의 후원자에게 남길 말이 있냐 물으니 몽골의 찬 공기 속 다정한 기운이 훅, 풍기는 이야기를 건넨다. 아쉬가 후원자에게 전하는 이야기와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심장이 쿵. 하던 그 순간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따듯한 미소와 함께 후원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아쉬

“후원자님! 후원자님에게 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어렸을 때 월드비전 선생님이 후원자에게 소식이 왔다고 하면 기뻐서 달려갔던 기억이 나요. 그 순간, 그 떨리던 심장소리를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후원자가 있나요?”
후원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던 아쉬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각지 못한 질문에 더듬더듬 대답을 한다.

“아니요, 아니요. 저는 후원자가 없어요.”
다시 아쉬의 말이 이어진다.

“그럼 이 감사와 이 기쁨을 모를 거예요.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는 정말 어마어마해요. 후원자님, 어렸을 때 그런 기쁨을 맛보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꿈은 부자가 되는 게 아니에요. 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거예요. 어디서든 당당하게 열심히 일하며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마을이 자립을 해서 월드비전은 떠났지만 우린 오랫동안 연결되어 있었어요. 저 역시 후원자님처럼 월드비전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있어서 신나고 좋았습니다.”

 

글과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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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제임스 이야기

제임스가 삶으로 정의한
‘의지’

배움의 중요성을 늦게 깨달은 제임스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배움의 중요성을 늦게 깨달은 제임스지만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할아버지가 학교 다닌데요~” 학교로 돌아간 제임스가 매일 듣던 소리다. 9세에 학교를 그만둔 제임스는 16세가 되도록 자기 이름조차 쓸 줄 몰랐다. 읽을 줄도 몰랐으며 숫자 0부터 10까지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이런 제임스가 학교에 다시 왔으니 어린 동급생들에게는 좋은 놀림감이었으리라.

제임스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참 어린 동생들만도 못하게 전혀 읽고 쓰고 셈하지 못하는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해 보였다. 하지만 제임스는 끝까지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월드비전 CVA 멤버들의 끊임없는 격려도 결심을 다지는 데 한몫했다.

자, 이제부터 제임스의 반격! 4학년으로 시작한 초등학생 제임스는 그해 첫 시험에서 1등급을 받아 할아버지라 손가락질하던 아이들의 입을 꾹 다물게 했다. 5학년 때도 6학년 때도 모든 시험에서 1등급을 놓치지 않았다. 급기야 학교에서는 7학년이 된 제임스를 곧장 8학년으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제임스가 초·중등 과정을 무사히 이수만 해도 마을에서는 놀랄 일이고 큰 성과였음은 당연하다. 어부이던 소년이 그물을 놓고 학교로 돌아와 연필을 다시 잡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도 박수 받을 일인데, 이 의지의 소년은 끝까지 해내겠다는 자신의 말대로 끝을 보고야 말았다. 이제 19세. 짧은 인생 속에서‘의지’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정의한 제임스.

그런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토록 학업에 빛을 발하는 아이가 학교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을까?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제임스

대학 진학을 준비 중인 제임스

제임스의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이다. 형 세 명, 누나 두 명 그리고 제임스와 엄마. 아빠는 엄마가 아이를 임신하자 가정을 버리고 떠난 지 오래다.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버리다니. 그런 사람이 결혼은 왜 했던 거지?’ 제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내 마음은 부글부글한데 정작 당사자는 무덤덤하다.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해야만 했던 하루하루는 떠난 아빠를 원망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제임스가 살고 있는 지역은 호수가 가까워 대부분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제임스도 그렇게 어부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학교에 다녀봤자 딱히 좋은 게 뭔지 알 수 없었어요.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돈을 버는 일이 중요했죠. 9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물고기 잡는 일을 시작했어요.”

세월은 물처럼 흘러 흘러 어느새 아이는 16세 청소년이 되었고 학교를 떠난 지는 7년이 다 되어갔다. 그리고 2016년 어느 오후, 제임스의 삶을 바꾼 만남이 찾아온다. 아주 소박하고 그리고 아주 단호하게.

“일을 마친 후 엄마랑 같이 집에 있었어요.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누군가 찾아왔는데 월드비전 CVA 멤버들이라 했어요. 엄마와 저는 어리둥절했죠. 그분들은 친절하게 자신들을 소개했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고 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어머니와 제임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어머니와 제임스

자신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음을 그들이 안다는 것도 왠지 기분이 나빴고, 한 마을에 살 뿐 딱히 친한 이웃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권하자 일단 경계심부터 생겼다. 학교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다녀야만 하는 의무라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제임스는 받아쳤다.

“제가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시나요? 돈도 벌어야 하고, 무엇보다 지금 전 제 이름도 쓸 줄 몰라요. 이런 내가 무슨 학교를 다니겠어요?”

제임스의 날 선 반문에도 월드비전 CVA 멤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돈을 버는 일을 조금 줄이더라도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물고기만 잡고 있을 거냐며 지금이라도 교육을 받아야만 아직 한참 남은 네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오랜 대화 끝에 제임스의 마음이 돌아섰다.

물고기를 낚던 제임스는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을 꿈꾼다.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못해 아직은 구체적인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진학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이미 ‘의지’란 이런 것이라 보여주었던 제임스이기에 크고 단단한 벽 앞에 서 있지만 절망은 하지 않는다.

“월드비전 CVA 프로그램은 제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어요. 그때 학교에 다시 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전 호수에서 오늘 먹고살 것만 생각하며 일을 하고 있겠죠.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은 월드비전 CVA 덕분이에요.”

제임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어부 일을 했던 말라위 호수

제임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어부 일을 했던 말라위 호수

제임스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마을 어린이들을 걱정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삶에 찌든 아이들이 용기를 얻고 학교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학교로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교육을 받는다고 반드시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의 사정에 먼저 귀 기울이고 사람들과 연대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함을 배우고 깨달은 제임스는 바른 사회를 만드는 참 좋은 어른이 될 것이다. 이미 그는 그런 사람이지만.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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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보는 월드비전] 숫자로 보는 월드비전 이모저모


올해 월드비전은 설립 69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전쟁 후 굶주림으로 도움을 받던 한국월드비전은 69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100여 개국에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후원자님께서 전해주신 사랑이 만들어낸 알찬 결실을 전해드립니다.


 








글.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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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사람] 비전스토어 착한 가게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착한 가게 표지 이미지
우리 주변엔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키는 착한 가게들이 있습니다. 음식점, 카페, 꽃집 등 나눔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월드비전 비전스토어.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오시는 고객들과 나눔을 함께하고자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는 가게들입니다. 2017년부터 시작한 비전스토어는 어느덧 2년이 지나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며 2095호 (2019.7.25 기준)이 지정되었습니다. 그중 서울에 있는 407개의 비전스토어 중 세 곳을 찾아가 방문하는 모두가 후원자가 되는 기적 같은 일을 실천하고 있는 착한 가게 사장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조셉플라워

“요즘은 ‘어른’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잖아요. 세상엔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많은 돈을 후원하는 건 아니지만 꿈을 키우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작 아니겠어요?”

2017년부터 후원을 해오고 있는 김시원 후원자는 유명 플로리스트이다. 영국 유학 시절, 친구가 아들이라며 한 아이를 소개했다고 한다. 결혼을 안 한 친구의 이야기에 당황도 잠시, 그 아이는 친구의 후원아동이었다. 김시원 사장은 이때 ‘후원’이란 단어와 처음 마주하였다. “우리 아마니 사진이에요”라며 후원아동 아마니를 소개하는 그의 모습에서 후원에
대한 진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도 후원을 통한 행복을 자주 나눈다는 후원자님. 그런 마음이 또 다른 후원의 인연의 꽃을 피우리란 확신이 든다.

“함께함, 공유라는 단어의 의미가 좋잖아요. 빡빡한 세상에서도 작지만 빛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그 빛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함께 돕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한 산업이 오래 유지되기 위해선 나만 잘되는 게 아니라 함께 오래가는 게 중요해요. 우리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마음이면 냉랭한 세상도 포근하게 변할 것 같아요.”

은퇴 뒤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플로리스트란 꿈에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김시원 후원자. “꽃이 의식주에 영향을 주진 않지만 꽃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의 가치를 믿어요.” 꽃이 주는 행복, 기쁨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비전스토어 안에 가득했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의 가치처럼 나눔이 아이들의 삶에 꽃향기로 닿는 희망을 보며 후원을 지속해나가는 게 아닐까.

후원아동 아마니 신도의 비전스토어 김시원 사장

 



아우어베이커리

“행복한 바이러스가 묻어나는 가게가 되면 좋겠어요. 직원들의 친절, 가게의 나눔이 눈엔 보이지 않지만 좋은 기운으로 가게에 녹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투자 회사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며 아우어베이커리 본사 총 CFO이기도 한 정안식 후원자. “제 본업이 딱딱한 이미지다 보니까, 책상 위에 앉아서 주식 그래프만 보면 세상적으로만 빠져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오시는 고객들이 모두 즐겁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게를 직접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그의 철학처럼 아우어베이커리 압구정소망점엔 따스한 기운과 행복한 에너지가 가득했다. 계산대 옆에 놓여 있는 후원아동의 사진 덕분에 손님들도 빵을 구매하며 아이와 자연스레 눈 맞춤을 하게 된다.

“처음엔 후원 활동을 주변에 알리는 것에 고민이 많았어요. 거부감을 느끼는 손님들도 물론 있겠지만, 10명 중 4명은 조금이라도 후원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언젠가 어려운 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고 싶다는 그는 나눔에 대한 소신도 확고하다. “초등학생 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집안이 어려워져 무척 힘들어하던 모습을 보며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예전엔 어려운 나라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고 싶다는 꿈이 막연했는데, 지금은 주변에 좋은 분이 많아져서 함께한다면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가게에 오는 모든 손님, 오가며 가게를 마주하는 분들, 주변 이웃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정안식 후원자. 그의 긍정적인 철학처럼 달콤한 빵 냄새와 좋은 기운이 가득한 비전스토어와의 만남이었다.

후원아동 아이비원의 비전스토어 정안식 사장

 



폴 바셋

폴 바셋은 커피 브랜드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사회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1 shop = 1 child’라는 가치로 월드비전을 통해 에티오피아 아동들을 후원하고 있다. 비전스토어가 생기기 이전인 2015년부터 가게 하나당 아이 한 명을 후원해온 폴 바셋은 비전스토어의 시초이기도 하다.

폴 바셋 100호점인 서초본점의 오원준 점장은 입사 교육을 받으며 처음 후원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후원에 대해서 입사 전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아이와 소통하고 직원들과도 아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까 후원에 대한 유대감과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같아요.” 커피 산업의 발전과 좋은 커피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폴 바셋은 커피 산업의 선순환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일환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폴 바셋의 철학처럼 커피 대사로서의 홍보 효과와 공급자 역할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바리스타의 역할 그리고 이용하는 고객까지 세 가지가 좋은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표면적으로 후원의 혜택은 아이에게 닿지만, 궁극적으로는 저희와 사회 발전의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원준 후원자는 매장 게시판 밑에 후원아동의 사진을 두어 직원들도 네이마와 매일 마주하게 한다. “후원아동이 보내온 편지는 항상 직원들과 공유해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이가 전해오는 마음이 굉장히 감동적이거든요. 그러한 감정을 공유하며 직원들도 자연스레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거 아세요? 전국 2,095개 비전스토어의 손님인 여러분도 저희의 후원자라는 사실을요. 여러분이 착한 가게에서 하는 착한 소비가 모여 아동의 꿈을 응원하고 있답니다. 주위에 비전스토어가 있다면 곧 당신의 후원아동이 될 그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어주면 어떨까요? 월드비전은 전국의 비전스토어 사장님들을 응원합니다.

후원아동 아이비원의 비전스토어 정안식 사장


비전스토어란? 월드비전 정기 후원(국내/해외)에 참여하는 전국의 모든 가게를 말합니다. 음식점, 카페, 미용실, 꽃집 등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면 누구나 비전스토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업종에 관계없이 중소기업, 프랜차이즈, 병원, 학원도 참여 가능합니다

글.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편형철/ 쿰 스튜디오, 조은남/ 조은나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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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유럽을 돕는다고요? 부유한 대륙, 가난한 국가 알바니아

알바니아 지도와 국기
이런 국기를 본 적 있나요?

지도를 자세히 보면 조금 감이 올 수도 있을 텐데…. 눈치채셨나요? 바로 ‘알바니아’라는 나라의 국기예요.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에요. 일단 간단하게 알바니아의 위치부터 짚어볼까요?

알바니아는 유럽의 남동쪽에 있어요. 남쪽으로 그리스, 북쪽으로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사이에 끼어 있지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알바니아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해요. 테레사 수녀님이 태어난 나라, 할리우드 액션 영화 속 마피아의 나라, 코소보 비극이 있었던 나라, 부유한 대륙 속 가난한 국가, 알바니아로 떠나볼까요?

 



‘코소보’가 남긴 상처를 보듬기 위해 찾아온
월드비전

       알바니아는 1990년, 2차 세계 대전부터 40년간 이어진 공산주의 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의 길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적 갈등과 높은 실업률로 유럽 최빈국으로 남아 있어요.

또 알바니아에는 ‘코소보’라는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해요. 알바니아가 민주주의의 길을 선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9년, 알바니아와 세르비아 사이에 있는 코소보에서 내전이 일어났어요. 코소보에 있던 알바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시작된 내전은 세르비아 사람들이 알바니아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끔찍한 인종 청소로 이어졌어요.

당시 코소보 인구 210만 명 가운데 1만 명 정도가 사망하고, 9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이 발생한 큰 사건이었어요.

월드비전이 알바니아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건, 바로 코소보 사태로 인해 알바니아로 도망쳐 온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였어요.

산지가 많은 리브라즈드 풍경

산지가 많은 리브라즈드 풍경

월드비전이 알바니아의 시골 마을
리브라즈드로 향한 이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알바니아 아동 세 명 중 한 명은 여전히 최저 생계 수준에 못 미치는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특히 시골 지역 빈곤율은 도시보다 66%나 높고, 실업률은 30%에 달해요.

월드비전이 2006년 활동을 시작한 리브라즈드 지역 역시 주민의 84%가 농사일을 하는 시골 마을이에요. 하지만 산지가 대부분이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많지 않고 시장으로 가서 생산한 농작물을 팔기도 사기도 어려운 곳이죠.

그나마 주민들의 수입원이던 탄광과 담배 공장이 2000년 초 문을 닫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점점 어려워지는 고향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가장이 많아지면서, 남겨진 아이들과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여러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가는 월드비전은 알바니아에서도 바로 이곳, 리브라즈드로 향했어요.

(왼쪽)월드비전과 지역 정부가 매년 개최하는 꿀 축제 모습, (오른쪽)양봉 기술을 청년에게 가르쳐주는 마히예 할머니

(왼쪽)월드비전과 지역 정부가 매년 개최하는 꿀 축제 모습, (오른쪽)양봉 기술을 청년에게 가르쳐주는 마히예 할머니

곰돌이 푸도 반한 리브라즈드의 벌꿀,
주민들의 희망이 되다

    리브라즈드는 산이 많아 경치는 아름답지만 그만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적기 때문에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은 어려움이 많아요. 월평균 수입이 150~180달러밖에 되지 않을 정도죠.

월드비전이 이 지역에서 무엇보다 소득증대사업에 힘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후원아동 가정을 중심으로 가정마다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농업 교육과 지원을 하고 있어요. 특히 70%에 달하는 청년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소득증대사업에는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해요.

다양한 소득증대사업 중 4년 전 시작한 양봉사업은 효과가 커서 지역 정부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리브라즈드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어 향 좋고 맛도 좋은 꿀을 생산하기에 딱 맞는 조건을 갖고 있어요.
월드비전 울산지역본부 후원자님들의 나눔으로 리브라즈드의 양봉사업은 조직적이고 규모 있게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리브라즈드 지역에서 생산되는 꿀은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그중 밤나무 꿀과 소나무 꿀이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해요. 최근에는 꿀이 소염, 항균 치료제로 알려지면서 꿀 소비도 늘어나고 있어요.

월드비전과 지역 정부는 지역적 특성과 몸에 좋은 꿀의 가치를 십분 활용해서 매년 리브라즈드 꿀 축제를 개최하고 있어요. 올해는 지역 정부에서 꿀 축제에 예년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해서 대표 지역 축제로 키워가고 있답니다.


인생의 단맛을 알게 된 마히예 할머니

    마히예 할머니(58세)는 리브라즈드에서 양봉왕으로 유명해요. 2019년 청소년을 포함해 36가정이 참여한 월드비전 양봉사업에서도 마히예 할머니는 누구보다 열정이 넘쳐요.

마히예 할머니는 몇 년 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아들 부부와 두 손녀 파비아나(10세), 아델라(7세)와 함께 살고 있어요. 리브라즈드의 대부분 가장처럼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스로 떠났어요. 마히예 할머니는 남편이 하던 양봉사업을 옆에서 도우며 익힌 기억을 더듬어 며느리, 손녀들과 함께 양봉사업을 시작했어요.

물론 마히예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월드비전이 양봉에 필요한 기초 장비를 지원했고, 양봉 관리 교육도 진행해서 보다 효율적인 양봉사업을 도왔어요. 벌집통 1개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제 벌집통이 8개가 되었답니다. 마히예 할머니는 이웃에 사는 청소년들에게도 시간이 날 때마다 벌집을 관리하고 꿀을 재배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손녀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양봉을 하면서 인생의 단맛을 알게 되었죠. 동네 사람들에게도 이 기쁨을 알려주고, 함께 누리고 싶어요. 제가 가진 짧은 지식과 기술도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가서 알려주고 싶어요!” – 마히예 할머니

벌꿀을 사랑하는 소녀 요안나(왼쪽)와 월드비전 양일선 이사, (오른쪽)벌꿀 축제에서 판매되고 있는 주민들이 만든 벌꿀

벌꿀을 사랑하는 소녀 요안나(왼쪽)와 월드비전 양일선 이사, (오른쪽)벌꿀 축제에서 판매되고 있는 주민들이 만든 벌꿀

 17세 요안나의 꿀 떨어지는 사랑

    올해 17세가 된 요안나는 매일 아침 벌꿀 생각에 알람도 없이 눈을 떠요. 곧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 고민이 한창일 나이지만, 요안나는 걱정이 없어요. 주변의 권유로 양봉을 배웠지만 그녀는 어느새 진심으로 꿀벌들을 사랑하게 됐답니다. 이렇게 꿀벌과 사랑에 빠진 요안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벌집으로 달려가 꿀벌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양봉 기술을 배우면서 벌들에게 쏘여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벌들은 제 꿈이에요. 벌들이 없었으면 저는 어떤 미래를 꿈꿨을지 모르겠어요.” – 요안나

알바니아 양봉협회로부터 월드비전 양봉사업을 통해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된 꿀의 맛과 질이 매우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은 리브라즈드 양봉사업은 올해 큰 목표를 갖고 있어요. 우선 주민들이 생산한 꿀을 예쁜 병에 담아 포장하고 브랜드 작업을 거쳐 상품 가치를 높이는 거예요. 또 유럽연합의 품질 인증을 받아 유럽 내 다른 나라들로 수출하는 거예요. 이를 위해 본격적으로 유럽연합 품질 인증에 필요한 제품 검사를 준비 중에 있어요. 유럽연합의 인증을 받게 되면 1kg당 지금 가격의 최대 10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답니다.

 

 Best Friendship Forever!

    이름도 생소한 알바니아의 리브라즈드는 한국 후원자님들이 2008년부터 후원해온 지역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양봉을 통한 소득증대사업 외에도 청소년 대상 역량강화사업, 아동보호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12년간 진행해오고 있어요.

그동안 월드비전과 주민들이 함께 만든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2019년 6월, 한국월드비전 양호승 회장과 월드비전 이사회가 함께 리브라즈드를 방문했어요. 2022년 자립을 앞둔 리브라즈드에 머무르며 방문단은 알찬 변화의 열매들을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동안 한국 후원자님들을 통해 리브라즈드에 일어난 달콤한 변화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글. 백진 지역개발팀
사진. 월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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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싱긋, 조용한 미소와 눈짓으로 우리를 맞는 아이. 아니 의젓한 성인이 된 할룬(22세)을 보며 동행한 몽골 직원의 얼굴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월드비전 후원아동으로 자라며 제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이 된 할룬을 울란바토르 도심,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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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룬이 일곱 살 되던 해, 월드비전이 날라이흐 마을에 왔다. 학교도 화장실도 병원도 변변치 않던 마을에서 월드비전은 주민, 어린이들과 상의하며 부족한 부분을 꼼꼼하게 고쳐나갔다. 그때를 떠올리며 할룬은 말한다. “어렸을 때라 모든 게 기억나진 않지만 활기찼던 마을의 분위기만큼은 생생해요.” 무엇보다 그녀와 마을 친구들에게 생긴 신나는 일을 잊을 수 없다. 바로 후원자와의 만남. 할룬의 후원자는 두 살 많은 언니였다.

“맏딸인 제게 정말 친언니가 생긴 것 같더라고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이 편지와 사진으로만 만났지만 그렇게 가깝게 느껴졌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언니가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다면서 몽골에도 오고 싶다 말했던 게 생각나요. 언니는 새로운 것,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꿈같은 이야기지만 언니가 정말 몽골에 와서 우리가 만난다면 몽골에서 유명한 다담 페스티벌도 함께 가고 몽골의 아름다운 대자연도 같이 보고 싶어요.”

지금은 울란바토르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십여 년 전까지 할룬 가족은 게르에서 살면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몸이 많이 아팠던 엄마는 일을 할 수 없어 아빠가 경비 일을 하며 가정을 근근이 꾸렸다. 먹을 것이나 필요한 물건을 지원받기 위해 월드비전 사무실에 다녀오던 엄마를 할룬은 잊지 못한다.

월드비전과 한국 후원자들의 도움은 할룬을 비롯한 날라이흐 마을의 어려운 가정들이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월드비전의 체계적인 지원과 부모님의 성실함이 더해져 할룬이 6학년(12세)이 되던 해에 게르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개미처럼, 꿀벌처럼 일하고 저축에 힘쓴 할룬네는 다시 울란바토르의 작은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고객의 비행기 티켓을 예약·관리하는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하는 할룬

고객의 비행기 티켓을 예약·관리하는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하는 할룬

청장년의 취업난이 심각한 몽골에서 할룬은 그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했다. 고객들의 비행기 티켓을 실수 없이 예약하고 관리하는 업무는 민첩한 상황 판단과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고객 응대도 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기술이나 친화력도 중요하다. 할룬은 수습 기간 동안 이에 해당하는 분야에 대한 평가와 시험을 통과하여 어엿한 정직원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보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할룬을 보며 후원과 나눔의 힘은 무한대임을 배운다.

취업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더 큰 꿈을 찾는 중이라는 할룬. 그녀의 당찬 꿈에 응원을 보낸다.

취업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더 큰 꿈을 찾는 중이라는 할룬. 그녀의 당찬 꿈에 응원을 보낸다.

할룬은 아직 꿈을 찾는 중이다. 취업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는 그녀는 더 가치 있는 삶을 바라보며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때론 고단한 업무에 힘든 순간도 많지만 도전을 겁내지 않던 후원자 언니의 기억이 지금도 종종 다정한 위로가 된다.

“언니. 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세상에 혼자인 것만 같았을 때, 외롭고 슬플 때 언니는 나와 같이 있어주었어요. 정말 많이 고마워요.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과 위로를 주었던, 지금도 주고 있는 언니가 많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묻자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후원자에게 뭉클한 인사를 전한 할룬. 후원자를 그리워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나 역시 그녀의 후원자가 그립고 그렇게나 감사했다.

 

글·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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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갈매기] 내 인생을 바꿔준 요리

용암복지관 서세민 아동

용암복지관 서세민 아동

 


 

마음까지 배불리는 요리사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의 마음까지 배불리는 요리사가 되고 싶은 서세민입니다.”

요리사 복장을 하고 당당하게 본인의 꿈을 소개하는 세민이의 눈빛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조용하고 자신감 없었던 소녀. 어린 시절 세민이의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 세민이를 바로 세워준 건 요리와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우연히 동사무소에서 접한 빵 만들기 수업은 세민이의 인생을 180도 변화시켰다. 발효되며 부풀어 오르는 빵 반죽, 묽었던 생크림이 되직해지는 모습은 열세 살 세민이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빵 만들기에 마음을 뺏긴 어린 소녀는 바로 공책을 사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요리 학원을 다닐 수 없어 공책에 적어갔던 꿈. 어린 세민이는 밀가루와 오븐 대신 공책과 연필로 베이킹 레시피와 관련 용어를 적으며 빵을 만드는 모습을 그리고 상상했다. 그러던 세민이에게 기회가 왔다. 바로 월드비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꿈노트에 세민이가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적어놓은 레시피

꿈노트에 세민이가 요리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적어놓은 레시피


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준 월드비전

사회복지사의 추천으로 참가하게 된 월드비전의 꿈디자이너 활동은 열네 살 세민이를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했다. 자기 성장 계획서를 실현하며 꿈을 성장시키고, 파티시에를 만나 케이크를 함께 만들어보기도 했다. 꿈날개클럽에도 합격해 지원금으로 요리 학원에 다니며 원하는 요리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고3이 된 지금 세민이는 20개 이상의 대회에 참가해 수상을 하고, 제과 마스터, 제빵 마스터, 양식 소스 마스터 등 총 5개의 자격증을 가진 당당한 예비 요리사가 되었다. “요리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 같아요.” 열아홉 살 세민이는 확고하게 요리는 ‘인생, 삶’이라고 말한다. 아직 어린 세민이의 인생 이야기에 모두 웃음을 지었지만, 세민이에게 요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에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세민이가 수상한 각종 메달, 상장과 취득한 자격증들

세민이가 수상한 각종 메달, 상장과 취득한 자격증들


나의 롤 모델, 엄마

“롤 모델이오? 엄마예요. 엄마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일류 호텔의 셰프나 TV에 나오는 유명 요리사를 기대하며 물은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라 답한다. “꿈을 이루려면 가끔 망친 케이크라도, 실패도 나름 좋은 경험이야.”
2015년, 망친 엄마의 생일 케이크를 보며 슬퍼하는 열다섯 살 세민이에게 엄마가 해준 말이다. 좌절할 때마다 엄마가 건네주신 응원은 세민이를 자신감 있고 밝은 아이로 변화시켰다.

 

“월급이 적어도 요리사가 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니?”라는 엄마의 물음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응”이라 대답한 세민이. 그런 세민이의 꿈을 향한 자세는 어머니에게도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한 일이라 말하던 엄마는 딸의 대답을 듣고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사회복지사가 되셨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꾸준히 노력하며 성장하는 딸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묵묵히 꿈을 실현해나가는 딸. 모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세민이가 정성스럽게 완성한 밀푀유나베

세민이가 정성스럽게 완성한 밀푀유나베


세민이는 에이스지!” 가족 같은 존재 월드비전

월드비전이 가족 같다는 세민이. 요리사의 꿈을 품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힘이 되어준 월드비전 사회복지사들은 세민이에겐 애뜻한 존재이다. “선생님들이 항상 저를 에이스라고 불러주세요. 그래서 자신감도 생기고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또 다른 가족 같은 존재는 후원자님이시다. 어디에선가 자신을 응원해주는 분들이 계신다는 든든함은 당당하게 빛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후원자님의 후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현실에 부딪혀서 꿈을 포기했거나, 희망조차 품을 수 없었을 거예요. 주위의 도움으로 꿈을 이뤄가며 저 또한 누군가에게 희망을 듬뿍 품은 요리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몇 년 후, 마음까지 배불리는 따뜻한 요리사가 된 세민이의 음식이 벌써 기대된다.

능숙한 칼 솜씨로 재료를 손질하는 세민이

능숙한 칼 솜씨로 재료를 손질하는 세민이

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사업은 세상에 많은 세민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한 활동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지향할 수 있게 하죠. 세민이는 6년이라는 기간 동안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고, 의미 있는 실패의 과정을 겪으면서 꿈꾸고, 도전하고, 그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꿈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세민이를 응원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 월드비전 용암복지관 김지혜 과장

 

 

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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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캠페인] 월드비전 Basic For Girls with 유미의 세포들

월드비전 ‘Basic for Girls’는 여아들이 생리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캠페인입니다. 이와 더불어 여아들을 조혼과 폭력 등에서 보호하는 등 아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특별히 올해 10월부터는 ‘유미의 세포’들이 후원자님과 케냐, 탄자니아 여자아이들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함께했습니다.

‘유미의 세포’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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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지금까지 약 5만 명의 시민이 Basic for Girls 캠페인에 참여해주셨습니다. 면 생리대 키트를 구입해서 면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주신 후원자님, 미완성된 면 생리대를 수선해주신 봉사자님, 키트를 포장하 는데 도움을 주신 봉사자님, 여아 사업에 후원을 해주신 후원자님, 온라인에서 캠페인이 확산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서포터즈 등 다양한 형태로 Basic for Girls와 함께해주셨습니다.

월드비전 케냐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에 있는 후원자님들이 보내주는 후원금도 물론 감사하지만 저 멀리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보내주는 관심과 응원이 담긴 마음이 더 감동적이고 소중하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함께 사는지구 마을에서 작은 씨앗을 서로의 마음에 심는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을, 우리들의 마음에는 행복의 씨앗을요. 후원자님들께서 보내주신 응원의 메시지는 면 생리대와 함께 케냐와 탄자니아 아이들에게 전달될 예정입니다.

<Basic for Girls 캠페인 참여하기>

DIY 면 생리대 만들어 보내기 여러분이 직접 만든 면 생리대는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전달됩니다.
*키트 1개당 2시간의 자원봉사 시간을 발급합니다. 1인당 최대 8시간까지 가능합니다.
*키트는 월드비전 홈페이지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키트 금액: 25,000원)

정기 후원하기

여러분의 후원금은 여아에게 안전한 학습 환경 조성, 여아 권리 인식 증진, 성·위생 교육 제공, 조혼 근절 등을 위해 사용됩니다.

Basic for Girls X 유미의 세포들 SNS 이벤트 참여하기

월드비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에서 퀴즈, 공유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9년 1월)

양승혜 옹호&시민참여팀
일러스트 한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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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나는 갈매기] 피아노 선율로 그려가는 나눔 보존의 법칙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곡인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으로 활기찬 인사를 건네준 임윤정(18) 아동.

마음의 숨결 속에서 내게 들리는 소리,
“ 네가 없는 바로 그곳에 행복이 있다!”
–가곡 <방랑자> 中

코앞으로 다가온 겨울처럼 차디찬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랑자 환상곡>이윤정이의 손을 거치자 세상의 외로움을 위로하듯 따스한 선율이 되어 공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피아노 실기 연습과 여러 이론을 계속 공부할 것이며, 2018년도 교내 음악 대회와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이루어낼 것이다. 대회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아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성실하게 연습할 것이다. 실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학교생활도 성실히 하며 교과 과목의 성적에도 신경을 쓸 것이다.

나는 나중에 내가 나를 돌아보았을 때, 아쉬운 점은 있어도 후회되는 점은 없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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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도 1등, 피아노 실력도 1등

월드비전과의 약속을 성실히 이루어가고 있는 윤정이. 국내 유수의 음악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가장 좋아하는 과목인 국어는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

성실하고 어른스러운 성격 때문인지 윤정이는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집에서는 자랑스러운 딸로 어머니의 행복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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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치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요. 그게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기대하지 않았는데 실력이 느는 게 느껴지니까 피아노가 점점 재미있어져요. 제가 노력할수록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다 보니 매 순간 더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본인의 생각을 곡에 담으려 노력한다는 윤정이. 윤정이가 손가락으로 그려낸 생각들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울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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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힘들어도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공할 거란 걸 알아요!

“대회를 준비할 땐 피아노 페달을 많이 밟아서 발바닥이 까지고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연습을 해서 힘들기도 해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란 생각도들 지만 제가 열심히 한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니까 스스로를 믿으며 더 노력하자고 다짐해요.”

18세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윤정이는 따듯하고 어른스럽습니다. 윤정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미래의 피아니스트를 만난 듯 제 마음도 위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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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사하게도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피아니스트란 꿈을 꾸게 되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피아노를 포기하는 친구가 많아요. 저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나면 꼭 교수도 되고 싶어요.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내가 받았던 나눔을 가르침으로 돌려주고 싶어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듯, 나눔에도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원자님들의 따스한 마음이 후원아동에겐 나눔의 씨앗이 되고, 그 씨앗이 다른 누군가에게 그루터기가 되어 또 다른 나눔을 전하겠죠?

윤정이가 후원자님께 보내는 편지

후원자님! 멀게만 보였던 저의 꿈을 구체적인 목표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월드비전과 후원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꿈을 포기했을 것 같아요. 지금은 후원자님들의 도움으로 제가 학원도 꾸준히 다닐 수 있고, 피아니스트란 꿈을 실제로 그려나가고 있어요.

항상 저를 지켜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 드려요. 앞으로 더 멋진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윤현정 사회복지사의 한 마디

지난 5년 동안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윤정이의 숱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었고 고비도 있었지만, 수많은 밤을 보내며 피아니스트의 꿈 하나만을 붙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윤정이를 도와주신 후원자님께 정말 감사 드립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멀리서 묵묵히 지켜봐주시고, 뜨거운 격려를 해주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어서 윤정이가 이토록 멋지게 성장했습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해주신 것인지 후원자님께서도 자부심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윤정이의 피아노 독주회가 열리는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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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쿰 스튜디오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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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원아동] 미래의 국가대표 엔지니어

“저도 항상 후원자님처럼 되고 싶었어요”

후원자님이 보내주신 편지 한 통이 후원아동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월드비전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부규필(20).

8년째 계속된 후원자님의 관심과 응원의 편지가 규필이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엔지니어라는 후원자님의 직업을 통해 알게 된 꿈. 그 꿈을 이루어 멋진 엔지니어가 된 기적 같은 규필이의 이야기를 지금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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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님의 직업이 나의 꿈으로, 꿈을 선물해주신 후원자님

어렸을 적부터 저는 꿈이 참 많은 아이였어요. 어느 날, 후원자님의 편지를 통해 후원자님이 엔지니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엔지니어가 무얼까 알아보다가 어느덧 저도 로봇 공학자를 꿈꾸게 되었어요.

후원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선생님이나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요?

어느 저녁이었어요. 메일 한 통이 와 있는 거예요. S전자에서 온 스카우트 메일이었어요. 꿈인지 진짜인지 믿기지 않았어요. 그저 꿈이었던 일이 현실이 되어 요즘도 하루하루가 새롭고 보람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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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번 만나뵙고 싶은 영광 아저씨

후원자님은 저를 ‘제주 소년’으로, 저는 영광에서 근무하시는 후원자님을 ‘영광 아저씨’라고 불렀어요.

제가 후원자님처럼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편지하자 보내주신 답장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 본인의 업을 이어간다고 했을 때처럼 편지에서 기쁨과 뿌듯함이 느껴져 저도 정말 행복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후원자님을 언젠가는 한번 꼭 직접 뵙고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후원자님은 아실까요?

후원자님의 사랑과 관심이 규필이의 꿈을 키우고 삶을 변화시키셨다는 걸요. 올 10월에는 규필이도 영광 아저씨처럼 한 아이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한 후원자님의 후원이 한 아이에게 꿈을 선물하고, 그 아이가 또 다른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일.

이러한 아름다움이 꿈꾸는아이들의 가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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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꿈의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아요

꿈꾸는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규필이. 그렇기에 월드비전의 각종 행사 때마다 섭외 일순위입니다. 바쁜 회사 일정에도 모든 요청에 응해주고 꿈꾸는아이들과의 만남에 적극 참여해주는 규필이. 규필이를 이 자리에 이끄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부족한 저를 불러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처음 꿈을 가졌을 때의 초심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월드비전에서 불러주시면 언제든 참가하려고 해요. 또 사내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있고요. 꿈을 가지고 자라나는 친구들을 보면 저의 어렸을 적도 생각나고요. 앞으로도 제 능력이 되는 한 최대한 협조하고 싶습니다.

올 초, 교육 출장이 잡혀 있었는데, 월드비전에서 꿈꾸는아이들 행사 참여 요청이 왔어요. 회사 파트장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놀랍게도 파트장님도 월드비전 후원자셨어요. 덕분에 저의 사정을 잘 이해해주시고 출장 일정을 조정해주셨어요. 제 생각보다 더 많은 분이 월드비전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계시다는 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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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공학자가 되는 게 쉽겠니?” 주변의 우려 속 이루어낸 꿈

제가 어렸을 때 로봇 공학자가 꿈이라고 하면 선생님조차 “쉬울 것 같니? 할 수 있겠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이 듣기 싫어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어요. 제주도를 떠나 서울로봇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각종 대회에서도 입상해 지금 저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른들의 한 마디가 아이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좌절을 주기도 한다는 것. 문득 내뱉는 말 한 마디의 영향력을 우리는 간혹 잊고 살진 않을까요?

2016년 월드비전 매거진 인터뷰 사진

2016년 월드비전 매거진 인터뷰 사진

2016년 제주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매거진 인터뷰에서 ‘로봇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던 규필이. 꿈을 현실로 그려나가고 있는 규필이를 보며 꿈꾸는아이들의 미래를 봅니다.

후원자님을 통해 아이들의 세상이 커지고, 자라난 꿈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일. 그러한 사명을 갖고 월드비전은 오늘도 나아갑니다.

꿈꾸는아이들에게 한 마디!

꿈이 있는 자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여러분이 꿈을 갖게 된 순간과 그 꿈의 이름을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혹시나 현재 꿈이 불확실하다고 두려워 마세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분명 선명해질 거예요.


후원자님께 전하는 한 마디!

저는 후원자님 덕분에 지금까지 멋지게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욱 멋지게 살 거고요. 나중에 제 이름이 텔레비전이나 뉴스, 신문에 나온다면 그 아이가 제주 소년이었다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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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꿈꾸는아이들 꿈지원 사업

후원자님들은 꿈이 있지만 현실의 장벽 앞에 도전도 하기 전에 포기해버렸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꿈은 사치라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월드비전의 꿈꾸는아이들 사업은 계속됩니다.

꿈디자이너 꿈날개클럽
대상 초5 ~ 고3 중1 ~ 대학생
사업
내용
취약한 환경으로 꿈꾸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이 자아를 탐색하고 관심 영역을 체험하는 활동 구체적으로 꿈꾸는 아동과 청소년이 관심 영역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도전하는 활동
대상자
1,420명 677명(2018년)
사업
기간
2013년 ~ 지속(고3까지 지원) 1년 단위
프로
그램
1 ~ 2단계 진로 탐색(대인 관계 형성)
아동이 흥미와 관심 영역을 가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3 ~ 5단계 진로 구체화(협동과 갈등 해결)
진로와 인성의 성장을 통해 자신의 관심 영역을 탐색하고 체험합니다.

6 ~ 7단계 진로 의사 결정(사회 적응 훈련)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고 스스로 자신의 꿈을 준비하는 과정을 계획하고 실천합니다.

주니어
꿈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탐색이 필요한 아동에게 추가적인 도전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시니어
꿈이 명확하고 재능이 있는 아동에게 꿈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리더스
전문인으로 성장하기를 꿈꾸는 취약 계층 대학생들이 꿈을 이루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김보영 콘텐츠&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쿰 스튜디오 편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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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2018 가을호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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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X경향신문 ‘I AM, 나를 희망한다’ 난민 사진전 후기

“여러분은 ‘난민’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뉴스와 신문, 인터넷에서 자주 접하는 ‘난민’
그러나 어딘지 멀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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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 경향신문
분쟁피해지역 아동들의 실상을 알리고
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를 위해
공동 기획 사진전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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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X경향신문 공동 기획전 
“I AM, 나를 희망한다”

일시: 2018.06.19(화)~07.01(일)
장소: 서울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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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오프닝 행사와 함께 
시작된 ‘사진전”

난민 아동들에게 희망을 전하고픈 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오프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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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님들의 작품 설명도
직접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먼저, 전시관 2층에 위치한
요르단 시리아 아즈락 난민캠프 사진의 작가이신
이준헌 기자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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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분쟁이 이어지며 시리아 아이들의 삶은 난민촌 안에 갇혀있었습니다. 제가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캠프에 머무른 시간은 일주일도 채 안 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삶을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도 다 보지 못하고 온 거죠. 아이들이 그린 그림 속엔 파편뿐이었습니다. 난민이 겪는 외형의 고통이 아닌 마음으로 흘리는 아픔과 눈물을 담고 싶었습니다.” @경향신문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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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품 설명을 따라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보며,
지하 1층에 위치한 전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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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꾸며진
지하 1층 전시 공간.

이곳엔 우간다 남수단 임페비 난민캠프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김영민 작가님의 작품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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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때는 난민이었습니다. 일제의 학정을 피해 만주로 상해로 떠난 사람들. 6.25 때 고향을 떠나 가족과 이별해야 했던 사람들도 난민이 아니었을까요.” 전시를 보시는 분들이 난민을 그저 쳐다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민 아이들과 마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경향신문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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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한쪽에는 난민아동들의 실상과 함께
우리들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영상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요.
마음을 울리는 영상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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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행사 함께 해주신 특별한 손님!
바로 월드비전 친선대사, 배우 김혜자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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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으로 생화학 무기까지 사용하는 사태를 여러분도 들으셨죠? 할아버지도 갓난 아이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누구는 그래요. ‘감성팔이 하지 말아라’ 저는 그래도 모른 척 하기보다는 지금의 현실에 함께 아파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당장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뾰족한 수는 없겠지만, 이런 우리의 마음이 모아지면 점점 번져나가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월드비전 친선대사 배우 김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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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선생님의 진심 어린 호소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우리는 난민 아동을 위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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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오프닝 행사의 마지막!

시리아 난민을 위한 곡을 만들어
곧 발매를 앞두고 있는 두 뮤지션,
CR태규와 데이먼의 멋진 공연으로
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I AM
[난민 아동을 지키는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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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난민 아동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위로하고 응원한 시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난민 아이들의 삶이 여러분께
한 발짝 더 다가가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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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전X경향신문 공동 기획전
<I AM, 나를 희망한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글과 사진. 김유진 콘텐츠&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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